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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

<표현의 자유>'건전한 통신 윤리'를 위한 심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게시물 심의 및 시정요구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23일 내려졌습니다. (관련기사)

이번 결정은 사실 2002년 인터넷 표현의 자유의 원칙을 세웠던 헌법재판소의 전설적 결정에 비하면 후퇴했다고 봅니다. (구구절절 아름다웠던 2002년 결정은 이 글을 참고)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수정헌법 제1조로서 최고의 가치인 미국과 우리는 다릅니다. '표현을 제재함으로써 보호할 가치'와 줄다리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수준일 뿐이죠.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정답'을 찾아가는 사회 논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번 결정 또한 그런 논의의 재료가 되겠죠. 
저는 변호사도 법학자도 아닌지라, 깊숙하게 보기는 어렵네요. 다만 관심사이니 뜯어보고자 합니다. (오늘 합헌 결정은 두가지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쓰레기시멘트에 대한 최병성 목사님 글, 그리고 언소주의 광고주 불매운동 게시글, 둘 다 Daum 의 게시글이었고, Daum은 방통심 시정요구에 따라 삭제한 사업자입니다. 지못미?..) 

방통심의 직무는 왜 도마 위에 올랐나

인터넷 게시글은 여러가지 이유로 지워집니다. 1) 자진삭제 하거나 2) 음란물 등의 이유로 인터넷서비스사업자가 '약관'에 따라 삭제하거나 3)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초상권 침해 등을 이유로 '당사자'가 신고할 때 '임시조치' 혹은 '삭제' 되거나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44조7(불법정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당 정보의 취급을 거부·정지 또는 제한'을 명하거나 

4)의 경우 방통위가 '삭제'를 '명령'하는 건데, 실제로는 이 절차까지 안갑니다. 보통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들은 방통심이 '심의'해서 '시정요구'하면 다 따릅니다. 안 따를 경우, 방통위가 '명령'하도록 44조7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그 절차까지 안 가는 거죠. 

'불법정보'는 44조7에서 9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방통심은 '불법정보'가 아닌 정보도 '건전한 통신윤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심의하고 시정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직무가 법으로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이죠. 이번에 서울고등법원이 위헌제청한 조항이 바로 이겁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심의위원회의 직무)
4.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
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건전한 통신윤리"가 전혀 구체화되어 있지 않고, 어떤 내용들이 대통령령에 정하여질지 그 기준 등을 예측할 수 없어, 명확성의 원칙 및 포괄위임입법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했습니다. 또 개념의 모호성, 추상성, 포괄성 탓에 "필연적으로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규제하게 되고", "해당 정보의 삭제 또는 접속차단"’ "이용자에 대한 이용정지 또는 이용해지" 처럼 회복 어려운 수단을 동원하니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
행정기관'인 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등에게 조치결과 통지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방통위의 명령이 예정되어 있어..단순한 행정지도로서의 한계를 넘어 규제적ㆍ구속적 성격의..공권력 행사"라고 했죠. 

'건전한 통신윤리’ 합헌 vs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 해하는 통신' 위헌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건전한 통신윤리’에 대해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나, 전기통신회선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질서 또는 도덕률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 정보통신영역의 광범위성과 빠른 변화속도, 그리고 다양하고 가변적 표현형태를 문자화하기에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함축적인 표현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불건전정보에 대한 규제를 통하여 온라인매체의 폐해를 방지하고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인터넷 정보의 복제성, 확장성, 신속성 탓에 불법정보에 대해 신속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개인적 피해와 사회적 혼란 등이 회복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 내용은 2002년 불온통신에 대해 "개념의 
모호성, 추상성, 포괄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규제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던 헌법재판소의 입장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당시 헌재는 "국가는 표현규제의 과잉보다는 오히려 규제의 부족을 선택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죠. 
특히 "
주주의 사회에서 “공공의 안녕질서”나 “미풍양속”과 같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개념을 잣대로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했죠. 

어느 쪽에 저울 추를 두느냐의 문제. 법을 판단하는 것이지만, 법은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학이 아니니까요.


이번 결정에서 김종대, 송두환, 이정미 재판관의 소수 의견을 덧붙입니다.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한 경우,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주체는 대체로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사람마다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고, 행정기관으로서도 그 의미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과잉 규제 아니라는데...

헌재는 
"
시정요구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이행시 법적 제재가 경미..엄격하게 위임 요건과 범위를 규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통령령에 규정될 불건전정보'란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금지/규제되는 정보 내지는 이와 유사한 정보란 걸 누구나 예측할 수 있어 포괄위임입법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규제 수단의 과잉 여부에 대해서도 시정요구가
‘해당 정보의 접속차단’, ‘해당정보의 삭제’, ‘이용자에 대한 이용정지’, ‘이용자에 대한 이용해지’로 단계적으로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어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기야, 시정요구는 인터넷기업에게 조치 결과 통지의무만 부과합니다. 불이행 제재 수단 없죠. 정보통신망법 상 44-7 '불법정보'의 경우 방통위 명령이 발동될 수 있으나 이건 재량 행위고, 관계 중앙기관장 요청 필요해서 꼭 그리 되란 법은 없는 것으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인터넷 기업 관계자 입장에서는 '시정요구'가 '
규제적ㆍ구속적 성격의..공권력 행사"라며 위헌제청을 했던 서울고등법원 판단에 더 마음이 갑니다. 안 따를 경우, 방통위가 명령을 할 수도 있고,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버텨도 되는 걸까요....
얼마전 회원수 2만 여명의 지역감정 조장 카페 폐쇄한 포털 N사. '이용해지'하라는 방통심 시정요구에 검색 비공개 등으로 우회, 버텼는데 언론들이 "N사가 시정요구에 불복"한다고 비난했죠. 결국 N사는 그 카페 폐쇄했구요. 아니 생각이 다르다고,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카페 폐쇄까지 하는 것이 합당하냐, 개인적으로 저는 의견을 달리하기는 하지만...시정요구 안 따라도 되는 것 아니냐? 정부는, 뭐라 하신 적 없지만 당장 언론도 가만히 냅두지 않으시군요. 
 

뭐, 설혹 방통심 심의는 '시정요구'에 불과하고 불이행 제재 수단이 없으니...방통위 명령으로 이어질 때까지 기다리고...설혹 또 그 또한 버티더라도 고작 징역 2년 이하, 1000만원 이하의 처벌이 기다릴 뿐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나오듯 '경미'하죠. 다만, 이 경우에는 어떤 게시물은 '경미'한 처벌 감수하고,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고, 어떤 게시물은 그냥 따르고..어떤 기준으로 인터넷 기업이 자의적으로 고를까...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분명한 건, 어떻게 하든 누구의 마음에도 들지 않을겁니다. 

시정요구가 접속차단, 삭제, 이용정지, 이용해지, 단계적으로 적절하게 이뤄질 거란 부분도 생각을 더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 좀 올렸다고 이용정지라... 카페나 블로그의 경우, 폐쇄되는 건데요. 미국에서 SOPA 법안 나왔을 때, 700만명이 반대 서명했죠. 이용정지는 물론, 사이트 차단까지 가능한 법이니..더 쎄긴 합니다만, 이용정지조차 순순히 받아들이는 국민들, 최소한 OECD 국가에는 별로 없습니다. 글 하나 지우라는 정도를 넘어서는 조치는 사실 무시무시한 겁니다. 안 당해봤으면 말을 말아야 하는데.. 상상해봐도. 

헌재는 또 지워지면, 같은 내용을 다른데다 쓰면 되지 않냐..그러니까..법익균형성 요건도 충족한다고 하셨어요. 이건 참 슬픈 이야기입니다. 국내 서비스에는 어차피 지워졌던 글, 다른데 가도 또 시정요구 나옵니다. 결국 다음에서 지워지면 구글에 쓰면 될까요? 사이버 망명 가라는 뜻은 설마 아닐거라고 봅니다만..

법적 '불법정보'가 아닌 '심의기준'은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같은 법에 대한 또다른 결정은 언소주 광고주불매운동 게시글 삭제 건입니다. 청구인측은 "해당 
게시물이 ‘업무방해죄’의 범죄 목적을 가진 정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이는 소비자들의 정당한 불매운동을 위한 정보라고 할수 있을 뿐 결코 불법성이 뚜렷한 정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는 이 사건 정보통신망법 조항의 불법정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방통심의 자체 심의규정이었죠. 제7조 제4호 '기타 범죄 및 법령에 위반되는 위법행위를 조장하여 건전한 법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와 제8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제4호 마목 '기타 정당한 권한 없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에 해당되어 시정요구가 내려졌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아예 판단을 안하고 각하했습니다. 심의규정이 청구인들을 직접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방통심의 시정요구라는 행위가 있어야만 효력이 생기는거라, '직접성' 요건이 없다는 거죠. 결정적으로 방통심 시정요구가 '공권력 행사'로 봐야 하고, 청구인들은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어야 하는데, 이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보충성'이 없어서 위헌 여부를 다룰 수 없다는 겁니다. 헌법재판소법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가 아니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하거든요. 

제가 좋아라하는 K검사께서는 "행정소송을 먼저 제기했었다면"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하셨습니다만...정보통신망법 상 '불법정보', 즉 법적 근거가 명확한 불법정보가 아니라 '기타 정당하지 않은 권리침해 내용'이라든지..'건전한 법질서를 해치는 내용'이라는 심의규정은 분명 모호한게 사실입니다. 

방통심의 심의 및 시정권고가 헌법에 합당한 것이라는 이번 결정은 앞으로 방통심의 이런 '공권력 행사'에 가까운 행위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지 더 잘 따져볼 수 밖에 없는 계기입니다. 

어쨌거나, 사회적 합의를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을까요. 매번 헌법재판소로 달려갈게 아니라, 납득할 만한 '심의'와 '시정권고'는 어떤 것인지...더 뜨거운 논의가 필요해요. 

아..정보통신망법의 44조7 불법정보 중 제9호 '그 밖에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가 괜찮다고 결정난 것은...결정 내용과 소수의견을 찬찬히 살펴볼 만 합니다. 이건 언젠가 기회 닿으면 다시. 6시간내 출근해야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