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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리뷰/비소설

<황혼길 서러워라> 노인 잔혹괴담, 상상 못할 진실

 


황혼길 서러워라

저자
제정임 (엮음)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12-2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대한민국 노인들은 슬프다!울컥했다. 회한이 밀려왔다.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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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잔혹괴담, 상상 못할 진실


자살에 의한 사망률이 2011년 기준 10만명에 33.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OECD 평균이 12.4, 영국은 6.7명이란다. 그런데 201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명 당 81.8. 특히 농촌은 도시보다 훨씬 높은데 농촌 비율이 높은 충남의 경우 노인자살률이 10만 명당 123.2명에 달한다. 숫자는 언제나 건조하지만, 이쯤 되면 숨이 턱 막힌다. 이건 괴담 수준 아닌가? 한국의 노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현장으로 깊숙이 들어가 취재하고 기록을 남기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이 이번에는 노인 문제를 다뤘다. 청년들이 노인을 만나면서, 노인문제의 실체를 목격하면서 겪는 당혹감, 연민, 이해할 수 없는 세대 차이 복잡한 시선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2013
년 대한민국 독거노인 125만명. 고독사 위험군 30만명. 놀라운 숫자지만 뉴스에 등장하는 통계에는 생명력이 없다고 고백하며 각 사연에 숨결을 불어넣고,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취재팀. 그러나 숫자로 보여지는 팩트도 힘이 세다. 우리는 노인 자살율이 저렇게 높은지, 고독사 위험군이 저 수준인지, 별 생각 없이 사니까.

기본적으로 노인들의 괴로움은 경제적 빈곤에서 비롯된다. 농촌의 자살률의 유독 높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돈 벌 일도, 할 일도 없는 오랜 세월을 견디는 고통을 상상해보면 더 우울해진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시장소득 기준 농촌의 절대빈곤율(한 달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 비율)39%. 도시 근로자 가구의 4.4%의 약 9에 달했다. 이렇다 할 소득원이 없는 노인 가구는 거의 대다수가 빈곤층이다. (19)

마당에 뒹굴던 농약병을 집어 든 할머니의 눈앞에 자식들 얼굴이 어른거리지 않았다면, 누군가 자살하면 3대가 망한다고 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참담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 그러나 다시 일상을 이어가는 할머니에게 새로운 하루란 그저 고통일 뿐이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만큼..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더니 평생이라 말하는 분들. (43
)


일자리도, 노환도, 모두 '존엄'의 문제

도시의 노인들은 조금 나을까? 그들은 어떻게든 일을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 이 책을 서점에서 펼쳐 들고 서문 첫 문장을 읽는데 순간 멈칫했다
.

 길을 가다보면 허리가 거의 기역자로 구부러진 할머니가 종이상자 등 폐지를 잔뜩 실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안타까움, 죄책감, 분노, 무력감..(4쪽)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주 목격하고, 그 때마다 바로 저런 감정에 휩쌓이곤 한다. 작년 가을 퇴근길, 한남동에서 리어카 바퀴가 고장나 도로 한 차선을 가로막고 있는 호호 할머니를 봤다. 지나치게 많이 쌓아올린 폐지더미. 나도 모르게 달려가긴 했는데 리어카는 꿈쩍도 안했다. 할머니는 어느 순간, 요령이 생기셨는지 균형을 찾는다. 가시는 길을 지켜보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 이런 경험, 다들 해보지 않았나? 때로 노인들의 노동이 불편하다. 택시기사 중에서도 호호 할아버지가 늘었는데, 가끔 불안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그분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 사회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며칠 전 출근길. 길 한가운데 느릿느릿 아슬아슬 위태롭다)

 

일하는 노인들은 '일할 수 있어 다행'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했다. 처우에 불만은 있지만 개선을 요구했다가 아예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그냥 참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경비원 노인들이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 하고 택배원 할아버지가 받는 돈이 최저임금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여태껏 쌓아온 경력이 휴지가 된 채, 경비원, 택배원 등으로 일하는 노인들을 보는 것은 서글펐다. (118-119쪽)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1980년대 청년 실업률 때문에 노인 조기 은퇴를 촉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청년 뿐 아니라 전반적 고용률 확대를 목적으로 한다면 정년 단축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만일 노인 세대가 일찍 은퇴한다면 청년들이 다 부양할 건가. 그보다는 각 세대가 독립적으로 잘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245

 

책은 병환으로 고통받는 노인들, 그 중에서도 치매에 대해 집중 살펴본다. 존엄의 문제는 노인들에게 절실하다. 요양병원 침대에 묶여 있다가 화재를 피하지 못해 사망한 사례, 척추염과 치매로 입원했다가 화장실에 자주 간다는 이유로 기저귀가 채워진 채 침대에 묶인 사례도 있다. 무섭고, 슬프다.

시체처럼 누워 있는 신세가 아니라면 치매 진료비나 약값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인지기능 문제보다 신체 기능으로 건강보험관리공단의 등급 판정이 이뤄지는 탓이다. 치매를 예방하는 정책이라 보기 어렵다. 치매 환자가 이렇게 많은지도 몰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08 501만명에서 2012 589만명으로 4년간 17.4% 늘어난 반면, 치매 진단 노인은 같은 기간 42만명에서 53만명으로 26.9% 증가했다
.

법으로 보장하는 치매가족 수발휴가, 고독사를 없애는 '그룹홈'

이런 문제를 다루다보면, 우리보다 고령화사회를 빨리 겪는 해외 사례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

일본에서는 모든 치매 노인 관련 업무를 지역포괄지원센터가 담당.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정기적 예방사업을 실시하는데 운동기능 향상, 영양 개선, 구강기능 향상, ‘두문불출예방 및 지원, 우울증 예방 및 지원 등을 1차적으로 시행. 지속적 검사 결과 파악된 고령자들의 실태에 따라 생활 지원, 치매치료 지원, 권리옹호 사업, 종합상담 지원 등을 2차 수행.

독일은 2008년 장기요양개혁법을 통해 치매 관련 정책을 정비하면서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재가치매환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은 6개월까지 수발휴가와 최대 10일 별도의 단기휴가 이용할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 가족을 대신하여 치매 환자를 돌봐줄 일손을 구할 경우 연간 1432유로( 212만원)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82~83
)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초고령 사회인 스웨덴은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여러 노인들이 한곳에서 생활하는 그룹홈등이 1970년대부터 발달. 보통 한 집에 4~6명이 살고 11실을 기본으로 하는 그룹홈 시스템은 가정적 분위기로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성별이나 연령 등을 혼합하는 것을 원칙. 여기에 모든 노인에게 기초 소득을 보장하는 스웨덴 연금시스템이 경제적 안정을 뒷받침하고 있어 대부분의 노인들이 소외되지 않고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노인들이 다른 독거노인을 방문해 말벗을 해주거나 아플 때 간병을 해주는 노노케어가 활발한 편’. ‘인비저블(보이지 않는) 실버타운도 주목할 만한 제도. 특정 지역 노인 인구 비중이 20~30%를 넘으면 비영리단체가 자연발생적 은퇴공동체(NORC)’를 구성해 비상전화나 이동 지원 등의 돌봄서비스를 제공
. (173-174쪽)

 

친정 아버지와 시아버님이 모두 일흔 넘도록 일하셨다. 하시던 일 연장선에서 경험을 살렸으니 운이 좋으셨다. 이제 완전히 은퇴하신 두 분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하다. 양가 부모님 모두 비교적 건강하신데, 어떻게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면, 삼천포로 빠진다. 우리는 아마 은퇴는 훨씬 더 빠를테고, 어쩌면 더 오래 살 지도 모른다. 윗 세대처럼 애들 집을 사줄 형편도 안되겠지만, 현재 하우스푸어인데다 애들 사교육비 부담에 노후 대책 없는 우리 세대의 고민들.

'황혼길 서러워라'에 공감하면서, 먹먹해지는 기분은 우리 윗 세대로부터 비롯되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늙어가는 것을 여유 있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막연한 불안은 자칫 공포가 될 지경이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욕망부터, 경제적, 사회적으로 버림받을까 겁내는 마음까지 모두 우리 몫. 일단 온갖 숫자가 전해준 참혹한 현재 모습은 확인했다. 마땅히, 우리는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어쩐지 우울하게 정리를 하다보니, 늙는게 이런게 아니었는데? 싶은 생각에 예전 글을 뒤졌다. 9년 전의 리뷰를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단다. 저 글에도 인용했듯 "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노래한 것은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은 후였고, 아이스킬로스가 최고의 비극을 쓴 것도 예순을 넘기고 나서였으며, 소포클레스는 아흔이 다돼서 최고의 작품을 썼다", "스무살의 여자는 지나치게 까다롭고 거만하다. 30대에도 여전히 힘겨운 목표에 집착하고 지친다. 예순에 이르러서야 나는 조금 현명해졌다"는 고백도 있다.

잘 늙자. 서럽지 않게.
이 사회는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때로 막막하지만, 어쩌겠나. 우리 코가 석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