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미디어>언론사 다시 쓴 MBC 판결, 사심 가득 코멘터리

"공정방송을 위해 싸운 파업은 정당했다"

지난 1월 17MBC의 해고와 징계는 무효라는 1심 판결 소식에 많이 울었습니다. 아무리 노동3권이 바보 취급 받는 시대라지만, 법대로 하면 해고가 무효라는 판단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판결 내용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더군요.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그래서, 이번 판결문을 조목조목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두번째 판결이 또 났죠. MBC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19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기각됐습니다. 두 판결 모두 방송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파업이 정당했다는 것이 핵심. 왜 파업을 했고, 왜 그 파업이 정당하다는 것인지, 방송에게 공정성 의무란게 뭔지.. 이 부분만 발췌 요약하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MBC 노조가 2012 130일부터 717일까지 이끌어 간 파업에서 비롯됩니다. 해고 및 정직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44명의 ‘죄목’은 솔직히 조금 찌질합니다. 파업을 주도했다는 노조 집행부는 그렇다치고,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든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했다든지, ‘집나간 재철이를 찾습니다’에 출연했다든지, 노조 프리허그 행사를 진행했다든지, ‘연애 잘하는 비법’ 파업특강도 이유가 됐습니다. 장안의 화제작 MBC 프리덤’ (다시 봐도ㅎ) 기획 제작도 죄목. ‘제대로 뉴스데스크’에 출연하거나 나레이션 맡은 것도 괘씸한 죄가 됐죠. 파업에 동조하여 임의로 보직 사퇴한 간부들도 줄줄이 징계. 파업 중인 이들에게 무단결근도 징계 사유가 됐습니다. 조금 기이한 이유로 파업에서 빠지게 된 동료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린 것도 걸렸습니다.

         (1월17일 판결 후, 여의도 MBC 남문에서 열린 환영 집회. 1심 승소 주인공들)

 


대체 왜 MBC 기자들은 파업을 하게 됐을까. 이것은 정당한 파업이었나?

두 재판부는 파업 이전 상황을 세세하게 살펴봅니다
.

  • 대체 무슨 일이 : 뉴스데스크
    ① 국무총리실의 불법 민간인사찰 의혹에 관하여 다른 언론사들보다 약 10여일이 늦게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 2010. 6. 29. 관련 내용이 방영된 후인 2010. 7. 2.경 비로소 처음으로 보도하였고, (저 중요한 사건을 열흘 넘게 안 내보냈다니..)
    2011. 5. 23.-26. 실시된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관하여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전혀 보도를 하지 않았으며, (청문회 의혹이 대체 뭐라고..)
    KBS 기자가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 도청하였다는 의혹에 관하여 경쟁 방송사인 SBS보다 이틀 늦은 2011. 6. 27. 최초 보도를 하였고(이후 관련 뉴스에 대하여 피고의 사회2부장이 사안이 민감하다는 등의 이유로 송고(送稿) 제한을 지시하여 기자회가 보도국장에게 그 경위를 공개 질의하는 등 기자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사안이 민감하면 보도를 안해요? 민감하지 않은 건 '동물의 왕국'? )
    2011. 11. 26.경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전국 동시집회 개최에 관하여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이를 보도하지 않는 등, 경쟁 언론매체들과 다소 다른 보도 태도를 보였다. (별걸 다 빼먹어요.. )

  • 대체 무슨 일이 : PD수첩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008. 4. 29. 방영분) 이후,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정보도 청구는 일부 인용됐습니다. 그러나 농림부 장관 명예를 훼손했다는 소송에서는 PD들의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해 회사 명예 훼손을 이유로 회사가 징계를 내렸고, 이 징계가 무효라는 1심 판결이 나온 상태입니다.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이라는 최승호 PD 방송은 국토해양부측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음에도, 김재철 사장이 방송을 보류했죠. 이후 6명의 PD수첩 담당 PD를 다른 부서로 보내버렸습니다 (PD수첩의 이후 존재감은... 4대강 문제는 결국 감사원을 통해서도 문제들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

    새로운 내용이 없다거나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진중공업 노사분규나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관련 의혹,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관련 의혹 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제작을 허락하지 않았고, 2011. 8. 23. 방영 예정이었던 서울특별시의 한강변 개발사업에 관한 프로그램의 내용 중 오세훈 시장이 등장하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담당 팀장은 2011 7 PD들의 책상을 뒤지는 듯한 행동을 하다가 발견되기도 했죠. (온갖 기행 중 이 사건이 가장 서글펐어요... 직원들 감시 강화하려 설치한 CCTV에 저런거나 걸리고..)

    급기야 일부PD들을 경인지역본부로 보내버린 인사조치는 소송까지 가서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았어요.

  • 대체 무슨 일이 : 라디오
    - 김미화, 김종배, 김종국, 윤도현 등 기존의 진행자 및 출연자들이 청취율 하락이나 정치활동 관여 등을 이유로 다수 교체되었고
    - 2011. 7.경 사회적 쟁점에 관하여 특정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출연자의 고정출연을 제한하는 내용의 고정출연제한 심의규정을 신설했고, 당시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배우 김여진 섭외를 불허했죠.

  • 대체 무슨 일이 : 파업 직전에
    2011. 10.26
    재보궐선거 보도가 불공정했다는 논란, 한미 FTA 반대시위 관련, 2011. 11. 23. 집회 현장에 중계차까지 보내놓고도 뉴스데스크 보도 누락, 경찰 물대포 사용의 인권침해 논란도 비보도 등등 문제가 생기면서 노조는 공정방송협의회 개최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회사는 불응했죠. 2011년 이후 회사는 월 1회 개최하도록 단체협약에 정해놓은 공정방송협의회 정례회의를 단 한 차례도 개최하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14차례에 걸쳐 요구했죠. MBC 기자회는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의 불신임투표를 진행했고, 회사는 이를 문제 삼아 징계에 나섰습니다. 노조는 결국 파업의 수순을 걷게 되죠. 처음 파업에는 600명이 참여, 6월 무렵에 최대 785명에 이르렀다고 판결문에 나옵니다.

파업의 목적이 정당했는가?

 

노동조합법에서 노동쟁의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입니다. 쟁의행위 목적은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 또는 그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 노동관계에 관한 사항으로서 노사관계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당해 노사관계 당사자에 관련되는 사항, 원칙적으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으로 한정됩니다.

그런데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올바른 여론의 형성을 위하여 방송에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방송사업자에게 방송편성규약을 제정공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규율에 비추어보면, 공정방송의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에 의하여 피고의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고 법원은 판단합니다.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준수 또한 교섭 여부가 근로관계의 자율성에 맡겨진 사항이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조합법 제30조에 따라 단체교섭의 의무를 지는 사항이란 거죠. (방송 공정성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키는게 방송사 노사 양측의 의무, 단체교섭 대상이라는 훌륭한 말씀)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방송의 공정성은 일체의 가치 판단을 배제한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른 임의적 편성을 배제하고 다양한 가치를 수렴하여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방송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가치는 그 자체로 주관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내용의 방송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관점에 따라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고, 결국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의 결과가 아니라 그 방송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하에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 공정성으로 나름 연구 좀 했습니다. 공정성은 매우 주관적이어요. 조선일보 독자에겐 조선일보가, 한겨레 독자에겐 한겨레가 공정한건데 뭐가 공정성이란 말인가요. 어려운 문제인데.. 법원의 저 판단, 참 현명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치고받고 떠들고 싸우면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가. 이건 조직 건강의 핵심이자 민주주의의 본질. 민주주의가 언론사라는 소우주 안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이유랄까요..)


따라서 단체협약에서 방송의 절차적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을 두고 있는 경우, 사용자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남용하여 방송의 제작, 편집 및 송출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저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 관련 제규정에서 정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에 해당하는 것

따라서 근로자는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쟁의행위에 나아갈 수 있다고 할 것이다라는 판단이죠
.

재판부는 특정 뉴스의 보도 여부나 특정한 방송프로그램 주제의 선정, 출연자의 교체 등은 담당자의 전문적 판단인지라..그 결과만 갖고 공정성 침해라 하기 어렵다 합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그런 결정에 담당자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합의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건데..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단체협약에서 만든 제도와 절차들, 공정방송협의회를 유명무실하게 한 죄가 사측에 있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이 사건 파업은 그 목적에 있어 정당하다…. 란 결론
.

두번째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이 사건 직전까지 김재철을 비롯한 경영진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공정방송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작자와 상의 없이 임의로 방송 출연자를 변경하고,(사실 어느 조직에서나 담당자를 무시한 윗선의 일방적 결정은 대개 폐해와 부작용을 낳죠..흔한 사례) 정당한 이유 없이 정권을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의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정권을 비롯해 성역 없는 비판과 문제 제기 없이 언론이 왜 존재합니까) 다양성과 중립성을 유지하여야 할 자신의 의무를 위반한 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오로지 자신의 뜻에 따라 방송을 제작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뜻과 다른 내용의 방송을 제작하려고 하였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방송 제작자의 보직을 변경하는 등 인사권을 남용하였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원고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위축시켜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는 한편 (인사권 남용..이게 사실 핵심 중의 핵심. 꼭 MBC 얘기라 하고 싶지는 않지만...할 말 하는 이는 내쫓고, 능력보다 충성경쟁에 뛰어난 예스맨을 중용하는 것은 망하는 조직의 필요충분조건) 경영자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만을 제작, 편성하려 시도하였다고 준엄하게 질타합니다.

공정보도 의무를 지키지 않는 미디어는 범죄

MBC 입장은 판결 이후 조선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1면에 게재한 광고에 잘 나옵니다. 공정성 의무가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재판부 판단이 파업의 목적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는 주장, 그리고 방송법 등에서 규정하는 공정성 조항은 노사 양측이 아니라 회사에게 부여된 의무로, 이익단체인 노동조합은 공정방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방송 공정성이 노사 모두의 의무가 되는 순간, 단체협약이 중요해지는데, 그것을 부인하려면, 사측이 알아서 할 일일 뿐, 노조의 의무는 아니라고 맞받아 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사 망가뜨리자고 작심하는 노동조합이 있나요? 궁극적으로 회사 잘 되자고 싸우는 겁니다. 일터 지켜야죠. 노조를 파트너로 삼는 기업(노동자들에게 경영 참여를 시키니 오히려 잘되더란 사례는 이 책 리뷰하면서 살펴봤었죠), 그게 불가능한 꿈일까요? 애초에 방송사 단체협약에 공정방송 조항을 넣어둔 취지는 어디다 팔아먹으셨나요.

두번째 판결문에서 보여준 언론에 대한 언급들..."여론형성 및 개인의 의견형성의 매체이자 요인인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는 그 기능에 터잡아 헌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제4부라 불리던 언론의 무게.. May the responsibility be with you)...국가권력의 간섭과 규제로부터 독립하여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요청과 방송의 운영 및 편성에 있어 공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각계각층의 주체들이 기회균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요청"을 받는게 미디어죠. 그리고 "공정방송의무는 방송사업자 뿐만 아니라 방송편성책임자와 그를 보조하는 모든 언론기관 종사자에게 부과된 의무이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위법하다"라는 얘기는 방송만 귀담아 들을 얘기는 아닐듯요.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비판하지 않는 미디어는 이미 스스로 범죄자. 미디어 내부와 관련 학계에서 수도 없이 외쳐봤겠지만, 이렇게 사법부의 판결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대단한 수업입니다. 댓가가 가혹했지만 의미를 곱씹어봐야죠. 이 두 사건은 이제 1심 판결을 받은 것일 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을 때까지 몇 년 더 걸립니다. 아직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언론인이 많다는 걸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