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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안전사회' 스웨덴의 비밀. 사람이 먼저다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이 1988년 방한했을 때 그는 통역이었다. 이태원 나들이에 나선 국왕이 해밀턴 호텔 가게에서 스카프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누군가가 국왕의 팔을 붙잡고 스카프를 내려놓게 했다. 감히 폐하를 막은 당시 주한 스웨덴 대사 부인은 같은 스카프가 옆 골목에 가면 더 싸다고 했다. 놀라운 일은 이어졌다. 수행원에 대사관 직원들 여럿인데 국왕이 물건 산 쇼핑 봉투를 다 직접 들고 다녔다. 대신 들어주는 가방모찌가 없었다. 권위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나라, 스웨덴을 그는 그렇게 마음에 담았을까.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조명진 박사님 얘기다. 대학 때 스칸디나비아어를 전공한 후 영국 LSE에서 유럽학을 공부한 조 박사님은 23년 간 유럽에서 살았다. 남들 보다 유럽을 많이 봤으니 그 이야기를 고국에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권위주의 대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회를 경험해보고 '좋은걸' 봤으니 더욱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스웨덴은 총리도 출입국 심사 때 여권 제시하고 절차를 밟는단다. 유학 시절 스웨덴 전투기 사업 연구하면서 전 총리, 장관 등을 모두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던 그는 98년 이메일도 없던 시절에 스웨덴 합참의장 전화기에 질문을 남겼다. 한 달 뒤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해외 나갔다가 이제 귀국해 메시지를 들었다. 언제 만날래?” 합참의장이었다. 일정 조율하는 비서가 없는 것은 물론, 일개 학자 지망생이 만나자고 해도 거리낌이 없는 나라. 노략질 해온 음식을 한 상 가득 펼쳐놓고 윗상 아랫상 없이 뷔페를 즐기던 바이킹의 후예. 지금도 교수식당 학생식당 구분이 없는 나라.

 

무엇보다 스웨덴은 안전한 나라다. 영어 불어 독일어 스웨덴어까지 언어 감각 남다른 조 박사님은 안전이라는 단어부터 얘기했다. 한국어나 영어는 안전(safety)과 안보(security)를 구분한다. 하지만 스웨덴은 안전도 안보도 säkerhet. 국가의 안전이 안보다. 스웨덴이 만든 안전 제품 스토리, 다르다.

 

    안전성냥. 유독성 없는 성냥이다. 1920년대 전세계 성냥 3분의 2 swedich match 가 공급했다

    안전 폭발물. 1847년 발명된 액체 폭발물 니트로글리세린은 위험했지만 노벨은 1866년 안전한 고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안전띠. 닐스 볼린이 1959 볼보에 처음 도입했다. the three-point seat belt. 안전벨트가 허리만 묶으면 오히려 위험하지만 어깨까지 붙잡아 주면서 안전해졌다!

    안전 종이팩(Tetra Pak). 깨지기 쉬운 유리병 대신 1951년 발명된 제품. 흔히 보는 우유팩이 바로 이 제품이지만 음료 패키지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발명으로 불린단다. 6겹 종이를 코팅해 물이 새지 않는데 가볍고. 이 특허 덕분인지 저 기업가가 스웨덴 10대 부자에 들어간다고ㅎ 

    조종사 안전을 위한 사출좌석(ejection seat) 1937 설립된 항공사 SAAB는 어떤 속도와 고도에서도 전투기를 포기하고 조종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1960년대 초반 드라켄 전투기 사출좌석  에는 로켓 모터와 낙하산이 장착됐다. 그동안 300명의 조종사 생명을 구했는데, 조종사 1명 당 교육비가 100억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안전 자전거 제동장치.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는게 아니라 발에 힘만 주면 선단다. 앞이 아니라 뒤로 살짝만. 

 

스웨덴 사람들은 마인드 자체가 안전 최우선주의 답지 않은가? 그 결과는 당연히 놀랍다.

2012ILO 조사에 따르면 산업재해 순위에서 스웨덴이 단연 꼴찌? 10만 명 당 1.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국은 형제의 나라 덕분에 1위는 면했지만 15.5명에 달한다. 주요 국가에 비해서도 너무 심하다  (그래프가 너무 인상적이라 급히 찍었다..) 


2013년 교통사고로 264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5080. 이게 물론 90년대 1만명 수준에서 줄어들긴 한거라고. 이걸 10만 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로 집계하면 스웨덴은 3명이다. EU 평균은 5.5. 한국은 33이다. 우리보다 더 위험한 나라는 도미니카(40) 정도.

안전은 식탁에서도 중요하다. 육류 1톤을 생산하는데 한국은 0.72kg의 항생제를 쓴다. 미국은 0.24 kg, 스웨덴은 0.03kg 이다.  

 

대체 왜 저러는 것인지. 스웨덴은 왜 안전 의식이 강한 것인지. 조 박사님은 “1815 나폴레옹 전쟁 이후 200 가까이 평화가 유지되면서 인명 존중 환경과 문화가 정착됐다전쟁에 국력을 소모하지 않는 대신여유에서 발명과 혁신의 전통이 마련됐다 말했다사람들이 안전한게 가장 먼저다. 사람이 먼저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기반한 나눔 문화는 연대감을 고취시켰고, 뼛 속 깊이 각인된 평등주의(egalitariansism)비권위적 풍토를 확산시켰다

 

산업재해가 가장 적은 것은 유급휴일이 41일에 달하는 장기휴가 제도 덕분이랄까. 사회민주당의 장기 집권으로 복지 국가를 제대로 구현했다. 이를 만들어낸 리더쉽도 대단하다. Tage Erlander 스웨덴 복지의 아버지’. 23년간 총리를 지냈다. (이 분 얘기는 블로그에 마침 정리된게 있다. 이런 멋진 분 놓칠 수 없지ㅎ ㅎ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이게 대통합이고 복지다 라는 리뷰에 나온다) 

넬슨 만델라의 ANC를 세계 최초로 적법단체로 인정하는 등 스웨덴을 국제적 양심으로 만든 Olof Palme 15년간 집권했다. (양심적으로 살다 보니 암살 당하시고ㅠ )

 

스웨덴의 사람 먼저, 안전 최우선인 문화를 지켜본 조 박사님이 보는 한국의 안전불감증원인은 이렇다.


·       군사부일체 유교전통이 낳은 권위주의. 안전보다 위계질서 중시

·       일제통치기간의 민족말살, 황국식민화 정책에 따른 인간존엄성 상실과 재산 침탈 - 안전의식 실종

·       한국전쟁 생존을 위한 성급함과 조급증 - 안전의식 둔감

·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79) 고도성장 제일주의 - 안전문제 뒷전

·       IMF 금융위기 통한 소득의 양극화 - 사회안전망 약화에 따른 안전의 저하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 균열 -경제적 안정을 안전과 동일시

·       임상실험적 교육 정책 적용과 잦은 변경 - 안전교육 체계성과 일관성 증발

·       불안정한 정치 환경과 모두의 존경받는 리더쉽 부재에 따른 정부 불신 - 이기적 안전의식 증가 - 안전 불감 문화 형성  (대전으로 도망가 서울 사수 방송을 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시작, 정부가 뭘해도 이제는 못 믿게 된..)
 

조 박사님은 안전 국가를 위한 7가지 전략도 제시한다.  


1.  안전 민감 문화로 탈바꿈 위한 상식과 자율이 우선시 되는 준법정신 증진

2.  상명하복 권위주의에 대한 성찰 - 음주문화 병영문화 개선

3.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 회복을 위한 정신운동 - 하이- 휴머니즘

4.  스웨덴 같은 안전 선진국 벤치마킹

5.  안전 기준과 법률 규정과 대한 포괄적 검토와 조정

6.  효율적 안전 교육 프로그램 개발

7.  시나리오에 따른 사고 대비 훈련의 정례화 

 

조 박사님은 일벌백계 대신 백년대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을 통해 의식이 관행으로, 관행이 전통으로, 전통이 관습으로, 관습이 문화로 바뀌면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 문제는 일본식 관행과 전통에 서구식 제도를 도입해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가 끝나도 1983년까지 일본식 교복을 입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입는다..) 국민학교 대신 초등학교로 바뀐 것은 1995. 향학 서원 시절의 우리나라에 신 제도가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 실제 정착되는데는 100년을 봐야 하지 않겠냐며 진짜 백년대계를 말씀하신다.. (어휴. 해방 후 100년이면 멀었는데ㅠ )

 

각 나라마다 문화와 전통이 다른데 스웨덴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조 박사님은 스웨덴의 복지국가 황금기를 1970년대로 꼽는다. 현재 스웨덴 인구의 15%가 외국인. 시리아 난민들이 입국하자 마자 영주권을 주는 나라는 스웨덴 뿐이다. 취지는 좋았는데 통합에 문제가 없지 않다. 복지 혜택만 받고 스웨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반감이 등장했다. 극우 정당이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유럽의 문제다.

그러나 한국은 복지를 언제 만들어봤다고 축소를 하냐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한국의 복지는 welfare 가 아니라 charity. 연대감을 토대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아마도 조 박사님 강연을 통해 배운 복지국가 안전사회 스웨덴 이야기인터뷰였다면 이쯤에서 정리하겠지만ㅎ  사실 조 박사님은 스스로 유럽에서는 아시아 전문가’, ‘아시아에서는 유럽 전문가인 동시에 유럽과 인문학을 척척 엮어내는 공력을 갖추고 계시다. 우연히 강연을 얻어들었는데 다짜고짜 두 곡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자고 했다.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베토벤의 월광(Mondschein).



프랑스 어로 태양은 le soleil, 남성 명사고 달은 la lune, 여성형이다. 반면 독일어에서는 태양이 die Sonne 여성형이고 der Mond  남성형이다. 그 차이는 을 여성적으로 해석하는 프랑스인 드뷔시의 곡은 사뿐사뿐 섬세한 느낌이 든다면 독일인 베토벤의 곡에서 은 비장하다. 놀랍게도 차례로 들어보면 그렇다. 언어란 이렇게 재미나고, 유럽 각국의 문화는 이렇게 다르다


조 박사님이 분석한 각국의 창의성은 이렇다.

 

·       독일의 논리적 창의성

독일어는 G S 같은 걸출한 문인 덕에 발전했고 K, H, S, N 같은 철학자들이 체계화 했다. (이니셜을 짐작해보라ㅎ ㅎ )

음악도 체계성 면에서 논리성이 요구된다. 베토벤, 하이든, 바흐, 슈만, 멘델스존, 슈베르트, 브람스가 정해진 음계와 조라는 규칙 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독일인들은 협업에 능하고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업체 벤츠부터 최대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까지 짱짱한 나라다. (위의 이니셜은
괴테, 쉴러,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 나는 두 S를 맞추지 못했다)

 

·       프랑스의 시각적 창의성

앵그르, 고갱, 밀레, 마네, 르느와르, 모네, 드가, 마티스, 샤갈, 세잔느, 푸생 .. 독일 청각적 vs 프랑스 시각적.

로레알. 피에르 파브르. 이브 로쉐.. 미술과 화장이 시각적 미를 추구하는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크리스챤 디올, 입셍로랑, 지방시, 샤넬, 루이비똥 까지 확실히 이쪽은 시각! 

 

·       영국의 대중적 창의성

클래식은 약하지만 대중음악이 강한 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오페라의 유령, 캐츠안드류 로이드 웨버를 비롯해 걸출한 뮤지컬 명가.

비틀즈, 롤링스톤즈, 비지스, 퍼플, 레드 제플린, , ELO, 스모키, 스팅,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클립 리차드, 엘튼 , 존스.. 
그래비티, 노예12년도 감독은 영국인. 흥행 대작의 원작도 다 영국.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 헐리웃은 자금을 대고, 아이디어는 영국에서 나온다” 

섹스피어로부터 내려온 흥행성+ 베이컨 같은 경험주의적 사상에 따른 대중의 접근을 쉽게 만든 토양 덕분이라 해석..

 

·       이탈리아의 고차원적 창의성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인류 최고의 예술가들. 시간과 재정이 무한대 지원된 덕분이다. 왕실 지원이라면 이렇게 안됐을텐데, 세계 최초 뱅킹업을 시작한 메디치가의 무한 지원 덕에..

영국 가구가 고풍스럽다면 이탈리아는 호화롭고. 자동차도 페라리, 람보르기니, 부가티 

세계 최고 바이올린 아마티,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 등 남다르다. 이탈리아 장인들은 악기 만드는 참나무를 고를 때도 나이팅게일이 어느 나무 위에 앉아서 우는지, 그 공명의 영향까지 따진다고ㅎ

 

·       스웨덴의 인간중심적 창의성  

앞서 살펴봤듯 인간 중심이 곧 안전. 안전성냥 안전벨트 등등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1, 2 세계대전 개입하지 않은 나라.  자동차와 항공의 선진국

 

사실 이들 국가의 자동차만 봐도 뭔가 흐름이 달리 보이기는 하다. 미국의 대량생산과 달리 저 동네는 소비자 취향 맞춤형에 가깝다. 전투기는 나는 잘 모르겠다.


벤쯔, 아우디, 베엠베, 폭스 (영국과 유로파이터 전투기)

시트로엥, 르노, 푸조 (라팔 전투기)

랜드로버, 롤스로이스, 애슈턴 마틴, 재규어, 벤틀리

피아트, 알파로메오, 페라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부가티

볼보 사브 (그리펜 전투기

영국과 독일은 유로파이터 

 

유럽 43개국 가운데 28개가 EU 회원국이다. 이들 국가의 다양한 창의성을 얼마나 잘 통합하느냐가 언제나 유럽의 과제. 조 박사님은 스웨덴이 인간 중심으로 제품을 고안하고, 이탈리아가 고차원적 창의성으로 디자인하고, 독일이 논리적 창의성으로 제작을 하고, 프랑스가 시각적으로 포장하고, 영국이 대중적 창의성으로 판매를 한다면 드림팀이 될 거 같지 않냐고 했다. ^^

 

조 박사님 유럽 이야기가 더 궁금하면 <유로피안 판도라> 라는 저서를 참고해달라고 ^^ 


유로피안 판도라

저자
조명진 지음
출판사
안티쿠스 | 2012-04-2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유로피안 판도라]는 저자가 유럽에서 20년 간 비유럽인(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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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본 강연 중 가장 흥미로웠다. 조 박사님은 6월까지 한국에 체류할 예정이다. 학생들에게 글로벌 인재 되는 법 같은 강연도 하시는 모양인데 저는 단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로 시작하신단다. 다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정말 좋아서 영어에 매진하신듯. 아직 나이 50이 안됐다면 인생 100년 내다보고 글로벌 도전을 꿈꿔보라고 하신다. 다만 언어가 된다는 전제 아래. 이 부분이 강연 중 옥의 티다. 언어가 안되면 역시 벽이 높다는 건가ㅠ  스웨덴 이민에 대해 한마디 여쭸더니 스웨덴은 망명이 더 쉽다고 한다. 난민이 되거나 정치적 망명자가 되거나

이 땅의 시민들은 '사람이 먼저'인 안전 사회를 만들기를 포기하는 분위기다. 그저 떠나고 싶은 마음들이 들썩인다. 그러나 망명이라니. 난민이라니. 이제 와서 그런 길을 찾느니 우리 나라가 안전한 사회가 되는데 뭔가 기여해보는 방법을 찾는게 낫겠다. 어쩔 수 없다. 백년대계를 위해 조금 나은 사회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열자. 2014년 4월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1년. 별이 된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느리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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