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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들은 시민 학살에 주저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1980년 광주는 아시아 (혹은 민주주의 초보국가) 역사에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정부군에 의한 시민 살해는 한 사회의, 국가의, 시대의 ‘트라우마’이고 비극인데, 아시아는 온통 피에 얼룩졌다. 전선기자 정문태의 기록에서 숫자만 골라봤다.
수하르또 독재 32년이던 1998년 5월, 인도네시아 자까르따의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유혈진압 이후 군 대변인은 폭도 49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현장 기자들은 최소 1000명이라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은 아쩨 지역에서 1990년 이후 민간인 4000명을 살해했다. 인도네시아 군대가 동티모르에서 24년간 학살한 20만명은 동티모르 인구 4분의 1에 달한다.
버마 군인들은 2007년 승려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다. 군 당국은 최종 13명 사망이라 밝혔지만, 버마승려동맹측은 “사망 300명, 체포 4000명”이라 전했다.
태국은 2003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 두달만에 2275명이 숨졌다. 마약사범이라 했지만 여성과 젖먹이들도 포함됐다. 인권운동 진영에서는 “법도 없는 마약전쟁은 시민사회를 향한 공격이고 학살”이라고 분노했다. 2004년 남부 분리독립을 외치는 청년 시위대 32명이 폭격으로 숨졌으며 2005년 반정부 시위대 85명이 숨졌는데, 정부는 “현장 군인 실수”라 했다.
미군 폭격과 크메르 루즈 치하에서 최소 150만명이 숨진 캄보디아는 종류가 좀 다르니 일단 넘어가자.
모두가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국민들을 바보로 볼 뿐이다.
이래저래 자까르따 정치판에 남은 것은 헤쳐 모이기뿐이다. 1년전 이맘때 애타게 외쳤던 개혁과 민주화는 온데간데 없고 이제 배반과 음모가 판치는 정치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37쪽)
수하르또 독재가 끝난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의 딸 메가와띠는 세상 모르는 공주라는 비판에도 불구,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메가와띠, 와히드, 하비비 등 주요 후보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우리 식으로 보면 3당 야합 같은게 짝을 바꿔가며 계속됐다. ‘민주정치’나 ‘협상의 미학’이라고도 했지만 “사실은 노선 없고 정책 없는 정당정치가 만들어낸 눈꼴사나운 풍경”이라고 정문태는 일갈한다. 모든 정당이 ‘개혁’을 외쳤지만 최고 인기상품은 민족주의일 뿐이다. 어떤 짝패를 맞춰도 개혁 그림은 안 나오는 ‘허망한 정치놀음’이 ‘선거 민주주의’란다. 2004년 유권자 1억4000만명인 인도네시아 총선. 엉터리 진행 속에 유권자 30% 이상이 등록도 못했고, 선거판은 곳곳에 문제 투성이었따고 한다. 유권자 숫자 4배의 투표용지를 주문했는데, 정작 용지가 부족했다거나, 2600만달러 짜리 컴퓨터 집계장비는 써보지도 못했다거나. 이게 21세기 아시아 정치 현실.
신생공화국 동티모르는 이내 ‘분열의 전통’과 ‘학살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223쪽) 반란까지 겹치면서 내홍만 심각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안정군’을 보내 수도를 접수했다.
버마 아웅산 수찌의 민족민주동맹은 국경의 해방혁명전선 수많은 이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수십년간 싸우는 와중에 아무런 정치력도 투쟁력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협상도 대안도 없이, 비폭력만 외쳤을 뿐 흔한 시위 한번 조직하지 못했고, 감금과 석방을 거듭하며..현재 다시 감금 상태다.
태국에서 2006년 일어난 쿠데타는 1932년 이후 18번째 란다. 2010년 4월, 이제 또다시 유혈사태니, 이 나라는 또 어떤 정치적 격랑에 빠져들까.
탁신 총리의 경우, 재임 중 자기 회사 주식 2조원 어치를 싱가폴 기업에 팔아넘겼다. 앞서 언론들이 추측 보도를 내자, 펄쩍 뛰었으며 거래가 이뤄진 뒤에는 “(20대인) 아이들이 대주주로서 처리한 것일 뿐”이라고 발을 뺐다. 세금 안낸다 버텼고, 알고보니 미리 법도 바꿨다.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복잡한 주식 거래로 또 한몫 따로 챙겼다. (이런..왜 기시감이 들까 ㅋㅋ)
이 일로 태국 국민들은 정말 화가 났다. 탁신은 물러났다. 그런데 그 이후? 탁신은 태국 최대 정당의 배후다. 국민들은 그래도 탁신 편에 표를 줬다는 게다. 태국엔 귀국도 못하는데 이번 유혈사태의 배후이기도 하다니..내참.
전선기자 정문태는 아시아 각국에서 ‘개혁’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지도자들을 만났다. 정부와 반정부 진영, 여야를 막론하고 이렇게 많은 지도자들을 직접 만난 인터뷰어가 있을까. 멀쩡한 정부 청사는 물론, 게릴라 전을 펼치는 반란군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해 험한 전투 현장도 달려갔다. 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부분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 뒤끝이 별로다. 정치 지도자들은 다시 분열했고, 국민들은 몰아낸 독재자의 후예를 종종 지지한다. 지도자들은 다 할 말 많다. 때로 그들의 진심이 담겨있어 보인다. 그러나 진정 ‘주군’으로 삼고 싶은 리더는 없어 보인다.
언론이 문제다.
인도네시아 아쩨의 역사는 슬프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전 등 천연자원 덕분에 인구는 인도네시아 2%에 불과한데, 중앙정부 예산 13%를 부담했다. 사실상 식민지인데, 저항하다가 4000여 민간인이 살해됐으니 뭐, 알만한 동네다. 아쩨 주민 40%는 절대빈곤층이다.
2003년 5월, 정부군은 자유아쩨운동 반군을 공격했다. 계엄사령관은 언론에게 “자유아쩨운동 반군 말을 따지 말라”고 경고했다. “오보 내는 기자와 언론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으르렁댔다. 실제 기자들이 몇 실종됐고, 취재차량들이 총알세례를 받았다. 야만의 현장에서 외신 기자들도 탈출을 감행했다.
“문태, 빨리 빠져나와”...논둑에서 동료들이 소리쳤다. 고개를 돌리자 군인 네댓이 겨누고 있던 총부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시팔! 전선 취재는 싱겁게 끝났다. 결론도 났다. ‘아쩨 계엄 군사작전 취재 불능’ (124쪽)
2001년 태국 최고 재벌 탁신은 정권을 잡은 뒤, 언론부터 휘어잡았다. 하나뿐인 독립방송 iTV를 사들인뒤 뉴스편집 독립권 외치는 언론인은 줄줄이 해고했다. 법원의 복직 판결조차 무시했다고 한다. 비판적 언론인들은 가족까지 불법 계좌추적 등을 통해 뒤를 캤다. 비판적이던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특파원이 쫓겨났고, 이코노미스트는 판매금지됐다. 자국 언론은 재갈이 물렸고, 외신들에겐 “태국 때리기”라며 정부가 돌을 던졌다.
낯익은가? 나는 소름이 돋았다. 권력의 언론 장악 기도는 괜한게 아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권력의 수명을 연장하는 길이다. 입바른 말 하는 몇놈만 잡으면 된다. 브리핑해주는 정보 외에는 모두 거짓이니, 멘트 조차 따지 말라는 저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오보 내면 법적 대응하겠다고 으르렁대면서, 기자들 기죽이고 위축시키는 것도 어디 교과서에 나오는 모양이다. 버마에서 13명이 죽었다고 발표하는데 300명이 죽은 것 같다고 하면, 이게 ‘오보’다. 당시 200명 정도는 사진까지 제시됐다는데, 정부는 모두 오보라 했단다. 태국 탁신 정부가 2000명을 살해할 때도, 그저 “마약과의 전쟁 와중에 희생된 마약 사범들”일 뿐이다. 보도되지 않는 사실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어찌 언론 장악이 매력적이지 않으랴.
국제 정치의 논리
‘킬링필드’란 영화가 있었다. 잔혹한 독재정권의 민간 학살을 다룬 영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집권기간 중 80만~100만이 죽었단다.
그런데 정문태는 이를 두고 ‘2기 킬링필드’라 한다. 앞서 미국이 1969~1973년 불법 폭격으로 60-80만 양민을 살해한 것이 ‘1기 킬링필드’란다. 당시 미군은 폭탄 53만톤을 투하했다고 한다.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쏟았던 16만톤의 3배를 웃돌고, 파괴력은 히로시마 핵폭탄의 25배에 달한단다. 이뿐이랴. 1980년대 크메르 루즈에게 8500만달러 어치 무기 건네준 것도 미국이다. 중국은 해마다 1억달러 무기를 넘겼고, 영국, 유럽 다른 나라도 무기 장사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이들 강대국들은 모조리 역사에서 도망쳤다. 국제 사회가 강요한 캄보디아 킬링필드 특별재판소 설치법은 오로지 크메르루즈의 집권기간인 1975~1979년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일만 상대로 한다.
모르면, 알려지지 않으면 진실이 무슨 소용인가. 불과 40년 전 일인데, 미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한 일이 뭐 또 다르겠나. 또 이런 짓에서 자유로운 강대국이 몇이나 될까. 다 비슷하다. 이런 일은 어떻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까. 책 제목 ‘현장은 역사다’라는 말이 아프다. 정문태의 현장 기록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몇이나 알 수 있을까.
알고 보니 호주도 참 재미난 나라다. 아시아 경제 잘나가던 1980년대말에는 ‘아시아의 일원’ 이라 외치더니 1997년 경제 위기로 휘청이자 ‘유럽이 핏줄’이라 떠들었단다. 이거야 그럴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동티모르에 방어선을 친게 호주다. 주민을 조직해 무장투쟁을 독려했다. 당시 일본군이 동티모르에서4만~7만명을 학살했으니, 덕분에 호주는 좀 안전했다고 할까. 그런데 이후 동티모르를 위해 호주는 무엇을 했을까.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무력침공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불법이라 결의했으나, 1979년 호주는 최초로 침략의 합법성을 인정했다. 티모르해의 원유와 인도네시아 시장에 눈독들인 덕분이다. 이후 학살을 피해 도망온 동티모르 난민선을 쫓아냈고, 인도네시아 군사 훈련을 지원했다. 그런 호주도 1998년 국제사회가 동티모르 독립안을 논의하자, ‘인도주의’를 내세워 독립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독립 동티모르가 분열과 내란에 빠지자 잽싸게 주둔군을 보냈다. 사회 안정 지원 명목이다.
이 독후감을 처음에 ‘한글’ 프로그램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아무리 ‘버마’를 입력해도 ‘미얀마’로 자동으로 수정해준다. 미얀마란 이름은 88년 민주항쟁을 총칼로 짓밟은 군사정부가 89년
느닷없이 버마를 버리고 택한 국호다. 그 나라 시민들은 아직도 미얀마라 부른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나라는 ‘미얀마’라 하고, 아웅산 수찌 등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버마’라
한다. 한국 정부야 뭐라 부를 수도 있지. 그런데
왜 한국의 대표적 워드 프로그램인 한글은 버마란 단어가 입력조차 안되게 해놓았을까. 우리 정부가
맞춤법 표기를 이토록 강력하게 규제하는 걸까?
불친절한 그의 글을 접으며…
정문태기자는 글을 잘 쓴다. 예전 책을 볼 때는 ‘시인’이라 느꼈다. 현장의 힘이라 느꼈다. 이번에 다시 보니 거칠고 과격하다. 선동적인 짧은 문장은 마치 피끓는 분노의 함성처럼 여겨진다. 그의 글은 게다가 불친절하다. 솔직히 일국의 정세를 논하다보면, 주요 등장인물이 몇인가. 내참, 고교 시절 읽었던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이후, 이렇게 등장인물이 헷갈리는 책도 많지 않았다. 더구나 표기법은 또 어찌나 정직한지, 현지 발음을 최대한 살린듯한데 동남아 이름들이 하나같이 어렵다.이런 걸 정리도 각주도 없이, 연표나 그래픽이나, 지도 한장 없이 풀어냈으니, 정말 친절한 책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착한 독자는 아닌지라, 어려운 내용, 와닿지 않는 내용은 대충 넘기고 내 눈에 들어오는 것만 봤다. 솔직한 현장의 기록이야, 어느 부분만 보더라도 가치가 있지 않겠나.
그는 외국의 그 대단한 지도자들 만나서도 별 예의 없이, 기분 나쁠 질문을 잘도 해댄다. 정세 분석도 야멸차게 한다. 하기야, 지도자 잘못 만난 탓에 피 흘린 아시아인이 몇인데, 그가 분노를 누를 수 있다면 정상이 아니겠지. '분노는 그의 힘'
참 지식인스러운 인상으로 기억하는데, 아시아 각국의 최전선에 선 그의 펜은 누구보다 날카롭고, 겁이 없다. 그의 펜이 더 많은 힘을 얻기를, 더 멀리 많은 이에게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처럼 리뷰를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리뷰조차 길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이야기, 참 비슷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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