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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수험생으로서 취직까지 하신 우리 아들의 아비투어(대학입시) 성적은? 이 세상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는 객관적인 점수는? 부모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자기 템포로 기분 좋게 잘 달리고 있는 말에게 꼭 제일 앞에서 달려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건 민망스럽지 않은가? 인생 선배로서 할 짓이 아니다. (139쪽) | ||
자기 템포로 잘 하고 아이에게 굳이 1등하라고 볶을 필요는 없지. 이 간단한 진리를 몰라서 나는 이 주말, 기말시험 준비에 아이들을 닦달했나. 나도 1등 요구한 적 없는 엄마다. 하지만 그저 ‘상위권’은 유지했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일 뿐. 그런데 왜 이렇게 저 엄마의 한마디에 기가 죽는 걸까.
죄송하지만, ‘듣보잡’인 무명의 아줌마가 책을 냈다. 독일에서 거주하는 52세의 ‘엄마’다. 제목도 희한하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는 내용이란다. 대체 뭔 내용이냐. 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이 시큰둥한 자세는 열렬하고, 경건한 자세로 바뀌었다. 이 엄마, 삶의 태도가 장난이 아니다. 아니, 물리학박사이면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동차산업과 방위산업은 빼고 일자리 구하느라 애쓰는 독일인 남편도 장난 아니긴 마찬가지다. 샤워할 때 9리터의 물을 쓰면서 20리터를 쓰는 아내에게 샤워 테크닉이 없다고 핀잔주는, 간 큰 남편이다. 더구나 아들의 이 한마디는 어떻구.
“엄마, 지금 4월인데 왜 벌써 딸기를 샀어? 이거 원산지가 어디야?” “몰라...오마나, 설마 아프리카나 남미는 아니겠지? 이렇게 싱싱한데 500그램에 1유로 밖에 안해서 확인도 안하고 샀네.” 먼 곳에서 재배하고 운송해온 ‘부도덕한 과일을 싱싱함과 싼값에 홀려 덥썩 산 죄로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했다. (6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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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생활 속에 실천하고 사는게...그리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군들 몰라서 그리 않나. 목욕물 200리터를 데우는 에너지면, 아프가니스탄 천막 교실의 백촉 전구를 70시간 밝힐 수 있다는 걸, 짐작은 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에 신경쓴다지만, 샤워나 목욕 같은걸 포기 못할 뿐이다. 그런데 이 엄마, 우리 자식 대에서는 목욕이란 풍습이 존재했던 호시절을 환상처럼 그리며, 선조들이 참 파렴치하게 지구를 말아먹었다고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ㅠ.ㅜ
삶이 곧 그 사람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녀는 성적이 몇등이고, 돈을 얼마 버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당당하게 가치를 매기는데 애쓸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돈 벌기를 포기해서다. 버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나의 만족도로 일을 평가하기에 내가 항상 즐겁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쩌다 돈의 액수로 나의 값어치와 자존심을 매기는 실수를 범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초라한 패자가 된다. 내가 암만 돈을 많이 받아도 내 위에는 승자들이 층층 계단처럼 한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내 노동력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그 평가를 남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재고 싶지는 않다. 그 대가로 우리 부부는 학력에 비해서 적은 보수와 실력에 비해서 낮은 사회적 위상을 떳떳하게 감수한다. 또한 무섭게 절약한다.... ..그 덕에 항상 돈이 남는다. 돈 쓸 일이 생기면 편안하게 쓸 여유가 있어서 오히려 남보다 부자라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22-2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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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 세 끼를 함께 먹는다. 오버가 아닐까. 직장 동료나 고객, 친구와 ‘관계’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쌓는게 직장인의 기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불가능하겠다. 이 가족은 그런 건 신경 안쓴다. 그저 소신에 따라, 가족이 가장 소중하니까 밥상을 같이 하고, 대화를 한다. 남편 회사에서 근무시간을 주 36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라는 제안에 대해 여자는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우린 지금 버는 돈도 다 못쓰는데”라고 당당히 말한다. 더 당당한 멘트는 그 다음이다. 남편이 “집에 일찍 와봤자 신문이나 읽고 노는 걸”이라고 하자, “신문이나 읽고 노는 건 안 중요해?”라고 일침을 가한다.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그래, 빈둥거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쩌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을까. 시간을 잘 쪼개서, 뭔가 노력하고, 일구고, 성취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이 자유로운 가족의 모든 일상에 가슴이 철렁철렁, 뭔가 내가 잘못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뭔가가 잘못된 거 맞겠지? 아니 이 가족은 소신껏 산다는데, 나라고 소신이 없겠나. 하는 만큼 한다고 했는데 왜 자꾸 찔리는 걸까. 그런데, 이 엄마의 교육관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내가 거기에 맞췄다. 책을 많이 읽어줬지만 아이들이 글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제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학교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인생에 유익한 일이지, 그 나이에 남보다 조금 더 먼저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101쪽) 무엇보다 존재의 기쁨을 경쟁력으로 평가해 소중한 인격체를 부품으로 전락하게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목적은 세상에서 부리기 쉽도록 획일화된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획일적으로 찍혀 나와 아궁이에 던져져 엔진을 돌리는 연료가 아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고유한 열정을 싹 틔워 올리려는 아이들의 절박한 몸짓을 모른 체해서야 되겠는가? (1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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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누군들 하고 싶어서 하겠나. 초등학교 3, 4학년인 아이들에게 강요할 생각이 아직은 없다. 그러나 슬쩍 불안하다. 모두들 한다는데, 일하는 직딩맘이 신경 안 쓰는 탓에 우리 아이들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 엄마는 독일에서 살았으니, 우리랑 다른게지, 우리 교육 환경은 겁나게 무시무시하다구, 라는 식으로 버텨볼 생각도 잠깐 했으나,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뭐가 올바르고 틀린지 외면할 수 있을까. --;;
사실, 이 부모는 각종 학부모 회의에 적극 참여하는 훌륭한 분들이다. 일에 가급적 시간을 덜 뺏기는 삶을 택한 당연한 결과다. 역시 직딩맘의 죄책감을 매우 자극하는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불편한 마음도 적지않다. 이 가족의 스토리와 우리 현실은 백만년 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십년 간극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용 참...이런 에피소드는 어떤가.
김나지움 수학 전공반을 짜놓고 보니, 학생 실력이 최상과 최하로 나뉘었단다. 한반에 몰아넣으면 하향평준화 논란이 당연히 튀어나온다. 학부모 회의가 열렸고, 일단, 열등생들을 버리고 가지 않는 선생님의 신념을 존중하기로 했단다. 결국 우등생들은 서로 묻고 가르쳐주며 자기네들끼리 깨쳤다. 졸업 때 이 반의 평균은 B. 낙제생들이 모두 상위권으로 오른건 물론이요, 자칫 피해자가 됐을 우등생조차 협동 작업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적 공부를 경험하고 좋은 점수까지 얻었단다. 열등생 버리고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선생님과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 한 학생, 이 모든 것을 믿고 기다려준 학부모가 만들어낸 합작품인데....그녀는 말한다. “특히 이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얻게 된 자신감과 자부심을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이집 아빠가 식탁에서 선언한 내용이다. 내륙국가인 독일에서 바다 생선까지 먹는 것은 변태라는 주장이다.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 먹을 거리를 뺏는 일이라고. 이렇게 깐깐하게 ‘스스로 올바른 삶’을 지향하는 가족이다. 아이들도 다 여기 동참했냐고? 이 집 딸은 식구 중에서 자기 하나만 정상적 인간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단다. 괴상한 집안에 태어난 돌연변이의 인권 투쟁에 유년기와 사춘기를 바쳤다니, 그 당찬 자존감이 어디에선들 빛나지 않을까. 리뷰가 어찌된게, 이 집안 찬양처럼 흘러가면서, 구구절절 길어져서 다 정리못하겠지만, 이 딸에 대한 성교육 내용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전적으로 참고할 생각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가족과 일상에 대한 에피소드보다, 독일 사회의 과거사, 역사 청산 등을 주제로 또 촌철살인같은 멘트들이 쏟아진다. 600만 유태인 희생자에겐 사죄해도, 100만 아프기카 학살은 관심도 없었던 독일인들에게 자국 역사가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사실까지 지적하는 독일 내부의 지성인 이야기도 흥미롭긴 하다. ‘지성인’이 어떤 존재인지, 그녀 나름의 해석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녀의 가족사 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건축학 박사라는 가방끈 긴 여성으로서 ‘엄마’ 노릇에 더 충실해온 그녀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은 충분히 보여준다.
이 책의 흠? 아..사진이 넘 인색하다. 좀 크게 실어주지. 이 가족에 대한 흥미가 점점 더 커지는데, 아주 조그만 사진만 넣어줬다. 월간 여성지였다면, 전면 화보로 보여줄만한 내용인데... 흠. 갑자기 이 가족의 프라이버시 및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잡지의 자본만능 화보 따위의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헛.. 나도 쥐꼬리만한 소신과 철학은 있는 사람이다. 잘 해야할텐데..
(20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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