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4.11.02 부산 먹방 여행(10.3~10.5) 그리고 (4)
  2. 2014.08.14 <1박2일 전주 먹방 여행> (2)
  3. 2014.07.23 <남도여행-3> 마음을 달래는 여행. 소쇄원 명옥헌 낙안읍성 그리고 5.18묘지
  4. 2014.07.20 <남도여행-2> 저마다 다른 부처의 모습으로 내소사, 운주사, 송광사, 선암사
  5. 2014.07.20 <남도여행-1>남도로 가는 길, 마이산 탑사의 고요한 염원
  6. 2013.08.22 <로마>위대한 문명을 만나면 두근거린다 (3)
  7. 2013.08.20 <피렌체>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시작한, 그 남자의 도시 (5)
  8. 2013.08.19 <베른, 인터라켄>인간이 따라해봐야 불경이 될 절대적 자연미 (4)
  9. 2013.08.18 <파리>둘이 만나면 사랑을 하고, 셋이 모이면 혁명을 한다는 (4)
  10. 2013.05.18 <서울 여행>당신이 사는 4m 아래 한성백제
  11. 2011.08.04 [도쿄,오사카,교토]먹다 죽는다는게.. (4)
  12. 2011.08.03 [오사카,교토]그들의 문명과 역사 (1)
  13. 2011.08.03 [도쿄]겉핥기 여행도 느낄건 느낀다

부산 먹방 여행(10.3~10.5) 그리고

여행 2014.11.02 14:09

부산 영화제 때 영화는 안 보고 먹고만 다닌 여행을 짧게 다녀왔어요. 3일 낮 기차를 타고 내려가서... 5일에는.. 연휴 뒤끝 무서워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9시 서울서 해장한 그런 여행ㅋㅋ 그리고 얼마전 추가로 부산을 또 다녀왔죠. 다 먹은 얘기만.. 주로 트윗 중심으로...  (부산의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녀주신 온니 옵바 친구들. 모두모두 감사감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그런 여행이었어요!)

 

부산역 도착하자마자 들린 곳. 고기만두는 소룡포보다 훨씬 훌륭하고 향도 매력적. 물만두는 촉촉한데 실하긴 마찬가지. 묽은 콩국에 설탕 두 스푼, 튀긴빵(?) 넣어먹는 또우장은 밍밍한데 중독성있고. 부산역 <신발원>





손으로 썰었다고 믿기 어려운, 실처럼 가는 오징어회(3.5) 식감 훌륭하고 달콤. 내장 꽉찬 먹통 오징어 찜(2.5)도 굿. 부산오뎅이란 아우라 탓인지 기막힌 오뎅탕(1.3). 해운대 <하얀집>. 야외 자리 좋아요





"유명한 쌍둥이 국밥이 프라다라면 여긴 샤넬", "그 집이 신선설렁탕이라면 여긴 영동설렁탕"이라고. 고기국수와는 다른, 담백하고 깔끔한 국물의 돼지국밥. 뒷맛도 깨끗한 부산 장산역 <신창국밥>. 토렴방식에 24시간



대구탕(0.9)만 파는데 맑게 나오고! 고추 총총 넣었는데 딱 좋은 칼칼함. 적당히 단단한 대구살이 두툼하니 두 토막. 멍게무침 등 반찬도 적당. 부산 분들은 예전에 비해 아쉽다는데 레알? 해운대 <아저씨 대구탕>



꼼장어가 바다장어보단 더 팔팔. K온니가 꼼장어 못드시는지라 아쉽. 가게 마다 들어가 다 먹어보고 싶고, 서대 등 생선 설명해주는 할머니 가게에서 한보따리 사서 집에 가져가고 싶다만.... 해운대 재래시장.






곳곳에 주전부리. 못참고 딱 유부주머니만 시식. 유부 안에 당면 넣어 미나리로 묶은 아이에 오뎅 국물 부어주심. 맛이야 상상 그대로. 참숯란 까만 색은 좀 비현실적. 아웃도어웨어 가격도 헐. 해운대 재래시장





아점에 이어 간식으로 밀면.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냉면을 그리워하며 밀로 뽑았다는 면. 쫄깃한 면발이 쫄면과 냉면 사이 쯤. 양념은 전형적 진한 조미료. 식초와 겨자를 더하면 막 땡기는 그 맛. <해운대 밀면>.



이런 염원 덕분에ㅎ 모래바람이 거센 덕에 뒹굴뒹굴 뽐내다가 오래 못 버티고 철수.. 온 몸이 모래범벅.



얇고 부드러운 완당 호르르 흡입하니 흡족. 홍꼬탕 홍합 꼬막 다 괜춘. 열무막국수는 사이다 베이스. 한 잔 하기 좋은데 손님 줄서니 써비스가ㅠ 주문 까먹은거 미안하다며 국수 한그릇 더 써비스. 해운대 <초가집>





부산서 마시고 해장은 서울. 지인들 추천에 달려왔는데 호불호 갈린. 뽀얗지 않고 맑은 국물 괜춘. 곰탕과 설렁탕 차이가 새삼 궁금해지는 맛. 고기 듬뿍 들었.. 9000원. 깍두기 김치 아쉽. 신사동 <영동설렁탕>

하여간 2박3일 행복하고. 눈 휘둥그레졌던 부산







그리고.. 얼마전 또 부산 갈 일이 있었어요. 이 날은 해운대 포장마차에서 랍스타 회! 부드럽게 쫄깃한 식감 예술. 먼저 나온 해삼도 장난 아녔고 개불은 뒷맛이 달콤한게..이날 해물은 역대 최고급. 마지막 랍스터 라면은 두툼한 조개들까지 최강. 이건 좀 많이 호사스럽고 비쌌던 저녁. 기대 이상 유쾌하고. 인생 뭐 있나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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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전주 먹방 여행>

여행 2014.08.14 23:11
그야말로 방콕 휴가, 집구석에서 보름을 뒹굴거리다가 1박2일 환상적인 여행을 다녀왔어요. 전주 먹방 여행! 전주를 애정하는 K님 전주 출장에 몇 명이 응원을 빙자하여ㅎㅎ

140자 트윗으로 재구성 해봅니다.

두 주전자(2만)에 기본안주 삼계탕, 김치찜, 홍합탕, 꼬막, 족발, 청어구이 등. 안주를 더 맛보려면 막걸리를 계속 시켜야. 5시 이전에 본점 다 차고 별관은 6시 되니 자리 몇 안 남는 전주 옛촌막걸리




이 집은 트윗도 한번에 멈출수 없는게 막걸리 한 주전자에 기본으로 안주가 나오는데..첫 주전자만 2만원. 두번째부터는 1.5만원이라 네 주전자 6명이 어마어마하게 먹고 6.5만원. 전주 옛촌막걸리




(음식 평을 더 하자면.. 꽤 괜찮고 훌륭한 것부터 아쉬운 것(떡갈비)까지 골고루. 조미료 얘기를 트친이 하던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열댓 가지 음식을 막걸리 네 주전자와 6만5000원에 시끌벅적 즐길 수 있는 '체험'이 가장 즐거운ㅎㅎ)

전주 가맥의 원조 전일수퍼. 밖에서 계속 굽는 아저씨는 초상권 걱정 안해도 될만큼 본인 사진 많이 떠다닌다고 쿨하심. 다만..자리가 없어 결국 맞은편 그린슈퍼 왔어요. 가게맥주라기엔 이미 걍 선술집 풍ㅎ




그린슈퍼 갑오징어 소스는 간장에 포도를 넣어 달이셨다고. 당근 훌륭.

(굳이 평을 더 하자면. 갑오징어는 아주 매력적인 안주. 3만원이라 저렴한건 아니고. only 맥주/소주와 마른 안주 뿐이라는게 흠이라면 흠)


팔팔 끓이는 대신 뜨거운 국물에 건더기를 토렴해, 따뜻하게 내주는 국밥은 섬세한 배려같아요. 살짝 참기름 두른 수란에 국물 끼얹어 휘저었더니 마법의 맛. 이런 해장은 몸을 위한 선물. 전주 남부시장 운암식당

(운암식당 콩나물국밥은... 이건 사실 이 여행 최고의 만족도. 감탄하면서 연신 숟가락질. 토렴해주는 약수동 순대국밥에도 그리 감동했는데, 난 이런데 약하다ㅎㅎ)


촉촉한 날 초록 산책. 문을 들어서는 순간 별천지. 엉켜 자란 두 나무를 보고 결혼했다는 B님 탄성. 경기전 낮은 기와 담장 너머 전동 성당까지. 전주는 매혹적인 도시.





(마지막 전동 성당 사진은 K온니 작품)

(트윗에 자세하게 전하지 못했지만. 전주 경기전, 대단히 훌륭. 오른쪽으로 돌아가 큰 나무와 정원을 즐기고.. 유일하게 보존된 실록 역사관, 태조의 초상화와 당시 문물 등 여진박물관, 실제 경기전 건축물들을 돌아보는 완벽한 코스. 우산쓰고 다니는데 더 평화로운 시간이었어요. 문에서 나와 왼쪽 2층 커피숍도 짱!! 그리고 리트윗으로 대신했지만 경기전 앞의 소방관 아저씨, 응원합니다!! )


모든, 노동하는 자, 무거운 짐에 시달리는 자들이여 오라. 편히 쉬게 하겠노라는 성경 말씀. 종교란게 원래 저런 거.. 약자를 위한 위안. 어쩌면 그래서 아편ㅎㅎ

달달한 국물이 한 대접. 소짜 주문했는데 국수도 한 가득. 면은 까끌한 맛. 배불러 죽겠는데 제대로 진한 콩국을 추가해 나머지는 콩국수로. since 1975. 전주 진미집. 오전에 걸은게 다 먹기 위함이라니

(굳이 덧붙이자면. 소바보다 콩국수가 낫다는 사람도 있고. 취향탈 음식. 투박하고 달달한 맛이 저는 괜찮았어요. 콩국 주문할 땐 설탕 빼고 달라고 해야)



전주 남부시장 2층 청년몰. 재래시장 2층에 청년들이 하는 가게들과 마치 관광하듯 놀러온 청년들이 어울리는 공간. 발랄한 감각의 소박한 공간. 홍대 동진시장 분위기인데 훨 크고 재래시장 복판이라 잼난 시도




1박2일로는 도저히 다 먹어볼 수 없어 피순대는 냉동 포장을 결심. 2시 다 되어가는데 저 줄이라니. 그런데 손님 많다보니 순대가 딸려 포장판매 못한다고. 결국 인근 다른 집에서 포장. 전주 남부시장은 대단해요

풍년제과도 역시 전주의 관광명소. 줄서서 초코파이를 사다니.. 포장에 열중하는 저 손들.

(굳이 한줄 더 하자면.. 상당히 달아서 옆지기는 한 개를 다 먹지 못했고. 아이는 한 개 먹더니 더는 못 먹겠다고ㅎㅎ)




우리가 언제 또 전주에 오겠어?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결국...3시 되어가는 이 시간에 식당 꽉 차 빈 자리 하나. 육회비빔밥 2개 주문해 4명이 맛만 보겠다고 시작해 다들 오길 잘했다며.. 전주 성미당.

(이게 부드럽게 잘 비벼지고 꿀떡꿀떡 넘어가는 맛, 아름다운 때깔과 조화로움.. 이런 건 훌륭한데. 사실 반찬에 실망. 가짓수는 많은데, 아 감동이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 




 

전주에서 공수해온 피순대. 그냥 순대라고만 했는데 진짜 돼지 창자로 만든거라 하니 딸 반응이 별로라.. 돼지 피도 넣어 피순대란 얘기는 해주지 않음. 잘 먹는 중


(진하고 고소하게 오묘한 맛. 역시 취향 탈 맛이 분명ㅎㅎ 저는 좋았어요)

 

전주 남부시장에서 꼭 사야할 물건이라 K님 추천. 늘 옳다는^^ 남원 부흥식도. 칼 겁나 잘들어요. 쥔 아저씨가 "잘 갈아놓은 녀석"이라 자랑할만. 종종 갈아서 길들여야지. 7000원. #쇼핑호스트가_별건가

이상...전주 트윗 중계 끝.

전주 초행길에 골목골목 이끌어주시고, 사실 트윗 공개는 못했지만 귀한 인증샷도 도와주신, K옵바에게 거듭 감사.

여행 내내 알콩달콩 사랑은 이런거라고 보여주시고, 흥이란 이렇게 즐기는거라 모델이 되어주신 K옵바 짝지 B온니 감사.

귀여운 미소녀 풍으로 여행 내내 업무 전화와 메일로 바쁘신 와중에도 따뜻한 기둥이 되어주신 K2온니 감사.

개에게 물리고 개에 끌려가 무릎 까진 성치않은 몸으로 여행에서 쿨한 매력 넘치게 보여주신 C온니 감사.

오며가며 여인네들의 수다를 담대하게 참아주며 운전하느라 고생하신 든든한 K3옵바에게도 감사.

모두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해요. 님들 덕에 짧고 진하게 전주를 추억하게 됐어요. 여행을 가든, 무엇을 먹든.. 혼자 하든, 함께 하든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건 결국 사람. 고마워요^^

"어제와 오늘 전주라서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라서 더욱 좋았음"... 그 분 말씀은 허락없이 퍼날라요. 제 맘이 딱 그랬어요.

(티스토리 앱으로 모바일 첫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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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3> 마음을 달래는 여행. 소쇄원 명옥헌 낙안읍성 그리고 5.18묘지

여행 2014.07.23 07:20

어쩌다보니, 한 계절이 지나 여행기를 차곡차곡 정리.

<남도여행-1>남도로 가는 길, 마이산 탑사의 고요한 염원
<남도여행-2>저마다 다른 부처의 마음 아래 내소사 운주사 송광사 선암사


이번 여행기는 이번 3편으로 마무리. 뒤늦게 기록하려니 힘들긴 한데, 사진을 고르는 작업 자체가 마음을 달래준다. 기억들을 차곡차곡 다시 살려본다.

 

 <일정>

5월2일(금) 서울 출발. 가는 길에 청양 출렁다리, 진천 마이산 탑사를 들렸다가 부안 도착.

5월3일(토) 채석강을 그야말로 휘리릭 본 뒤, 곰소 염전 거쳐 내소사로 출발. 정읍서 점심 회동. 담양으로 이동해 메타세콰이어 사람이 너무 많은데 질려 소쇄원명옥헌!

5월4일(일) 아침 서둘러 메타세콰이어 재도전. 죽녹원 감상. 화순 운주사고인돌 공원, 광주로 넘어와 망월동 국립5.18 민주묘지 참배.

5월5일(월) 순천 송광사선암사. 그리고 낙안읍성!
5월6일(화) 순천만 공원을 잠시 둘러본 뒤, 귀경.


담양 소쇄원. 조광조를 스승으로 모신 양산보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에 연루되어 피바람이 불자 17살에 고향으로 돌아가 소쇄원에 은둔하였다고 구본준님 설명. 세상에 나가 큰 뜻을 펼치는 대신 정자를 마련하고 정원을 돌보면서 지인들과 학문을 나누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다니. 옛 선비들에게 주군을 모신다는 건 목숨 건 정쟁에 뛰어드는 건가. 그저 배우고 익혀 백성을 두루 살피고자 하는 뜻도 언제나 그렇게 좌절됐을까. 

대나무 길 지나 들어서면 이건 또 별세상이다. 정돈된 느낌이라기 보다, 그저 자연 속에 녹아드는 정자와 작은 건물들. 소박한 담장과 몸을 낮춰 들어가야 하는 작은 문. 소쇄원 방문의 가장 큰 소득은 '감상법'을 배운 점. 구본준님이 그랬다. 이런 정자와 집을 보면, 그 안에 앉아서 그 주인의 시선에서 체험하라고. 그 집을 밖에서, 주위에서 둘러볼게 아니라 그 안에서 느껴보라 했다. 그래서 앉아서 쉬었다. 사람이 너무 많은게 흠이었으나, 그냥 쉬엄쉬엄 앉아서 느리게 둘러보니 좋았다. 남편이 아들과 나를 찍어준 컷은 건졌으나, 아들에게 누나와 한 컷 찍어달라 했더니 엄마 발은 자르고 촛점도 중심도 안 맞게 찍었다. 옆에 누워 있는 아이는 본준님 아들래미. 다들 나태한 모드로 즐겼다.

 

이어 좁은 골목길 지나 찾아간 담양 명옥헌 원림. 소쇄원에 비해 훨씬 작은 정원과 아주 작은 정자가 전부인데, 사실 소쇄원보다 더 좋았다. 아마도 사람이 없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우리 일행 외에 두어 분 들렸다 곧 가셨다. 한동안 이 좋은 전경을 독차지 하고, 여유작작 시간을 흘려보냈다. 연못도 정자도 뒷뜰도 다 좋았지만, 실제 정자 안에 자리 잡고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옛 어른의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 있더라. 5월의 날씨는 딱 좋았고, 바람과 숲 내음,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맛에 선비들은 은둔생활을 즐겼을랑가. 이꼴 저꼴 보지 않고 조금 멀리서 조용히 부유하는 삶.

 

 

이번 여행의 귀한 단체 사진. 프라이버시고 뭐고, 평화롭고 따뜻했던 공감의 시간을 잡아두는 사진. 기록하려는데 빼놓을 수가 없다. 어른 여섯, 중딩 넷. 좋은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비슷한 느낌을 나누며 따로 또 같이 느슨하게 즐긴 시간들.

 

 

크고 작은 대나무 빽빽한 담양 죽녹원에서는 더 좋은 사진들이 있어야 마땅한데 의외로 남은게 없다. 한바퀴 돌고나오는데 실패하고 중간에 딴 길로 새는 바람에 한참 더 걸을만큼 규모 있는 숲. 이제 막 쑥쑥 솟는 작은 죽순부터 그야말로 대나무 왕국. 사진이 별로 없는 건 의외로 사람 없는 풍경을 찍기 힘든 탓이 아니었나 싶다. 많이 찾는 괜찮은 관광지 일수록 멋이 떨어지다니. 메타세콰이어도 문 열자마자 들어갔으나, 사람들의 완소 관광지란.. 하기야 근사한 곳들을 독점하여 보고 싶은 것은 도둑놈 심뽀. 사진 찍겠다고 사람 없기를 바라는 것도 웃기다. 나무향 맡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는 자체가 고맙지. 혼자 저만치 앞서가곤 하는 아들과 달리 살갑게 엄마 옆을 지켜준 딸과 이런저런 담소. 아, 물론 남편과 데이트 모드도 좋았다고 기록해둔다.ㅎㅎ

 

기대치 않았던 소득은 화순 고인돌 공원. 동선을 짜다보니 들어간 곳과 다름 없는데 아이들은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신났다. 입구에서 간단히 유적 설명관 휙 둘러본 뒤 차를 타고 다시 들어가면 중간중간 거대한 바위가 등장한다. 어느게 고인돌인지 헷갈릴 정도. 그런데 돌만 보면 아들과 친구 딸 Y는 암벽등반가 정신이 발동하는 모양. 일단 오르고 봤다. 이 돌 저 돌 폴짝폴짝 잘도 돌아다니더라. 나머지 두 아이도 슬금슬금 올랐다. 둔한 어른의 몸으로 올라가면 내려올 길이 다소 많이 난감한데. 민첩하고 도전 정신 넘치는 10대 청소년을 위한 놀이터랄까. 다시 봐도 저 바위에서 어찌 내려왔는지 아찔하다. 아무도 안 다친게 다행인데, 당시 부모들은 잘 논다~ 며 그냥 봤다. 선사시대 무덤인데 좀 불경한 건 아닐까 싶다가도, 살아있는 후손들이 즐겁게 찾아준게 낫지 않나, 별 생각을 다. 나름 지석과 석실이 있는 것이 49기. 상석 등 총 596기가 집단 분포된 공원이란다. 주변 고인돌까지 더하면 1000기 이상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됐단다. 돌을 옮겨 무덤을 만들었다고 보기엔 너무 거대한 바위들. 아마 그 부근을 무덤으로 택한게 아닐지. 갸웃..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 초기에 일본군 침입에 맞서 처음 토성으로 쌓았다가 인조때(1626년) 낙안군수 임경업이 석성으로 만들었다는 조선시대의 지방계획도시. 고창읍성, 해미읍성과 더불어 3대 읍성(邑城)이란다. 산과 산 가운데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마을. 높이 4m의 성벽이 둘레 1.4km로 감싸고 있다. 이 성벽의 폭이 꽤 넓어 한 바퀴 돌아보면 옛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민속촌과 달리 이 곳에는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삶도 보인다. 마당에 내걸은 빨래, 줄지어 늘어선 장독, 복원된 옛 일상. 뒷 마당 한켠에는 쓰레기 더미가 있고 옛집에 장착된 에어컨 실외기가 낯설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앞길 말고 뒷편 난장판에서 꼬마 둘이 놀고 있더라. 부모는 아마 관광객을 맞을테고 지들끼리 씩씩한 아이들. 소원을 비는 소원지를 써두면 정월 대보름 때 소원지 태우는 행사를 한다는데, 4.16 참사 이후라 그런지 노란 소원지가 빼곡하게 넘쳤다. 모이고 모였던 우리들의 마음들...

 

 

 

초가집들과 달리 기와 번듯한 저 건물은 낙안객사. 새로 부임한 수령이 가례를 올리고, 중앙의 관리가 찾을 때 머무는 곳이다.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매월 궁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장소란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 조선왕조의 상징적 건물인 전국 객사들을 신민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로 바꿨다고 한다. 치밀하기도 하지.

왼쪽 아래 사진은 사또가 계신 동헌. 오른쪽 위 사진은 동헌의 부엌이다. 옛 사람 모형을 만들어놓아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데 살짝 유치하면서 또 은근 재미나다. 곡식을 찧고 뭔가를 다듬는 너른 부엌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길가의 장승에는 '국태민안', '樂土民安'이란 말이 인상적이더라. 결국 작은 고을이든 중앙 정부이든 '백성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이것은 파노라마 컷. 산의 곡선과 초가지붕 곡선이 어우러지는데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낙안읍성은 여러모로 강추.

 

 

 

광주 망월동 묘지, 이제는 '국립 5.18 민주묘지'라 부르는 그 곳에 드디어 갔다. 이 부분은 당시 페북에 올렸다가 여행 자체가 죄스러워 비공개로 돌린 글을 옮겨놓는다.

 

중딩 아이들을 데리고 '국립 5.18 민주묘지'를 남도여행 코스에 넣은 것은 꼰대 인증인건가요ㅠㅜ 

사실은 저부터 한번도 못 가본지라.. 욕심냈습니다. 

화순 운주사와 고인돌을 구경하고 광주로 가는 길. 아이들에게 간단한 브리핑이 필요했어요. 광주 민주화 항쟁이란 뭐냐면..... 아.. 

부끄럽지만 검색 신공이 필요했어요. ㅠㅜ 
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근데, 

"사망자가 163명, 행방불명자가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아직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으로 확인됐다"

..는 대목에서 그건 틀렸다고 옆지기가 주장하더군요. 사망자가 천 단위 아녔냐고. 아니 공식 기록은 저런데? 이걸 갖고 또 설왕설래.

우리는 희생된 숫자도 믿을 수 없는 건가요? 예나 지금이나. 

당시 북한 사주를 받은 폭도라 했다가.. DJ 자금 지원 받았다고 했다가.. 고문으로 그런 사실 실토하라 하고. 폭도란 이유로 사형 5명, 무기징역 7명 등 "엄정한 법질서 구현을 위한 처벌"도 진행했으니... 왜곡된 진실 중 어디까지 바로 잡힌걸까요. 

기초적 팩트 조차 갸웃하면서...5.18 기념 전시관의 기록들은 조금 더 세밀하거나 다양했다면, 참신했다면, 다양한 근거와 기록들을 더 잘 구성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갖고 돌아온 참에... 트윗에서 저런 글을 봤어요. 

@rainygirl_: 어느 일베유저가 분탕 목적으로 일워에 글을 남기며, 방충망을 피하기 위해 <광주폭동 일베만세>문구를 <모스 부호>로 썼다고 합니다. .-.. .- . -.- 하면서 ㅋ
http://t.co/hSNZN5YMZI"

폭동, 폭도. 아니 어따대고 ㅠㅜ 
곡학아세. 정말 기막힌데.. 제대로 배워볼 기회도 없이 저리 믿어버리는 이들도 있겠구나, 이 사회의 수준은 역사를 제대로 익히고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일조차 못하는구나.... 한탄 하고 있다니..역시나 꼰대 인증인 거죠? ㅠㅜ 

2년 전 쯤 딸과 둘이 수다 떨다가 광주 민주화 항쟁 얘기가 나온 적 있어요. 시민이 어떻게 폭도로 몰렸고, 군대가 발포했으며, 죽고 다쳤으나, 언론엔 그런 얘기조차 없었고..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더니 

"말도 안돼.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게 말이 되?"

딸은 모든걸 믿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말 안되는 일들. 우린 그런 역사를 겪어온거죠. 아이의 눈에도 씸플한걸 요즘 다시 폭도니 폭동이니 하는 이들이 있다는걸 또 어찌 설명해야 하는지. 

못난 어른보다는 현명한 아이들을 믿어야죠 뭐...ㅡㅡ

 

영정들이 빼곡한 공간에서 마음이 어지럽다. 믿기지 않는 과거와 현재. 죄 없이 쓰러진 당대의 시민들과 오늘 날의 시민들.

추모탑은 어쩐지 너무 거대하다. 덜 위압적이면 좋을텐데.
저 곳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묘를 발견하게 될지 몰랐다. 선생님의 비석 뒷면에는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힌 겨레의 스승 여기에 잠들다' 라고 쓰여 있다. 생각이 갈래갈래 또 산으로 가더라.

 

 

 

여행의 마지막은 순천만 공원. 전날 낙안읍성에서 너무 잘 노는 바람에 S자로 굽이굽이 노을이 퍼져나가는 그 유명한 순천만 일몰 장면을 놓쳤다며 옆지기는 아쉬워했다. 어떻게 모든걸 다 볼 수 있을까. 다른 가족들은 일찌감치 귀경길에 오르고 우리는 아침에 휘리릭 수박 겉핥기로 순천만 공원을 둘러보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오겠지. 여행은 좋은 기억들, 선한 기운들로 마음을 채우는 일. 그리고 또 뭔가 아쉬워 하며 또 오게 싶게 만드는 일이다. 지난 봄 남도여행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우리는 또 이렇게 살아낼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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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2> 저마다 다른 부처의 모습으로 내소사, 운주사, 송광사, 선암사

여행 2014.07.20 23:19

아이들이 어렸을 때엔 여행을 가지 않았다. 휴가만 갔다. 수영장만 있으면 좋았던 휴가. 이제는 아이들과 여행을 다닌다. 고마운 일이다.

 

<남도여행-1> 남도로 가는 길, 마이산 탑사의 고요한 염원

덕분에 이런 시간도 갖고, 이번 여행은 어린 아이들과는 절대로 못할, 사찰 기행도 포함됐다. 첫날 마이산 탑사를 비롯해 5군데의 절을 찾았다. 어쩌면 그리 다른 모습들로 맞아주는지 고맙기도 하지.

 <일정>

5월2일(금) 서울 출발. 가는 길에 청양 출렁다리, 진천 마이산 탑사를 들렸다가 부안 도착.

5월3일(토) 채석강을 그야말로 휘리릭 본 뒤, 곰소 염전 거쳐 내소사로 출발. 정읍서 점심 회동. 담양으로 이동해 메타세콰이어 사람이 너무 많은데 질려 소쇄원명옥헌!

5월4일(일) 아침 서둘러 메타세콰이어 재도전. 죽녹원 감상. 화순 운주사고인돌 공원, 광주로 넘어와 망월동 국립5.18 민주묘지 참배.

5월5일(월) 순천 송광사선암사. 그리고 낙안읍성!
5월6일(화) 순천만 공원을 잠시 둘러본 뒤, 귀경.


부안 내소사는 전나무 숲길이 열어준다. 빽빽한듯 여유로운 전나무  사이로 시간도 느릿느릿 흐르는 느낌. 청량한 기운을 온몸으로 맞았다. 숲처럼 나무 울창한 길을 걷는 건 좋은 점 밖에 없다. 산을 오르는 길처럼 얼굴 빨개지도록 헥헥 거리지 않아도 된다. 타박타박 이어지는 발걸음마다 소박한 기대와 편안한 안도감이 함께 한다. 이번 여행은 각 절로 들어서는 길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매혹했다. 특히 내소사의 전나무 길은 볕좋은 봄날, 서늘한 바람과 함께 좋았는데...둔중한 여인이 등장하는 저 사진 밖에 없다니 아쉽.

 

 

633년 백제의 승려가 지었다는 내소사에서 만난 건축물(이때까지는 이름도 잘 모름)의 전각이 인상적이었다. 채색이 세월에 바래 소박한 나무색이 드러났다. 화장을 지운 맛이 또 묘하더라. 탑사에선 탑에 취했다가, 내소사에서 비로소 연등의 선명한 행렬에 눈길이 갔다. 쨍하게 밝은 봄 날, 땡땡이 그림자까지 더하니 예술작품. 부처님 오신날은 이번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고마운 날이자, 가는 절마다 생동감을 더했다. 딸은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한을 위해 노란 리본을 달았다. 함께 간 K의 딸 Y는 절 마다 불상 앞에 엎드려 무언가 빌었다.

 

 

화순 운주사 부터는 가이드 선생님의 영도 아래 여행의 질이 달라졌다. 국내 최고의 건축 전문가이자 글쟁이인 구본준님 가족이 둘째날 합류한 덕분이다. 가는 곳곳 역사와 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가 쏟아졌다. 사실 일행 중 K도 국제 이슈에다 세계사, 고고미술사에 조예가 깊고, S선배는 동양사를 꿰고 있는 동아시아 전문가. 옆지기도 남도를 여러 차례 누빈 바, 구라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데, 요즘말로 일행의 클라쓰가 이쯤되니, 여행은 재미 없기도 불가능할 지경. 사실 너무 좋았다. 진지한게 병인 나는 이럴 때 눈 휘둥그레 귀 쫑긋 참한 학생이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의 절이다. 아담한 석탑, 둥근 석탑 온갖 탑들에 표정도 모양새도 각기 다른 불상들이 곳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잡고 있다. 현재는 석탑 17기, 석불 80여개가 남아있다는데 국내에서 가장 큰 와불, 누워있는 불상도 평화롭다. 와불이 벌떡 일어난다면 세상이 뒤집힌다는데, 아직은 관망 중이신듯.


 

 

조금 무엄하기도 하지만, 귀엽게 넘어가주면 고맙겠다. 사실 운주사의 불상들은 엄숙하고 경건하다기 보다 다들 귀엽고 재미난 기운을 전한다. 묘하다.


운주사는 안쪽의 언덕을 올라가면, 사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아니 근방 잘생긴 산들이 지켜주는 천불천탑의 영지가 한 눈에 보인다. 굽이굽이 능선을 살피며 땀을 씻는 바람에 몸을 맡겨본다.

 

 


어쩐지 유머러스한 운주사와 달리 순천 송광사는 사뭇 진지하다. 구본준님에 따르면 불가의 세가지 보물, 삼보(三寶) 사찰 중에 송광사는 승보(僧寶) 사찰. 법보(法寶) 사찰인 합천 해인사에는 법전 중의 법전 팔만대장경이, 불보(佛寶) 사찰인 양산 통도사에는 부처님 진신 사리가 있다면 송광사는 그야말로 '스님'들의 본산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스님부터 시작, 조선 시대까지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고 한다.

들어가는 문부터 뭔가 포스가 남다른 것 같아 한 컷. 연등도 제대로 화려했다. 볕 좋고 맑은 날, 어딘지 고아한 느낌의 사찰에서 총천연색 때깔이 빛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저 나뭇배 처럼 생긴 큰 통에 놀랐다. 비사리구시. 1724년 태풍에 쓰러진 싸리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느티나무. 사리함을 만들던 느티나무를 사리나무, 싸리나무로 혼용했다는 얘기를 보았다. 국가 제사 때 백성들을 위해 밥을 담아두는데 쌀 7가마, 4000명 분의 밥이 들어간단다. 인근 백성 4000명을 돌보는 도량, 그 시절 국가가 그랬던가.

 

 

 

 

순천 선암사는 송광사에서부터 훌륭한 트래킹이 가능한 모양이지만, 시간을 아껴 차를 타고 들어갔다.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은 계곡물과 함께 이어진다. 그래서 가다보면 보물 400호 '승선교'라는 아름다운 돌다리가 나온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이용해 완벽한 원형으로 찍은 사진도 구경은 했지만 옆지기 작품은 요 정도. 사실 계곡 아래 내려가는 길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닌데 좀 좋아 보이는 카메라 든 사람들이 여기저기 구도를 잡는 모양새. 마음을 비우고 욕망을 다스리는 절에서 한 컷 건지겠다고 애쓰는 그 마음들이라니.ㅎㅎ 

 

 

물길 따라 들어가는 길은 아무리 봐도 멋스럽다.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 길에서 벗어나 계곡의 돌 무더기를 건너뛰며 신이 났다. 그러고보면, 절은 참 너그럽다. 경내에 들어가기 전 행동가지로 뭐라 않는다. 물론 너무 관대한 나머지 절 들어가는 길에 좌판과 식당도 많은 거겠지만..ㅠ 

선암사 가는 길, 우리는 시 한 편을 검색해서 읊어댔다.

선암사 해우소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구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쌍기역이 아니라 'ㅅ+ㄱ'으로  '깐뒤'라 쓰인 곳이 해우소, '뒤깐'이다. 옆은 나무 칸막이가 있지만 앞은 트인 화장실. 우리 일행 중 누구도 볼일을 시도하진 못했다. 통곡도 하지 못했지만, 그저 웃고만 지나갈 수도 없었다. 누군가 눈물 흘리며 달려올 수 있는 그 해우소. 누구든 품어내고 달래주는 선한 공간.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진다. 선암사 뒷편에서는 잘 생긴, 오래된 매화나무도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준다. 고즈넉한 기운은 절의 기본 덕목 아닌가. 선암사에서는 해우소 시 덕분에, 오며 가며 걷는 길에 딸이 최근 외운 시를 들려줬다. 조지훈의 시. 아름다운 말들을 중딩 딸이 외워서 들려주는 경험, 이건 비교할 수 없는 근사한 일이다.

 

내소사, 운주사, 송광사, 선암사..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부처의 품으로 안아주셔서 고마웠다. 4.16 참사의 비명이 아직 가시지 않은 때였다. 절마다 절마다, 부처 앞에 서서 믿음도 없이 그저 빌었다. 생의 귀환을 빌고, 깊은 안식을 빌고, 죄 많은 어른들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빌었다. 의식이나 예, 격식 없는 기도가 어딘가 닿기를 바라며 틈만 나면 빌던 시간들. 어쩌면 그런 기도로 가당찮게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여행에 덜 미안하고자 했다. 어찌됐든 이 여행에서 좋았던 기억의 한 축이다.

이 여행을 기억할 때 마다, 세월호 친구들을 또 기억한다. 인간의 존엄, 생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고 떠난 아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거듭 전한다.

 

 

====> 다시 사족처럼 붙이는 식당 정보.
구본준님이 "꼭 그 곳에서 만나야 한다"고 강추했다. 우리는 내소사에서, 본준님네는 서울에서 달려와 만난 곳이 정읍 백학정. 떡갈비 한상 차림 훌륭하다. 다소 만만찮은 가격이기도 했고, 너무 과한 밥상도 겁나서 적당히 적게 섞어서 시켰는데 그래도 좋다. 다들 허기진 와중이라 급히 찍느라 흐릿..ㅠ 이후 목적지 주변에서 끼니를 해결하다니 맛탐험가로서 체면을 구겼다만..왼쪽 아래 사진은 운주사 바로 앞 민속정의 산채비빔밥(7000), 오른쪽 아래 사진은 송광사 앞 식당들 많은 와중에 벌교식당이던가. 1만원 초반대 산채정식이었던듯. 툴툴 거려도 어디나 기본 이상은 하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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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1>남도로 가는 길, 마이산 탑사의 고요한 염원

여행 2014.07.20 01:31

이 여행의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감탄하고 웃고 평화로운 모든 시간들이 순간순간 죄스러운 당혹감에 부딪치는데? 여행 당시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었다.

며칠전 남도 여행 의견을 구하는 트친에게 어줍잖은 한 마디를 던지다가, 기억이 살아났다. 이제는 그 여행의 기록도 남겨두고 싶다. 그래도 당시 마음을 달래준 여행이었다.

 

 <일정>

5월2일(금) 서울 출발. 가는 길에 청양 출렁다리, 진천 마이산 탑사를 들렸다가 부안 도착.

5월3일(토) 채석강을 그야말로 휘리릭 본 뒤, 곰소 염전 거쳐 내소사로 출발. 정읍서 점심 회동. 담양으로 이동해 메타세콰이어 사람이 너무 많은데 질려 소쇄원명옥헌!

5월4일(일) 아침 서둘러 메타세콰이어 재도전. 죽녹원 감상. 화순 운주사고인돌 공원, 광주로 넘어와 망월동 국립5.18 민주묘지 참배.

5월5일(월) 순천 송광사선암사. 그리고 낙안읍성!
5월6일(화) 순천만 공원을 잠시 둘러본 뒤, 귀경.


옆지기는 남도를 여러번 가봤다지만, 사실 나는 첫 걸음. 아이들도 마찬가지라 어디를 가도 좋을 것 같았다. 가는 길에 들린 곳은 동선을 감안하여 ‘5천만이 검색한 가족 여행지’라는 책에서 골랐다.


그렇게 들린 충남 청양 청장호 출렁다리는 기대 이상 좋았다. 물빛 좋은 호수와 주변 녹음이 제대로 그림을 만들어냈다. 다소 촌스러운 조경도, 어쨌든 신경 많이 쓴지라 점심 먹고 가볍게 산책하기에 맞춤했다. 그러나 멋지게 잘 만들어진 공간에 흡족한 만큼 반비례하는 당혹감. 청양 고추를 상징한 저 다리의 조형물, 그리고 다리 건너 용과 호랑이 모형은 정말 웃고 지나가기엔 처절했다. 평온하게 즐길 수 있는 충청도 깊은 매력에 저런 테러를. (저게 세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가슴 깊이 뭐가 부글부글..) 산과 물, 하늘이 아주 제대로 어우러지는 깊은 촌구석이라 더욱 빡쳤던 기억. 귀엽게 봐주려 해도 전혀 귀엽지도, 예쁘지도 않다. 그러나... 그 또한 구경꺼리 라는 배려일까.
(이례적으로, 은근슬쩍 아이들 사진 공개. 여행의 낙은 아이들 귀여운 모습을 남기는 건데. 이제는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 사춘기 소녀와 소년. 친한 척도 거부해서 저 정도면 최선의 구도)

 


4. 16 이후 날마다 통곡을 하던 즈음이다. 그저 조용히 걷거나 보았다. 산천은 진부한 표현이 어울릴만큼 그대로인데, 세상은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다가 전북 진안 마이산 탑사에 도착했다.

 

산의 모양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내려앉은 듯, 산이 반으로 쪼개진 양, 동봉과 서봉이 쌍봉으로 솟아있다. 말의 귀 마냥 생겼다는데, 그런 재미난 생각을 할 산이 아니었다. 묘한 위엄이 다가왔다. 
 

 

탑사는 작은 절. 하지만 건축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입구부터 한 없이 돌탑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탑, 높은 탑, 각기 다른 돌 모양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탑. 1885년 이갑용 처사가 혼자 쌓았단다. 98세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108개의 탑이 완성됐다. 그리 오래된 분이 아니다. 그런데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축지법을 쓰셨나? 변변한 도구도 없이 어찌 저 높은 탑을 쌓았지? 암벽 중간의 공간에도 작은 탑들이 줄을 지었다. 슈퍼맨이 아니고서야 어찌 저 곳에 탑을 쌓았을까.

 


 

 

 

 


아마, 오래도록 못 잊을 여행이 된 건 그 순간이었다. 당시 페북에 올렸던 기록

마음 편한 여행은 글렀고. 조금 추스르겠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마이산 탑사의 석탑들 앞에서 마치 심리적 방언이 터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두 손 모아잡고 빌었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없어서 그런지 더 간절히 빌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 그 불쌍한 아이들 극락왕생, 아니 어디라도 좋으니 편안한 안식을 허락해주세요. 우리를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데 더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이 모든건 저희 잘못입니다. 다 저희 죄입니다. 저희가 많은걸 잘못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너무 많이 왔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더 하겠습니다. 뭐라도 하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겠습니다. 제발 아이들을 보듬어 살펴주세요.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이 나라를..아니 이 사회를.. 아니 그냥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이 모든 고통이 저희 잘못에 대한 벌인건가요. 아. 그래도 아이들은 죄가 없잖아요. 제발 굽어 살펴주세요. 

마이산 탑사. 거대한 바위산 중간의 작은 공간까지도 작은 석탑들. 한 분이 홀로 쌓았다는 설명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신령스러운 공간. 축지법을 쓰셨다는 설명에 오히려 진짜 그랬을 것만 같은 신비. 

믿음도 없는 인간의 간절한 기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그냥 다짐을 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참 고요한 시간이었어요.

 


여행의 목적지를 향해 가던 길 위의 인연. 탑사에서 돌아서 나오는데 마음이 들어갈 때와 달랐다. 언젠가, 다시 그 고요한 시간을 마주하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떠난 여행,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갖췄다.

본격 일정은 다음날 아침에 시작됐고, 호텔 바로 앞의 채석강. 나는 정말 채석강이 흐르는 강인줄 알았다... 채석강은 절벽이다. 겹겹이 단층이 맵시를 뽐내는 절경이다. 중국 당나라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얘기가 책에 나오던데, 그 강이 그 강도 아닌데 뭘까 싶다. 짧게 둘러봤다. 아쉽지만, 또 많이 아쉽지도 않은.

 

 

 



그리고... 사족 같이 붙이는 여행의 백미. 평소 행태를 보면, 맛집 리스트를 쫘악 뽑아 갔어야 마땅한데. 사실 그 무렵엔 그럴 경황도 의지도 없었다. 다니면서 그때 그때 검색하거나, 동선 맞춰 가다보니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맛집 기행.

그래도 청양 바닷물손두부는 정말 흡족했다. 7000원 청국장 백반도, 바닷물 손두부(15000)도 투박한 맛에 즐거웠다. 음식 재료 생산지를 동네 단위로 주민 이름까지 넣어 밝혀두니, 이웃 아저씨 농사 지은 걸로 밥 먹는 착각이 들더라.  엄마 사진 찍는데 길게 목을 늘어뜨리고 숨어버린 아들, 지못미.

이날 저녁은 채석강의 한 횟집에 갔는데 비추.... 군산식당에서 백합 코스를 먹었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채석강 주변에서 백합죽으로 아쉬움을 달래보기는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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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위대한 문명을 만나면 두근거린다

여행 2013.08.22 08:30

피렌체에서 로마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덕분에 딴 길로 두 번 샜다. 자동차 여행자의 특권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피렌체에서 1시간 거리의 피사. 남들 다 하는 대로, 기울어지는 사탑을 떠받치는 자세로 온 가족 차례로 인증샷.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조차 장관이다. 그러나 기울어진 탑 만큼 멋지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사탑의 아우라가 실제 봐도 명불허전. 특히 그 와중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꼭대기 부분을 살짝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뜨린 당대 건축가들의 고민이 인상적이다. (피사의 사진은 생략. 솔직히 궁금할 이가 없을 듯ㅎ)

그리고 치비타 디 반뇨레죠(Civita di bagnoregio).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은 '천공의 섬', 로마에서 1시간 거리다. 풍화와 지진으로 작은 마을이 구릉 위에 얹어져 있고, 가느다란 다리 하나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한 때 사람들이 다 떠나 '죽음의 마을'로도 불릴 만큼 스산한 분위기. 동시에 꽃 정원과 덩굴 담장, 나른한 고양이들이 보이는 그림 같은 마을이다. (화보를 보면, 해질 무렵이거나 해뜰 무렵의 어둑한 때, 빛이 덜 할 때 제대로 모양이 사는 동네 같다. 이날은 너무 쨍했다) 


아이들이 폴짝 뛰는 사진은...옆지기의 단골 컷. 배경 좋은 곳 마다 시도한다. 날이 더웠다. 딸은 촬영 거부.


반뇨레죠에서 로마 가는 길에 오르비에토가 있는데 그냥 지나갔다. 고대 에르투리아 12도시 가운데 한 곳이라는 둥, 절벽 위에 세워진 중세도시의 면모가 남아있다는 둥...그것보다 아쉬운 건 10여 년 전 국제부 기자 할 때 '슬로푸드'와 함께 '느리게 살자'는 '슬로시티' 운동의 발원지로 관심 가졌던 도시인데..그걸 까먹고 있었다. 실제 볼 기회가 왔었고, 별 생각 없이 놓쳤을 줄이야. 

그리고...드디어 로마...... 
이번 여행의 종점. 결론부터 말하면 '올 킬'이다. 그동안 봐왔던 모든 서양 문명사의 정점에 있는 도시. 오래된 아름다움, 완벽한 서사. 파리부터 시작해서 스위스 보고 피렌체 찍고 로마로 넘어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콜로세움, 유료 입장 대신 그냥 겉만 구경하는 일정이라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더 열심히 가이드님 설명을 들었다...기 보다, 진짜 흥미로웠다. AD 80년에 만들어진 건축물인데 계급별로 다른 입구가 80개, 5만5000명이 빠져나가는데 15분 걸렸다나? (고대 기록 어디에 저렇게 분까지 맞춰 나오는지 쪼금 궁금) 상암 경기장에서 6만명이 빠져나가는데 얼마나 걸릴까. 극적 등장을 위한 무대 장치, 그늘만 있으면 시원한 지중해성 기후 특성에 따라 꼭대기 층에는 차양을 쳐주는 기술 등 놀라운 이야기는 끝이 없다. (노예를, 정복지의 남자들을 검투사로 동원해 당대의 명 짧은 아이돌 스타로 만든 역사에 대한 감상은 다음 기회에...) 

고대 로마는 어떤 문명사를 쓴 걸까. 그 시절에 수도관을 깔았다는 것 자체가 신비한 일. (오른쪽 아래 사진도 그 일부) 검색 신공 좀 동원해보면 9개의 수도관이 수십 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와 11개의 커다란 대중목욕탕과 850개의 욕조, 135개의 분수, 각 가정에 물을 공급했다는 도시다. 도시 로마가 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배경은 로마 방식으로 길을 깔아주고 물을 해결해주는 등 정복지의 생활을 바꿔준 덕분이라는 (승자의?) 역사 해석도 있다. 
해부학도 발달해서 그 시절에 발견된 해부 도구만 20여 종인데.. 그 중 10여 가지는 현대 의학에서도 활용된다고 한다. 2000년 전 해부학이라니. 로마의 문명 수준에 대해 감탄하던 와중에... 313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후, '신의 뜻에 거슬러 병든 인간을 살려내는 기술'이 배척당했던 역사를 귀동냥 했다. 의학 기술의 발전이 신에 대한 반역인가? 어디 이 기술 뿐일까.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탐구와 모색을 중단시키고 신의 뜻만 외우는 시대로 만들다니. 찬란한 기술 문명이 1000년의 암흑기를 맞이하다니, 기독교는 대체 인류 문명사에 무슨 일을 한 것인가. 믿음 없는 이는 개념 없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들에게 돌 맞을 얘기에서 삼천포로 빠져보면... 오른쪽 윗 사진, 나보나 광장의 야경인데... 저녁에 가면 끝내주는 음악과 페인팅 퍼포먼스를 구경할 수 있다. 공연에 반해서..결국 CD도 샀다ㅋ 




고대 로마의 문명의 흔적은 비교적 생생하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Foro는 공공광장? 아고라 같은 개념일까? forum 의 어원이란다. 정치와 종교, 상업의 중심지. 기둥 몇 개 뿐이라지만, 전성기 모습을 상상만 해도 근사하다. 상당히 스케일이 커서, 제대로 보려면 반나절 돌아봐도 재미날 수준. 주마간산 여행객은 멀리서 사진만 찍고 말았다만, 저런 유적을 지켜보는 건 어쨌거나 두근거리는 일이다. 거의 대부분 묻혀 있어서 보존이 됐다는데, 저 정도라도 복원되다니 후손들의 복이다.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얽힌 서울을 비롯해 파리, 도쿄 등의 대도시와 달리 로마는 지하철 노선이 달랑 2개 뿐이다. 유적이 많아 함부로 땅을 파지 못한다니ㅎㅎ) 



사실 포로 로마노와 함께 원근법을 조작, 밑에서 보면 낮아보이도록 설계된 미켈란젤로의 계단(Cordonato)이라든지, 가까이 보면 각 진 직선들인데 하늘에서 보면 곡선으로 설계된 깜삐똘리오 광장의 바닥 조경이라든지..이 대단한 고대 옵바들에게 감탄과 감탄을 거듭하던 중... 완전히 매혹당하는 상황을 맞이했으니, 바로 판테온(Pantheon)이다. 

이름은 주어들은 바 있어도, 무엇인지 잘 몰랐던 곳. 단 하나의 신을 영접하기 이전, 그리스인들의 영향에 따라 로마인들이 사랑하던 제우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등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 즉 '만신전'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Pan(Παν)은 all, Theon(Θεον)은 gods. 609년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동로마황제로부터 넘겨받아 카톨릭 성당으로 바꾸면서, 경배하는 신이 바뀌어버린 건축물. 

하지만 이 정도였으면 그리 반했을까. 미스테리한 문명의 결정체, 이런걸 좋아하는 내게 판테온의 건축기술은 또 하나의 신비였다. (내가 이런데 꽂힌 건.. 앙코르와트 여행 당시 거품을 뿜었던 책 '신의 거울' 덕분이다) 

판테온의 직경은 43.3m. 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높이와 같다. 기원전 27년 처음 세워졌고 서기 80년 불탔다가 126년에 개축됐다. 가이드님의 말에 따르면 현대 기술로도 지을 수 없는 돔이란다. (이건 좀 뻥 같기는 하다) 원래 돔 건축은 아치와 마찬가지로 정교하게 받쳐주는 힘을 구상해서 쌓아올려야 하는데, 여기엔 구멍을 냈다. 저 구조물은 어떻게 지탱되는 걸까. 철근이 들어있지 않은 4,535톤 중량의,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란 말이다. (역시 추가 검색 좀 해보면..밀도가 낮은 콘크리트를 돔의 높은 층에 사용했고 두께조차 아래 부분의 벽은 5.9m, 위는 1.5m로 하중을 줄였단다) 구멍의 지름은 약 9m인데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쳐도 딱 아래 9m 넓이의 바닥에만 비가 쏟아진단다. 그 부분에 있는 아주 작은 배수구에서 건물 내부 다른 곳에 피해를 주지 않고 물을 다 빼낸다는 얘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춘분과 추분에 햇빛이 딱 맞춤으로 들어온다는 거대한 해시계. 햇빛과 달빛이 청동 벽면에 반사되어 만드는 영롱한 모습이 일품이었고,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천사의 디자인이라 극찬했단다. 특히 라파엘로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 자신의 무덤으로 택했다. 판테온의 청동은 군대의 대포로, 대성당의 건축재로 쓰이느라 다 뜯겨져 나갔다지만, 건물의 위엄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경이로움에 그저 낮은 숨을 토할 뿐이다. 



글이 넘 길어진다는 핑계로 이쯤 정리하자. 로마의 이튿날은 종일 바티칸을 누볐다. 입장을 위해 1시간 여 줄서서..라기 보다 줄에 앉아서 실제 본업이 고고미술사 연구라는 가이드님 설명을 들었다. (고마운 대박이라고나 할까) 피렌체에서 르네상스를 예습한 덕분에 더 재미나더라.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용'부터 '아테네학당'.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천장화(그 유명한 아담의 창조를 비롯해 설명도 기막히고 실제 보면 경이롭다), '최후의 심판', 라오콘상과 미켈란젤로 피에타까지... 위대한 예술을 직접 보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경험인지. 



그림 혹은 예술에 취미 전혀 없던 내가 그림 좋은 걸 알게 된건...대학 때 가본 상뜨 뻬쩨르부르그의 에르미따쥬 박물관 덕분이다. 난생 처음, 자발적으로, 여유 있게, 하염 없이..즐겼다. 많이 볼 생각 않고 좋은 그림만 실컷. 루브르, 오르세도 그렇지만..바티칸 투어는 오랜만에 그 즐거움을 되살려줬다. 
평소 굳이 미술을 찾아 가서 보는 수준은 아니지만..이렇게 기회가 닿을 때 좋은거로 내게는 족하다. 미술 교육, 그림 보고 화가 이름 짝짓기 하는 식으로 외우는게 아니라.. 그저 이런 느낌만 만끽해도 좋을텐데. 사연 한 자락을 구경하면 줄줄이 호기심으로 파고들텐데... 


성베드로 대성당은 그 자체로... 너무 대단해서, 종교의 힘을 다시 생각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압도되어 버리니, 오히려 조금 정신이 드는 기분. 


나는 쉬운 여자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울컥한다. 포로 로마노, 판테온, 카타콤베, 시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개인적으로 최고의 절정은 판테온이었지만 로마의 매력은 실체적으로 남은 유적보다 그 철학, 법, 문화 등 문명 그 자체의 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던 그 시절의 일상.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버리는 예술.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나 라파엘로 같은 노력형 엄친아의 스토리를 비롯해 정치와 종교, 문화의 히스토리. 

내가 쉬운 여자라 다행이다. 여행에서 작은 자극에도 크게 흔들렸고, 짧은 찰라도 충분히 즐거웠다. 몸은 강행군에 지쳤지만, 마음은 좋은 느낌으로 충만해졌다. 이 행복,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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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시작한, 그 남자의 도시

여행 2013.08.20 08:00

이탈리아 국경이 가까워지자 스위스의 표지판은 독일어에서 이탈리아어로 어느 틈에 바뀐다. 운전자는 국경을 지난걸 확실히 깨닫는다. 다들 운전이 거칠다. 끼어들기와 바짝붙기가 이어진다. 페북 친구인 S 선배가 미리 이탈리아 특유의 폭풍 운전을 경고해주셔서 예상은 했지만, 대단하다. 

목적지는 피렌체. 가는 길에 밀라노가 있다. 밀라노에는 별 미련이 없었다. 명품에 관심이 없으니, 아니 안목도 정보도 없으니 최고의 디자인 도시도 내겐 그냥 돼지 목의 진주. 다만 밀라노 두오모만 보고 싶었다.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있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약도 필요한데다 줄도 길다고 해서 포기. 딱 두오모 사진만 찍었다. 피렌체 두오모와 사뭇 다른 두 대성당의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주마간산이지만 비교할 수 있다는 건 좋았다. 밀라노의 두오모가 더 화려하고 크다. 피렌체 두오모를 보고 있으면..덜 압도된다. 생각이 많아진다.




가기 전에 피렌체 예습이라고들 권하는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도 봤지만, 사실 영화의 여운은 별로 길지 않았다. 책을 통해 가진 로망이 훨씬 컸던 탓일 수도.  하지만 그것도 오래된 기억. 최근 피렌체에 꽂힌 것은 회사 리더쉽 특강에 오셨던 연세대 신학과 김상근 교수의 '르네상스 창조경영' 말씀 덕분이다. 회사 특강도 간혹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데, 김 교수님 수업이 딱 그랬다. 중세 천 년의 역사를 끝낸 르네상스. 사실 400~1400년 한 시대가 천 년이 유지되려면 공고한 내적 논리가 필요한데, 그걸 끝내버린게 바로 르네상스라고. 그리고 르네상스를 끝낸 이가 바로 단테...피렌체는 단테의 도시다. 

고대 로마의 인구가 100만에 달했다는데, 당시 피렌체 인구는 4만500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중세를 끝낸 단테,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페트라르카, 조토 다 동네 친구였단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마키아벨리도 피렌체 사람. 갈릴레이는 피렌체 인근 피사 사람이다. 어떻게 저런 작은 도시에서 당대의 천재들이 줄지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당시의 피렌체 분위기가 연출된다면 누구든, 어느 회사든, 세계를, 아니 한 시대를 지배할 거란 특강의 농담이 진지하게 들렸더랬다. 

정말 동시대 동네 형 아우인지 궁금해서, 검색 좀 해봤다.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 조토(Giotto di Bondone, 1266~1337),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Leonardo da Vinci),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 1469~1527),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uonarroti Simoni, 1475~1564) 갈릴레이(1564~1642, Galileo Galilei)... 피렌체 희한한 동네 맞다. 

김 교수님은 이런 희한한 문명사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단 한 사람. 단테를 꼽았다.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세상을 바꾼 이.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 훨씬 이전에 그가 있었다. 

그는 9살 때 한살 어린 베아트리체를 만났다.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한 눈에 반했다. 첫 사랑의 열병이 그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조숙한 감성에 놀랄 것도 없다. 이 열병이 평생 한 남자를 사로잡았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영감의 원천이었다. 김 교수님에 따르면 단테가 첫사랑을 다시 보게 된 것은 18세. 아르노 강 다리 앞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난 그는 그러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녀 옆의 다른 여자에게만 말을 걸고 만다. 아르노 강둑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단테는 절망한다. 좋아하는 그녀에게 말도 못 붙인 이 남자가 결국 <신곡>에서 그녀를 영원한 존재로 남긴다. 김 교수님은 <산곡>을 읽지 말라고 했다. '아'로 시작하면 '아'로 끝나는, '오'로 시작하면 '오'로 끝나는 리듬이 끝내주는 작품이라, 번역문 읽어봐야 소용 없단다. 소녀 시절 문학전집으로 봤던 것 같은데, 사실 어렵기만 했던것 같다. 단테는 모두가 라틴어를 쓰던 중세를 끝내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고, 모든 것이 종교적으로 해석될 때, 인간 내면을 돌아봤다. 

김 교수님의 강의 핵심 키워드는 "돌체(Dolce)". 달콤함, 향기로운, 사랑에 빠지고 마는 그 느낌.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는 그 두근거림이 바로 돌체란다. "두근거리는 삶을 사는 이, 무언가에 매혹된 이가 세상을 바꾼다"고. 그는 돌체의 힘으로 중세를 장례지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저 장면. (저 남자가 18세로 보이지는 않는다. 9살에 사랑에 빠져도 놀랍지 않을 만큼 조숙하고 빨리 나이드는 시대였나^^;;)



이러니..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던 다리, 아르노 강을 실물로 만났을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바로 그 현장이라니. 피렌체도 유로자전거나라 투어를 신청해 가이드님과 다녔는데... 가족들은 물론, 다른 모든 일행이 무덤덤하게 다리를 볼 때, 혼자 좋아서 죽는 줄 알았다. (피렌체 다리에 대한 이야기는 구본준님의 완벽한 글을 보면 된다. 사실 무진장 따라가고 싶었으나 우리끼리 다니는 것 보다 4인 가족 기준 좀 비싸서 포기한ㅎㅎ 그리고 베키오 다리인줄 알았는데..찾아보니 저 그림 속 다리는 산타 트리니타라고ㅎㅎ ) 


단테를 기념하는 저 벽(왼쪽 사진). 그 벽을 돌아서면 기념관(오른쪽)이 나오는데, 한 시대를 새로 열었던 인간의 위대함에 경배를. 



피렌체 투어의 핵심은 우피치 미술관이었다. 가이드님에게서 조토와 마사토, 신의 무표정 대신 인간의 얼굴이 등장한 그림, 세상을 뒤흔들게 되는 원근법 등을 들었다. 미술에 관심도 없던 주제에 이런 얘기가 이렇게 흥미로운 걸 보면, 내가 받은 미술 교육에 문제가 있던걸까 남 탓 하고 싶다. 단테가 뒤흔든 인간의 지성은 이렇게 피렌체로부터 미술로, 조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이라는 엄청난 후원자가 등장한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책을 읽고 서평 끄적댄게 2001년 일이다. 오랜만에 살펴봤더니, 흠. 메디치가에 대한 존경보다는 분노가 배어나는 글이다ㅋㅋ 

작고 신비한 역사의 도시. 피렌체는 작은 골목 사이로 돌길이 미로처럼 연결된다. 두오모에 올라가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벽돌색 지붕이 빼곡하다. 등산 싫어하는 엄마 닮은 탓인지 올라가기 싫다는 딸을 억지로 데리고 올라갔다가 탈 났다. 못된 엄마로 찍혔다. 너는 등산 가자는 윗사람의 제안 거절하면서, 왜 딸에게는 강요하느냐는 옆지기 말이.... 틀린 건 아니지.. ㅠ 




피렌체가 유명한 또 한가지 이유는 온갖 명품 브랜드 본사가 다 여기 있단다. 가죽의 도시였기 때문이라는데, 가죽만 잘 다룬 건 아닌듯. 티본 스테이크의 원조라는 플로렌티나 스타일 스테이크, (내내 먹었는데 어느 집에 가든 대개 100g에 4.5유로 정도) 풍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트친 S님이 횡성이나 평창 분위기라고 표현했는데 딱이다.^^ 가죽과 쇠고기라니, 넘 당연한데 색다른 조합처럼 괜히 웃었다. 무튼 명품엔 별 관심 없지만.. 또 좋은 가죽 제품이 착한 가격이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시장을 둘러보다보니..집 구석에 쳐박혀 있는 가방들이 떠오르더라. 옷하고 맞춰서 가방 들고다니는 패셔니스타도 아닌데, 심지어 최근에는 겨울 배낭, 여름 에코백(이라 불러주면 좋아하는 천주머니) 차림인데 뭐하러 뭔가를 사? 내가 세상에 남기는 쓰레기를 줄이자는 생각과 거꾸로 아닌가? 하는 꼰대스러운 자각이.. ㅠ 망설이다가.. 컨디션 나빠진 딸과 먼저 숙소로 돌아왔고, 기념품 산다는 옆지기만 시장에 다시 다녀왔는데... 마눌이 눈여겨 보며 몇 번이나 손에 들어보다가 돌아선 물건을 사오는 센스...가 있을리가... (작은 가죽 손가방인데 55유로였다... 무튼 왜 남자들에게는 저런 세심함이 없을까, 여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문제 아닌가? 라고 쓸데 없이 자문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지. 특히 남편을 상대로!) 





피렌체 도착한 첫날, 두오모의 야경을 즐기고 젤라또 먹고 놀다가... 우연히 골목길에서 성당을 발견해 들어갔다. 워낙 어마어마한 작품 성당들이 많은지라, 감탄할 일은 아니었지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다듬어진, 우아하게 절제된 그런 아름다움이 있었다. 관광객들도 없는 한적한 시간. 신앙이 없다보니, 기도를 드린 건 아니고...잠시 멍..하게 정적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투어 코스에 있는 줄 알고 이름도 안 챙겼는데, 못 갔다. 관광 지도 찾아보면 되겠지 했는데, 역시 어딘지 못 찾았다. 사실 그냥 이름을 모른 채로 남아도 상관 없다. 딸과 좋은 시간 인증샷이 남았다. 사진은 좀 칠칠맞은 모습으로 찍혔지만, 어쩌겠나. 저게 나인 걸. 




딸이 체했다고 일찍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저녁 먹고 호텔을 지켰다. 옆지기와 아들은 저녁 산책 삼아 나가더니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저런 야경을 건졌다. 대신 나는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하룻밤에 해치웠으니,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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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 인터라켄>인간이 따라해봐야 불경이 될 절대적 자연미

여행 2013.08.19 08:36

아이들은 물론, 나도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이런 서유럽은 처음. 기자생활 십수년 했는데 이러기도 힘들다지만ㅎ 대망의 여행이 성사된 것은, 사실 옆지기가 요즘 좀 한가했기 때문이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집 한채에 빚 뿐인 하우스푸어라지만, 사실 돈 보다는 시간이 문제. 열흘 넘는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이 그리 많지는 않다. 지난 봄 옆지기 회사에서 작은 변화의 가능성이 무너졌다. 옆지기의 우울한 상황을 지켜보며, 여행을 결심했다. 뭔가 위안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새옹지마,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다. 

처음에는 이탈리아만 가고 싶었다. 겉핥기보다는 한 곳에 집중하는 느긋한 컨셉. 하지만 유럽 처음 가보는 처지에, 남들 가는 코스, 다 이유 있다. 그토록 매력적인 파리를 놓쳤으면 어쩔 뻔 했나. 무엇보다... 왜 다들 스위스, 스위스 하는지 알았다.

여행의 행운 중 하나는 유레일 대신 차를 빌린 선택이었다. 골프 수동을 구했다가, 어찌저찌 벤츠 C클래스 자동으로 바꿨다. 우리 가족이 또 언제 벤츠를 타고 달려보겠는가. 십여 년 전 나름 자동차 업계를 취재하며 포르쉐부터 온갖 차를 시승해봤던 기억이 살아났다.(^^V) 속도를 낼수록 묵직하고 낮게 가라앉는 안정감ㅎㅎ 한국에서 임대해온 전용 내비 톰톰의 도움을 받아 거침 없이 달렸다.  
평소 뚜벅이를 자처하지만, 사실 운전 자체가 피를 뜨겁게 한다. 그 감각이 짜릿한걸 안다. 더구나 프랑스는 남부로 갈 수록 낮은 언덕과 푸른 들판이 펼쳐지는 그림이다. 이런 배경에, 이런 날씨에, 저런 하늘 아래 힘 좋은 차를 밟고 있다는 건, 섹시한 경험이다. 스트레스를 싹 풀어주는 여행의 별미. 



당초 휴게소에서 점심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11시쯤 한 곳을 지나치고 난 뒤 1시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내비는 국도로 안내해줬고, 식당 찾는게 대략 난감. 2시 쯤 프랑스 시골길에서 작은 호텔 겸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영어를 조금 하는 언니 말로는 점심시간이 지나 다른 메뉴는 안되고 딱 '암'만 된단다. 암? 햄이란다. 자기네 동네에서 직접 만든 햄. 와우. 기대에 부풀어 햄과 치즈, 빵, 상추 샐러드로 구성된 푸짐한 밥상을 받았다. 환상적이었다. (물론 통으로 제공된, 꾸릿꾸릿한 그 치즈를 옆지기와 아들은 좋아하지 않았다ㅋㅋ) 


처음 비행기 갈아타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는 트랜짓 할 시간이 1시간으로 예정됐지만, 루프트한자 비행기가 늦게 뜨는 바람에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다급한 와중에 트랜짓 공항에서 왠 입국심사. 유럽에 얼마나 체류할거냐 묻는데 속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선 30분도 안 있을건데 왜 묻나 했다. 그런데 파리 공항에서 입국심사 절차가 없었다. 남들은 너 유럽 처음 가봤냐고 웃었지만, 서유럽은 처음이라니까! 국경이 없더라. 그저 유럽 뿐.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작은 국기를 보지 못했다면 모를 뻔. 제복 입은 남자가 길 가에 서 있기는 했다. 국경이 희미해지니, 개인은 이렇게 편해지는구나. 그래, 그런거였다. 

베른은 걸어서 돌아다닐 만한 작은 도시였다. 여행 내내 에어컨 되는 호텔을 예약했지만, 베른은 공용화장실을 쓰는 유스호스텔을 잡았다. 그래도 4인 1박에 약 20만원. 공영주차장 하룻밤 차 세우는데 50 스위스프랑(약 6만원). 부자나라 스위스 수도다운 물가랄까. 아인슈타인이 잠시 근무했던 사무실이 기념관이 되어 있는데 오후 5시 좀 넘은 시간에 이미 문이 닫혔다. 대성당에 갔더니 수리 중. 그러나 대성당 뒷마당 그늘(사진 아래 오른쪽) 에 앉아있노라니 하염 없이 좋았다. bear에서 이름이 만들어진 베른엔 곰 한 마리 뒹굴거리는 곰공원이 있다. 대성당에서 걸어서 10분. 그곳의 맛집 Altes Tramdepot에서 끝내주는 뢰스티(스위스 감자전)와 기막힌 맥주로 저녁을 한 뒤, 곰공원 아랫쪽으로 슬슬 내려갔다. 아레강이다. 물살이 그리 빠르고 센 곳을 본 적이 없다. 그리 찬 곳도 겪어 본 적 없다. 빙하에서 내려온 물인지 궁금해하며 여행에 지친 발을 식혔다. 말도 안되는 속도 탓인지 '수영 절대 금지'라는 푯말이 있던데, 5분 간격으로 떠내려가는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상류쪽에서 등장하자마자 곧 하류 다리 너머로 사라지는 이들을 신기하게 지켜보며 쉬었다. 멍 때리니 좋았다. 진심. 

 


다음날 베른에서 1시간 거리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인터라켄 동역(동쪽, ost 란 단어 기억난다ㅎㅎ)에서 기차를 타는데 할인 받아서 성인 표값이 인당 140 스위스프랑(약 16만8000원). 대신 아이들은 저렴하다. 기차를 갈아타며 올라가는데, 어찌 이런 산길에 이렇게 길을 텄을까. 아래 네 컷은 모두 기차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관광객들을 위해 케이블카나 기차를 까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는 선, 혹 그런게 있다면 말이다. 그런 선에서, 더 많은 관광객들에게 자연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해발 4158m 융프라우를 기차 타고 거의 정상에 근접해 바라볼 수 있다니, 나처럼 등산에 취미 없는 이에게는 기적같은 일이다. 걸음 걸음 나를 이겨내는 수행처럼 산을 오르셔도 좋겠지만, 그조차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



파리에서 절대왕정이 그야말로 절대적 부와 권력을 통해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냈고, 어떤 건축과 조각으로 그 권세를 과시했는지 베르사이유에서 절절하게 느꼈다. 그 자체가 감동을 부르는 아름다움이기는 했다. 후손들이 덕분에 먹고 살 만 했다. 그런데 스위스로 넘어오자 절대권력은 잘 모르겠고, 인간의 작품 대신 자연이 빚어낸, 아니 자연 그 자체가 주는 감동, 차원이 달랐다. 역시 후손들은 덕분에 관광수입이 대단할 듯 한데, 당대에 어느 쪽 시민이 더 행복했을까. 치열하게 자유와 평등, 박애를 위해 싸운 이들의 역사를 존경하지만, 스위스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사라진다. 더 뭘 따져물을 이유가 없었다. 겸허해졌다. 절대적 색감과 조형미는 인간이 따라한다는 자체가 불경. 

미리 여행기 좀 찾아본 딸이 비싼 신라면 먹느니 좀 준비하자고 해서, 컵라면을 가져갔었다. 융프라우의 신라면은 7.5 스위스프랑(약 9000원). 뜨거운 물만 사면 4스위스프랑(4800원)이다. 젓가락 값 1.5스위스프랑 별도ㅋ 알고보니 성인 기차표에는 누들 티켓 포함이라 그냥 준다. 융프라우 전망대에서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조심성 많은 딸은 거부했지만 아들은 신났다. (아래 왼쪽) 설산이라 긴팔 챙겼는데 별로 춥지는 않더라. 거기서 기차를 타고 한 구간을 내려온 뒤, 다음 역까지 걸었다. 그냥 보이는 모든 것이 알프스 화보. 미치는 줄 알았다. 너무 멋진 풍경만 펼쳐지니까 시간이 갈수록 감동지수는 떨어지고 2시간쯤 지나니 아이들의 불평지수는 높아지더란게 함정. 



이날 저녁은 인터라켄의 스위스 식당 NEU를 검색해서 찾았다. 퐁듀를 먹고 싶은 엄마와 한식이 그리운 아빠를 모두 만족시킨 한국 주인장의 스위스 식당. 인터라켄 도심 스왈롭스키 매장 옆골목이다. 다만 뢰스티는 비추. 이후 슬슬 도심 산책을 하는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옆 회에마테 잔디밭에 수백명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라, 소방대원까지?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보니..어느새 폭죽이 시작된다. 알고보니, 8월1일은 스위스 건국 기념일. 이 모든 행운을 일정 잘 짠 옆지기에게 돌렸다. 멀리 눈덮인 산을 배경으로 너른 잔디밭에서 불꽃 축제를 즐기다니. 

말이 많았지만, 사실 스위스는 그저 감상하면 된다. 그 자체로 놀라운 경험이다. 




산과 구름, 하늘. 신들의 나라 뷰. 이걸 보다보면.. 이보다 두 배 높을 히말라야를 감히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떼와 함께 하산하다니. 깊게 울리는 종을 목에 달고, 느릿느릿 산을 타는 녀석들. 덕분에 발걸음 마다 똥 주의보.


아래 사진은..다음날 피렌체로 출발하면서, 길 가다 건졌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는 비현실적 풍경. 스위스는 신기한 동네인게, 처음 들어갈 때는 프랑스어가 좀 나오는듯 하다가 바로 독어. 그리고 아래쪽으로 가니 이탈리아어를 쓰더라. 또 엄청나게 터널이 많이 나오는데... 산을 그렇게 마구 뚫어서 길을 내다니. 평소 같으면 환경영향평가 등 생태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에 귀 기울이겠지만..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싶게 관대해지더라. 물론 상황 전혀 모른다. 하지만 저런 풍경이 어딜가도 나오는 동네인데...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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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둘이 만나면 사랑을 하고, 셋이 모이면 혁명을 한다는

여행 2013.08.18 02:33

둘이 만나면 사랑을 하고, 셋이 모이면 혁명을 한다는 나라. <먼나라 이웃나라>의 소개가 아니더라도, 이 나라는, 이 도시는 혁명을 지독하게 사랑한다. 혁명에 자부심이 까칠하게 높다. 고작 3일 밤을 파리에서 보낸 처지에 말을 보태기 어렵지만, 내게 남은 느낌도 혁명의 고향. 파리의 일정은 건축에, 미술에, 거리에, 아니 이 사람들 혼에 깊숙이 각인된 혁명의 역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자유여행 다니는 이들을 위한 지식가이드 '유로자전거나라'. 루브르 1일 투어 코스. 수박 겉핥기를 우려했지만, 역사와 문화를 넘나드는 가이드님 덕분에 정말 좋았고... 저 소제목들을 보면, 파리 투어가 곧 혁명사 투어란게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 젊음과 지성의 라땡지구 생미셀광장 
- <비포선셋> 9년만의 설레이는 만남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 800년 역사의 흔적, 콰지모도의 사랑 노틀담성당 
- 그곳에 가면 다시 파리로 포앵제로 

- 십자군 원정과 생샤펠성당 
- 프랑스 대혁명의 위엄 최고재판소,콩시에르쥬리 

- 클래식의 대명사, 세계 3대 박물관 루브르박물관 
- 내가 원하는 대로! 맛있는 점심식사 

- 혁명의 시작점에서 예술의 전당으로 바스티유 광장 
- 파리지앙 비밀의 장소 보쥬광장,마레지구 
- 시민들의 휴식처 파리시청 

- 혁명을 넘어 화합으로 콩코드광장 
- 왕족의 산책로에서 세계인의 산책로로 샹제리제 거리 
- 문화강대국 프랑스의 진입로 개선문 

3분짜리 설명으로 지나친 곳도 있고, 2시간 가까이 머문 곳도 있고.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7시까지 가이드님은 짧은 휴식 외에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목대로,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혁명의 자취를 따라갔다. 

노트르담 성당은...아름다웠다. 화려한 외부와 달리 내부의 공기는 경건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비롯해 이 나라 역사를 품고 있는 그 위엄. 12~14세기 건축물에 감탄하다가 19세기 증축 당시인지, 무튼 이후에 추가된 작은 조각상에 눈길이 머문다. <노트르담의 꼽추> 주인공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가 저 벽에 있다. 위대한 작품에 대한 시민들의 작은 기념물. 약자에 대한 연민을 놓치 않은 빅토르 위고의 아우라까지 슬쩍 얻어낸 한 수. 그러나 너무 작았다. 오른쪽 사진 삼각형태의 지붕 왼쪽 아래에 까만 점이 콰지모도다. 

도시를, 건축을 구경하는 것은 관광객의 의무겠지만, 이 도시는 역사와 문화의 존재감이 어디든 또렷했다. 작년 말 이후 한국인들의 완소작가로 등극한 빅토르 위고가 이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의 휘광이 이어졌다. 

최고재판소는 그저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었을 뿐이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보니, 역사의 냉정함에 소름이 돋는다. 하는 일이라고는 자물쇠 따기, 벼룩 길들이기 취미 뿐이었던 무능한 왕 루이16세. 시민과 공감하지 못한 죄를 물어, 아니 전쟁 당시 정부와 국민을 배신했다는 증거에 따라 사형된 왕. 최고재판소에서 그의 사형이 결정될 당시 원안은 찬성 387, 반대 344. 불과 수 십표의 마음이 운명을 바꾸었다. 함께 갇혀 아랫층 아이의 비명을 들어야 했던 마리 앙트와네트는 하룻밤새 백발마녀가 됐다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문제적 발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외국인 왕비에 대한 음해였을 가능성이 높다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죄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혁명의 후일담은 늘 피비린내로 이어진다. 무바라크 독재 종식 이후 이집트가 겪는 고통도 가혹하지 않은가. 마침 파리에서 만나기로 했던 옆지기의 후배이자 특파원이던 P는 127명이 숨진 7월 27일 '피의 토요일' 취재를 위해 급파됐다. 프랑스 대혁명 그 이후를 보여주는 그림의 메시지에 편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루브르에서 만난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사빈느의 여자, 1799>. 로마인들이 약탈한 여자들을 되찾기 위해 몇 년간 절치부심한 사빈느의 남자들이 공격했다. 이미 로마인의 아이를 낳고 기르던 여자들은 아버지, 오빠가 남편과 싸우는 가운데 중재에 나선다. 혁명 이후, 분열된 프랑스의 유혈 투쟁에 다비드가 그림을 통해 나선 중재의 메시지.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지~"라는 소리 없는 외침. 유로자전거나라 박영희 가이드님은 다비드 작품을 비롯해 여러 그림에 쓰인 색과 빛, 구도, 배경과 사연에 대해 설명을 기막히게 해주셨다. 어느 하나 그냥 넘길 구석이 없더라. 
 



피투성이 혁명을 이뤄냈어도, 역사는 부패와 무능력함을 지루하게 반복한다. 제리코(Theodore Gericault)의 <메두사호의 뗏목, 1819>. 무능한 낙하산 선장이 이끌던 메두사호가 침몰하자 400여명 중 고위 관료들이 먼저 구명정으로 옮겨타고 149명은 뗏목에 의지하게 된다. 구명정과 뗏목을 잇던 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끊기고 13일 만에 발견된 뗏목의 생존자는 15명. 폭동을 거쳐 인육으로 버틴 죽음의 시간들. 낙하산 선장은 로비에 나섰고, 프랑스 지도층은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 제리코가 정부의 실책을 비판하고 비극을 알려낸 이 그림에 루이18세는 불쾌해했다. 그림은 혹평을 받았단다. 



루브르 박물관은 비너스나 모나리자도 굉장했지만, 이런 그림들의 사연에 숨이 차분해졌다. 혁명에 성공하고, 혁명에 피흘리던 이야기, 탄압과 고통을 묵묵히 담아낸 작품들. (다음날 오르세 박물관을 돌아봤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또 다른 종류의 감동이 있었지만 일단 생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니케. 나이키 브랜드가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나온 걸 처음 알았다. 그리스 땅에서 기원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 누드가 아니라 옷이 얇아 배꼽이 드러나는데, 옷자락의 흐름, 몸의 형태가 살아 움직인다. 루브르는 전시 노하우가 갑이라더니, 계단 정상 위에 자연 채광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니케의 위엄이라니. 인류 문명은 이미 수천 년 전에 경지에 올랐거늘, 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왔는가. 



바스티유 광장. 이제는 카페가 되어 버린 감옥이지만 바스티유 습격사건은 혁명에 불을 붙였다. (1789) 당시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 루소였단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계몽해준 철학자. 불평등한 차별이, 잘못된 분배가 말이 왜 안되는 건지, 그때까지 누구도 얘기하지 못했다니. 인류는 기원 전에도 저런 문명을 자랑해놓고.. 너무 오래 암흑기, 중세에 갖혀있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효과적 통치 체제였다고 해야 하나. <먼나라 이웃나라> 이탈리아편에 보면, 로마인들도 귀족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뭔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 평민의 권리를 지켜주는 호민관 제도를 도입한게 이미 기원전이건만. 

바스티유 자리의 카페에는 요즘도 나이드신 학자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광장 저 편의 집회가 말이 된다 싶으면.. 힘을 실어주러 달려가신단다. 사람들을 일깨워온 지식인의 전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종일 혁명의 함성이 상상되는 투어를 마친 다음날, 우리는 베르사이유로 갔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전설의 만화를 접한게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까? 내 기억의 그 궁전은 그게 전부이건만. 그 화려함과 스케일에 감탄과 경악이 이어졌다. 

부의 95%를 차지했던 귀족들이 세금도 내지 않던 그 시절. 
태양왕 루이 14세는 당시 재무부 장관이던 푸케가 6000명의 하객을 집으로 초대하자 발끈, 그의 전재산을 몰수한 뒤 누구도 도전하지 못할 왕의 권위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었단다.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당시 다이아몬드 보다 귀하다는 거울을 73m나 벽으로 바른 사치의 결정체. 누구든 저 화려한 권세에 압도되었다는 저 공간. (사진에서 왼쪽이 거울이다) 




그 와중에 정원의 나무를 온갖 큐빅 모양으로 다듬으며 삐죽 가지라도 솟았다가는 정원사가 처형당하는 공포 정치까지. 해도 해도 너무한 상황에서 파리의 시민들이 굶주리는 백성에게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며 베르사유 궁으로 달려간 건 필연이었을까?

(그런데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는 베르사이유의 엄청난 정원을 걷고 걸어... 연못? 운하가 나온 잔디밭에서 잠시 뒹굴뒹굴 멍 때린 것.. 그 다음 멍은.. 베른의 대성당 뒷마당에서, 또 아레강에 발 담그고 잠시 여유를 즐겼는데..엄청난 깨달음보다 훨 좋은게 멍 때리는 시간이란걸 깨달았다..ㅋㅋ) 

첫날 투어에서 마지막으로 개선문을 가기 전에,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기 전에 그 앞에 멈춘 콩코드 광장. 이름부터 사실 역사다. 루이15세 광장이라는 이름에서 대혁명 이후 혁명 광장으로 불렸던 곳. 루이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그 광장. 혁명 이후 당통과 로베스 피에르까지 처형당하면서 피의 역사가 이어지자..다시 화합, 통합을 이야기하며 콩코드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저 광장의 오벨리스크(이집트에서 걍 가져온거라는) 앞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표지판이 깔려 있다. 이 광장의 역사. 읽을 수는 없지만 마지막에 처형 날짜가 나오는 국왕 부부의 이름은 알아보겠다. 

바스티유 습격일을 따라 만들어진 혁명 기념일(7.14)에 파리 시민들은 하루 종일 거리에서 집회와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이날 프랑스 대통령의 지정석은 바로 이 표지판. 지배자가 국민의 뜻을 외면했다가 사형당한 바로 그 곳. 국민이 부여한 권력에 겸허해야 한다는, 폭정과 실정에는 언제든 국민이 냉정하게 불러낼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바로 그 자리에서 기념 행사를 가진다고 한다. 




이런 파리의 역사와 문화에 어떻게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박 겉핥기라도, 이렇게 엿본 그들의 히스토리는 근사하다. 

이번 여행의 출발을 파리로 잡은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건.. 여행 다음 일정이 이어지면서 확실히 알았다. 우리는 파리에서 3일 밤을 보낸 뒤, 차를 빌려 남쪽으로 내려갔다. 베른에서 1박, 인터라켄에서 1박, 그리고 피렌체에서 2박, 로마에서 3박. 가족 첫 유럽여행은 눈 딱 감고 돈 쓴 보람이 넘친다. 

마지막 컷은 루브르 야경. 니케 사진과 베르사이유, 이 사진의 저작권은 옆지기에게 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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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당신이 사는 4m 아래 한성백제

여행 2013.05.18 13:56

옆지기는 아들과 따로 '아빠들과 아들들'끼리 비무장지대 인근에 놀러가기로 결정된 석가탄신일. 딸과 오붓하게 뭘하고 놀까 고민하다, 정말 혹시나 해서 물었습니다. 백제 유적 답사 구경갈래? 아주 가끔 가는 포럼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마련한 걸 떠올렸는데, 까칠한 중학생 딸이 그리 쉽게 답할지 몰랐죠. 뭐, 요즘 역사에 관심이 많아진 걸 아는 엄마의 꼼수였을지도 모르지만.

쉬는 날, 어디 가볼까 하는, 흔한 엄마의 고민에서 출발했지만 이번 한성백제 유적 답사는 기어이 여기에 기록을 남길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5시간 넘게 걸었는데, 딸도 크게 투덜대지 않았으니 재미났던게 분명. 그와 상관 없이 제가 백제에 홀렸습니다. 워낙 무식했던 탓에 새로운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덕분이죠.

일단 한성백제박물관이란게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웅장합디다. 답사를 이끌어주신 분은 한신대의 국사학자 권오영 선생님. 백제 유물 발굴 담당으로 직접 현장을 누비고 다닌 분입니다. 그러니 어찌 재미있지 않았겠습니까. 박물관 들어서자 마자 저 바닥지도를 통해, 백제 유물의 흔적이 어디 어떻게 남아있는지 보여주시는데 내심 놀랐어요. 조선왕조 500년에 서울이 600년 된 도시인양 생각했는데, 2000년 역사라니요.

 

박물관에 들어서면 바로 아래 사진 저 벽이 보입니다. 풍납토성. 흙으로 만든 성입니다. 너비가 43m, 높이가 11m, 둘레가 3.5km에 달한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 있는 고구려 궁내성 보다 큰 규모라고 합니다. 나무 상자에 흙을 꼭꼭 다져넣어 차곡차곡 쌓았는데 연인원 300만이 동원된 규모랍니다. 당시 인구가 6만 정도로 추정되는데 저렇게 노동력을 동원하다니, 상당히 강한 왕국이었다고 할까요. 중요한 건, 백제가 어디서 건국되었나를 놓고 학계 논쟁이 뜨거웠는데, 풍납토성 발견으로 싹 정리됐답니다. 백제는 한성(서울)에서 출발한 한성백제 시기를 거쳐 이후 공주, 부여로 간 거죠. 아래 저 벽은..실제 복원된 일부를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아래 사진 왼쪽 키 큰 남자는 영국에서 온 훈남 Harry. 백제 역사와 건축을 공부한다네요. 저 분 보다 제가 아는게 적어요. 부끄ㅋㅋ)

 

 

박물관엔 어느 박물관에서 보이는 토기, 장신구 등등 빤한(?) 혹은 지루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를 알아보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듯. 하지만 이날 저희에겐 선생님이 계셨잖아요. 최고의 선생님.

저 흔한 유리구술에 숨겨진 비밀이랄까? 예컨대 작은 상자안에 들어있는 작은 구슬은 유리 위에 금박을 입힌 아이들입니다. 또 목걸이 중간에 쓰인 무광택 붉은 아이들이 좀 있는데..'메이드 인 백제'가 아니란 겁니다. 고고학자들은 저 구슬이 인도에서 베트남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넘어가는 흔적을 탐구합니다. 저 구슬이 아제르바이잔 같은데서 발겨되면 또 쾌재를 부르는 거죠. 3~4세기 백제가 상당히 개방된, 타국과 교류가 활발한 나라였다는 증거도 됩니다. 실제 백제는 진정한 다문화 국가의 효시. 주변 민족과 문화를 대범하게 품어낸 사회였다네요.

아래 오른쪽 사진은 백제의 문화 수준을 상징합니다. 돌절구, 저 아이가 어디에 쓰인 물건일까.. 학자들은 차를 찧는 도구로 본답니다. 신라는 9세기 무렵에나 차 문화에 빠지는데 백제는 3세기에 이미 차를 음미했다는 거죠. 뒷편 커다란 항아리는 '메이드 인 차이나' 랍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복어뼈 흔적이 발견됐답니다. 과연 뭘까요? 뭘 저장해놓았을까요. 일행 중 여성 한 분이 맞췄습니다. '젓갈'. 물론, 이 모든건 고고학자들의 추정치입니다만, 복어젓갈을 먹은게 아닐까? 하는 거죠. 그런데 복어가 어디 간단한 물고기입니까. 독성분 빼고 그걸로 젓갈 먹을 수 있는건..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이게 발굴된 풍납토성이 만만한 인물들이 사는 곳이 아니었구나, 하는 거구요. 추론과 상상이 이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난지 역사학으로 인생이모작 전공을 바꾸고 싶을 지경.

 

무덤에서 토기가 별로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문화 수준이란 해석도 있네요. 신라는 고분 마다 엄청 나왔답니다. 그런데 장례 때 무덤에 쓰지도 않은 새 그릇들을 왕창 넣어주는 것과, 쓰던 물건 약간 넣어주는 것과 어느 사회의 수준이 높은거냐.. 란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박물관에 전시된 일부는 '모조품'입니다. 주로 일본에 '원본' 있는데, 백제에서 건너간 걸로 추정되는 것들이죠. 아래 바둑판이 대표적인데요.. 저걸 원본 그대로 복원하는데....1억5000만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백제 스타일' 대단하지 않나요?  바둑돌집은 정교한 거북이. 그런데 또 옆에 문양 보면 낙타도 나옵니다. 옆의 바둑판 함은 육각형 문양인데, 이건 이슬람 특징이라네요. 그래서 또다시 백제가 글로벌한 문화를 품는 사회였구나 하는 거죠.

모조품들 사연도 하나하나 잼나요.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원본은 일본 국보 1호 목조 반가사유상이라네요. 우연히 부러진 목상의 손가락 하나로 그 나무가 무엇인지 조사하자, 그게 한국산으로 나왔는데, 산지는 경상도, 그러나 기술은 백제인거 같다는 사학자들의 추론, 재미있지 않나요? (관련 글 찾았어요) 모조품 칠지도도 있는데, 이건 찾아보니 아예 책으로 나올 만큼 사연 많은 거로군요. (왜 백제의 칠지도가 일본에 있을까)

 

박물관 구경하실 때, 옥상 놓치시면 안됩니다. 정말 뷰가 끝내주더군요. 조망을 했다면, 이번엔 걸어야죠. 박물관이 올림픽공원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하철 역 이름 정도로 알던 '몽촌토성'이 2000년 된 백제의 성이였고, 그게 사실 올림픽공원 산책로 수준으로 바뀐건 몰랐습니다. 그나마 공원이 되어 의미는 이상하지만, 훼손이 덜 된걸 고맙다고 하시는데 말이죠. 정말 끝내주게 멋있습니다. 성벽의 선들도요. 서울에 이런데가 있었다니. 저기 가는 도중, 진짜 황당했던건 말이죠.. 청동 조각상이 있더라구요. 위인 같길래... 흠, 몽촌토성 발굴에 애써준 누군가인가? 라고 보는데.. 박세직 동상. 축시 이어령.. 이더군요. 딸이 누구냐고 묻길래..어어, 올림픽조직위원장..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어요. 훌륭한 분인지 여부를 떠나, 이 엄청난 공간의 주인 마냥 유일한 청동 조각상으로 기념하는건 촌스럽지 않나요.

 

 

공원 내 몽촌토성을 걷더니, 다음 코스는 풍납토성이랍니다. 박물관 1층에서 목격했던 바로 그 벽의 실물. 차를 타고 이동했어요. 1km 좀 안되는 거리라 일행 일부는 걸어서 갔어요. 영파여고 후문에서 동네 안쪽으로 들어갔죠.. 그리고 풍납토성 유적지의 맨 얼굴을 보았습니다. 저기 아파트 아래 둔덕이 풍납토성 입니다. 실제 아파트 건축 과정에서 유적이 발견됐고, 아파트 건축에 나선 이들과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적지가 나오면, 그거 발굴 비용 등이 고스란히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저기 아파트 짓는 분들에게 돌아간다네요. 날벼락이죠. 더구나 유적 발굴하느라 건축 시간 늦어지죠.. 아주 험한 꼴 많았답니다. 불도저로 밀고 들어간 주민 한 분은 처벌받았고, 무튼 결론은 아파트는 일단 짓고, 나머지는 나중에 발굴하기로. 짓는 과정에서 나온 일부만 박물관에 옮겨놓거나 복원한겁니다. 이 일대 백제 유적지는 대개 4m 정도 아래 있답니다. 저 동네 어딜 파도 4m 이상 파면 유적 나올 가능성이 높은 거죠. 학자들은 영파여고 이사가기만 바란다네요. 거주지야, 보상 문제가 넘 복잡하니까, 학교 이전시 학교 운동장 파겠다는 거죠..  저기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동네 놀이터 마냥 소박한 곳이 유적지 입니다. 파내지 못한채, 일부만 갖고..더 파면 뭐가 나올거라 하는 거. 그나마 개발에 덜 밀린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유적 발굴에 힘을 실어준 덕분이라나. 개발에 힘을 실어주는 정부에선 전국 방방곡곡 유물 발굴해봐야, 몇 점 남기고 다 쓸어버린다네요. 다만, 한쪽만 볼 건 아닌지라.. 저 동네 주민들은 재개발 희망(?)도 별로 없이 유적지 주변이란 이유로 재산 가치가 줄어드는 상황. 무슨 죄인가요.


석촌동 적석총은 이날 마지막 코스. 풍납토성에서 차를 타고 평범한 서울의 길을 따라 가다 어느 틈에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들어서면, 바로 무덤입니다. 돌로 된 3층 제단 같아요. 규모가 그런데 꽤 큽니다.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대단한 무덤이었겠다 싶은 겁니다. 공원 자체가 묘한 분위기가 도는게, 참 좋더라구요. (사진을 워낙 못 찍었어요. 큰 무덤 사진은 모퉁이에서 찍으라는 조언을 늦게 들었고, 역광에다..엉엉) 
저런 무덤이 1920년대 기록에 따르면 방이동 석촌동 가락동 일대에 290 여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전 처음 봅니다. 대단한 유적인데 왜 그럴까요. 지금 몇 개가 남아 있냐고요? 5개 남았답니다. 290여 개중 고작 5개요. 일단 한국전쟁 때 훼손되기도 했지만 1960년대 항공사진에도 꽤 남아있던 저 분묘들은 이후 개발에 싹 쓸려 나갔답니다. 아래 사진이 남아 있는 것 중 큰 건데, 더 큰 것도 사진 상에는 있었다네요. 그리고 현재 저 분묘는 3층이지만, 원래는 7층 돌 무덤. 사람들이 돌을 가져다 집 짓는데도 쓰고, 뭐 그냥 그렇게 훼손되어 갔답니다. 그게 세월이지요.

 

 

어느 무덤은 저리 돌 무더기만 남고, 더 작은 것도 있고. 그런데 290여개가 있었다는 건, 대충 세 배에서 네 배, 즉 1000여개가 넘는 분묘가 이 지역에 있다는 의미랍니다. 앞서 설명 들었듯, 유적은 최소 4m 아래 있다잖아요. 저 동네 분들은 백제 유적 위에서 세월을 쌓는 거죠.

듣다보니, 박정희 시대에는 신라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일이 많았답니다. 경주를 최고의 옛 도시로 만들어준 거죠. 상대적으로 백제는 조금 덜 발굴, 발견됐구요. 전두환 시대에는 가야 문명에 힘을 실어줬다네요. 이건 꼭 유적 발굴과 연구에 예산을 실어줬느냐의 문제만은 아닌게, 아무래도 아파트 짓고 공장 짓다 보면..개발하다보면 유적이 나오게 마련인데, 백제 쪽은 아예 그게 덜됐던 거죠. 서해안 시대 외치면서부터 백제 유적이 심심찮게 나오긴 한답니다. 물론 아까 들었듯, 대개 불도저로 밀고 조금만 건진다지만. 백제 연구하는 권오영 선생님은 '한성백제'의 역사에 애정이 많으시더군요. 하기야, 옆 나라 신라보다 세련되고 타 민족에게 너그럽고, 문화란 걸 존중하던.. 아주 오래된 우리 조상들. 매력적이잖아요.

이런 서울에서 우리가 사는 겁니다. 서울 여행, 올림픽 공원의 박물관과 몽촌토성, 풍납토성, 적석총으로 이어지는 이 반나절의 여행, 인연이 닿는 분들은 놓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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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오사카,교토]먹다 죽는다는게..

여행 2011.08.04 00:49
여행책에서 말하기를..우리나라에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구이다오레", 먹다가 망한다는 오사카인들의 식탐을 뜻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신기하거나 조금 색다른 음식에 환장하는 식탐의 소유자로서, 이번 여행의 컨셉은 사실 죽기 직전까지 맛을 즐기자 했다. 근사하지 않은가. 

첫 끼니는 K신문 특파원인 S선배의 안내로 찾은 도쿄 어느 쇼핑몰 식당가의 점심. 우동집 같은데, 줄 꽤 길었다. 하기야 S선배네가 검증했다고 데려간 곳이니ㅎ 여튼 그림만 보고 고른 냉우동(사진 위)은 도쿄의 첫 식도락을 상콤하게 시작하게 해줬다. 일본 음식에서 두고두고 감탄한 저 계란 하나의 신비. 맛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탱글탱글 탄탄한 면빨은 설명할 필요 없을 듯 하다. 우동은 저 한끼로 끝.

오사카의 숙소는 난바역 부근으로 우리나라 명동 같은 도톰보리와 붙어있다. 이곳에 오사카 지역 방송국 선정 라멘 랭킹에서 3년 연속 했다는 '가무쿠라 라멘'이 바로 왼쪽 아래 사진의 주인공이다. 진한 국물에 배추가 가득한데 담백하고 깔끔. 평소 느끼한 맛을 나름 거부하는 옆지기 왈 "라멘 한 그릇으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걸까?"ㅋㅋ 너무 라멘이 마음에 들어 마지막날 아침에도 가무쿠라 라면 근처에서 맛집TV 방영된걸 벽에서 들고 잇는 집에 들어갔다. 콜라겐 덩어리라는 걸 시켰더니 아래 사진 오른쪽의 고기 둥둥 라멘이 나왔는데 나름 굿!! 옆지기는 짬뽕을 시켰다. 아래 사진 가운데 녀석이다.  다들 좀 짜다는 점은 인정하는데, 하여간 라멘이 이렇게 다 다를 수 있다는데 즐겁지 않을수가.

 

 



도쿄의 첫날 저녁은 마츠리 구경하다가, 근처 재미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대충 때웠다. 햄버그 스테이크가 주력인거 같은데 탄탄멘도 있다니 별걸 다. 여튼 기력이 없어 사진도 못찍고..둘째날 점심은 신주쿠에서 헤매다가 회전스시집에서 간단히 몇점 맛만 봤다. 조금 먹었다고 강조해야 하는게, 돌아다니다 2~3시쯤 결국 신주쿠 야끼도리 골목에서 야끼도리와 맥주로 점심 2차를 했기 때문. 걍 아무데나 들어간 스시는 가격대비 만족도는 끝내줬는데, 사실 퀄리티로야 요즘 국내에서 잘나간다는 집에 못 미쳤고..야끼도리도 국내 잘하는 집보다 특별히 나은건 모르겠더라.  

이날 저녁은 신주쿠 또 어딘가의 조금 고급 술집에서 도쿄 특파원인 옆지기 친구와 한잔. 하이보루(high ball?)이라고, 탄산수에 위스키 살짝 탄 녀석이 매우 맘에 들었다. 홀짝홀짝 하기에 딱 좋은. 안주는 참으로 일본스러운게, 김치 한 접시, 잘게 자른 토마토 1개, 짠지 몇가지 등이 모두 버젓이 돈받는 메뉴. 이 저녁은 괜히 체면을 차린건지, 하여간에 사진이 남은게 없다..

  



 

오사카에 도착한 첫 점심은 가마쿠라 라멘이었다면, 저녁은 또..끝내줬다. (-,.-) 일단 매년 7월25일에 열린다는 오사카 마츠리를 구경갔더니, 온갖 길거리 음식이 총출동. 각종 꼬치구이는 기본. 고베산이라고 원산지 밝힌 와규로 만든 꼬치도 끝내줬다. 생선 구워 파는건 신기해서 찰칵. 야끼소바 오코노미야끼류는 엄청 많은데 배부를까봐 못 먹었고, 타코야끼 정도만 간단 시식. 하여간 눈과 입이 호사로다..




 

저 매력적인 길거리 음식을 아껴서 조금씩만 먹은 것은, 공식 만찬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오사카에서 공부하는 옆지기 후배가 안내한 곳은 남바 오리엔탈 호텔 2층에 있던 '토리히메'라는 닭고기(토리) 전문점. 닭으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메뉴에 도전했다. 얇은 채로 튀겨낸 감자를 얹은 샐러드(오른쪽 위)의 고소한 맛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고, 마치 생선회인양 등장한 저 닭 사시미(오른쪽 아래)는 '토리 사사미'라고 부르던데 비릿한 냄새 하나 없이 깔끔하고 살캉쫄깃 했다. 발상과 도전이 기특하다고 할까? 이런 녀석을 또 미소소스에 무침(왼쪽 위)으로도 내고, 쌀 같은걸 튀김옷으로 활용한 녀석까지 하여간...또 호사;;;;



 

교토의 점심은 금각사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다가, 우연히 발견한 수제 메밀집에서 해결했다. 가장 유명한 메뉴를 알려달라니까, 훈제 생선 한마리가 통째로 얹어져서 나오는 걸 추천했다(왼쪽 아래). 비린걸 즐기지 않는 옆지기는 고개를 내저었지만, 나는 짭쪼름한 맛에 신이 났고...저 메밀은 진정 투박하고 뚝뚝 끊어지고 거친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옆지기는 무난한 메밀세트(위)를 주문했는데, 소바도 좋았지만 함께 나온 돼지고기 덮밥이 괜찮았다.


 


교토에서 종일 쏘다니다가 교토역 부근 지하상가 경양식집에 잠시 쉬러 들어가서 만난건, 오무라이스(왼쪽위)와 비프 카레(오른쪽 위). 걍 아무 집이나 들어갔는데,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걸까? 계란이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저 오무라이스도 좋았지만 비프 카레도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는 살짝 간식삼아 먹는 이른 저녁이라고 남길 예정이었는데, 도저히..

오사카는 경양식을 먹어야 한다고 추천해준 H쌤의 조언에 따라 경양식을 더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솔직히 짧은 여행기간의 끼니 수가 부족했다. 간신히 마지막날 점심은 난바 역 부근 지유센이라는 카레집에서 명물카레(오른쪽 아래)란 걸 시도했다. 이게 무려 1910년에 개업한 이 가게의 대표 메뉴. 여행서에 따르면 양파 쇠고기를 넣은 닭뼈 수프에 토마토 퓌레와 카레 가루를 넣어 비빈뒤 날달걀로 한번 더 비벼야 한다. 아쉽게도, 이 명물카레는 여행서 설명에서 받은 감동만 못했다. 그냥 옆지기가 주문한 비프카레(아래 왼쪽)이 더 독특한 맛이더라.  



 

하여간 오사카에 왔는데, 이곳이 원조라는 오꼬노미야끼도 도저히 빼놓을 수가 없어서, 교토에서 종일 헤매고 오무라이스를 간식삼아 이른 저녁으로 먹은 날 저녁 9시쯤 또 여행서에서 추천한 집을 찾았다. 도톰보리의 아지노야란 집인데, 일본인들 틈에 껴서 줄을 섰다. 다행히 20분 정도 기다려 자리가 났다. 마치 한국 맛집처럼 사인한 종이가 벽을 메우고 있는 집. 테이블마다 철판이 포스를 자랑하고, 엄청난 양배추와 기타 등등을 갖고 와서 척 부어놓는다. 옆지기는 아사히 생맥주, 나는 하이보루 한잔에 저 녀석을 해치우는데,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끝. 한국에서 먹었던 오꼬노미야끼는 전부 가짜인거 같다는게 소감이다. 더 무슨 말을 하겠나.


 

도톰보리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상점과 음식점들의 거리. 가마쿠라 라멘 집 부근인 그 중심에는 온갖 유명 맛집의 초대형 간판이 관광객의 눈길을 붙든다. 엄청난 게 장식을 자랑하는 집은 사실 게 코스가 거의 1인당 10만원이라..포기. 그러나 엄청나게 큰 간판 구경만으로 즐거운 상상이 가능한 동네다.


떠나는 날 아침에 라멘 한그릇 먹어보겠다고 8시반쯤 호텔을 나섰다가 만난 풍경. 평일 아침 오사카 시민들을 저렇게 줄세운 곳은 빠찡고다. 라멘 먹고 왔더니 줄은 줄어든 대신, 거리 모퉁이마다 빠찡고 가게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다소 당혹스럽고, 난감한 풍경. 해석을 아끼는 편이 낫겠다.



하여간에 저렇게 먹고 어떻게 됐냐고? 옆지기는 오히려 1kg가 줄었다고 한다. 정말 많이 걸어다닌 덕분일까. 나는 무서워서 저울에 올라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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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교토]그들의 문명과 역사

여행 2011.08.03 01:23
사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교토였다. 일본 전통 문화를 한번 보고 싶다는 로망은 오래됐다. 다만 이런 종류의 여행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하기는 힘들다는걸 아니까..그냥 로망일 뿐이었는데, 이번에 아이들이 여름캠프 간 사이에 부부만 여행 갈 기회가 생겼다. 컨셉은 애들과 함께 가기 힘든, 너무 좋아서 애들 없이 가면 아까울 것 같은 곳 빼고...고르다 보니 교토.

오사카에서 하루 보내고, 교토 하루로 일정을 잡았다. 총 4박5일인데 도쿄 이틀에 참 알뜰한 일정이다. 일본의 경주라는 교토를 보면, 일본의 부여라는 나라는 안 봐도 된다길래..걍ㅎ

오사카성,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사카에서는 딱 오사카성만 찾아갔다.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성이다. 16세기 건축물인데 솔직히 근사하지 않은가? 구조의 탄탄함, 세부 장식의 화려함과 정교함에 내심 감탄했고, 성을 둘러싼 해자와 운하까지 보면 좀 압도당한다.
내부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온갖 스토리가 흐른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천하를 통일하고 외국 정벌까지 나섰던 영웅. 약간 코믹할 지경의 미담을 장황하게 정리한걸 보면, '위인'은 어디나 똑같구나 싶을뿐.


 














 

   

신오사카역에서 30분 남짓 쾌속열차를 타면 교토다. 주로 2층 오래된 가옥들이 종종 보인다.
다소 낡은 도시. 전통을 보존하는 대가로 개발되지 않고 남은 차분한 도시. 관광도시로서의 활력은 교토역까지다.
교토 내에서는 버스로 이동했는데 한번 탈때마다 220엔이다. 우리돈 3000원 꼴이니..반드시 간사히 쓰루 패스라는...종일 교통 티켓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료안지(龍安寺)
교토의 첫 인상은 이 차분하고 조용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사찰에서 받았다.
잘 꾸며진 연못에 살짝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가면, 돌의 정원이 등장한다.
안마당의 작은 하얀돌 가운데 섬처럼 검은 돌이 놓여있다.

경건...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체 금각사, 킨카쿠지에 대한 문단이 수정 중에 날아가다니..어찌된건지. 하여간에, 가장 유명한 문화재인 금각사는 오히려 별 감흥이 없었다. 금칠한 전각이라니. 10년에 한번씩 금칠을 새로 해준다나 어쩐다나. 하여간에 돈칠한 작품 보는거랑 비슷한 기분도 들고...너무나도 완벽하게 꾸며진 연못과 정원이 그래서 덜 예쁘고..아..삐딱해진다. 


 


이어..헤이안 신궁. 역시 도쿄 메이지 신궁과 마찬가지로 천황을 모시는 신사. 곳곳에 절과 신사가 많은데...규모가 다르다. 피라미드나 신궁이나...하여간에 제왕적 지위는 건축물의 규모에서 결정되려나. 
메이지 신궁의 목조 도리이와 달리 헤이안 신궁은 붉은 빛이 가득하다. 화려하다. 두번째 전각 사진은, 그러니까...부속건물 일부다. 실제 규모는 훨씬 더 크다. 
 

 

 


헤이안 신궁에서
나와 찾아간 곳은
기온. 인사동 같은 곳인데,
게이샤들의 거리였나 보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상점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그리고 기요미즈데라(

淸水寺)..20년전 교토에 왔던 옆지기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았다는데, 내게도 그럴듯.

8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1633년 재건된 절이란다. 산 중턱에 지어져서 절에서 바라보는 산의 풍경도, 옆에서 절을 바라보는 풍경도 모두 절경이다. 인공미의 절정을 뽐내는 여러 곳을 둘러 본 이후라 그런지 이곳은 훨씬 더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다. 내부에 모셔진 천수관음상과 다른 불상들의 매력도 멋지고...입구의 전각도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맵시있다. 이 전각은 주로 야경이나 벚꽃 배경의 사진으로 많이 알려진듯 하다.

일본 문화와 역사의 저력을 확인한다는 것은 이웃이자 동아시아 동반자로서 일본을 좀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어릴적 쪽바리로 비하했던 적은 없는지 돌아본다. 대륙의 문명을 한반도를 거쳐 전달받아 간신히 발전해온 야만의 땅, 오랑캐의 나라라고 보는 것은 오만한 왜곡이다. 그들의 저력은 훨씬 더 깊고 단단한 뿌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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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겉핥기 여행도 느낄건 느낀다

여행 2011.08.03 00:18


도쿄는 예전에 모터쇼 출장만 두번 갔던 도시. 당연히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이틀을 보냈으니, 또 당연하게도 겉핥기 식 감상이다.


기이하게 신성한 메이지 신궁

압도적 숲이다. 도리이(鳥居)라는 저 일본 특유의 신령스러운 문을 거쳐 한참을 걸었다. 거대한 길. 일본을 근대 자본주의로 이끈 메이지 유신의 주인공일 메이지 천황, 혹은 메이지 일왕이라 부르는 그분을 모신 사당이다. 조선을 비롯해 세계 침략을 주도했던 지도자. 그를 모시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어렴풋 보이는 곳이다. 


이 기이한 공간, 속세와 떨어진 완벽한 자연에 거대한 목조 도리이와 사당으로 구성된 메이지 신궁의 본모습은 사실 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내려보면서 더 확실하게 다가왔다. 초현대 고층 빌딩 너머, 회색 도시의 한 가운데 거대한 녹색 섬이다. 도시가 자라고 발전하는 가운데 시간이 멈춘 듯 하다. 그 시대의 영광, 담대한 정복의 꿈을 보존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보면 과장일까.



이 전경을 허락한 전망대는 도쿄타워가 아니라, 도쿄도청이다. 무료로 개방된 꼭대기 전망대. 
사실 여행 이튿날 일정은 원래 가마쿠라라는 곳이었는데, 하루이틀 뻐근하던 허리가 여행 첫날 일정에 맛이 가는 바람에 포기. 대신 살살 무리하지 않으려고 고른 곳이 전망이나 보자는 거였는데, 기대 이상 도쿄를 제대로 만나는 느낌이었다. 
 


일본 사람들

첫날 메이지 신궁에 이어 찾은 곳은 하라주쿠. 우리로 치면 홍대 부근? 저 옛스런 역사도 인상적이지만, 도쿄의 남녀를 보는 재미가 왠만한 관광지보다 더 재미있었다. 도무지 정상적으로 차분한 차림의 이들을 만나기 힘든 거리. 록 페스티발에서 금방 나올듯한 머리 모양부터 대체 왜 저렇게 입고 다닐까 싶은 의상들. 과감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강렬한 자기 주장. 뭔가 드러내야 할 것 같은 강박이라도 있는지..그런데 그 나름의 모습이 예뻤다. 요즘 애들 왜 이래, 라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본능 탓일까. 그들의 패션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라도 읽어낼 태세로 들여다봐서인지.

그리고,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많았다. 이날 하라주쿠도, 다음날 신주쿠도...도심에서 여행자가 다리를 쉴 찻집, 카페엔 도무지 자리가 안났다. 스타벅스엔 줄의 끝이 안 보였다. 쇼핑몰과 몰 사이의 통로복도에 주저앉아 담소하는 젊은이들의 행렬에 당황했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 아무리 그런 곳만 골라 다녔다고 하지만, 저리 많이 나올 수가 있을까. 집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건 아닐까. 세대당 주거면적이 우리보다 훨씬 작은 일본의 집안에서 온 가족이 버틴다는건 좀 힘든걸까. 여행자는 짐작만 이리저리 해보지만.


운이 좋았던 건, 여행 첫날 저녁에 동네 마츠리(축제)를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K신문 특파원인 S선배네 가족 휴가에 살짝 빌붙기를 잘했지. 우리는 옹기종기 길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고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차례로 행렬을 이어가더니, 어른들 팀까지 등장했다. 동네 마츠리라 생각했는데, 동원(?)된 인력 규모는 엄청났다. 아마 도쿄 전 지역 대표선수들이 나온 분위기? 북과 피리(?)를 이용한 어른들의 공연(?)은 오래 준비하고 공들인 티가 드러났다. 사실 조금 틀리고 못해도 상관없다는 듯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기는 했다. 얼마전 우리 동네 무슨 축제랍시고 학교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아이들 공연은 뒷전이고 지자체장, 의원님들이 상석을 지키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무엇보다 남녀노소 세대를 아우르는데다 서로 장기자랑 하듯 열을 내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왠지 부러운 생각에 우리는 관광객들 즐겁게 해줄 축제 뭐 없나,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촛불축제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신나는 관광상품으로 키워야 할텐데.


도쿄 시민들이 한결같이 "힘내라~"는 메시지를 담아 마츠리를 즐기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끔찍한 재앙 옆에서 다독이고 추스리는 이면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까지도 후쿠시마현 농산물을 사주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그 먹거리를 사주고 집에 와서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는 일본인들. 이웃나라 여행자도 그저 잘 버티고, 잘 이겨내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보탰다. (독도 난리친 분들은 일본 내에서도 존재감 없는 분들이라는데...그런데 너무 흥분말자. 일본의 미래는 더불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 후유증이 25년인가 후에 나타난다고..노인들은 별 신경 안 쓴다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혹은 언젠가 자라서 아이를 낳을 세대도 미지의 불안감을 그저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남의 일이라 말자..)

여튼, 이 마츠리 와중에 셀카질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찰칵....한건지, 언니들이 예뻐서 옆지기가 찍은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ㅋ



마츠리 행렬이 지나가는 길 양쪽으로 옹기종기 모여든 시민들. 그 와중에 단연 내 눈길을 사로잡은 남녀다. 나이든 이 특유의 여유로움과 우아함, 깔끔함. 길거리에서 파는 먹거리를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두런두런 얘기 나누고 박수치고 웃는 모습에, 질투와 부러움 같은 묘한 감정이 들더라. 더불어 나이드는 파트너란 아름답지 아니한가. 야박하게 이웃나라 블로그 까지 오셔서 초상권 따질 분들은 아닐거 같고.


이분들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은 사실 일요일 낮 신주쿠 야끼도리 골목의 한 술집에서 만난 남자들 덕분이다. 점심에 가볍게(?) 회전스시 몇점 먹고 다니던 우리는 거의 관광명소가 됐다는 야끼도리 골목에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러 들어갔는데, 아니 왠 남자들이 그리 많은지. 더구나 혼자 늦은 점심에 한잔 반주를 곁들이는 중년남들이 이곳저곳 눈에 띄었다. 이날 저녁 도쿄에 특파원으로 체류중인 옆지기 친구에게 들어보니, 일본 50대 남자 7~8명중 1명이 결혼을 평생 못해본 싱글남이란다. 더 늘고 있다는데....이건 경제력 탓이 크다고 한다. 결혼생활을 유지할만큼의 능력이 안되면 결혼을 못하거나 안하는 상황. 먹고 사는 생존일뿐,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어쩌면 많이 배우고 많이 버는 이들의 특권이 되지 않을까, 이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지 않을까, 일본이 조금 앞서 겪고 있는게 아닐까...결혼하고 같이 늙어가는 것조차 좀 사는 사람들만 누리게 된다면...

하여간에...이 여행,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은 도쿄에 이어 오사카로 넘어간 첫날이 마침 오사카에서 일년에 한번 있다는 대형 마츠리 날. 역시 오사카에 체류중인 옆지기 후배 Y님 도움으로 행렬에 낄 수 있었다. 얼마나 사람이 많았는지, 이 사진으로 다 담았나 모르겠다. 더불어 먹다 죽는다는..맛고장 오사카에서 온갖 길거리 먹거리도 다 만났으니, 근사하지 않은가.


오사카 마츠리는 하나비, 불꽃축제라고 했는데, 실제 불꽃놀이는 제대로 못봤다. 이게 일본의 3대 마츠리인 오사카 텐진마츠리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제대로 사진 올려주신 분이 있더라. 우리는 엄청난 인파 속에 강에 띄워진 배, 거리를 누빈 가마는 구경했어도 정작 불꽃은 제대로 안 보이는 자리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니 불꽃도 안보이는 자리에 뭔 사람이 그리 많은건지.

일단 여기까지 짧은 일본 여행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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