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지식인이 2022년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프랑스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일부다처 판타지까지 동원하다니 역겹다. 초지일관 마초적이고 냉소적인 <복종>. 이슬람 혐오소설은 아니지만 혐오주의 쓸 수 있다?
권력과 지배자들에게 복종하고, 여자들의 복종을 얻고. 여자들이 사라진 사회는 실업문제 해결로 불만 낮아지고. 자유와 저항조차 불필요한 디스토피아. 한결같은 마초적 성적 묘사에, 현실 여혐이 언젠가 이렇게 자랄수 있다는 공포 탓인지 괴로운 소설
미셸 우엘벡의 논쟁적 소설. (에잇. 딱 주인공 처럼 생겼다. 괜히 느낌에)
이 소설이 난리가 난 것은 알려진 바, 샤를리 엡도가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내놓았다가 이슬람 테러를 부른 그 날 출간됐기 때문. 뒷 표지에 나온대로
"<복종>은 이슬람 혐오주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우리에게는 이슬람 혐오주의 작품을 쓸 권리가 있다"는 저자의 말이 논쟁에 기름을 붓는다.
상당히 불편했던 것은, 이슬람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그에 대한 환상이 너무나 마초적이라.. 마초에 대해 심한 알러지가 있는 나로서는 아무리 소설적 상상력이라도 짜증이 밀려왔다. 니체까지 동원하고, 온갖 프랑스의 문학을 섭렵하며 글을 쓰는게 '나, 대단한 작가야'라는 아우성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래 너 잘났다' 라는 느낌이랄까.
마초 판타지로 가장한 지식인의 고뇌 따위를 마구 풀어내놓고.. 이런게 이슬람이야, 이슬람.. 우리 유럽은 이렇게 되어버릴거야.. 비웃는건가?
여자들이 더 이상 섹시한 엉덩이와 다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요리하는 40대 아내와 밤의 요부 15살 아내를 둘 수 있다니. 이런 모순과 갈등에 흔들리는걸 뭐라고 봐야 하나.
이것은 이슬람에 대한 불편한 상상을 더해주는 이야기. 그러나 최근 여혐 사태에 촉이 날카로워진 나로서는.. 이런 여성관 덕에 IS에 빠져드는 철없는 사내들이 더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기우라면 좋겠다. 여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실업률이 낮아지고, 사회가 평온해지는 상상이라니.. 끔찍하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집에 오면 늘어진 티셔츠를 입는 서구사회 대신, 밖에서는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다녀도, 밤에는 온갖 화려한 속옷을 입는 이슬람 '다처들'에 대한 언급은 정말.. 꽤 자주 나오는 야한 장면마다 이렇게 심기가 불편해지는 책도 오랜만이다.
몇 몇 대목만 옮겨놓는다.
이러한 맹목은 역사적으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결국 이성을 찾을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믿었던 1930년대의 지성인들이며 정치가들이며 기자들에게서 동일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정립된 사회 시스템에서 번영을 누리는 이들은
지식인들이 늘 그렇지. 지식인의 탈을 쓴 이들이라 할까. 번영을 누리면서 그 시스템이 순식간에 망가지는 것에 대한 촉이 없거나. 외면하거나.
반면 나는 동료들의 무심함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아무 문제 없는 듯 보였고..이로써 내 심증이 확인되었다. 요컨대 대학교수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정치적 변동이 그들의 경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철밥통 지식인들. 대학본부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칼럼 하나 쓰는데도 소심한 이들. 할 말 하는 사람 보면, 나댄다고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이들. 어느 쪽이 소수인지 모르지만, 흔히 보지 않나?
위스망스의 '결혼생활' 오래된 부부의 미지근한 행복을 묘사..식도락은 그들의 삶에 스며든 새로운 관심사였다. 육체적 쾌락을 박탈당한 수도사가 섬세한 음식과 오래된 와인 앞에서 힝힝거리듯, 날로 심화되는 감각의 퇴화가 그들을 식도락으로 이끌었다
유럽 작가들 왜 이러나ㅋ 얼마전 이안 매큐언도 오래된 부부에 대해 냉소적인 문장이 여럿 나오더니. 식도락에 중독되어 있는 나로서는.. 나의 식도락 기행이 스물세살 무렵에 시작된거라 주장해본다. 쿨럭
그의 특별한 점,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점은 바로 그가 완벽하게 멍청하다는 겁니다. 그의 정치적 비전은 언제나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른바 '행정부 수반' 자리에 오르려는 개인적 야심에 한정돼 있거든요..이 정도 막무가내 정신이란 희귀
아, 정말 저런 사람 얼굴 몇 떠오르는 것 같아 가져온 대목
하지만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부터 부조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이미 애국심의 형태가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국가란 살인적 부조리의 총체와 다름없었으며, 1871년 이후로 조금이나마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에 대해서도.. 어느 글을 봐도 요즘은 다소 무정부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마치 유행처럼. 애국주의를 외치는 한 편에 대한 저항처럼. 국가에 대한 실망이 세계 어느 나라에나 넘쳐나는 현상이, 그렇게 마냥 연스러운 일은 아니지.
그전까지는 인간의 행복의 정점은 완전무결한 복종에 있다는 이 충격적이고 단순한 생각이 그토록 강렬한 힘으로 표현된 적이 없었어요...남자에 대한 여자의 절대적 복종과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 간에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자유의지와 저항정신 따위. 그러나 복종을 통해서 오히려 마음의 평화와 심신의 안정을 찾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지 않았던가. 사실, 그게 더 살기 편한 영리함일지도 모른다... 무서운 상상 아닌가? 내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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