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월가 로펌에서 해고된 뒤 시골 법률클리닉에서 세상 온갖 부조리와 폭력을 마주하고 쓸모 있는 변호사로서 깨어난다? 고민과 나약함까지 생생하다. 재벌 횡포가 믿기지 않을만큼 사악해서 존 그리샴의 분노가 느껴질 지경. 이틀에 완독 <잿빛 음모>
현실은 엘리트 대부분이 월가의 노예가 되어 명예와 부를 갖겠지만. 그리샴은 실제 모델이 되어준 시골 법률클리닉 변호사들과 환경단체에 감사를 전한다. 비현실적 고통에 시달리는 약자들을 지켜주는 이들이 어딘가에서 싸운다. 그리샴도 한결 같다 <잿빛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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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저렇게 사악할까? 자본은 정말 저럴 수 밖에 없나?
쉽게 부서지는 밑바닥 약자의 삶에 대해서는 그게 현실이란걸 뉴스에서 종종 본다. 그 대척점에 있는 자본에 대해, 혹은 체제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는 막연히 그 정도는 아닐거라 생각하는 먹물의 습성이 있다만. 그러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렇게 비참해진 이유를 어디서 찾을까.
이런 이야기를 그리샴 옵바가 적나라한 픽션으로 보여준다! 저렇게 맨날 써대도 현실 성공신화는 언제나 월가 편이라니. 이건 미디어 탓인가ㅎㅎ
소싯적 지리 시간에 들어본듯한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 혹은 미국 체류 시절, 워싱턴 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다보면 만나던 웨스트 버지니아의 숲 지대, 그 동네 노천 탄광이 무대. appalachia coal mining 으로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이미지들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저렇게 강간 당하고 있는 산과 들을 법으로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 무법자들이 이기는 시대에 법을 지키거나, 혹은 법의 바깥에서도 함께 싸우는 사람들의 사연이다. 애송이 변호사가 어찌 버텨낼지 걱정될 정도로 거대한 힘. 자연을 저렇게 유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보게 된다.
사진들만 봐도, 숲이 우는 소리가, 산이 슬퍼하는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지 않나. 블로그에 메모라도 남기려고 사진을 검색했다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저 지경을 만드는 무법자들에게 법으로 맞선다 한들, 정의가 승리할까? 소설의 주인공들도 참 험난한 싸움에 직면한다만...
약자들은 패하는 싸움을 하면 안된다고, 한 번 지면 정말 처참하게 박살나니까,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신진 정치인 조성주씨의 주장도 신선했지만.. 싸움은 질 수도 있다. 전투에서는 지고, 전쟁에서는 끝내 이겨야 한다지만. 그조차 불투명하더라도, 계속 싸울 수 밖에 없을 때도 있다. 그리샴의 변호사들이, 혹은 현실 세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싸우는 변호사들도 일승일패가 됐든 승리와 패배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다. 백전백승 이라면 누구나 뛰어들테고. 백전백패라면 기운도 나지 않겠지. 하지만 세상 일이란건.. 작은 승리, 값진 결과를 하나 하나 쌓아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리샴이 그려내는 변호사는 돈의 노예로 미친 듯이 일하고 있거나, 약자를 지키고 있거나. 물론 그 중간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겠지만.. 그리샴의 묘사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는 다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더 열심히 일했어요. 마치 주당 90시간을 일하면 잘리고 100시간을 채우면 살아남기라도 할 것 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게 끝나버렸고 우리는 길거리로 쫓겨났어요. 계약해지니 뭐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런 상담이 어떤건지 알 길 없는 그에게 매티는 "열심히 메모하고, 자주 얼굴을 찌푸리고, 되도록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면 돼"라고 조언했다. 서맨사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로펌에서 처음 2년을 버틴 비결이 바로 그거였으니까.
변호사 자격증은 커다란 권력이야.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활용될 때는 특히 더 그렇지. 악당들은 대리인을 고용할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을 겁주는 데 익숙하지. 하지만 좋은 변호사가 끼어들면 금방 꼬랑지를 내리게 마련이거든
아는 변호사 중에 잘 나가는 변호사도 있고, 거대한 자본, 공권력에 맞서는 변호사도 있다. 어느 쪽이 선하고 악하다는 분류법은 의미가 없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변호사의 조력은 필요하니까. 다만 힘들게 싸우는 변호사들에게는 기회 될 때 마다 밥이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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