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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피렌체>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시작한, 그 남자의 도시

이탈리아 국경이 가까워지자 스위스의 표지판은 독일어에서 이탈리아어로 어느 틈에 바뀐다. 운전자는 국경을 지난걸 확실히 깨닫는다. 다들 운전이 거칠다. 끼어들기와 바짝붙기가 이어진다. 페북 친구인 S 선배가 미리 이탈리아 특유의 폭풍 운전을 경고해주셔서 예상은 했지만, 대단하다. 

목적지는 피렌체. 가는 길에 밀라노가 있다. 밀라노에는 별 미련이 없었다. 명품에 관심이 없으니, 아니 안목도 정보도 없으니 최고의 디자인 도시도 내겐 그냥 돼지 목의 진주. 다만 밀라노 두오모만 보고 싶었다.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있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약도 필요한데다 줄도 길다고 해서 포기. 딱 두오모 사진만 찍었다. 피렌체 두오모와 사뭇 다른 두 대성당의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주마간산이지만 비교할 수 있다는 건 좋았다. 밀라노의 두오모가 더 화려하고 크다. 피렌체 두오모를 보고 있으면..덜 압도된다. 생각이 많아진다.




가기 전에 피렌체 예습이라고들 권하는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도 봤지만, 사실 영화의 여운은 별로 길지 않았다. 책을 통해 가진 로망이 훨씬 컸던 탓일 수도.  하지만 그것도 오래된 기억. 최근 피렌체에 꽂힌 것은 회사 리더쉽 특강에 오셨던 연세대 신학과 김상근 교수의 '르네상스 창조경영' 말씀 덕분이다. 회사 특강도 간혹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데, 김 교수님 수업이 딱 그랬다. 중세 천 년의 역사를 끝낸 르네상스. 사실 400~1400년 한 시대가 천 년이 유지되려면 공고한 내적 논리가 필요한데, 그걸 끝내버린게 바로 르네상스라고. 그리고 르네상스를 끝낸 이가 바로 단테...피렌체는 단테의 도시다. 

고대 로마의 인구가 100만에 달했다는데, 당시 피렌체 인구는 4만500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중세를 끝낸 단테,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페트라르카, 조토 다 동네 친구였단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마키아벨리도 피렌체 사람. 갈릴레이는 피렌체 인근 피사 사람이다. 어떻게 저런 작은 도시에서 당대의 천재들이 줄지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당시의 피렌체 분위기가 연출된다면 누구든, 어느 회사든, 세계를, 아니 한 시대를 지배할 거란 특강의 농담이 진지하게 들렸더랬다. 

정말 동시대 동네 형 아우인지 궁금해서, 검색 좀 해봤다.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 조토(Giotto di Bondone, 1266~1337),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Leonardo da Vinci),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 1469~1527),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uonarroti Simoni, 1475~1564) 갈릴레이(1564~1642, Galileo Galilei)... 피렌체 희한한 동네 맞다. 

김 교수님은 이런 희한한 문명사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단 한 사람. 단테를 꼽았다.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세상을 바꾼 이.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 훨씬 이전에 그가 있었다. 

그는 9살 때 한살 어린 베아트리체를 만났다.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한 눈에 반했다. 첫 사랑의 열병이 그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조숙한 감성에 놀랄 것도 없다. 이 열병이 평생 한 남자를 사로잡았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영감의 원천이었다. 김 교수님에 따르면 단테가 첫사랑을 다시 보게 된 것은 18세. 아르노 강 다리 앞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난 그는 그러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녀 옆의 다른 여자에게만 말을 걸고 만다. 아르노 강둑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단테는 절망한다. 좋아하는 그녀에게 말도 못 붙인 이 남자가 결국 <신곡>에서 그녀를 영원한 존재로 남긴다. 김 교수님은 <산곡>을 읽지 말라고 했다. '아'로 시작하면 '아'로 끝나는, '오'로 시작하면 '오'로 끝나는 리듬이 끝내주는 작품이라, 번역문 읽어봐야 소용 없단다. 소녀 시절 문학전집으로 봤던 것 같은데, 사실 어렵기만 했던것 같다. 단테는 모두가 라틴어를 쓰던 중세를 끝내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고, 모든 것이 종교적으로 해석될 때, 인간 내면을 돌아봤다. 

김 교수님의 강의 핵심 키워드는 "돌체(Dolce)". 달콤함, 향기로운, 사랑에 빠지고 마는 그 느낌.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는 그 두근거림이 바로 돌체란다. "두근거리는 삶을 사는 이, 무언가에 매혹된 이가 세상을 바꾼다"고. 그는 돌체의 힘으로 중세를 장례지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저 장면. (저 남자가 18세로 보이지는 않는다. 9살에 사랑에 빠져도 놀랍지 않을 만큼 조숙하고 빨리 나이드는 시대였나^^;;)



이러니..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던 다리, 아르노 강을 실물로 만났을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바로 그 현장이라니. 피렌체도 유로자전거나라 투어를 신청해 가이드님과 다녔는데... 가족들은 물론, 다른 모든 일행이 무덤덤하게 다리를 볼 때, 혼자 좋아서 죽는 줄 알았다. (피렌체 다리에 대한 이야기는 구본준님의 완벽한 글을 보면 된다. 사실 무진장 따라가고 싶었으나 우리끼리 다니는 것 보다 4인 가족 기준 좀 비싸서 포기한ㅎㅎ 그리고 베키오 다리인줄 알았는데..찾아보니 저 그림 속 다리는 산타 트리니타라고ㅎㅎ ) 


단테를 기념하는 저 벽(왼쪽 사진). 그 벽을 돌아서면 기념관(오른쪽)이 나오는데, 한 시대를 새로 열었던 인간의 위대함에 경배를. 



피렌체 투어의 핵심은 우피치 미술관이었다. 가이드님에게서 조토와 마사토, 신의 무표정 대신 인간의 얼굴이 등장한 그림, 세상을 뒤흔들게 되는 원근법 등을 들었다. 미술에 관심도 없던 주제에 이런 얘기가 이렇게 흥미로운 걸 보면, 내가 받은 미술 교육에 문제가 있던걸까 남 탓 하고 싶다. 단테가 뒤흔든 인간의 지성은 이렇게 피렌체로부터 미술로, 조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이라는 엄청난 후원자가 등장한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책을 읽고 서평 끄적댄게 2001년 일이다. 오랜만에 살펴봤더니, 흠. 메디치가에 대한 존경보다는 분노가 배어나는 글이다ㅋㅋ 

작고 신비한 역사의 도시. 피렌체는 작은 골목 사이로 돌길이 미로처럼 연결된다. 두오모에 올라가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벽돌색 지붕이 빼곡하다. 등산 싫어하는 엄마 닮은 탓인지 올라가기 싫다는 딸을 억지로 데리고 올라갔다가 탈 났다. 못된 엄마로 찍혔다. 너는 등산 가자는 윗사람의 제안 거절하면서, 왜 딸에게는 강요하느냐는 옆지기 말이.... 틀린 건 아니지.. ㅠ 




피렌체가 유명한 또 한가지 이유는 온갖 명품 브랜드 본사가 다 여기 있단다. 가죽의 도시였기 때문이라는데, 가죽만 잘 다룬 건 아닌듯. 티본 스테이크의 원조라는 플로렌티나 스타일 스테이크, (내내 먹었는데 어느 집에 가든 대개 100g에 4.5유로 정도) 풍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트친 S님이 횡성이나 평창 분위기라고 표현했는데 딱이다.^^ 가죽과 쇠고기라니, 넘 당연한데 색다른 조합처럼 괜히 웃었다. 무튼 명품엔 별 관심 없지만.. 또 좋은 가죽 제품이 착한 가격이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시장을 둘러보다보니..집 구석에 쳐박혀 있는 가방들이 떠오르더라. 옷하고 맞춰서 가방 들고다니는 패셔니스타도 아닌데, 심지어 최근에는 겨울 배낭, 여름 에코백(이라 불러주면 좋아하는 천주머니) 차림인데 뭐하러 뭔가를 사? 내가 세상에 남기는 쓰레기를 줄이자는 생각과 거꾸로 아닌가? 하는 꼰대스러운 자각이.. ㅠ 망설이다가.. 컨디션 나빠진 딸과 먼저 숙소로 돌아왔고, 기념품 산다는 옆지기만 시장에 다시 다녀왔는데... 마눌이 눈여겨 보며 몇 번이나 손에 들어보다가 돌아선 물건을 사오는 센스...가 있을리가... (작은 가죽 손가방인데 55유로였다... 무튼 왜 남자들에게는 저런 세심함이 없을까, 여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문제 아닌가? 라고 쓸데 없이 자문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지. 특히 남편을 상대로!) 





피렌체 도착한 첫날, 두오모의 야경을 즐기고 젤라또 먹고 놀다가... 우연히 골목길에서 성당을 발견해 들어갔다. 워낙 어마어마한 작품 성당들이 많은지라, 감탄할 일은 아니었지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다듬어진, 우아하게 절제된 그런 아름다움이 있었다. 관광객들도 없는 한적한 시간. 신앙이 없다보니, 기도를 드린 건 아니고...잠시 멍..하게 정적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투어 코스에 있는 줄 알고 이름도 안 챙겼는데, 못 갔다. 관광 지도 찾아보면 되겠지 했는데, 역시 어딘지 못 찾았다. 사실 그냥 이름을 모른 채로 남아도 상관 없다. 딸과 좋은 시간 인증샷이 남았다. 사진은 좀 칠칠맞은 모습으로 찍혔지만, 어쩌겠나. 저게 나인 걸. 




딸이 체했다고 일찍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저녁 먹고 호텔을 지켰다. 옆지기와 아들은 저녁 산책 삼아 나가더니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저런 야경을 건졌다. 대신 나는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하룻밤에 해치웠으니,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