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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언론 통제 법제도 흑역사

미디어 2013.06.26 08:00

최근 저널리즘은 휘청거리는 수준을 넘어 완전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개인의 주관 비평이면 좋겠는데, 아무리 봐도 객관적 역사도 그리 쓸까봐 겁나네요.

 

이 와중에.... 이건 좀 다른 얘기입니다. 언론을 장악하거나 통제하고자 했던 시도는 꽤 뿌리가 깊다는 얘기요... 특히 법제도를 통한 '통치'의 영역에서도 역사가 간단치 않습니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는 건...이해를 해두는 편이, 인정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해야.. 어떻게 미디어 독립을 지켜낼지 머리를 맞댈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신문에 대한 법제도 압박은 100년 전에 시작됐습니다. 이게 요즘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 특히 포털을 겨냥하기도 해요. 새삼스럽기는 한데, "일부 포털사이트의 경우 자의적인 뉴스편집으로 경제위기를 조장하고 정치편향성을 드러내는 등 공정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법안을 발의하신 국회의원도 계십니다. (4월의 관련기사)

포털 뉴스, 나름 10년 경험이 쌓였습니다. 포털은 뉴미디어입니다. 어찌 감히 뉴스 서비스를 하냐고, 아직도 뭐라 하는 이가 있지만 미디어는 독립된 자유를 기반으로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플랫폼도 열렸습니다.

포털의 사회적 책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포털은 민간 인터넷 기업인 동시에 새로운 미디어란 것도 중요합니다. 함부로 미디어에 대한 규제를 논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편집권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도 미디어에 대한 압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섣부른 법적 접근은 위험합니다. 최근 정리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미디어에 대한 법적 규제? 히스토리 꽤 깊고 사연 많습니다. 대체 미디어에 대한 법을 만드는 분들은 어떤 생각인지, 혹은 어떤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는지...실마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아직 최종 완성된 글은 아닙니다. 틀린 점이 있다면 알려주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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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법적 정의와 역할

언론에 대한 법적인 접근은 일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신문이 등장한 이후, 일제 친위부대나 다름 없던 이완용 내각은 1907년 광무신문지법을 도입했으며 이를 민족언론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사용했다.

 

광무신문지법에 대한 브리태니커 설명을 살펴보면 당시 정치적 목적의 도입 배경이 분명하다.(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3s2708b&q=%EC%8B%A0%EB%AC%B8%EC%A7%80%EB%B2%95)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을 기점으로 한국의 근대적 신문이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쇄신하고 국민의 독립열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영향력을 발휘하자, 이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조치가 시도됐다. 당시 언론계의 반발과 정부 내 의견대립으로 진통을 겪다가 러일전쟁과 을사조약을 거치면서 일제는 군사관계를 이유로 신문에 대한 사전검열을 실시하는 이외에, 당시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된 신문을 보다 직접적으로 말살하는 명문법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물이 광무신문지법이다. 내용은 신문 및 기타 인쇄물의 기사가 외교나 군사상 비밀에 저촉되거나 안녕질서를 방해하는 경우 그 발매금지와 차압, 발행 정지 금지를 집행할 수 잇도록 했다. 실제 총 38개 조문 가운데 제1~10조는 일반적 발행허가 절차, 신문발행인 자격, 보증금 등 신고사항을 적시하고 있으나 제11~16조에서는 신문에 게재해서는 안되는 사항이 적시됐다. 21~35조는 이 법을 위반했을 경우, 그에 따른 각종 처벌규칙을 규정했다.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풍속질서를 문란하게 한 신문의 경우 발행정지까지 포함한 행정처분이 가능했다. 이 법의 제정으로 통감부와 친일내각은 실제 국내 발행되던 대다수 신문을 규제했다. 다만 당시 가장 적극적인 반일 논조를 펴던 <대한매일신보>에 대해서는 그 발행인이 치외법권을 가지고 있던 영국인 베셀이었기 때문에 적용이 어려웠다. 결국 1908 4월 외국에서 발행하는 한국어 신문과 외국인이 국내에서 발행하는 외국어 신문에게도 이 법을 적용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법의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이승만 정부 역시 이 법을 해방 이후에 적용했다.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 법령을 근거로 당시 권력에 비판적 논조를 보인 경향신문을 1959년 폐간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는 1961 5.16 쿠데타 직후 포고령 11호를 발동, 정기간행물 등록을 대거 취소했으며 신규 등록을 아예 차단했다. 이후 5공화국에서는 ‘언론기본법’을 제정,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신문사 정간, 폐간 명령 권한을 부여했으며 이는 언론통폐합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언론기본법’은 결국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폐지됐다정기간행물 등록절차 역시 박정희 정부 시절 허가제에서 5공 당시 등록필증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무늬만 신고제’로 바뀌었다가 민주화 이후에야 신고제로 자리잡았다. 당시 언론에 대한 법제가 자칫 국가의 지나친 간섭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언론기본법은 신문과 방송에 대한 개별적 법률로 각각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과 ‘방송법’으로 대체됐다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은 이후 2005 1 1 신문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신문법)으로 전면 개정되어 국회에서 통과됐다. 민주화 이후 언론개혁은 국민적 과제였고 100개가 넘는 언론단체와 시민운동단체가 ‘언론개혁시민운동’을 결성하고 추진한 결과가 신문법 제정이었으며 언론 자유를 확대, 보장하는 법률을 목표로 했으나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방송법은 제1(목적)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문보다는 방송에 대해 폭넓은 국가 규제가 허용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공공재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공적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무와 책임은 방송의 운용과 편성에 있어 공정성, 공익성, 중립성 등의 공적 책임으로 이어진다. (조성민, 2005) 민주적 여론형성을 도모하여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 법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실제 방송법은 제8(소유제한등), 9(허가ㆍ승인ㆍ등록 ), 10(심사기준ㆍ절차) 등 강력한 감독당국의 규제의 방법과 절차를 정리하고 있다.

신문법은 방송법과는 달리 신문이라는 매체가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언론의 기능을 다하도록 진흥하기 위한 법률임을 일단 밝히고 있다. 법의 제1(목적)은 “신문 등의 발행의 자유와 독립 및 그 기능을 보장하고 사회적 책임을 높이며 신문산업을 지원·육성함으로써 언론의 자유 신장과 민주적인 여론형성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의 경우, 실제 전세계적으로 공공재를 사용하여 미디어 다양성을 확보하는 도구라는 인식 아래 어느 국가나 제도적 틀을 법으로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종합편성채널 허용을 둘러싸고 지난 2009년 방송법 등 ‘미디어법’ 개정 시도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신문에 대해서는 별도 법제를 갖춘 국가가 거의 없다. 하물며 인터넷 미디어에 대해 법제도를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같은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으며 실제로 법제화가 이뤄졌다.


2005
년 시행된 ‘공직선거법’은 인터넷 언론에 대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포함시켰다. 이 법은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지만, 구체적으로 선거 과정에서 언론 역할을 규정하면서 새로 등장한 인터넷 언론에 대해서도 정의를 필요로 했다. 이 법 제8조의 5(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1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시사 등에 관한 보도·논평·여론 및 정보 등을 전파할 목적으로 취재·편집·집필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하여 보도·제공하거나 매개하는 인터넷홈페이지를 경영·관리하는 자와 이와 유사한 언론의 기능을 행하는 인터넷홈페이지를 경영·관리하는 자“를 인터넷언론사로 정의하고 있다.

2009년 개정된 신문법은 ‘인터넷뉴스서비스’에 대해 “신문, 인터넷신문, 뉴스통신, 방송, 잡지 등의 기사를 인터넷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제공하거나 매개하는 전자간행물”이라고 정의했다. 같은 해 개정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신문법에서 정의한 ‘인터넷뉴스서비스’ 사업자에 대해 조정, 중재 대상에 포함시켜 피해 구제를 위한 책임을 다하도록 했다
  

언론에 대한 법적 정의의 한계
 
 

언론을 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지 여부에서부터 사실 논란은 적지 않다. 언론자유에 관해 미국의 경우 수정헌법 제1조에서 국회가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입법도 할 수 없도록 금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의 ‘언론 및 출판의 자유’는 전통적으로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를 정의하고 있다이같은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은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을 전제로 하며,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은 충분한 정보에의 접근이 보장됨으로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다. (89 헌마 104)


신문법의 제정 취지가 적극적 자유를 보호하고 민주주의적 자치를 실현하여 공동체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오히려 개인의 자유 영역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성민, 양승목, 2005)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신문법에 대해 ‘악법’이라고 비난하며 2005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다. 조선일보 대리인 박용상 변호사는 “신문법의 시장점유율 제한 조항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신문 여론시장에 대한 간섭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여론시장 간섭 문제가 아니라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 조항 등 일부 조항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모든 법제는 해당 국가의 구체적 환경과 사회적 합의에 좌우되는데 한국 신문이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반성의 역사적 산물이 신문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장행훈, 2006)

신문법을 반대한 일부 신문사들이 편집위원회와 독자권익위원회 설치, 편집규약 제정 등을 권고하는 것이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이라 주장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당시 이 문제는 강제조항이냐 권고사항이냐를 놓고 이른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팽팽하게 맞붙었는데 이후 포털 뉴스 서비스에 대한 권고 사안이기도 했다포털의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그동안 신문들 간에도 논란이 뜨겁던 내용이 여과 없이 포털을 대상으로 힘을 얻었다이같은 과정을 거쳐신문법에 반영된 포털 규제 조항은 그동안 신문들이 거부한 편집원칙 공개로 현실화됐으며 나머지 조항들은 실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 포털 뉴스는 언론사와 계약을 통해 기사를 공급받아 실제 서비스 내에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기사 제목 수정 내용 등이 과연 법으로 규율해야 하는 내용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이같은 내용은 포털사와 기사 제공 매체사가 계약 관계에서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흥법으로서 ‘신문법’을 제정한 것은 미디어에 대한 섣부른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 근거함에도 불구, 포털 사업자에 대해서만 ‘준수사항’ 조항을 별도로 두고 규제법이 된 것도 일관성이 없는 구조다.


언론에 대한 규제는 독일에서 법제 논의가 진행됐던 언론의 공적 책무이론을 기반으로 하는데, ‘책임을 통해서만 언론 자유가 전제되는 방식으로 오해가 가능하다. 언론의 책무가 자칫 언론 통제 장치로 사용되는 사례는 국내 언론법 역사가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널리즘 자체가 급변하면서 반드시 기존에 등록된 매체의 기자가 작성하는 콘텐츠만이 ‘기사’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인터넷은 ‘읽으면서 즐기는 놀이’에서 ‘유통의 공간에서 쓰기와 참여를 강조하는 서비스’로 발전되면서 이용자들 간 의사소통과 공론의 기능이 강화된 시민 미디어의 촉매가 되고 있다.

이용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사실을 알리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이 늘어나면서 시민 저널리즘, 스트리트 저널리즘이라는 해석도 등장했다. (박승규, 2008) 또한 쌍방향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온라인에서는 대화형 저널리즘이 활성화되는데 실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나 공영방송 ‘BBC’는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를 독자와의 대화나 뉴스 소재 발굴에 활용하면서 ‘네트워크 저널리즘’의 기법을 발전시켜왔다. 언론은 발생 뉴스에서 특종을 하려는 생각을 단념하고, 이용자들이 올리는 콘텐츠를 편집, 전달하기 시작했다. 실상 온라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허핑턴포스트 조차 기존 저널리스트보다 전문가 블로거를 영입하여 새로운 시대의 기사 방식에 도전, 성공을 거두었다.

이같은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사’와 ‘기사가 아닌 콘텐츠’를 반드시 구분 표시하도록 법이 정해주는 방식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지 의문이 적지 않다. 이 문제는 언론 자체에 대한 정의로 이어지는데, 국가가 ‘법으로 정해준 곳만 언론’이라는 명제는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언론의 제도적 정의, 특히 이 가운데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온라인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신문법 시행령 제2조는 다음과 같은 ‘인터넷 신문’의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2(인터넷신문) ①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이라 한다) 2조제2호에서 "독자적 기사 생산과 지속적인 발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이란 다음 각 호의 기준을 말한다.1. 독자적인 기사 생산을 위한 요건으로서 다음 각 목의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것

. 취재 인력 2명 이상을 포함하여 취재 및 편집 인력 3명 이상을 상시적으로 고용할 것

. 주간 게재 기사 건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자체적으로 생산한 기사로 게재할 것2. 지속적인 발행요건으로서 주간 단위로 새로운 기사를 게재할 것


이같은 기준은 취재인력을 별도로 갖추지 않았거나 주간 단위가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1인 미디어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블로거들이 저널리즘 영역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블로그에 대해 “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을 사회를 향해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1인 미디어’ 또는 ‘1인 저널리스트’로 불리기도 한다”는 연구가 이미 10년 전에 등장했다. (황용석, 2003) 더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는 이같은 1인 미디어에 날개를 달아줬다. 2011년 이집트와 튀니지 등에서 기존 정부를 붕괴시킨 ‘아랍의 봄’은 트위터에 해시 태그(hash tag)를 통해 올린 글들이 리트윗 등 확산되면서 시위대를 움직였으며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활동이 주요 미디어로 기능했다. 이들은 국내법상 ‘인터넷 신문’으로 정부 부처에 등록할 수 없으나 이미 미디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저널리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기적으로 출판되는 인쇄물인 ’저널‘에서 출발했다. 대중(public)이 정치에 대해 논의하고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이 신문의 보급에 의해 이뤄졌다는, 하버마스(1989)의 공론장(Oeffentlichkeit) 이론으로 이어졌지만 온라인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은 정보가 디지털화, 매체간 구별이 점차 사라지고 완전복제가 가능한 시대를 낳은 동시에 미디어 사용자의 성격이 피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정보 검색자, 정보 생산자로 바뀌는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김주환. 2000)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인터넷신문은 20126월 현재 3200여 개 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현재 매체로서 기능하고 보도를 지속하는 매체가 어느 정도인지는 어차피 관리되지 않는다. 이는 매체 등록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부가 법으로 규제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 행정조치인지 납득하기 쉽지 않음을 반증한다.

만약 유명 블로거가 하루 100만 명의 방문자를 통해 미디어 영향력을 확보한다면, 그는 미디어로 규제를 받아야 할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불법정보를 올렸다면 절차에 의해 삭제될 수도 있는데, 공적책무에 따라 개인 미디어도 언론법 규제를 받아야 한다면, 이것은 곧바로 표현의 자유 문제로 직결된다.  하루 1만명이 방문하는 블로그는 그냥 개인의 영역이고 하루 10만명이 방문하는 블로그는 미디어라는 식의 기준이 과연 마련될 수 있을까?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 확인의 책무까지 블로거에게 지울 수 있을까? 현행 언론법제는 이처럼 1인 미디어가 등장하는 시대에 어디까지 규율할 것인지,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호할 것인지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법적 접근의 한계

언론에 대한 법적 정의, 규제론적 접근은 모두 미디어가 사회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명분으로 한다. 그러나 공정성에 대한 실체는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다. 특히 같은 사안을 놓고 이른바 보수진영의 매체와 진보진영의 매체가 완전히 상반된 분석을 내놓는 가운데 어느 쪽이 공정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에컨대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 수자원 관리 차원에서 국토 개발의 일환으로 타당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분석과 수질에도, 물 관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토건 사업이라는 비판이 각각 다른 매체들에서 쏟아질 때, 어떤 보도가 공정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꼼꼼히 따지기 보다 그 정보가 불공정하다는 평가, 신동적이라는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자신의 신념을 보호하고 인지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은 역사가 오래됐다. (Sherif & Hovland, 1961)

적대적 매체지각(hostile media perception)이라는 개념은1985 Vallone 등에 의해 처음 등장했는데 강한 의견을 가진 언론 수용자들이 비교적 중립적 미디어 메시지를 편향됐다고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을 경우, 균등한 뉴스 할당과 같은 기계적 중립성은 적절한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편에게 불공정하게 편향된 것으로 인지하는 차별적 기준(different standards)를 갖거나 뉴스 보도가 양측을 공히 보도해도 한쪽만 기억하고 편향됐다고 판단하는 선택적 기억(selective categorization) 등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안차수. 2009)

이처럼 엇갈리는 입장에 따라 공정성에 대한 시각이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정성을 이유로 하는 규제적 접근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1980년대 신구부의 언론통폐합 등 언론 탄압 역시 사이비언론을 정화하고 공정한 보도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라고 선전됐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존 태도와 일치하는 메시지를 받았을 경우 일치하지 않는 경우보다 더욱 보도가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안차수, 2009)를 살펴보면, 공정성의 실체는 더욱 모호하다. 하물며 개인도 자신의 입장에 따라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달라지는데, 만약 집단 의지에 따라 특정 정파나 정부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과 다른 미디어를 불공정하다고 느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늘 미디어의 공정성을 위해, 미디어의 사회적 책무를 위해 필요최소한의 규제를 시도하며, 이는 종종 입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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