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펀딩에 대한 외부 기고. 관훈저널 2015년 봄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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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점점 뉴스를 읽지 않습니다. 대신 게임을 하거나, 지인의 페이스북을 봅니다.
저널리스트들은 피땀 흘려 취재해 쓴 기사가 정보의 파도 속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과 저널리스트들을 어떻게 연결시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소개글이다. 다음이 미디어 서비스를 시작한 지 햇수로 13년. 뉴스를 생산하지 않는 유통 플랫폼인데 2003년 ‘미디어다음’이라고 명명하고 스스로 미디어로 출발했다. 뉴스를 생산하지 않아도 미디어일까? 포털은 2009년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라는 법적 지위를 얻었지만 자격 논란은 부질 없다. 그간 미디어에 대한 고민은 치열했고, 여러가지 도전도 이어졌다. 뉴스펀딩은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실험이다.
고민의 출발은 단순했다. 정보는 넘치는데 정보에 목이 말랐다. 다음카카오는 140개 언론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 미디어다음 서비스 수익 대부분을 언론사에게 지불하고 기사를 공급받는다. 하루 수 만 개의 기사가 들어온다. 양이 넘치는데 질이 문제였다. 이른바 어뷰징 기사가 늘어났다. 좋은 기사가 어뷰징 기사에 묻힐 가능성이 점점 높아졌다. 고품질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사들이 수익 악화에 시달리면서 품질 경쟁 대신 트래픽 경쟁에 내몰렸다.
사회에 의미 있는 아젠다를 제시하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미디어는 지속가능할 것인가? 고민은 꼬리를 문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기사를 살릴 수 있을까? 모바일에서 게임이나 SNS, 온갖 동영상에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뉴스로 끌어올 수 있을까? ‘그냥 좋은’ 기사가 아니라 ‘정말 최고 좋은’ 기사가 더 필요하지 않나? 좋은 콘텐츠를 위해서는 합당한 댓가, 보상이 돌아가야 할텐데? 거의 모든 미디어가 유료화를 고민하지만 과연 성공할까? 저널리스트들은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만족하고 있을까? 독자 측면에서 선정적 어뷰징 대신 양질의 콘텐츠에 목마른 건 마찬가지 아닐까? 이들의 연결, 소통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래픽, 혹은 자본에서 자유로운 언론은 국내에서 뉴스타파도 시도했다. 후원 시민 3만 여명이 든든한 버팀목이다. 좋은 언론을 위해 지갑을 열 시민들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네덜란드 독립언론사 ‘드 코레스펀던트’도 2013년 기자 몇 몇이 의기투합, 일주일 만에 100만 유로(약 12억원)를 모았다. 포털 입장에서는 다양한 미디어 파트너들과 협업, 이런 플랫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유료화는 거의 모든 매체의 로망이자 장벽인데, 틈새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도전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뉴스펀딩’이 등장한 것은 2014년 9월 말. 뉴스펀딩이 낯선 외부 파트너들을 설득해 8개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양측 모두에게 도전이었다. 기존 크라우드 펀딩과 유사하지만, ‘특별한 퀄리티’를 갖춘 ‘뉴스’를 결합시키고자 했다. 주기적으로 연재, ‘과정으로서 콘텐츠’에 대해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심갖도록 했다. 휴대전화나 신용카드, 다음캐시로 결제 방법은 간소화했고, 1000원, 5000원, 1만원, 2만원을 제시하며 부담은 줄였다.
2015년 2월 현재 가장 많은 후원금을 모은 것은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위안부 소재 영화 ‘귀향’ 제작을 위해 뉴스펀딩을 찾았다. 한겨레21 송호진 기자와 조정래 영화감독의 프로젝트다. 위안부 소재 영화는 흥행이 안될거라며 10여 년 투자를 받지 못했던 영화. 15살 전후 소녀들이 끌려가고 불구덩이에서 희생당하는 사연은 투자자들 관심 대신 시민들의 관심을 얻었다. 위안부 역사의 ‘문화적 증거’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700만명이 봤다. 이 중 1만4737명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44일간 총 7회 연재를 통해 2억5000만원이 모였다. 첫회 ‘정민이가 끌려갑니다’에는 1만2000명이 ‘공감’을 클릭했다.
이같은 ‘대박’ 사례 외에 ‘중박’, ‘소박’도 모두 의미 있다. 기사를 보고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방식이 일정 규모로 작동한다는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다. 초기 프로젝트인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는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가 한국여성의전화와 공동으로 13회에 걸쳐 가정 폭력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칼을 든 여성 뒤에는 남성의 폭력, 경제적-성적 착취,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사연들이 있었다. 총 650만명이 찾았으며 1144만원이 모였다. 영화 제작 등을 위한 기부나 후원 비용이 아니라 순수하게 취재비 지원이다. 2014년 11월~2015년 1월 진행된 ‘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 2015’ 프로젝트는 인기 있었던 뉴스타파의 세금 기획을 2015년 버전으로 제작했다. 당초 목표액 1000만원은 채우지 못했으나 10회 연재에 733만원이면 의미 있는 보상이다. 특이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고급 기사도 통한다는 확증을 보여준다. 작년 11월 말 연재를 시작, 2월 초에 종료된 ‘환율전쟁, 우리 주머니를 노린다’는 300만원을 목표로 시작했으나 475만원이 후원됐다. 어려운 국제 경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한 사례로 풀어주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신 화상으로 ‘시선의 감옥’에 갖힌 전신 화상 환자들을 그려낸 ‘우리 아이는 왜 거울을 한 볼까?’ 프로젝트는 2130만원을 모았다.
저널리즘을 고민하는데 ‘나와바리’가 있을까. 뉴스펀딩에 참여하는 이들이 모두 ‘기자’는 아니다. ‘우리집에 방사능이 나온다면’ 프로젝트는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수년 간 추적해온 최병성 목사가 직접 나섰다. 오랫동안 시민기자로서 활동해온 그는 1682만원을 후원받았다. ‘벌거벗은 영웅, 소방관’ 프로젝트(후원액 2069만원)는 소방관 지원을 위해 7명의 20대 청년들이 모인 ‘힘내세요, 소방관님’ 단체에서 추진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서 뉴스펀딩은 어느 정도 열려 있다. 물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 퀄리티에 대해 깐깐한 눈높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처음부터 ‘정말 최고 좋은’ 콘텐츠를 지향했으니 당연하다.
자발적 후원, 유료 콘텐츠 이용 경험 자체가 귀한 만큼 지난 몇 달간 뉴스펀딩이 겪고 있는 사례들도 소중하다. 독자들의 마음을 읽어낼 기회다. 어떤 프로젝트는 성공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지 슬슬 눈에 들어온다. 사회적 이슈로 관심이 많다고 해도 비슷한 주제의 기사들이 많이 보도된 경우, 관심과 후원 비율이 떨어진다. 퀄리티 높은 기획이라 해도, 기시감으로 인해 독자 피로도가 발생할 수 있다. ‘당신에게 죽음이란?’이라는 프로젝트의 경우, 어려운 주제를 생생한 내러티브 형식으로 전달했다. 총 11회 연재됐는데 전문가 인터뷰나 죽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실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사연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크게 얻어냈다. 참여한 기자들은 직접 댓글창에서 독자와 좀 더 가깝게 소통하는 느낌에 ‘참신한 경험’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어떻게 후원에 나서게 만들 것인가. 후원에 대한 ‘리워드’ 고민도 다양하다.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의 경우, 1만원 이상 후원자는 모두 ‘엔딩크레디트’에 이름이 올라간다. 시사회 티켓도 주어진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 50만원, 100만원을 후원한 이도 드물게 있지만 1만원, 2만원 후원이 가장 많았다. ‘환율전쟁, 우리 주머니를 노린다’의 경우, 유료 팟캐스트 한달 무료 청취권, 책 증정 외에 프리미엄 뉴스레터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리워드가 근사해야만 성공할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리워드에 대한 별 기대나 관심 없이 순수하게 후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핵심은 콘텐츠다.
소액 후원이 과연 콘텐츠를 구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이같은 도전이 곳곳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뉴스펀딩을 준비할 당시 담당자들은 네덜란드의 드 코레스펀던트를 비롯해 몇 몇 해외 사례를 살펴봤지만 시도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해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도 2014년 6월 저널리즘 카테고리를 별도로 마련했다. 현재까지 2000여개의 저널리즘 프로젝트에 대해 총 540만 달러(약 59억원)가 후원됐다. (아래 사진)
유튜브에서 인기를 모은 인디밴드 출신 뮤지션 잭 콘트(Jack Conte)의 시도도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유튜브에서 수백만 조회 수를 올려도 월 100~200달러 밖에 수익을 내지 못하자 직접 ‘후원자(patron)’를 모으기 위해 창업에 나섰다. 기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나 인디고고가 1회성 펀딩을 모아준다면 그가 친구와 공동창업한 패트리온(Patreon)은 아예 창작자(creator)와 고정 후원자를 연결시켜준다. 유튜브에 채널을 갖고 있는 뮤지션 뿐 아니라 웹툰이나 팟캐스트 제작자, 블로그, 인디 게임, 일러스트레이션, 사진을 업으로 하는 모든 이들이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창업 첫 해인 2013년 총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창작자들에게 모아준 패트리온은 1년 반 만에 월 후원액이 100만달러를 넘겼다. 12만7000명이 후원자로 참여했다. 후원금의 5%를 커미션으로 챙기는 패트리온은 2014년 6월 1500만 달러(약 16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들을 살렸을 뿐 아니라, 스스로 혁신적 스타트업이 됐다.
이제 출발한지 5개월 남짓 된 뉴스펀딩 입장에서는 참고할 만한 재미난 사례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일단 팬심으로 움직이는 저널리즘도 확인했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진행한 ‘당신, 소송의 주인공 될 수 있다’는 프로젝트는 당초 1000만원을 목표로 했으나 7636만원이 모였다. 후원 참가율 자체가 높았다. 주 기자의 팬들이 나서준 덕분이다. 주 기자는 첫 프로젝트 종료 이후 방송인 김제동씨와 함께 ‘제동이와 진우의 애국소년단’을 시작했다. 2월 25일 현재 1만1414명이 후원에 나서면서 1억6538만원이 쌓였다. 첫 회는 SNS에 5800회 이상 공유됐다. 매체 브랜드보다 기자 개인의 브랜드가 중요해지는 시대. 그렇다고 모든 기자에게 ‘스타 기자’를 목표로 저널리즘을 추구하라고 할 수는 없다. 유명인들과 평범한 시민들, 어디쯤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독자들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더 끌어낼지. 신뢰도를 어떻게 가져갈지도 끝없는 과제다. 후원자와 기자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도록 사이트 개편도 준비하겠지만 참여형 저널리즘의 새로운 모델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대 1 호응은 어느 단계까지 가능할까. 독자들이 직접 ‘뉴스펀딩으로 다뤄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지, ‘후속으로 다뤄주세요’, ‘ 더 취재해주세요’, 등의 단계들은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모색중이다.
뉴스펀딩 프로젝트 선정 과정의 투명성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포털 미디어는 다양한 논란을 겪어왔다. 이용자 신뢰를 얻고 공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미디어다음 편집 내역 히스토리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 등을 택했듯 뉴스펀딩의 신뢰 장치도 계속 보완할 수 밖에 없다. 독자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제를 담당자들과 참여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있다. 향후 이용자 요청에 따른 맞춤형 프로젝트도 등장할 수 있을테고 매체와 기자의 관심이 높아지면 어떻게 소화해낼지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콘텐츠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도 끝없는 과제다.
수 억원을 모으지 못하더라도 다만 몇 백 만원이라도 기자에게 보상, 충실하게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모델들을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동시에 콘텐츠 시장이 커지는 방향도 상상해본다. 편리한 모바일 쇼핑 앱에서는 한 해 수 조원의 매출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독자들도 조금 더 지갑을 열 수 있지 않을까?
독자들이 과연 콘텐츠에 돈을 낼까, 사실 가슴 졸이며 출발했다. 호응해준 독자들 덕분에 초기 기대는 넘어섰지만 여러가지 가설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 주제가 좋아도, 리워드가 훌륭해도, 유명인이 나서도 100%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콘텐츠 퀄리티가 좋으면 결국 성공한다는 진리는 계속 확인 중이다. 가설을 세우고, 계속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도전이다. 현재 미디어가 이런저런 도전 없이 지속가능할까? 미디어 생태계는 만드는 이, 보는 이, 실어 나르는 이, 모두 절박하게 살리고자 한다. 더 다양하고 근사한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다면 모두에게 환상적인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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