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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도쿄,오사카,교토]먹다 죽는다는게..

여행책에서 말하기를..우리나라에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구이다오레", 먹다가 망한다는 오사카인들의 식탐을 뜻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신기하거나 조금 색다른 음식에 환장하는 식탐의 소유자로서, 이번 여행의 컨셉은 사실 죽기 직전까지 맛을 즐기자 했다. 근사하지 않은가. 

첫 끼니는 K신문 특파원인 S선배의 안내로 찾은 도쿄 어느 쇼핑몰 식당가의 점심. 우동집 같은데, 줄 꽤 길었다. 하기야 S선배네가 검증했다고 데려간 곳이니ㅎ 여튼 그림만 보고 고른 냉우동(사진 위)은 도쿄의 첫 식도락을 상콤하게 시작하게 해줬다. 일본 음식에서 두고두고 감탄한 저 계란 하나의 신비. 맛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탱글탱글 탄탄한 면빨은 설명할 필요 없을 듯 하다. 우동은 저 한끼로 끝.

오사카의 숙소는 난바역 부근으로 우리나라 명동 같은 도톰보리와 붙어있다. 이곳에 오사카 지역 방송국 선정 라멘 랭킹에서 3년 연속 했다는 '가무쿠라 라멘'이 바로 왼쪽 아래 사진의 주인공이다. 진한 국물에 배추가 가득한데 담백하고 깔끔. 평소 느끼한 맛을 나름 거부하는 옆지기 왈 "라멘 한 그릇으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걸까?"ㅋㅋ 너무 라멘이 마음에 들어 마지막날 아침에도 가무쿠라 라면 근처에서 맛집TV 방영된걸 벽에서 들고 잇는 집에 들어갔다. 콜라겐 덩어리라는 걸 시켰더니 아래 사진 오른쪽의 고기 둥둥 라멘이 나왔는데 나름 굿!! 옆지기는 짬뽕을 시켰다. 아래 사진 가운데 녀석이다.  다들 좀 짜다는 점은 인정하는데, 하여간 라멘이 이렇게 다 다를 수 있다는데 즐겁지 않을수가.

 

 



도쿄의 첫날 저녁은 마츠리 구경하다가, 근처 재미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대충 때웠다. 햄버그 스테이크가 주력인거 같은데 탄탄멘도 있다니 별걸 다. 여튼 기력이 없어 사진도 못찍고..둘째날 점심은 신주쿠에서 헤매다가 회전스시집에서 간단히 몇점 맛만 봤다. 조금 먹었다고 강조해야 하는게, 돌아다니다 2~3시쯤 결국 신주쿠 야끼도리 골목에서 야끼도리와 맥주로 점심 2차를 했기 때문. 걍 아무데나 들어간 스시는 가격대비 만족도는 끝내줬는데, 사실 퀄리티로야 요즘 국내에서 잘나간다는 집에 못 미쳤고..야끼도리도 국내 잘하는 집보다 특별히 나은건 모르겠더라.  

이날 저녁은 신주쿠 또 어딘가의 조금 고급 술집에서 도쿄 특파원인 옆지기 친구와 한잔. 하이보루(high ball?)이라고, 탄산수에 위스키 살짝 탄 녀석이 매우 맘에 들었다. 홀짝홀짝 하기에 딱 좋은. 안주는 참으로 일본스러운게, 김치 한 접시, 잘게 자른 토마토 1개, 짠지 몇가지 등이 모두 버젓이 돈받는 메뉴. 이 저녁은 괜히 체면을 차린건지, 하여간에 사진이 남은게 없다..

  



 

오사카에 도착한 첫 점심은 가마쿠라 라멘이었다면, 저녁은 또..끝내줬다. (-,.-) 일단 매년 7월25일에 열린다는 오사카 마츠리를 구경갔더니, 온갖 길거리 음식이 총출동. 각종 꼬치구이는 기본. 고베산이라고 원산지 밝힌 와규로 만든 꼬치도 끝내줬다. 생선 구워 파는건 신기해서 찰칵. 야끼소바 오코노미야끼류는 엄청 많은데 배부를까봐 못 먹었고, 타코야끼 정도만 간단 시식. 하여간 눈과 입이 호사로다..




 

저 매력적인 길거리 음식을 아껴서 조금씩만 먹은 것은, 공식 만찬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오사카에서 공부하는 옆지기 후배가 안내한 곳은 남바 오리엔탈 호텔 2층에 있던 '토리히메'라는 닭고기(토리) 전문점. 닭으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메뉴에 도전했다. 얇은 채로 튀겨낸 감자를 얹은 샐러드(오른쪽 위)의 고소한 맛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고, 마치 생선회인양 등장한 저 닭 사시미(오른쪽 아래)는 '토리 사사미'라고 부르던데 비릿한 냄새 하나 없이 깔끔하고 살캉쫄깃 했다. 발상과 도전이 기특하다고 할까? 이런 녀석을 또 미소소스에 무침(왼쪽 위)으로도 내고, 쌀 같은걸 튀김옷으로 활용한 녀석까지 하여간...또 호사;;;;



 

교토의 점심은 금각사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다가, 우연히 발견한 수제 메밀집에서 해결했다. 가장 유명한 메뉴를 알려달라니까, 훈제 생선 한마리가 통째로 얹어져서 나오는 걸 추천했다(왼쪽 아래). 비린걸 즐기지 않는 옆지기는 고개를 내저었지만, 나는 짭쪼름한 맛에 신이 났고...저 메밀은 진정 투박하고 뚝뚝 끊어지고 거친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옆지기는 무난한 메밀세트(위)를 주문했는데, 소바도 좋았지만 함께 나온 돼지고기 덮밥이 괜찮았다.


 


교토에서 종일 쏘다니다가 교토역 부근 지하상가 경양식집에 잠시 쉬러 들어가서 만난건, 오무라이스(왼쪽위)와 비프 카레(오른쪽 위). 걍 아무 집이나 들어갔는데,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걸까? 계란이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저 오무라이스도 좋았지만 비프 카레도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는 살짝 간식삼아 먹는 이른 저녁이라고 남길 예정이었는데, 도저히..

오사카는 경양식을 먹어야 한다고 추천해준 H쌤의 조언에 따라 경양식을 더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솔직히 짧은 여행기간의 끼니 수가 부족했다. 간신히 마지막날 점심은 난바 역 부근 지유센이라는 카레집에서 명물카레(오른쪽 아래)란 걸 시도했다. 이게 무려 1910년에 개업한 이 가게의 대표 메뉴. 여행서에 따르면 양파 쇠고기를 넣은 닭뼈 수프에 토마토 퓌레와 카레 가루를 넣어 비빈뒤 날달걀로 한번 더 비벼야 한다. 아쉽게도, 이 명물카레는 여행서 설명에서 받은 감동만 못했다. 그냥 옆지기가 주문한 비프카레(아래 왼쪽)이 더 독특한 맛이더라.  



 

하여간 오사카에 왔는데, 이곳이 원조라는 오꼬노미야끼도 도저히 빼놓을 수가 없어서, 교토에서 종일 헤매고 오무라이스를 간식삼아 이른 저녁으로 먹은 날 저녁 9시쯤 또 여행서에서 추천한 집을 찾았다. 도톰보리의 아지노야란 집인데, 일본인들 틈에 껴서 줄을 섰다. 다행히 20분 정도 기다려 자리가 났다. 마치 한국 맛집처럼 사인한 종이가 벽을 메우고 있는 집. 테이블마다 철판이 포스를 자랑하고, 엄청난 양배추와 기타 등등을 갖고 와서 척 부어놓는다. 옆지기는 아사히 생맥주, 나는 하이보루 한잔에 저 녀석을 해치우는데,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끝. 한국에서 먹었던 오꼬노미야끼는 전부 가짜인거 같다는게 소감이다. 더 무슨 말을 하겠나.


 

도톰보리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상점과 음식점들의 거리. 가마쿠라 라멘 집 부근인 그 중심에는 온갖 유명 맛집의 초대형 간판이 관광객의 눈길을 붙든다. 엄청난 게 장식을 자랑하는 집은 사실 게 코스가 거의 1인당 10만원이라..포기. 그러나 엄청나게 큰 간판 구경만으로 즐거운 상상이 가능한 동네다.


떠나는 날 아침에 라멘 한그릇 먹어보겠다고 8시반쯤 호텔을 나섰다가 만난 풍경. 평일 아침 오사카 시민들을 저렇게 줄세운 곳은 빠찡고다. 라멘 먹고 왔더니 줄은 줄어든 대신, 거리 모퉁이마다 빠찡고 가게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다소 당혹스럽고, 난감한 풍경. 해석을 아끼는 편이 낫겠다.



하여간에 저렇게 먹고 어떻게 됐냐고? 옆지기는 오히려 1kg가 줄었다고 한다. 정말 많이 걸어다닌 덕분일까. 나는 무서워서 저울에 올라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