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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리뷰/소설들

<리틀 브라더> 우리 시대의 '1984'

<리틀 브라더> 우리 시대의 '1984'


ㄴㄴㄴ 역시 아카이브 차원에서 브런치 글을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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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게 필리버스터 와중에 화제가 됐기 때문이 아니라! 

작년 가을 모녀여행에서 보려고 샀으나, 딸이 잃어버리는 바람에.. 재구입한 거라고 굳이 강조해본다. 생애 첫 호텔 독방을 차지한 딸이 엄마 책을 빌려가놓고, 바로 두고 오신. 나름 눈밝은 독자가 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늦었다. 

하여간에 이 책이 필리버스터에 등장하고, 저자께서 직접 한국 상황에 대해 글을 써주는 상황까지 가다니. 이게 대단한 거란걸 이해하려면, 코리 닥터로우 라는 사람을 봐야 한다. 월간 방문자가 평균 300만 명이라는 블로그'Boing Boing'의 co-editor. NYT 보다 영향력 있을거란 얘기가 빈 말이 아니다. 



내 또래 사람 중에 가장 멋진 것 같다. 표현의 자유, 저작권, 프라이버시, 정보 공개 등의 인터넷 정책 전문가.. 를 나는 그저 지향해왔고, 이 분은 진짜 전문가. 과학 소설도 여럿 냈다. 그리고..글빨, 장난 아니다. 아니 기본적으로 월 300만 명이 찾아가는 블로그를 운영하려면 이게 보통 어마어마한 사람이 아닌게다. 이 책은 6주간 NYT 베스트셀러였고, 전세계 24개국에 번역됐고, 영화 판권 계약됐고.. 어쩌고 저쩌고. 잘난거 맞다. 


책은 마커스라는 17살 소년이 주인공. 학교 전산망이든 어디든 해킹이 특기. 게임 하려고 수업 땡땡이도 마다하지 않는 아이인데, 샌프란시스코에 테러가 발생한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국토안보부라는 국가기관이 마커스를 비롯한 시민들의 기본권 따위 완전 무시하면서 개판이 되는 샌프란시스코.. 에서 마커스가 하는 일을 그린 얘기다. 유쾌하고 쿨한 아이들. 때로 수줍고 찌질해도, 겁내고 피해도, 예쁜 아이들의 이야기..... 라고 하기엔 담은 얘기는 간단치 않다. 핑크핑크한 한국어판 표지와 사뭇 분위기 다른 그림들을 퍼왔는데. 마커스는 단지 테러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황망한 현실에...... (스포지수를 낮춰보고자 이쯤에서 생략) 





수천 명이 희생된 (그리고 알 수 없는 규모로 시민들이 비밀리에 불법 구금된) 테러 이후의 샌프란시스코. 마커스가 자주 가던 터키 커피숍 주인은 직불카드 계산을 거부한다. 슬픈 표정을 고개를 젓던 터키인 주인의 말. 


"보안 때문이야. 정부 말이야. 이제 정부가 전부 감시해. 신문에 나왔어. 2차 애국자법. 어제 국회가 통과시켰어. 이제 카드 사용하면 다 감시할 수 있어. 나는 반대해. 우리 가게는 손님들 감시하는 거 안 도와줄거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커피 사는 거 정부가 아는 거 문제 없어? 카드로 계산하면 정부는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네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있고. 내가 왜 터키 떠났는지 알아? 터키에서는 정부가 항상 사람들 감새해. 그건 나빠. 나는 자유 찾아 20년 전에 미국 왔어. 난 정부가 자유 가져가는 거 도와주고 싶지 않아" 


학교에는 CCTV가 설치된다. 
"카메라는 위험을 막아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설치된 거예요." 
"카메라가 무슨 위험을 막아줘?" 
"당연히 테러지"
"카메라가 어떻게 테러를 막는데? 예를 들어 자살폭탄 테러범이 여기로 들어와서 우리를 날려버린다면.." 


감시는 일상이 된다. 모든 행위가 그렇다. 


지하철은 현금으로 요금을 받지 않고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가면서 RFID 태그가 달린 '비접촉' 카드를 흔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교통카드는 멋지고 편리하지만 사용할 때마다 추적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 지역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신의 차에 패스트랙을 부착했다. 다리를 건널 대 패스트랙으로 이용료를 지불하면 요금소 긴 줄을 피할 수 있었다. 다리 이용료를 현금으로 내면 세 배를 받는다. 당국은 현금이 더 비싸다고 하지 않고, 패스트랙이 더 싸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요금소에서만 패스트랙을 읽는게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안보부가 시내 곳곳에 패스트랙 판독기를 설치했다. 


테러범을 잡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촘촘해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마커스는 이렇게 얘기한다. 


테러리스트는 극히 드문 존재다. 2000만명이 사는 뉴욕 같은 도시에서는 아마 한 두명. 많아봤자 10명. 10/20,000,000=0.00005%. 

이건 엄청나게 희귀한 경우다. 자, 시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금융거래 기록이나 요금소 통과 기록, 대중교통 기록, 전화 송수신 기록을 체로 걸러서 99%의 확률로 테러리스트를 잡는다고 치자. 2000만 명의 집단을 99% 정확도로 검사하면 20만명을 테러리스트로 판별할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그중에 10명 뿐이다. 10명의 나쁜 녀석들을 잡기 위해 20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해서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말이지, 테러리스트 검사는 정확도 99% 근처에도 못 간다. 많이 잡아봐야 60% 정도. 

이것은 국토안보부가 비참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그들은 부정확한 체계ㅗ 테러리스트라는, 믿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대상을 잡으려는 중이다. 


천재 해커 반열의 마커스가 어떤 방식으로 감시를 피해가고, 엑스넷이라는 해방공간을 만들어내는지, 소설은 디테일하게 전개된다. 이게 흠인데, 나는 해커의 용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짐작만으로 그런 대목은 휘릭 넘겼다. 그래도 된다. 정말이다. 나머지 얘기가 겁나 재미있다. 10대의 연애담도 있다. 마커스는 정말 위태로운 싸움에 나서는데, 엄청난 소명과 꼰대의식 따위 전혀 없다. 


국토안보부가 하는 일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면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저질러온 온갖 헛짓거리로는 다리가 다시 폭파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하고, 우리를 반역자라고 부르는 걸로 테러를 막을 수 있나요? 테러의 목적은 우리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국토안보부 때문에 무섭습니다. 


마커스도 따라하게 되는 구호가 "25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마". 아이들의 교란으로 RFID 태그 따위는 오작동 투성이로 바뀌는데, 그걸로 테러리스트를 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끼리 게임기를 동원한 해킹 툴을 만들어도 잡아내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테러리스트를? 책을 읽다보면 마커스 만큼 똑똑하지 않더라도 테러리스트도 어느 정도는 할 것 같고. 국토안보부는 목적이 뒤바뀐 듯한 인상이다. 과연 정말 테러리스트를 잡으려고 하는걸까?

그들은 자신들의 초법적 전횡을 위해 비난할 대상과 희생양이 필요한게 아닐까? 심지어 샌프란시스코를 저렇게 취급하다니. 


마커스와 엑스넷에 대해 주류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하여간에 구구절절... 재미나게 볼 수 있다. 무게 잡는 대신 경쾌한 수다로 끌어가는 이야기. 내용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미국이 관타나모 기지를 굳이 유지해왔던 일을 생각해보면, 뭐 그리 아주 억지스럽지도 않을 지경이다. 시민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고, 국가는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 아주 예외적으로 심각한 경우에만 드물게 기본권을 제한하는 건데, 그게 마치 일상인양 착각하면 곤란하다. 


책은 우리 시대의 '1984'. 감시시대를 살아가는 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다만.. 기승전개발자만세.. 해킹을 직접 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세상은 둘로 나뉘는거구나 싶어 슬프다.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