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역사시간에 졸았나

소박한 리뷰/비소설 2016. 1. 3. 23:20

여기에도 올렸습니다>>> https://brunch.co.kr/@manya/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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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먹물임에도 불구, 역사는 언제나 당혹스럽다. 뭘 배웠나 싶다. 사실 2년 전 문소영 선배의  <못난 조선>을 보고서야, 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조선 통신사가 전해주는 문물을 귀하게 여기는 섬나라? 그 덕분에 오히려 서구 문물은 일찍 받아들여 제국주의로 빠져든 나라?  이건 매우 부끄러운 착각이더라. 반면 '조용한 은둔의 나라'?  조선의 쇄국정책은 "국가 운영에 대한 철학이나 전략이 아니라 제 밥그릇을 지키고자 했던 지배층 정쟁의 산물"이라는데? 


열린 나라, 닫힌 나라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조선'을 연구하는 국사학자가 쓴 책이 아니다. 일본을 공부했고, 유라시아라는 프레임에서 역사를 본다. 식민지의 신민이었던 한반도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왜곡하기 쉬운, 가장 취약하거나 잘 모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본열도 전국시대에 시작된 임진왜란, 누르하치 여진 통일과 홍타이지 대청국 건국, 병자호란, 청나라의 산해관 돌파, 타이완 정복까지 200년 연쇄반응이 놀랍다. 아니, 그런 역사를 이렇게 꿰어서 보여주는 덕분에 놀랍게 받아들여진다. 한국사 중심의 시각이 아시아사로 바라보니, 이렇게 또 다르다.


조선 후기 학자 임제는 임종 때 아들이 슬퍼하자 "이 세상 모든 나라가 황제를 일컫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예부터 그러지 못했으니 이처럼 누추한 나라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냐"며 곡 하지 말라고 했단다. 이웃 국가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한 조선과 달리 일본은 오히려 전국시대의 혼란을 걷어내며 공격적으로 세를 키웠다. 주자의 성리학에 매달린 조선과 달리 이미 원전을 직접 연구하는 '고학'을 통해 시야를 키우고 학문적 다양성을 존중했다. 유럽을 향해 실리적 창을 제한적으로 열어놓고 네덜란드를 통해 필요한 문물만 이기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 일본을 살펴보니 외교 전략이 훌륭하다. 무엇보다 열린 나라였다. 필리핀으로 표류한 전라도 홍어장수 문순득이 "다른 나라는 우리와 달라 중국 안남(베트남) 여송(루손) 사람들이 서로 같이 살며, 짝을 지어 장사를 하는 것이 한 나라나 다름없다"고 한탄할 만큼 고립된 조선과 달랐다.

 

역사 탐구를 '민족적 자긍심'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제한하면 곤란하다.궁극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략을 고민할 때 필요하다. 잘못된 선택과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어떤 전략이 부흥기를 이끌었는지, 맥락을 봐야 한다. 쪽O리 짱O 같이 옆 나라를 비하하며 평화로운 백의민족의 역사에 도취될 때가 아니다.이 대목에서 국정교과서 삼천포로 빠질 뻔 하는 걸 참겠다.. ㅋ  


조선은 일본의 변화를 몰랐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대륙의 지배자가 바뀌는 흐름도 이해 못했다. 러시아군과 무력충돌할 때도,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으며, 향후 한반도 운명을 좌우하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예견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일본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미국 중국 존재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바람에 중요한 판단을 그르친 과거는 현재에도 유효한 교훈이다.


그렇다면 섬나라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를 위협하며 성장한 배경이 무엇일까. 대표 지식인들을 통신사로 보내던 조선이 속절 없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도 예나 지금이나 완벽한 나라가 아니고, 약점도 많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혁신에 촉을 세우는 그 시절 일본은 조선보다 낫다. 명분에 매달리는 대신 실리적 전략이 앞섰다. 외국 서적이 들어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번역해내는 끈기, 시신을 해부하면서도 의학을 탐구하는 열정 등은 각 분야 지식인들이 제 몫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통신사들은 당시 “일본에 주자학 뿐 아니라 양명학, 고학 등 주자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학문이 공존하고 유럽 지식까지 들어와 있음을 우려했다”고 한다. 더 큰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던 것은 조선보다 훨씬 빠른 판단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지식정보가 힘으로 이어진 셈이다. 


나만 몰랐던 일본?     


일본의 중세를 끝내고, 철포와 기독교로 대표되는 신기술과 신사상을 들여온 지도자.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드라마나 만화에서나 본 듯한 기분이다. 학창시절 나만 세계사 시간에 졸았던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대목인데, 천하통일의 위업 말미에 가신의 급습으로 결국 그가 자결한 것을 놓고 저자는 마키아벨리를 끄집어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제8장에서 "모든 악행을 심사숙고해야 하며, 악행을 행할 경우 한 번에 몰아서 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악행을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기 때문. 난세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전투가 너무 과했고, 주변 가신의 마음조차 잃었다는 추론이겠지만, 군주론의 저 대목은 여러가지 생각을 낳는다.     


조선 통신사에 대한 한일 양국의 해석도 동상이몽이었다는 걸 몰랐다. 조선은 야만인들의 나라 일본에게 시혜를 베푼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고, 나도 그리 배운듯. 그러나 근세 일본 해석은 정반대다. 일본의 번국으로서 조공을 바쳐왔으나 고려에 뜸해졌고, 일본 전국시대 혼란기에 접어들면서 끊기자, 분노한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일으켜 조공사 파견이 재개된 거란 얘기다. 역사야 승자의 해석이라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각자 입맛에 맞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 해석한걸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각기 크리스트교(가톨릭) 불교(니치렌슈) 신도였다는 사실 관련, 저자의 해석도 주목된다. 저자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종교전쟁”이었다며 “인간은 종교를 내걸었을때 가장 잔인하게 전쟁을 치렀음을 역사는 수천년에 걸쳐 증명한다”고 지적한다. 십자군전쟁 이후, 지금은 IS의 지하드가 벌어지는 시대 아닌가.  



(일본인이 그린 조선 승전도. 울산성 전투도) 


타이완 최초 독자 정권 세운게 중국일본 혼혈 정성공이란 사실도 처음 알았다. 대만의 건국사가 중국과 일본의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같은 식민지 시대를 겪고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다른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아시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해양과 대륙이 맞선' 시기의 아시아 움직임은 흥미롭다. 최소한 그 시기, 일본은 좋은 리더가 이끌었던 것 같다.


명나라가 망한게 청나라가 아니라, 사실은 농민 이자성 때문이란 것도 기억 안나는 교과서 내용. ‘이자성의 난’ 정도로 들어본 것 같은데 당시 이자성은 변방에서 난을 일으킨 정도가 아니라 북경을 함락시켰다. 이로인해 명 황제는 목매어 자살했다. 이후 만리장성 동쪽 산해관을 지키던 명의 오삼계 장군이 이자성에게 항복하는 대신 청군 편에 선 것은 저자 말대로 ‘세계사를 바꾼 결정’. 사실 어느 나라나 오래된 권력이 부패하고 무능해지면서 반란과 혁명의 역사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 같은데. 역사에서 가정법은 쓸데 없다지만, 이자성이 진짜 최종 승리를 거뒀다면 어찌 됐을까.     


알아야 이해하거나 말거나


지난 10월 딸과 후쿠오카 역사 여행을 다녀왔다. 2박3일 내내 박물관과 유적지만 다녔는데, 함께 간 선생님들이 고고학을 비롯해 서양 고전, 중국 금석학까지 쟁쟁한 전문가들이라 진짜 재미났다. 당초 일행의 지도자 역할을 맡기로 한 역사학자 K쌤이 갑작스럽게 동행을 못하셔서 아쉬웠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역사 내공도 장난이 아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준비했다는 나고야성. 그 성터 옆 박물관에는 임진왜란 시기의 유적을 전시한다. 일본에게는 전국시대의 영웅만 보여주는게 아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다는 일본 가이드 선생님은 차분하게 관련 유적과 전쟁을 한국어로 설명했다. 전시물 안내글도 일본어와 한국어로 표기되는 등 전시 내용이 대단히 중립적이란 느낌. 그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느 한쪽이, 특히 일본이 혼자 대단한 나라였다는 식이 아니라, 두 나라가 전쟁과 상관없이 쌓아온 문화 교류가 어땠는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줬다. 이후 요시노가리 유적공원이나 쿠슈 국립박물관에서 발견한 일본 문화는 내가 잘 몰랐던 이웃나라의 오랜 역사가 간단치 않다는 걸 보여줬다.


일본이 어떤 나라이며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한일관계를 바라보는데 중요한 문제다.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과대평가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될 뿐더러 양국 모두 극단주의자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릴 뿐이다. 일본이 한 시절, 강한 나라였다고 해서 모든게 용서되지도 않는다. 제국주의 국가를 모토로 내부를 결속시킨 일본은 다른 나라를 침략했고, 그것을 문명화, 선진화로 미화했다. 위안부 문제는 반인류적, 반인도주의적 범죄였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인에게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인류 존엄성 훼손 문제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을 사악한 세력으로 적대하는 방식보다, 인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의 외교 전략이 낫다는 얘기다.


위안부 이슈는 정부간 합의 문서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일본이라는 나라를 현 아베 정부가 모두 대변하는건 아니다. 대한민국이 현 정부와 100% 일치하는 단순한 나라가 아니듯. 정부 간 외교 문제와 별도로 민간인인 우리가 일본을 대하는 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잘못된 역사에 대해 함께 분노하거나,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들이 있을 터. 민간 차원에서 보다 열린 접근이 가능하면 좋겠다. 


그리고.. 개방, 변화에 대한 촉 


책을 읽다가, 몇 몇 언론계 지인이 생각났다. 미국의 1위 온라인 미디어인 버즈피드는 국내 훌륭한 언론인들에게 듣보잡이다. 저널리즘까지 발을 넓히는 스냅챗도 모르는 분이 더 많을게다. 세상의 혁신은 버거울 정도로 빨리 움직이는데, 우리는 잘 모른다. 여야가 어쩌고, 정치 이야기는 온국민 관심사인데, 스페인에서 양당 정치가 깨졌다거나 정치에도 새 바람이 분다는 얘기는 얼마나 알까. 핀란드에서는 기본소득 논의가 구체화되는데, 우리의 주류 공론장에서는 관심이 적다. 몇 백 년 전, 세상 변화에 눈을 먼저 떴던 일본과, 그저 성리학 논쟁과 정쟁에 매달렸던 조선. 그 교훈을 다시 생각한다. 몇 백 년 전보다 변화의 속도는 무섭게 빠르다. 변화에 대한 촉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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