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중독> 왜곡된 공부로 망가지는 부모와 아이

소박한 리뷰/비소설 2016. 2. 21. 15:34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한 반 27명 중 6명이 같은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대치동 스타일로 유명한 학원. 하루 60~100개의 단어를 기준점 이상 외우지 못하면 집에 보내지 않는걸로 유명했다. 나는 어떤 엄마와 "아동학대"라고 거품을 물었다. 딸도 그런 학원에는 갈 수 없다며 펄쩍 뛰었다. 당시 공부잘하는 어떤 아이는, 숙제를 다 못하면 엄마가 화장실에 가둔다는 흉흉한 얘기도 돌았던 때라 몇몇 엄마들은 분개했다.


그리고, 그때 그 학원 다니던 아이들이 모두 잘 자랐다.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정말 잘 한다. 아마 좋은 대학 가서도 공부 잘 할 것 같다. 그 학원을 비롯해, '쎈 학원'에 가본 적 없는 딸의 성적은 별로다.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깊고, 참 괜찮은데 공부만 못한다" 고 딸 얘기를 하다가 어느날 흠칫했다. 공부 빼고는 다 잘 한다는 이야기를 왜 하고 있나. 그저 참 괜찮은 소녀일 뿐인데, 왜 엄마인 주제에 공부 얘기를 빼놓지 않고 한탄하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10살 소녀를 당시 그 빡센 학원에 보내지 않은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특히 직딩맘이 아이를 방치해서 아이 성적이 별로라고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다. 한국 사회가 병들어 있는 현실을. 교육병이 망국병이고, 아이들을 암기괴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명문대 나와본들 취직 안되는 상황을. 창의적 예체능 교육마저 학원식 포트폴리오로 교육해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것을. 아이들을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로 착취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실제 행하는 것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덜 학대했을 뿐, 주저함으로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수준으로 했을 뿐,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킨다. 끝도 없이 공부를 강요한다. 나도 불안하다. 아이가 대학을 나오지 못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어떤 차별과 절망에 부딪칠치 겁이 난다.


공동 저자인 하지현쌤이 예전에 "우산이 되어주라"고 말한 적 있다. 엄마가 온갖 학원 정보나 선행학습 정보를 듣고도 막아주지 않는다면, 엄마가 남들 하는대로 다 따라하면서 우산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아이가 다친다고. 불안이라는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되라고. 그래서 물었다. 우산이 되는 엄마는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보고 듣는 공포를 꾹 참고, 아이에게 투과하지 않는게 가능하냐고. 당시 하쌤은 "엄마는 우산이 되려다 장렬하게 산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냐"고 했다.


공부중독. 내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별로 없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지 오래다. 그러나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곱씹고 또 곱씹게 된다. 불안이 내 영혼을 잠식하지 않도록 달래야 한다. 부모로 살아가는 것도 날마다 도전이다. 아이에게 과도한 관심 대신, 내 인생 잘 사는게 답이라는 것을 알지만. 언제나 어렵다.



부모의 불안과 욕망


아이가 망가지더라도 명문대 가면 좋겠다는 부모의 솔직한 욕망..이런 욕망 때문에 우리 사회는 부질없는 돈 지랄, 에너지 지랄의 세계가 되었어요. 그래봤자 투자 대비 아웃풋은 형편없을 위험이 높고. 부모 자식 모두에게 해가 될 확률이 높다는걸


독서모임 #트레바리 우리 클럽 2월의 책이었다. 책 내용 한 줄도 없이 독후감을 몇 줄 올릴 수 있던 것은 공부 고민이 가득한 탓이겠지. 지금 이 글을 정리하는 것은 대치동의 한 카페. 동네 평범한 학원만 다니던 딸이 지난 학기부터 대치동에 진출했다. 동네 학원엔 그 학교 내신반이 없었다ㅠ 평소엔 버스 타고 힘들게 다니는데, 일요일엔 데려다주고 카페에서 기다린다. 몇몇 친구들은 일찌감치 하던 하드 트레이닝에 뒤늦게 나선 딸에게 이게 쉬울 리 없다. 엄마로서도 "뭔가 해보고 있다"고 불안을 달래는 동시에 이게 맞나 불안이 또 싹튼다. 


명문대 가면 좋겠다는 욕망이 아니다. 벼랑 끝에서 밀려나지 말고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냐는 불안감이다. 이런 불안이 아이를 공부 지옥에 빠뜨린다. 공부가 즐거울 수도 있다고? 공부에 타고난 몇몇 아이들 얘기다. 더구나 이런 맹목적 암기 훈련이 즐거울 수 있을까. 


공부중독, 임계점에 온걸까


2008년까지 서울 출신 해외유학 초중고생 1만4천명. 그런데 작년엔 3400명. 바로 중산층 붕괴.의 서곡..예전엔 빚 내서라도 해외유학 보내면 더 벌거란 낙관적 전망. 이젠 정말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사교육도 예체능부터 줄어드는 중


카지노에서 결국 돈을 따는 사람은 누구인 줄 아세요? 프로 갬블러? 딜러? 아니죠. 아랍 왕자예요. 판돈이 무한인 사람들. 어떻게 보면 중산층은 짤짤이 판돈으로..대치동에서 1년 1억 썼다는게 이상하지 않고, 데미지 없는 이들과 붙는 거예요


공부중독은 세계적 현상이라 디톡스가 어려울거란 평을 봤는데..지금은 임계점에 왔다는 생각이다. 사실 감당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경기가 나빠지면 또 달라지겠지. 트레바리 친구들 역시 모두 이제는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한 친구는 공부중독을 거부하고, 스스로 도전에 나선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판에 박힌 공교육에서 탈출해 음악으로 유학 갔으나, 현재 다른 일을 하며 잘 살고 있다. '하고 싶다'를 찾는 것 만큼 '해보니 이건 아니다'를 찾는 것도 의미 있는 과정이다. 한 친구는 공부 대신 '생활인'으로 뛰어든 친구들 이야기를 전해줬다. 어쩌면 변화하고 있는 세상이 한 눈에 안 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부중독자들만 바라보고, 그런 뉴스만 보니까. 


좋은 공부 vs 왜곡된 공부 


자아중심성이 강하니까 자의식은 무척 높은데, 자기 의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없고. 그러다보니 한편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남 얘기에 쉽게 넘어가고. 어떤 사건, 이슈에 내 의견을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 성장인데..의견이 없어요


의견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과의 대면 속에서 열심히 성찰을 해서 나만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그런데 타석에 들어서지 않고 의견 대신 관전평 정도. 댓글 달고, 게시판에 글 올리는게 의견 같지만..참여자의 의견 대신 구경꿈의 품평일뿐


삶이란게 굉장히 빈약해지고 있다. 공부는 삶의 보조이고, 살아가기 위해 하는 건데. 지금은 거의 공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의 영역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거나 배워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공부해서 뭘 할까가 아니라 다음 공부는 뭘할까


공부의 끝은 사실 지혜를 얻는것. 지금 공부를 질리게 하는건 데이터와 인포메이션을 무한반복 우겨 넣기만 하기 때문. 지혜라는 걸 찾아낼 겨를도 없이 질리게 하는..그렇다면 공부가 알고보면 재미있는 거란걸..많이 아는 것보다 왜 알아야 하는지


공부라는 굉장히 재미있고 설레고 즐거운 인간의 정신활동 진수가 아주 재미없고 더럽고 불쾌한 감정적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 한국의 현실.."공부 많이 했네"가 궁극적으로 가방끈 긴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지혜가 많은 성숙한 사람을 뜻하는 세상이면


공부의 블랙홀에 빠진 부모는 공부에 중독된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온다. 공부 백%짜리 순도 높은 존재일뿐, 사회성, 공감능력, 유연성 같은 요소는 상대적으로 결핍된 상태. 블랙홀이 학교를 넘어서 사회와 인생을 빨아들이고 있다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공부에 대해서 누가 뭐라 할까. 그런데 현재 공부로는 지성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토론하는 것은 낭비라 생각하고 모범답안만 외워서 뭐가 남을까. 문제를 푸는 것보다 문제를 던지는게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트레바리 친구 ㅅㅇㅇ님이 소개한 일본 사연을 인용한다. 


"일본의 아키타현에 있는 국제교육대학은 최근 도쿄대학, 교토대학보다 경쟁률이 치열하다. 이 학교는 4년내내 전교생이 한 학과로 통합된 과정을 밟는데 철학, 인문학을 비롯한 삶에 대해 고민하는 기초 교양 수업, 전통에 관련된 다양한 기술 수업을 선택적으로 들으며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방향을 잡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배운다면, 사실 그 이외의 추가적으로 필요한 배움들은 스스로가 더 쌓아갈 수 있다는 (그리고 필요한 것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또한 해외 교환 유학 반년이 의무화 되어있고, 그만큼의 많은 유학생들이 전세계에서 오기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한다. 언어와 문화를 걍! 함께 체험하면서 배워가라는 것이다. 자꾸만 부딪히고 오래 지내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가 찾아가게끔.

이 대학은 학장이 교육을 향한 일념하나로 밀어붙여서 이렇게 되었다는데, 우리나라에도 하나쯤은 생겨도 좋지않을까?"


모범답안, 공정함에 대한 집착 


삶을 최적화하는것이 최고의 가치, 최고의 기쁨. 그럴수록 의외성, 낯섦, 타자는 사라져버려요. 삶에 이런게 끼어들때마다 화가 나는거죠../강박장애가 늘어나는 맥락과 비슷해요. 그만큼 밖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위험하니 매뉴얼이 필요하고


엘리트 선민의식+보상심리..결혼할때 아파트 사와라 뭐 그런.."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을 쉽게 줘요? 내가 정규직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불공평해요" 그들에겐 그게 합리적 생각/구조와 상황의 산물. 자리가 너무 없어요. 탈락자가 너무 많아요


공정한 시험에 의해서만 평가받기를 원해요. 그런데 그 공정함이란게 굉장히 편협해요. 정성평가가 아닌 정량평가이고, 컷오프로 잘라버리는 객관적인 시험일 때에만 인정할 수 있다는 거죠/ 그 공정함은 도대체 누구에게 공정한 것인지 질문을 던져봐야


공정하자고 만든 제도가 도리어 다양성을 죽이고 획일적으로 특정자원을 가진 이들만 유리해지는 불공정의 역설..대학은 논문 쓰는 교수, 강의 잘하는 교수, 책 쓰는, 프로젝트 잘하는 교수 등 다양하게 필요한데..역설적으로 논문 기계들만 임용되는


앞서 리뷰를 남긴 <플레이>에서 인상적 대목 중 하나는 새로 개발하는 게임에 대해 평가와 품평하는 제도를 도입하자, 실패 뿐 아니라 성공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앞선 성공사례 등 '정답'을 기준으로 삼자, 발상을 바꾸거나 새롭게 도전하는 일이 막혀버린다. 21세기가 과연 모범답안을 외우는게 유효한 시대인가. 우리는 왜 구시대의 학습법을, 미래의 직업에 필요할지 여부도 불투명한 공부로 아이들을 내몰고 있나. 


그래서 어쩌라고.. 어찌할까


내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나의 건강함, 내가 독립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에요. 자식의 좋은 학력과 직업 뒷바라지했다고 아이들이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에요..자식의 대학, 취직 등으로 자기 인생 성적표 받는건 불행한 일


특히 중요한건 삶의 안전망이 구축돼 안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기를 써서 저 위로 올라가야만 안전할 것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괜히 혼자 멋진척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다가 낙오돼서 나만 손해를 볼 거란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교육은 신분상승 등 계급 재조정 역할을 해왔다면, 헬조선 금수저는 이게 끝났음을 반영한다. 저자들은 문제 해결 방법으로 1) 학력간 임금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 2) 특성화고 등 직업훈련 학교 활성화 3) 공부 계기가 있다면 인생의 어떤 순간에라도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나는 결국 경제구조의 문제라 본다.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200만원 이하 월급을 받는다. 자영업자는 더 적게 번다. 쌀집, 미용실 해서 아이들을 대학 보내는게 어렵다. 당연히 좁은문에 과한 경쟁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기본소득이 현실화되면서 또다른 계기를 맞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창의적 혁신적 활동은 잉여에서 나올 확률이 높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들이 좀 더 잉여롭게 살면 안될까. 


트레바리 친구들은 '욕망의 재조정', 혹은 '공부에서 탈출해 성공한 롤 모델의 증가'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의한다.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을 온종일 공부로 채우는 아동학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평생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찾아가는 공부일지도 모르는데, 가짜 공부에 질리게 하는 건 옳지 않다. 우리는 모두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남은 건 현실의 움직임이다.


사족 1> 하쌤 책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사실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 직딩맘의 필독서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불안을 털어내고, 공부중독에서 나를, 아이를 떼어내는 건 정말 대단한 미션이다.




사족 2> 책은 강추. 트레바리 독서모임 2월의 책 투표에서 이 책이 낙점된 뒤.. 반응이 이랬다ㅎㅎ #공부중독 #트레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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