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3> 마음을 달래는 여행. 소쇄원 명옥헌 낙안읍성 그리고 5.18묘지

여행 2014.07.23 07:20

어쩌다보니, 한 계절이 지나 여행기를 차곡차곡 정리.

<남도여행-1>남도로 가는 길, 마이산 탑사의 고요한 염원
<남도여행-2>저마다 다른 부처의 마음 아래 내소사 운주사 송광사 선암사


이번 여행기는 이번 3편으로 마무리. 뒤늦게 기록하려니 힘들긴 한데, 사진을 고르는 작업 자체가 마음을 달래준다. 기억들을 차곡차곡 다시 살려본다.

 

 <일정>

5월2일(금) 서울 출발. 가는 길에 청양 출렁다리, 진천 마이산 탑사를 들렸다가 부안 도착.

5월3일(토) 채석강을 그야말로 휘리릭 본 뒤, 곰소 염전 거쳐 내소사로 출발. 정읍서 점심 회동. 담양으로 이동해 메타세콰이어 사람이 너무 많은데 질려 소쇄원명옥헌!

5월4일(일) 아침 서둘러 메타세콰이어 재도전. 죽녹원 감상. 화순 운주사고인돌 공원, 광주로 넘어와 망월동 국립5.18 민주묘지 참배.

5월5일(월) 순천 송광사선암사. 그리고 낙안읍성!
5월6일(화) 순천만 공원을 잠시 둘러본 뒤, 귀경.


담양 소쇄원. 조광조를 스승으로 모신 양산보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에 연루되어 피바람이 불자 17살에 고향으로 돌아가 소쇄원에 은둔하였다고 구본준님 설명. 세상에 나가 큰 뜻을 펼치는 대신 정자를 마련하고 정원을 돌보면서 지인들과 학문을 나누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다니. 옛 선비들에게 주군을 모신다는 건 목숨 건 정쟁에 뛰어드는 건가. 그저 배우고 익혀 백성을 두루 살피고자 하는 뜻도 언제나 그렇게 좌절됐을까. 

대나무 길 지나 들어서면 이건 또 별세상이다. 정돈된 느낌이라기 보다, 그저 자연 속에 녹아드는 정자와 작은 건물들. 소박한 담장과 몸을 낮춰 들어가야 하는 작은 문. 소쇄원 방문의 가장 큰 소득은 '감상법'을 배운 점. 구본준님이 그랬다. 이런 정자와 집을 보면, 그 안에 앉아서 그 주인의 시선에서 체험하라고. 그 집을 밖에서, 주위에서 둘러볼게 아니라 그 안에서 느껴보라 했다. 그래서 앉아서 쉬었다. 사람이 너무 많은게 흠이었으나, 그냥 쉬엄쉬엄 앉아서 느리게 둘러보니 좋았다. 남편이 아들과 나를 찍어준 컷은 건졌으나, 아들에게 누나와 한 컷 찍어달라 했더니 엄마 발은 자르고 촛점도 중심도 안 맞게 찍었다. 옆에 누워 있는 아이는 본준님 아들래미. 다들 나태한 모드로 즐겼다.

 

이어 좁은 골목길 지나 찾아간 담양 명옥헌 원림. 소쇄원에 비해 훨씬 작은 정원과 아주 작은 정자가 전부인데, 사실 소쇄원보다 더 좋았다. 아마도 사람이 없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우리 일행 외에 두어 분 들렸다 곧 가셨다. 한동안 이 좋은 전경을 독차지 하고, 여유작작 시간을 흘려보냈다. 연못도 정자도 뒷뜰도 다 좋았지만, 실제 정자 안에 자리 잡고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옛 어른의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 있더라. 5월의 날씨는 딱 좋았고, 바람과 숲 내음,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맛에 선비들은 은둔생활을 즐겼을랑가. 이꼴 저꼴 보지 않고 조금 멀리서 조용히 부유하는 삶.

 

 

이번 여행의 귀한 단체 사진. 프라이버시고 뭐고, 평화롭고 따뜻했던 공감의 시간을 잡아두는 사진. 기록하려는데 빼놓을 수가 없다. 어른 여섯, 중딩 넷. 좋은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비슷한 느낌을 나누며 따로 또 같이 느슨하게 즐긴 시간들.

 

 

크고 작은 대나무 빽빽한 담양 죽녹원에서는 더 좋은 사진들이 있어야 마땅한데 의외로 남은게 없다. 한바퀴 돌고나오는데 실패하고 중간에 딴 길로 새는 바람에 한참 더 걸을만큼 규모 있는 숲. 이제 막 쑥쑥 솟는 작은 죽순부터 그야말로 대나무 왕국. 사진이 별로 없는 건 의외로 사람 없는 풍경을 찍기 힘든 탓이 아니었나 싶다. 많이 찾는 괜찮은 관광지 일수록 멋이 떨어지다니. 메타세콰이어도 문 열자마자 들어갔으나, 사람들의 완소 관광지란.. 하기야 근사한 곳들을 독점하여 보고 싶은 것은 도둑놈 심뽀. 사진 찍겠다고 사람 없기를 바라는 것도 웃기다. 나무향 맡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는 자체가 고맙지. 혼자 저만치 앞서가곤 하는 아들과 달리 살갑게 엄마 옆을 지켜준 딸과 이런저런 담소. 아, 물론 남편과 데이트 모드도 좋았다고 기록해둔다.ㅎㅎ

 

기대치 않았던 소득은 화순 고인돌 공원. 동선을 짜다보니 들어간 곳과 다름 없는데 아이들은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신났다. 입구에서 간단히 유적 설명관 휙 둘러본 뒤 차를 타고 다시 들어가면 중간중간 거대한 바위가 등장한다. 어느게 고인돌인지 헷갈릴 정도. 그런데 돌만 보면 아들과 친구 딸 Y는 암벽등반가 정신이 발동하는 모양. 일단 오르고 봤다. 이 돌 저 돌 폴짝폴짝 잘도 돌아다니더라. 나머지 두 아이도 슬금슬금 올랐다. 둔한 어른의 몸으로 올라가면 내려올 길이 다소 많이 난감한데. 민첩하고 도전 정신 넘치는 10대 청소년을 위한 놀이터랄까. 다시 봐도 저 바위에서 어찌 내려왔는지 아찔하다. 아무도 안 다친게 다행인데, 당시 부모들은 잘 논다~ 며 그냥 봤다. 선사시대 무덤인데 좀 불경한 건 아닐까 싶다가도, 살아있는 후손들이 즐겁게 찾아준게 낫지 않나, 별 생각을 다. 나름 지석과 석실이 있는 것이 49기. 상석 등 총 596기가 집단 분포된 공원이란다. 주변 고인돌까지 더하면 1000기 이상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됐단다. 돌을 옮겨 무덤을 만들었다고 보기엔 너무 거대한 바위들. 아마 그 부근을 무덤으로 택한게 아닐지. 갸웃..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 초기에 일본군 침입에 맞서 처음 토성으로 쌓았다가 인조때(1626년) 낙안군수 임경업이 석성으로 만들었다는 조선시대의 지방계획도시. 고창읍성, 해미읍성과 더불어 3대 읍성(邑城)이란다. 산과 산 가운데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마을. 높이 4m의 성벽이 둘레 1.4km로 감싸고 있다. 이 성벽의 폭이 꽤 넓어 한 바퀴 돌아보면 옛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민속촌과 달리 이 곳에는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삶도 보인다. 마당에 내걸은 빨래, 줄지어 늘어선 장독, 복원된 옛 일상. 뒷 마당 한켠에는 쓰레기 더미가 있고 옛집에 장착된 에어컨 실외기가 낯설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앞길 말고 뒷편 난장판에서 꼬마 둘이 놀고 있더라. 부모는 아마 관광객을 맞을테고 지들끼리 씩씩한 아이들. 소원을 비는 소원지를 써두면 정월 대보름 때 소원지 태우는 행사를 한다는데, 4.16 참사 이후라 그런지 노란 소원지가 빼곡하게 넘쳤다. 모이고 모였던 우리들의 마음들...

 

 

 

초가집들과 달리 기와 번듯한 저 건물은 낙안객사. 새로 부임한 수령이 가례를 올리고, 중앙의 관리가 찾을 때 머무는 곳이다.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매월 궁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장소란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 조선왕조의 상징적 건물인 전국 객사들을 신민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로 바꿨다고 한다. 치밀하기도 하지.

왼쪽 아래 사진은 사또가 계신 동헌. 오른쪽 위 사진은 동헌의 부엌이다. 옛 사람 모형을 만들어놓아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데 살짝 유치하면서 또 은근 재미나다. 곡식을 찧고 뭔가를 다듬는 너른 부엌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길가의 장승에는 '국태민안', '樂土民安'이란 말이 인상적이더라. 결국 작은 고을이든 중앙 정부이든 '백성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이것은 파노라마 컷. 산의 곡선과 초가지붕 곡선이 어우러지는데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낙안읍성은 여러모로 강추.

 

 

 

광주 망월동 묘지, 이제는 '국립 5.18 민주묘지'라 부르는 그 곳에 드디어 갔다. 이 부분은 당시 페북에 올렸다가 여행 자체가 죄스러워 비공개로 돌린 글을 옮겨놓는다.

 

중딩 아이들을 데리고 '국립 5.18 민주묘지'를 남도여행 코스에 넣은 것은 꼰대 인증인건가요ㅠㅜ 

사실은 저부터 한번도 못 가본지라.. 욕심냈습니다. 

화순 운주사와 고인돌을 구경하고 광주로 가는 길. 아이들에게 간단한 브리핑이 필요했어요. 광주 민주화 항쟁이란 뭐냐면..... 아.. 

부끄럽지만 검색 신공이 필요했어요. ㅠㅜ 
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근데, 

"사망자가 163명, 행방불명자가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아직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으로 확인됐다"

..는 대목에서 그건 틀렸다고 옆지기가 주장하더군요. 사망자가 천 단위 아녔냐고. 아니 공식 기록은 저런데? 이걸 갖고 또 설왕설래.

우리는 희생된 숫자도 믿을 수 없는 건가요? 예나 지금이나. 

당시 북한 사주를 받은 폭도라 했다가.. DJ 자금 지원 받았다고 했다가.. 고문으로 그런 사실 실토하라 하고. 폭도란 이유로 사형 5명, 무기징역 7명 등 "엄정한 법질서 구현을 위한 처벌"도 진행했으니... 왜곡된 진실 중 어디까지 바로 잡힌걸까요. 

기초적 팩트 조차 갸웃하면서...5.18 기념 전시관의 기록들은 조금 더 세밀하거나 다양했다면, 참신했다면, 다양한 근거와 기록들을 더 잘 구성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갖고 돌아온 참에... 트윗에서 저런 글을 봤어요. 

@rainygirl_: 어느 일베유저가 분탕 목적으로 일워에 글을 남기며, 방충망을 피하기 위해 <광주폭동 일베만세>문구를 <모스 부호>로 썼다고 합니다. .-.. .- . -.- 하면서 ㅋ
http://t.co/hSNZN5YMZI"

폭동, 폭도. 아니 어따대고 ㅠㅜ 
곡학아세. 정말 기막힌데.. 제대로 배워볼 기회도 없이 저리 믿어버리는 이들도 있겠구나, 이 사회의 수준은 역사를 제대로 익히고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일조차 못하는구나.... 한탄 하고 있다니..역시나 꼰대 인증인 거죠? ㅠㅜ 

2년 전 쯤 딸과 둘이 수다 떨다가 광주 민주화 항쟁 얘기가 나온 적 있어요. 시민이 어떻게 폭도로 몰렸고, 군대가 발포했으며, 죽고 다쳤으나, 언론엔 그런 얘기조차 없었고..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더니 

"말도 안돼.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게 말이 되?"

딸은 모든걸 믿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말 안되는 일들. 우린 그런 역사를 겪어온거죠. 아이의 눈에도 씸플한걸 요즘 다시 폭도니 폭동이니 하는 이들이 있다는걸 또 어찌 설명해야 하는지. 

못난 어른보다는 현명한 아이들을 믿어야죠 뭐...ㅡㅡ

 

영정들이 빼곡한 공간에서 마음이 어지럽다. 믿기지 않는 과거와 현재. 죄 없이 쓰러진 당대의 시민들과 오늘 날의 시민들.

추모탑은 어쩐지 너무 거대하다. 덜 위압적이면 좋을텐데.
저 곳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묘를 발견하게 될지 몰랐다. 선생님의 비석 뒷면에는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힌 겨레의 스승 여기에 잠들다' 라고 쓰여 있다. 생각이 갈래갈래 또 산으로 가더라.

 

 

 

여행의 마지막은 순천만 공원. 전날 낙안읍성에서 너무 잘 노는 바람에 S자로 굽이굽이 노을이 퍼져나가는 그 유명한 순천만 일몰 장면을 놓쳤다며 옆지기는 아쉬워했다. 어떻게 모든걸 다 볼 수 있을까. 다른 가족들은 일찌감치 귀경길에 오르고 우리는 아침에 휘리릭 수박 겉핥기로 순천만 공원을 둘러보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오겠지. 여행은 좋은 기억들, 선한 기운들로 마음을 채우는 일. 그리고 또 뭔가 아쉬워 하며 또 오게 싶게 만드는 일이다. 지난 봄 남도여행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우리는 또 이렇게 살아낼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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