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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5 <실명제>전봇대 삽질의 교훈과 과제

<실명제>전봇대 삽질의 교훈과 과제

표현의자유 2012. 8. 25. 08:00

"실명제 위헌? 이제와서 뭐하게요. 시장 다 망가졌는데"

23일 저녁 모 동영상 업체 대표님과 잠깐 뵜습니다. 몇 시간 전에 실명제 위헌 났다고 했더니 까칠하신 반응이더군요. 실명제 논란과 저작권 삼진아웃제가 결합됐던 2009년, 국내 동영상 업체들은 맥도 못추고 유튜브 앞에 무릎을 꿇었죠.

 

헌법재판소의 실명제 위헌 결정을 격하게 환영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치른 비용과 댓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후회할 일은 거듭되겠죠. 그래서 몇가지 단상을 기록합니다. 관련 자료도 가급적 모아봅니다.

 

나쁜 전봇대, 잘 안 뽑힌다

 

실명제는 참여정부 시절 2007년 여야 합의로 법제화됐습니다.

실명까지 반드시 쓰라는 건 아니라는 이유로 실명이란 '실명'도 못쓰고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비운의 아이였죠. 실명제 도입을 촉발한 개똥녀 사건이나 연예인 악플 등은 사실 '완전 실명' 쓰던 사이트에서 비롯됐다는 건 중요한 아이러니.

그러나 깐깐하게 따져보고 도입된 제도가 아닙니다. 합리적 반대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감정적으로 몰아가는 여론몰이에 도입됐죠. 당시 정서는 심각한 악플에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쪽에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대책 만든 정부와 국회만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몰아간거죠. 그러니 일만 터지면 대책 세우라고 너무 핏대 세우지 맙시다. 천천히 깐깐하게 대책 마련해야지, 안하니만 못한 대책 됩니다. (실명제 대체할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24일 아침 일부 신문들, 5년 전에도 앞장서셨죠? 님들 때문에 치른 삽질, 더 하라구요?)

 

더구나 실명제 해보니 2008, 2009년 효과 없는 걸로 나타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하라고 권고한게 2010년 초.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아무래도 역차별 심각하니 재검토하겠다고 한게 2010년 4월... 2011년에는 기술발전 덕분에 실명제를 비웃다시피 회피하는 소셜댓글이 등장했죠. 그럼에도 아직 안 뽑힌게 바로 이 전봇대입니다. 전봇대, 이거 일단 들어서면 뽑는데 매우 힘들어요. 그동안 멍드는 곳 여럿 있게 마련이죠.

 

무늬만 다른 전봇대, 또?

 

2002년 헌법재판소는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 즉 '불온통신' 단속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가장 참여적 시장"이며 "표현촉진적 매체"인 인터넷 표현의 자유 손을 들어준 기념비적 결정이었죠. 그러자 정부는 '불온통신' 대신 법을 바꿔 '불법정보'를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법정보에 '불법'만 있으면 좋을텐데 '불온통신'과 마찬가지로 모호한 부분이 포함된게 문제. 사실상 "국가는 표현규제의 과잉보다는 오히려 규제의 부족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표현의 자유 본질을 언급한 헌재 결정을 무색하게 만들었죠. (이 부분에 대한 정리는 해둔 바 있어요. 슬픈 일입니다. 역사적 헌재 결정을 빛바래게 만든.. http://jjlog.tistory.com/105 

 

실명제를 대체할 더 강력한 대책, 주문하지 마세요. 어차피 실명제 해봐야 악플 안 줄었어요. 명예훼손 게시글은 임시조치라는 법적 수단이 있어요. 나쁜 놈 잡아요? 진짜 나쁜 놈은 남의 주민번호 쓰죠. 왜 실효성 없는지, 뭐가 문제인지 고장 난 레코드처럼 계속 떠들어온 얘기입니다. (2010년 인터넷주인찾기 컨퍼런스서 떠든 내용입니다.  http://jjlog.tistory.com/136 )

 

모니터링 강화하라고 하던데, 이미 수백 명 모니터링 인력 갖춘 국내 포털입니다. 전세계 어느 인터넷 기업도 이렇게는 안하지만, 우리는 다르죠. 왜냐. 사회가 요구하니까. 그러나 제대로 된 언론이면 포털의 검열 가능성을 걱정해야지, 맨날 포털더러 알아서 지우고 또 지우라고 하십니까. 악플도 사회 수준이어요. 오프라인 애들 욕설 장난 아니라고 하면서, 온라인에서는 입 다물라는게 사실 말이 안되죠. 교육부터 바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온통신이 불법정보가 된 것 처럼, 실명제도 뭔가 이름을 바꿔 또다시 등장? 설마요..

 

유사 전봇대를 남기는 폐해

 

실명제 위헌 결정 나자마자 사실 공직선거법 걱정부터 했습니다. 비방과 흑색선전 엄벌하기 위해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선거법상 실명제가 시퍼렇게 살아있으면, 어쩌냐구요. 위헌 결정에 따라 본인확인 안하면서도 "혹시, 선거 관련 글 쓰실 거면 본인확인 따로 하세요~"라고 공지 띄우나요? 이게 또 나름 합헌까지 받은 조항이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헌재 결정 하루만에 선관위가 신속하게 나섰습니다.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공직선거법상 실명제도 폐지하겠노라. 정말 고마워서 선관위 쪽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근데, 사실 헌재 결정 무색하게 만들면서 몽니 부리는게 욕 먹을 짓이란 거, 선관위가 고민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셧다운제 만든 여성가족부와 문화부에서는 전혀 그럴 뜻이 없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게 더 신기한 겁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12조3에는 '게임물 이용자의 회원가입 시 실명.연령 확인 및 본인 인증' 의무가 있습니다. 청소년보호법도 이 조항을 빌리고 있죠. 여성가족부에서는 이게 이번 헌재 결정과 무관하다는 입장으로 보도되고 있는데요. 이번 헌재 결정문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 주민등록번호와 명의를 도용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움 (청소년에게 부모 주민등록번호 도용하도록 몰아대는게 교육?)

- 인터넷은..외국의 보편적 규제와 동떨어진 우리 법상의 규제는 손쉽게 회피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 법상의 규제가 의도하는 공익의 달성은 단지 허울좋은 명분에 그치게 될 수 있음 (해외 게임 규제 못하시면서...)

- 모바일 게시판, SNS 등 새롭게 등장한 정보통신망상의 의사소통수단과 경쟁해야 하는 게시판 운영자에게는 업무상 불리한 제한 (모바일, SNS 게임도 셧다운제 절대 안하는 이런 역차별)

 

헌재가 고민한 내용이 왜 셧다운제에는 해당 안된다는 것인지 대체 모르겠구요.

사실상 주민등록번호 수집 않으면서, 무슨 수로 16세(청소년보호법), 18세(게임산업진흥법) 인증할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청소년 본인 인증이 얼마나 황당한 요구인지도 물론 정리해두었죠. 에휴.. http://jjlog.tistory.com/110  

 

사실 8월 18일 이후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금지된 이후에도 본인확인제는 준수해야 했죠. 그러면 법이 정한 본인확인인증기관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국내엔 신용평가회사들이죠. 그분들은 여전히 주민번호 기반이구요. 포털은 입력 즉시 신용평가사로 전송해서 본인확인 y/n 값을 받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조차도 위법하다고 하셔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대안으로 제시된 공인인증서는 범용의 경우, 전국민 설치율이 10% 미만이고 SMS 문자 인증 해주는 통신사는 아직 법적 본인확인기관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수백만 이용자 개인정보 유출 사고 났던 통신사에게 본인확인기관 지정하는게 맞는 건가요? 겁나요 겁나. 뭐, 그렇게 따지면 신용평가회사도 언제 유출될지 모르는 거니까.. 사실 주민번호 기반 없앨 수록 좋은겁니다.

 

인터넷은 전봇대만 뽑다가 날 샌다

 

2002년 불온통신에 대한 위헌 결정, 2010년 전기통신기본법 허위사실 유포 처벌에 대한, 이른바 미네르바법 위헌 결정, 2011년 공직선거법 온라인 표현 규제 위헌 결정, 그리고 2012년 실명제 위헌 결정.


매번 헌법재판소에 달려가야만 잘못됐다는 판정을 받다니, 사회적 비용 낭비 아닌가요?  한국적 인터넷 풍토가 워낙 남달라서 규제도 선진적이라구요? 남들 없는 규제만 줄줄이 만들었다가 해외토픽에나 오르내리는게 국격인가요. 뉴욕타임즈가
stupid 하다고 한국 실명제 비웃을 때, 진짜 부끄러웠어요. 미네르바님에겐 우리 모두 사죄해야 합니다. 몇 십년 잠자던 조항을 깨워서 억지로 끼워맞춰 감옥에 보낸 사건이라니. 선거 때마다 흑색선전 사범으로 기소된 수천, 수만명의 네티즌에게도 사과해야 합니다.

 

인터넷 수난사, 아직 안 끝났어요. 삼진아웃제도 미국 SOPA법, 전세계 조약 될 뻔한 ACTA  다 무산됐는데 우리만 선구자처럼 도입한 제도죠. 요즘 제 뒷골 땡기게 하는 클라우드법을 비롯해 입법예고된 몇몇 법안들 장난 아닙니다. 한번 세워지면 뽑기도 힘든 전봇대, 왜들 그러세요ㅠ 인터넷 정책 담당자 밥값 하라고 도와주시는 거라면, 사양하고 싶은데요.

 

인터넷의 순기능, 많습니다. 다들 잘 쓰시잖아요. 역기능만 보다가 순기능에 족쇄를 채우는 일, 안하는 게 좋구요. 고민한다면 입법 목적과 이후 부작용 등 신중하고 신중하게 따져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잘 만드는 편이 좋슴다. 
그리고.. 사실, 이미 기존 법 통해 할 수 있는게 많슴다. 우리 법이 2000개 쯤 되는데, 현재 발의되어 국회 사이트에 올라온 법이 3000개 쯤 된다더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데, 맞나 모르겠어요. 뚝딱뚝딱 만드니까 바꿀 것도 많고 대체할 것도 많고, 정부와 국회의원 밥값 입증용이기도 하고.. 그러나 꼭 그게 잘하는게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 냉정하고 차분하게 봐야죠..

 

자, 그럼 주옥같은 명문 가득. 이번 실명제 위헌 헌재 결정문입니다.

20120823본인확인제위헌결정문.pdf

가장 멋진 표현들은 박경신쌤이 이미 요약 정리. http://blog.naver.com/kyungsinpark/110145726393

 

일찌감치, 실명제의 위헌성을 연구해주신 한양대 로스쿨 황성기 교수님 논문입니다.

인터넷실명제의헌법적합성에관한연구(황성기교수).hwp

 

실명제가 효과 없다는 점을 학술적으로 입증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님 논문입니다.

실명제효과_우지숙.pdf

 

실명제 본인 확인이 기술적으로 법적으로 말 안된다는 것을 입증한 고려대 로스쿨 김기창 교수님 논문입니다.

  090701김기창실명제.pdf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와 자기정보통제권을 침해하는지 조목조목 따져주신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이사님 의견서입니다.

의견서_전응휘.hwp

 

참여연대의 헌법소원 청구문입니다.

  실명제_헌법소원청구서.hwp


미디어오늘의 헌법소원 청구문은.. 마침 없네요..^^;;;
실명제의 위헌성을 공개변론했던 고려대 로스쿨 박경신 교수님 진술문입니다.

진술문_박경신.hwp

 

실명제가 개인정보보호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도 있네요.

  포털의 개인정보보호_입법조사처.pdf

헌재 변론 과정에서 제출된 판도라TV 와 블로터닷넷의 의견서는 제가 함부로 공개해도 될지 허락을 받지 못하여 생략합니다. 논문이야.. 공개용이지만 ^^;;

 

많은 분들에게 고마운데, 특히 헌법소원 함께 직접 진행하신 진보넷의 장여경님, 오병일님.. 실명제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인권'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들이라, 배울게 참 많습니다.

 

언급한 분들 외에도... 뭐가 문제인지 가르쳐주시고, 제 생각의 잘못된 함정들을 지적해주시고,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함께 고민해주신 분들... 소중한 경험들이었어요. 고마워요.

이거 왠지 수상 소감 마냥.. 고맙다는 얘기를 남발하고 있는데, 그냥 기분 좋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세상이 샤방샤방 예쁘고 고마운걸 어쩝니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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