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peech and the Internet"과 우리나라
인터넷이 이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실현을 위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따지는 것은 지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터넷을 가로막는 적지 않은 시도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블로거를 투옥하고, 웹 사이트를 차단하고, “민주주의”같은
단어 등을 필터링하는 중국의 사례. 사실 중국은 최강대국이고, 우리나라가
중국과 저런 지점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니 멋진 걸까. 이 칼럼의 근거가 되는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는
한국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하여간에.
Governments
should not rely on private entities like service providers to censor content
and should not hold them liable for user content.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게 책임을 지우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의 ISP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 우리나라는 대법원에서 2009년 4월 명예훼손 댓글을 방치하는 포털에게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포털, 명예훼손 댓글 방치땐 배상책임)
당시
대법원은 “포털은 명예훼손적인 글이라고 해서 반드시 삭제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게시의
목적·내용, 게시 기간과 방법, 그로 인한 피해 정도를 고려할
때 불법행위를 방조했다고 판단되면 삭제 요청이 있기 전이라도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검색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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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매체로부터 기사를 전송받아 자신의 서버에 보관하고, 그 중
일부를 선별하여 자신이 관리하는 뉴스 게시공간에 명예훼손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였다면 보도매체와 함께 불법 책임이 인정되고
- ① 명예훼손적 게시물의 불법성이 명백하고, ② 삭제 요구가 있거나 혹은 없을지라도 게시물이 게시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거나 인식할 수 있음이
외관상 명백히 드러나며 ③기술적 경제적으로 게시물에 대한 관리통제가 가능한 경우,
게시물 삭제와 향후 유사 내용 게시물이 게시되지 않도록 차단할 주의의무가 있고, 상당
기간 동안 그 처리를 하지 아니하여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NYT 칼럼은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ISP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열에 대한 우려 탓이다. 콘텐츠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경우, ISP들은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자꾸 지우려는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알아서 지우라는 요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포털 같은 ISP가 실제 그렇게 나설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먼저 따져야 한다. 민간
사업자에게 사적 검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일은 아닐 터.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별별
일 다 벌어지는 인터넷 공간에서 책임을 묻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책임과 권한은 함께 움직이고, 책임을 물을수록 인터넷사업자는 빅브라더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개자인 포털의 책임은 곳곳에서 거론된다. 파워블로거들의 공동구매 커미션 논란이 불거지자, 포털은 이를 방치했다며 책임론이 제기된다. 그러나 블로거들의 행태를 일일이 감시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수백만개의 블로그를 감시하고 “공동구매”라는 단어로 검색해 감시 감독을 강화하란 것일까. 블로거들은 공동구매 관련 글을 쓸 때, 어떤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포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까, 포털에 신고를 해야 할까. 포털은 이번 사태와 같은 파워블로거의 파워 남용을 감시하고 벌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With few exceptions, governments should not adopt Internet registries that require users to reveal their identities.
극히
드문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정부는 인터넷에서 본인 확인을 요구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대목은 아프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실명제를 도입했다. 익명성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2007년 이후 본인 확인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악플은 줄어들지
않았다. 익명성이 인터넷 폭력의 주범이라는 논리는, 실명
세상인 한국 인터넷에 맞지 않는 얘기다. 완전 실명제를 내걸고 있는 사이트의 그 심각한 악플은 뭐라
할 것인가.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개인정보 유출 등 부작용만 양산한 것은 아닌지. 더구나 모바일 시대,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가 앞다퉈 등장하는
가운데, 본인 확인된 회원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치정보와 결합되어 개인 식별 가능한 위치정보가
될 것이라는 의혹은 부당하다. 왜 인터넷 세상에서 익명성이 유지되어야 하는지, 그 철학과 배경은 무엇인지 다시 따져봐야 마땅하다.
And
defamation — so often used as a legal tool to repress political speech — should
be decriminalized. Finally, nobody should be banned from the Internet. It is a
fundamental tool for enabling free speech.
명예훼손이
종종 정치적 의사표현을 억제하는 법적 도구로 쓰이는 만큼 처벌해서는 안된다? 명예훼손 다툼이 지나치게
흔한 최근 상황에서는 더욱 주목되는 주장이다. 사실 명예훼손의 형사 처벌을 폐지하자는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등장했다. 지난 6월 21일
출범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는 첫 기획포럼으로 “형사상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세미나를 가졌다.
기본적으로 명예란 계급적 성격을 가지며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개념. 공인이나 공적 존재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점. 세계적으로도 명예훼손은 민사적 이슈일 뿐 형사적 처벌은
반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국민적 비판이나 정치적 라이벌을 제압하기 위해 남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권력자가 국민 세금으로 검찰을 동원,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한 인권단체 조사를 토대로 158개국이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유지함에도 불구, 실제 집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2005년 1월부터 2007년 8월까지 20개월간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명예훼손 투옥자는 146명. 반면 우리나라는 2005년~2009년 7월 55개월간 136명이 형을 선고받았단다. 월 평균 전 세계에서 7.3명이 투옥되는데 우리나라는 2.8명으로 전세계 명예훼손 투옥수의 28%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는 얘기다.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민사 위주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지적과 관련, 최소한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을 친고죄로 바꾸는 방안도 제시됐다.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장치다. 이런 논의 자체가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NYT의 이 사설은 인터넷에 대한 기본 철학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마음 아픈 것은, 이런 글을 국내 주요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다.
예컨대 자살을 둘러싼 그 많은 이유와 배경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악플이 유일한, 그리고 모든 악의 근원인양 책임을 묻는 행태는 오히려 무책임하다. 실효성과 문제점은 따져보지도 않고 실명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몰지각하다. 명예훼손이 심각하니 인터넷을 규제해야만 한다는 주장도 깊이 없는 사고의 경박함을 드러낼 뿐이다. 국격 높아진 사회라는데, 언제까지 NYT 칼럼에만 감동해야 하는지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