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현의자유

<표현의 자유>종북, 명예훼손에 대한 초보 분석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종북, 주사파라고 한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여기 판결문요

변희재_이정희_2012가합34257.hwp

종북이란 이 단어, 어렵습니다. 얼마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는 자기 이름 옆에 연관검색어로 빨갱이가 뜨는 것은 특정 지역이나 종교, 사상, 장애, 인종이나 출신국가 등을 비하하는 단어로서 당사자 신고시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관련기사)  인터넷은 다양한 지역·종교·사상·장애·인종·출신국가를 아우르는 소통의 공간이어야 하는 만큼, 사회적 갈등과 차별을 줄이고 건전한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죠.

이 결정과 관련해 종북이란 단어는 어떻게 볼 것인지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매카시즘 공세에 이용되는 단어는 당사자가 권리침해를 주장한다면 연관검색어에서는 제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란게 아닙니다. 연관검색어는 이용자들의 검색 패턴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지만, 단어 자체가 사회적 정치적 논의가 더 필요한 단계로 섣불리 빨갱이와 동급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포털 내부에서, KISO 차원에서 대단히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조만간 결정이 공개될텐데, 이번 판결도 이 지점에서 맥락이 닿습니다.

종북이란 표현 자체가 문제
?

판결에 따르면,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로이슈가 정리를 잘 해주셨네요. 상황에 따라 1) 북한과 연관되었다고 인정된 사건에서 대한민국 정부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2) 대한민국 정부 대북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대한민국 정체성 부정하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옹호하나, 동시에 북한 대내외 정책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경우), 3)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까지 다의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종북이란 표현을 쓴 것만으로는 판단이 어렵다는게 핵심. 해당 기사의 전체적 흐름이나 문맥, 배경이 되는 사회적 흐름까지 봐야 한다는 겁니다
.

주사파
란 표현에는 재판부 판단이 달라집니다. KISO빨갱이에 대해 더 쉽게 결정한 것과 마찬가지. ‘주사파로 지목되면 반사회세력으로 몰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크게 손상되기 때문에 단순히 모욕적 언사, 사상에 대판 평가를 넘어 충분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서 이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

이번에 문제가 된 것도 이정희 대표 등이 종북.주사파 조직인 경기동부연합에 소속되어 있는데 경기동부연합이 통합진보당을 장악하고 주요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버려 강하게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서 명예를 훼손했다는 겁니다. 특히 변희재씨가 정당 대표에게 판단할 권리조차 없는 자’, ‘조직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자’, ‘경기동부연합의 마스코트’, ‘경기동부연합에서 남편 심재환 등이 대중선동능력만 집중적으로 가르쳐서 기획한 아이돌 스타등으로 표현한 것은 경멸적 인신공격으로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합니다
.

지난 2월에도 전교조에 대한 종북 주장 관련,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2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당시 내용도 살펴보면, “주체사상 세뇌하는부분은 사실 적시, “종북집단 전교조부분은 이 사실에 근거한 의견 표명으로 분류됐는데, 주체사상 세뇌하는부분이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되며, 국가보안법에 따라 현실적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데다 반국가, 반사회 세력으로 낙인찍는, 명예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했죠.
여기 판결문요..

전교조_종북_2심_2012나55640.hwp


요약해보면, ‘주사파’, ‘주체사상 세뇌하는수준은 누군가를 범죄자로 모는 명예훼손적 표현이고, ‘종북은 앞뒤 맥락 봐서 판단해야 한다는 건데, 이번엔 '종북.주사파' 운운하며 명예훼손 했다는 겁니다.

공익성, 진실성, 상당성보도에서 알 권리는 어디까지?

설혹 명예훼손이 인정되더라도, 그 표현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익 목적일 때, 진실한 사실이거나 최소한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습니다
. 이건 언론 자유와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재판부는 여기서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옹호합니다. 특히 공적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표현일 경우, 공적 존재의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클수록 정치적 이념이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관련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의혹 제기할 때 평소처럼 엄격하게 입증할 것을 요구해서도 안된다고 명시했습니다
. 이번 판결에서 드물게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책임이 없는 것으로 분류된 중앙일보 칼럼의 경우, 의견 또는 논평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됐는데, 이런 맥락이겠죠. 사실 적시냐, 단순 의견 표명이냐는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법리에서 중요한 잣대입니다.

중앙일보 외 다른 피고들도 공익성부분은 인정받았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공인의 이념 등을 따져보는 건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는 거죠
.

그런데 진실성과 상당성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최소한 경기동부연합과의 관련성 부분은 진실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워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는 있었다고요. 반면 이정희 등 원고들을 종북·주사파로 단정짓거나, 김일성 초상화를 걸어놓고 묵념하는 세력 등으로 묘사한 것은 진실성과 상당성 모두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정희 부부가 정치인과 변호사로서 사회활동을 해오면서 이념과 사상이 행적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이 이뤄진데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수사받거나 기소받은 사실이 없었다는 점도 반증 근거 중 하나였죠. 종북 관련, 3) 분류, 즉 이들이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신념이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취지의 글이나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혹 수준을 넘어 보다 구체적이고 뚜렷한 정황사실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데 못했다는 겁니다.

종북으로 몰리는 거, 당해보지 않았으면 말하기 힘들 것 같아요. 꼬리표 붙여서 단죄하는 전형적 매카시즘이라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론장에서 다퉈볼 수 있고, 공익적 목적에서 '국민의 알 권리'가 보다 존중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최소한 진실이거나 진실이라 믿을 상당한 이유는 있어야 한다는게 이번 판결의 핵심인 것 같네요. '종북'이라고 믿을 만큼 구체적 근거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인터넷 기업에게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면 대체 뭐가 문제인지 조목조목 제시해야 한다는 거. 허위사실을 근거로 해서 몰아붙인다면 더 큰 문제겠죠.

판결의 의미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쓴 건 아마 이 사회의 여러가지 수준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경북대 김두식 선생님의 지적은 제 가슴을 콕 찌르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사상의 자유시장, 공론장에 검찰 등 공권력이 나서서 이러저러 하다고 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매번 표현 문제로 법원까지 갈 수도 없잖아요. 늘 주장하지만, 법은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동시에 법치를 빌미로 하는 폭력이 될 수도 있어서요. 그렇다고 이미 법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라며 유죄 판단한 주장들이 공개적으로 계속되도록 내버려두는 게 맞을까요? 여러가지로 고민이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최소한 이런 문제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겪으며 우리 사회 수준이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계속 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