<과학기술정책론> 수업 첫 시간의 교재는 1945년 7월에 쓰여진 한 미국인의 보고서였어요. 세계 대전 중 국방 연구를 담당했던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의 Vannevar Bush (왼쪽 사진) 라는 분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Science: The Endless Frontier
(이 분, 위키 인물정보 거의 위인전 마냥 길어요..)
새로운 산업, 직업들은 기초과학 연구를 통한 지식을 기반으로 발전할 수 있고, 질병에 대한 대응, 국가안보, 공공복지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과학적 자본인 기초과학을 강화해야 하고 R&D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산업 혁신을 가져오고,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는 새로운 과학지식 개발과 과학 교육 등을 위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과학기술 발전이 국가경제는 물론 삶의 질을 높이는 기초가 될 수 밖에 없으며, 미국이 강대국으로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기반.. 의료 분야에서 페니실린, 백신 등에 힘입어 질병을 퇴치하고 군 사망률, 영유아 사망률 등을 낮출 수 있었듯.. 특히 고용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제품,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기초과학 투자가 필수적이다…
조금 뜬구름 같은가요? 이 보고서가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렇게 ‘얘기되는 역사적 기록’이 된 것은 다 맥락이 있습니다.
이삼열 교수님은 최근 연구실 컴퓨터를 바꾼 이야기를 하셨어요. 예산을 썼으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 영수증을 발견한 부인에게는 10년 만에 연구실 장비 업그레이드 어쩌고 하셨다고^^; 근데 이게 국가 예산이면.. 국가가 예산을 쓰는데는 정말 ‘근거’와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Bush 의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기초과학 R&D 에 예산을 쓰는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독일의 잠수정 U보트를 막아낸 일이 꼽힌답니다. 연합군 영국은 U보트의 해상봉쇄로 물자 수급이 막혔던 상황. 그런데 이 U보트는 바다 밑에 숨어만 있는게 아니라 전기 동력 충전을 위해 수면 위로 잠시 올라가곤 했답니다. 미국은 그 기회를 포착해 재빨리 레이더로 U보트 위치를 확인, 전투기를 보내서 격침했습니다. 바로 이 레이더가 미국 과학자들이 개발한 기술이었다나요. 하기야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앨런 튜링의 커퓨팅 머쉰 역시 영국의 국방 예산으로 개발됐습니다. ‘국가 예산이 투자가 되면, 전쟁에 이기는 기술이 나온다’.. 뭐 이런 가설이 성립되는 거죠.
물론, Bush의 구상은 힘 있는 정부 출연기관을 만들고, 국회 동의 없이 예산을 R&D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노회한 전술도 포함됩니다. 루즈벨트 이후 트루만이 집권하면서 그가 힘을 잃기는 했지만, 구상의 일부는 실현됩니다. 이 보고서는 이후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DARPA) 등의 설립과 R&D 예산 확대 등 미국 과학기술정책 기본 방향 설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만들고자 해서 결국 남은 건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였지만, 핵무기 개발하던 이들은 에너지 부처로 갔고, 국방 R&D가 커지면서 기초과학이 수혜를 입계 되고, 군산형 R&D 체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따로 컨트롤 타워는 없지만, 대통령실에서 챙기는 그런 구조.
미국 경제는 이후 화학, 자동차, 철강 온갖 분야에서 잘.. 나가다가, 복병에 부딪칩니다. 일본 식 산업정책에 밀려 자국 산업이 하나둘 몰락하죠. 그러나 또다른 모멘텀이 찾아옵니다. 디지털입니다.
마침, 최근에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세상읽기] 창업가형 국가 / 이원재
예를 들어 아이폰의 주요 기술을 보자. 마이크로칩, 인터넷, 지피에스(GPS), 터치스크린은 미 국방부와 방위고등연구계획국과 중앙정보국의 작품이며, 미국 바이오산업의 신물질 신약의 75%가 국립보건원 연구실에서 나왔다.
이 기술들은 개발 당시에는 미래가 불확실했다. 정부가 위험한 투자를 감행했다. 기업들은 이런 연구 성과를 잘 조합해 이용하고 포장했을 뿐이다.
어쩌면 한국 경제 성장 방법도 비슷했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중화학공업도 통신서비스도 아이티(IT)벤처기업도,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시디엠에이(CDMA)에 투자하며 초고속인터넷망을 전국에 깔도록 움직이는 정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부가 불확실한 기술에 투자하며 기회의 창을 열었던 셈이다.
아무리 봐도, DARPA는 위협적입니다. 인터넷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로봇도 무인자동차도, 우주정복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곳' 이라는 작년 보도 보면, 아이언맨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구글의 빈튼 서프 부사장과 레지나 듀건 기술부문 부사장이 여기 출신. MS도 영입했군요. DARPA 와 미국 기술기업들은 한 몸처럼, 산학연구, 민관연구, 일심동체 분위기.
R&D 에는 spillover 일출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social return 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1970년대 제록스의 개인용 컴퓨터 '알토'가 제록스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애플의 매킨토시로 이어진것도 뭐 의미가 있는거죠. 그래서 DARPA를 비롯해 미국 국방부나 NASA의 예산이 궁극적으로 미국 기업들에게서 결실을 맺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곧바로 답했습니다. 지식 자본만으로 안되는 이유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R&D로 얻은 지식을, 그 공공재를 누가 활용할 것인가의 매카니즘이 미국에서 활발했노라고. 계획경제에선 활용할 의지가 없었지 않나 싶다고.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정부 R&D는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그 social return 을 만들어내는 최전선에 있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우리나라 연간 예산은 약 380조 규모원. 2016년 19개 부처 373개 주요 R&D 예산은 12조6380억원. GDP 대비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고, 기초과학 연구 비중이 40%에 달한다고 합니다. 5G 통신망, 홀로그램 기술, 도로지능망 등이 주요 투자 대상입니다. (기사 참고) 구글과 페북 처럼 소프트웨어 쪽은 잘 모르겠군요. ^^;; 우리나라 정부의 전체 R&D 규모는, 2014년 구글이 쓴 R&D 예산 98억달러(약 10.7조원)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과학기술정책론> 수업 하루 들었다고, 정리를 이 정도나.... 켁. 사실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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