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22개'라고 뭉뚱그려 직권상정된 그 법들.
조중동방송 위한 '방송법' 개정안은 거리로 나선 MBC 분들 덕분에라도 관심을 좀 받고 있다.
그런데, 22개 법안 중에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또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법이다. 방송법 이슈가 워낙 중대하니까, 관심을 덜받고 얼렁뚱땅 넘어갈까 걱정했더랬다. 한나라당도 현명하다. 한꺼번에 무더기로 직권상정해버리니까, 엄청난 이슈도 주목을 받지 못한다.
미디어 전문가 H교수님은 22개 직권상정 미디어법에 그게 들어가있다는 소식을 알려드린 그날, 경악했다. 말도 안된다고, 황망해 하셨다. 헌법소원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인터넷기업협회가 오늘 보도자료를 냈다. 문제가 되는 신설조항의 내용은 간단하다.
제44조 7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제1항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2의 2.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는 정보
제5항.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제1항에 따른 불법 정보의 유통방지를 위하여 불특정다수에게 공개되는 정보에 대하여 모니터링을 실시하여야 한다.
왜 문제냐. 일단 현실적으로 수행 불가능하다.
원래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처리는 'Notice & Take Down(신고 후 처리․조치)'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불법정보를 신고받아 Notice 한뒤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의 제5항은 신고가 없더라도 모니터링을 해야한다. 네이버나 다음에는 하루 수백만개의 게시글이 새로 올라온다. 이 수백만 게시물에 대해 모두 모니터링하고, '불법정보'를 찾아내 지우란다.
더구나 '불법정보'라는 것에 1항 2의 2로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는 정보'를 추가했다. 법원도 아닌 민간사업자가 "MB씨는 한심해"라는 게시물이 '모욕'인지 아닌지 판단해 처리해야 한다. 만약 처리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소송에 걸릴 위험이 높다. 법에서 의무로 정해준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상해줘야 한다. 결국 수백만개 게시물을 죽어라 모니터링해서 '불법정보'를 찾아 알아서 지우거나, 나중에 수백수천건의 소송에 시달려야 한다.
헌법재판소를, 아니 헌법정신을 무시한 조항이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표현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H교수님은 이를 토대로 '모니터링 의무화'를 포함한 새 정보통신망법이 통과되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고 하신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반대도 묵살한 조항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08년 12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이용자 보호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이라는 현안보고서를 통해 모니터링 의무 부과 시 예상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모니터링을 위해 수백명의 검열관을 고용해야하는데, 이는 신규 사업자에게 진입 장벽이 된다. 이미 수백명을 모니터링 요원을 두고 있는 네이버, 다음도 대체 얼마나 더 고용해야 수백만 게시글을 챙겨볼 수 있을까. 인터넷기업들이 다 쓰러져야 속 시원하다는 조항이다.
실효성도 형평성도 없이 사이버망명만 부추길 조항이다.
다음이 제주도로 일부 이전했지만, 사실 기왕 바다 건널거면 괌 정도로 회사를 옮기는게 바람직하다.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소된다. 외국계 기업이 해외에 서버를 둘 경우, 국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규제 형평성이 문제 된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당시 방통심 결정에 따라 다음은 광고주 리스트를 삭제했으나 구글은 거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용자들은 게시글을 알아서 삭제하는 국내 포털 대신 해외 사이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국경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조항이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미국의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 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 DMCA)과 유럽연합(EU)이 회원국에게 권고하는 기준인 'E-Commerce Directive'에서는 명시적으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모니터링 의무가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게시물에 대한 ‘Notice & Take Down’ 등 ISP에 대한 면책 요건을 규정하면서, ‘이것이 ISP에게 모니터링 의무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문화 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 제30조 나 7)은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서비스를 감시하거나, 침해행위를 나타내는 사실을 능동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 FTA가 명백하게,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에 대해 모니터링 의무가 없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미국 DMCA의 원칙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규정이지만, 어떻든 모니터링에 대한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 한미 FTA의 기본원칙이다.
법 조항 하나 신설하는 것일 뿐이지만, 인터넷 표현의 자유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수백만 게시글 모니터링 의무를 어찌 수행할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사업자는 이 조항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적극적으로 수많은 게시물을 삭제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모욕'처럼 애매한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폭넓게 해석해 다 지우는게 상책이다. 평소에도 무시무시하겠지만, 선거 때는 유례없는 '모니터링 전쟁'이 불가피하다. 정치적인 비판은 무조건 명예훼손이고 모욕이다.
이 조항은 네이버나 다음같은 인터넷 사업자에 대해 책임을 부과하는 사업자 규제 조항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인터넷 이용자 규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애매모호한 불법정보 정의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걸릴 게다. 삭제당하는데 머물지 않고 그 '모욕'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도 받게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겠다고 한다. 정당한 비판조차 허락되지 않는, 어떠한 종류의 패러디나 비난도 모욕으로 단죄받는, 깨끗한 청정 인터넷 시대. 누군가에게는 좋은 세상이 될지 모르지만 슬프다. 이런 엄청난 이슈가 '22개 미디어법'으로 포장되어 곧 통과될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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