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가 얼마나 큰 돈인지 알아요? 공자님이 지금까지 살아 2500년간 하루 100만원을 써도 다 못 써요. 국민 세금 몇 조 우습게 보고 문제 생기면 장관 사표만 내요? 그 돈 안 메꾸고?"
공공투자관리론 수업. 투자비 증가 사례들 듣던 P님이 발끈했습니다.
공공투자관리(Public Investment Management)란게 왜 필요한가... 오늘 수업은 이런 분야 전혀 모르는 제게 꽤 흥미로왔습니다.
5.5조원이면 된다던 KTX 경부선이 18.5조 짜리로 둔갑하는 건, 뭔가 비용 예측이 잘못된 거죠. 세금을 주먹구구로 쓰는 꼴이 될 수 있는데, 정부 프로젝트는 대체로 이해관계 탓에 이런 경우가 있답니다. 일단 주무 부처는 Budget maximizing 경향이 있구요. Irreversible decision making behavior, 즉 일단 저지르면 돌이킬 수 없도록 밀고 가는 편이라네요. 그리고 기술전문가와 교수들은 keeping up the market, 시장을 계속 키워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비용 예측을 정교하게 하기 보다, 비용은 적게 들거다, 편익은 많을거다, 라는 낙관적 편견에 쿵짝이 맞는다네요.
이런 문제가 심각하니, 1994년 총사업비관리제도(TPCM, Total Project Cost Management)란게 도입됐지만, 활성화되지는 않았답니다. 이후 예비타당성조사(PFS, Preliminary Feasibility Study), 타당성 재조사 제도(RSF, Re-assessment Study of feasibility)가 1999년 도입됐고, 정부 예산안 심층평가제(IEBP, In-Depth Evaluation of Budgetary Program, 2005년), 수요예측 재조사 제도(RDF, Re-assessment of Demand Forecast, 2006년), 등에 이어 급기야 국가재정법이 도입됐다고 합니다.
각계 다양한 분들과 함께 듣는 수업이다보니, 이쯤에서 반론들. 관련 업무를 아는 공무원 A님은 “성과 평가(Performance Evaluation) 할 때, 좋은 방향으로 왜곡되고 자의적으로 평가되는 경향, 아무래도 자화자찬하는 경향도 있다”고 부연 설명. 그리고 “예측치와 실적치 통계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저는 성과 평가 같은걸 왜 당사자에게 맡기는지 이해 불가. 감리란 대체..)
수요예측 큰 사업이 대개 건설교통 쪽인데, 교통량 db관리조차 주중이냐, 주말이냐, 주말 중 토욜이냐, 일욜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결과에도 불구, 대개 어느 하루 샘플링으로 조사한다고 하네요. 예산 탓에..(이런건 예산을 아끼시는군요). 용역 주는 쪽도, 하는 쪽도 그 정도 교통량 아니란거 알아도, 만들어달라면 다 만들어준다는 마법 보고서란 얘기도…
또다른 공무원 B님은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예산이 최초 얼마인데, 최종 얼마에 끝났는지. 기획재정부가 조사를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거의 전수조사. 1억원만 늘어나도 다 재조사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B님은 “당초 계획과 달리 조금 더 나은 장비를 들여오려고 해도, 사업비 10% 증가도 기획재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탓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시더군요. 예산 10% 이상 초과되면 감사원 조사도 받아야 한답니다.
근데, 무슨 기관 건물 짓는데 낙찰률 65% 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건설업체는 원래 드는 비용의 65%만 받고 수주해도 괜찮은건가요? 관행적으로 낙찰률이 너무 낮다고 전문가가 개탄하시는데, 문외한인 제가 들어봐도, 그리 되면 비용을 처음부터 부풀렸거나, 아님 중간에 빼돌려야만 하는 거 아닌가요? 제대로 짓고 싶어도 무조건 싸게 부른 쪽과 해야 하는 건가요?
하여간에...PFS. 예비타당성 조사(줄여서 예타라 부르시더군요). 요거요거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기획재정부가 KDI 통해 하는데.. 대상은 총사업비 500억 이상. 지자체나 민자 사업도 중앙정부 보조금이 300억 이상인 경우 해당. 처음엔 경제인프라(도로, 철도) 주로 봤다면 이제는 소셜 인프라(박물관, 공연장), R&D까지. 복지 프로그램도 올해부터 하는데, 예컨대 저소득층 기저귀 분유 지원 사업 같은 경우, 비용의 효과성을 출산율 올라가는 걸로 본다는데… 어떤 학생이 또 반론. “그거 위에서 시키니까, 밑에서 만들어낸 논리 아닌가요?”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사업 가급적 예타 안받으려고 280억 정도 보조금만 받는 꼼수도 쓰시고… 뭐 그런다네요. 근데 예타를 통과하면, 재선 성공률이 올라간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그런 연구도.. 아직 발표는 안됐지만 있다고 하네요. ^^;;
이 모든 얘기가 저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일단 문외한인지라.. 정부 예산 허투루 쓰는 걸 막기 위해, 선심성 공사 막고, 비용보다 편익이 높은 사업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저런 다양한 제도가 있구나. 기획재정부가 깐깐하게 따지고, 감사원이 또 들여다보고. 그것도 법으로. 뭐 이런 감탄.
그리고 두번째 감탄은… 저 많은 제도에도 불구, 저걸 하나도 안 받았다는 4대강 사업과 아라뱃길 사업 등의 추진능력 이랄까..
“정부가 2009년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재해예방사업과 기재부 장관이 정한 국가정책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도록 하면서 보·준설 등 4대강 사업의 핵심 공사가 조사대상에서 모두 빠졌다.
이명박 정부가 원주∼강릉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위주의 '30대 선도사업'을 추진하면서 21개 신규 사업(총사업비 21조8천억원)에 대해 '예타 실익이 없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것도 대표적 사례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사업은 69개로 총 사업비가 53조9천195억원 규모에 달했다.”
국가재정법 제38조(예비타당성조사) 제2항 예외조항 제7호는 "재난예방을 위해 시급히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받은 사업".. 아마 이 조항인듯 한데. 이 조항. 2008년에 새로 만들어넣은 거라 합니다.
무튼... 공공투자관리. 이거 걱정보다 재미난 수업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1조원요? 공자님이 2500년 동안 날마다 100만원을 써도 못 쓰는 돈. 예비타당성 조사가 이러저러 히스토리 속에서 이러저러 법으로 정해져서..세금 잘 쓰이도록 감시하는 장치라는데. 하여간에 2008년부터 5년간 53조원이 이 조사를 받지 않고 넘어갔다는 거네요. 그동안 머리 아픈 보도, 잘 모르는 어려운 보도, 제대로 보지 않았더니 엄청난 일이 벌어졌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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