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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 인터라켄>인간이 따라해봐야 불경이 될 절대적 자연미

여행 2013. 8. 19. 08:36

아이들은 물론, 나도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이런 서유럽은 처음. 기자생활 십수년 했는데 이러기도 힘들다지만ㅎ 대망의 여행이 성사된 것은, 사실 옆지기가 요즘 좀 한가했기 때문이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집 한채에 빚 뿐인 하우스푸어라지만, 사실 돈 보다는 시간이 문제. 열흘 넘는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이 그리 많지는 않다. 지난 봄 옆지기 회사에서 작은 변화의 가능성이 무너졌다. 옆지기의 우울한 상황을 지켜보며, 여행을 결심했다. 뭔가 위안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새옹지마,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다. 

처음에는 이탈리아만 가고 싶었다. 겉핥기보다는 한 곳에 집중하는 느긋한 컨셉. 하지만 유럽 처음 가보는 처지에, 남들 가는 코스, 다 이유 있다. 그토록 매력적인 파리를 놓쳤으면 어쩔 뻔 했나. 무엇보다... 왜 다들 스위스, 스위스 하는지 알았다.

여행의 행운 중 하나는 유레일 대신 차를 빌린 선택이었다. 골프 수동을 구했다가, 어찌저찌 벤츠 C클래스 자동으로 바꿨다. 우리 가족이 또 언제 벤츠를 타고 달려보겠는가. 십여 년 전 나름 자동차 업계를 취재하며 포르쉐부터 온갖 차를 시승해봤던 기억이 살아났다.(^^V) 속도를 낼수록 묵직하고 낮게 가라앉는 안정감ㅎㅎ 한국에서 임대해온 전용 내비 톰톰의 도움을 받아 거침 없이 달렸다.  
평소 뚜벅이를 자처하지만, 사실 운전 자체가 피를 뜨겁게 한다. 그 감각이 짜릿한걸 안다. 더구나 프랑스는 남부로 갈 수록 낮은 언덕과 푸른 들판이 펼쳐지는 그림이다. 이런 배경에, 이런 날씨에, 저런 하늘 아래 힘 좋은 차를 밟고 있다는 건, 섹시한 경험이다. 스트레스를 싹 풀어주는 여행의 별미. 



당초 휴게소에서 점심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11시쯤 한 곳을 지나치고 난 뒤 1시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내비는 국도로 안내해줬고, 식당 찾는게 대략 난감. 2시 쯤 프랑스 시골길에서 작은 호텔 겸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영어를 조금 하는 언니 말로는 점심시간이 지나 다른 메뉴는 안되고 딱 '암'만 된단다. 암? 햄이란다. 자기네 동네에서 직접 만든 햄. 와우. 기대에 부풀어 햄과 치즈, 빵, 상추 샐러드로 구성된 푸짐한 밥상을 받았다. 환상적이었다. (물론 통으로 제공된, 꾸릿꾸릿한 그 치즈를 옆지기와 아들은 좋아하지 않았다ㅋㅋ) 


처음 비행기 갈아타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는 트랜짓 할 시간이 1시간으로 예정됐지만, 루프트한자 비행기가 늦게 뜨는 바람에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다급한 와중에 트랜짓 공항에서 왠 입국심사. 유럽에 얼마나 체류할거냐 묻는데 속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선 30분도 안 있을건데 왜 묻나 했다. 그런데 파리 공항에서 입국심사 절차가 없었다. 남들은 너 유럽 처음 가봤냐고 웃었지만, 서유럽은 처음이라니까! 국경이 없더라. 그저 유럽 뿐.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작은 국기를 보지 못했다면 모를 뻔. 제복 입은 남자가 길 가에 서 있기는 했다. 국경이 희미해지니, 개인은 이렇게 편해지는구나. 그래, 그런거였다. 

베른은 걸어서 돌아다닐 만한 작은 도시였다. 여행 내내 에어컨 되는 호텔을 예약했지만, 베른은 공용화장실을 쓰는 유스호스텔을 잡았다. 그래도 4인 1박에 약 20만원. 공영주차장 하룻밤 차 세우는데 50 스위스프랑(약 6만원). 부자나라 스위스 수도다운 물가랄까. 아인슈타인이 잠시 근무했던 사무실이 기념관이 되어 있는데 오후 5시 좀 넘은 시간에 이미 문이 닫혔다. 대성당에 갔더니 수리 중. 그러나 대성당 뒷마당 그늘(사진 아래 오른쪽) 에 앉아있노라니 하염 없이 좋았다. bear에서 이름이 만들어진 베른엔 곰 한 마리 뒹굴거리는 곰공원이 있다. 대성당에서 걸어서 10분. 그곳의 맛집 Altes Tramdepot에서 끝내주는 뢰스티(스위스 감자전)와 기막힌 맥주로 저녁을 한 뒤, 곰공원 아랫쪽으로 슬슬 내려갔다. 아레강이다. 물살이 그리 빠르고 센 곳을 본 적이 없다. 그리 찬 곳도 겪어 본 적 없다. 빙하에서 내려온 물인지 궁금해하며 여행에 지친 발을 식혔다. 말도 안되는 속도 탓인지 '수영 절대 금지'라는 푯말이 있던데, 5분 간격으로 떠내려가는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상류쪽에서 등장하자마자 곧 하류 다리 너머로 사라지는 이들을 신기하게 지켜보며 쉬었다. 멍 때리니 좋았다. 진심. 

 


다음날 베른에서 1시간 거리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인터라켄 동역(동쪽, ost 란 단어 기억난다ㅎㅎ)에서 기차를 타는데 할인 받아서 성인 표값이 인당 140 스위스프랑(약 16만8000원). 대신 아이들은 저렴하다. 기차를 갈아타며 올라가는데, 어찌 이런 산길에 이렇게 길을 텄을까. 아래 네 컷은 모두 기차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관광객들을 위해 케이블카나 기차를 까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는 선, 혹 그런게 있다면 말이다. 그런 선에서, 더 많은 관광객들에게 자연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해발 4158m 융프라우를 기차 타고 거의 정상에 근접해 바라볼 수 있다니, 나처럼 등산에 취미 없는 이에게는 기적같은 일이다. 걸음 걸음 나를 이겨내는 수행처럼 산을 오르셔도 좋겠지만, 그조차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



파리에서 절대왕정이 그야말로 절대적 부와 권력을 통해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냈고, 어떤 건축과 조각으로 그 권세를 과시했는지 베르사이유에서 절절하게 느꼈다. 그 자체가 감동을 부르는 아름다움이기는 했다. 후손들이 덕분에 먹고 살 만 했다. 그런데 스위스로 넘어오자 절대권력은 잘 모르겠고, 인간의 작품 대신 자연이 빚어낸, 아니 자연 그 자체가 주는 감동, 차원이 달랐다. 역시 후손들은 덕분에 관광수입이 대단할 듯 한데, 당대에 어느 쪽 시민이 더 행복했을까. 치열하게 자유와 평등, 박애를 위해 싸운 이들의 역사를 존경하지만, 스위스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사라진다. 더 뭘 따져물을 이유가 없었다. 겸허해졌다. 절대적 색감과 조형미는 인간이 따라한다는 자체가 불경. 

미리 여행기 좀 찾아본 딸이 비싼 신라면 먹느니 좀 준비하자고 해서, 컵라면을 가져갔었다. 융프라우의 신라면은 7.5 스위스프랑(약 9000원). 뜨거운 물만 사면 4스위스프랑(4800원)이다. 젓가락 값 1.5스위스프랑 별도ㅋ 알고보니 성인 기차표에는 누들 티켓 포함이라 그냥 준다. 융프라우 전망대에서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조심성 많은 딸은 거부했지만 아들은 신났다. (아래 왼쪽) 설산이라 긴팔 챙겼는데 별로 춥지는 않더라. 거기서 기차를 타고 한 구간을 내려온 뒤, 다음 역까지 걸었다. 그냥 보이는 모든 것이 알프스 화보. 미치는 줄 알았다. 너무 멋진 풍경만 펼쳐지니까 시간이 갈수록 감동지수는 떨어지고 2시간쯤 지나니 아이들의 불평지수는 높아지더란게 함정. 



이날 저녁은 인터라켄의 스위스 식당 NEU를 검색해서 찾았다. 퐁듀를 먹고 싶은 엄마와 한식이 그리운 아빠를 모두 만족시킨 한국 주인장의 스위스 식당. 인터라켄 도심 스왈롭스키 매장 옆골목이다. 다만 뢰스티는 비추. 이후 슬슬 도심 산책을 하는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옆 회에마테 잔디밭에 수백명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라, 소방대원까지?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보니..어느새 폭죽이 시작된다. 알고보니, 8월1일은 스위스 건국 기념일. 이 모든 행운을 일정 잘 짠 옆지기에게 돌렸다. 멀리 눈덮인 산을 배경으로 너른 잔디밭에서 불꽃 축제를 즐기다니. 

말이 많았지만, 사실 스위스는 그저 감상하면 된다. 그 자체로 놀라운 경험이다. 




산과 구름, 하늘. 신들의 나라 뷰. 이걸 보다보면.. 이보다 두 배 높을 히말라야를 감히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떼와 함께 하산하다니. 깊게 울리는 종을 목에 달고, 느릿느릿 산을 타는 녀석들. 덕분에 발걸음 마다 똥 주의보.


아래 사진은..다음날 피렌체로 출발하면서, 길 가다 건졌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는 비현실적 풍경. 스위스는 신기한 동네인게, 처음 들어갈 때는 프랑스어가 좀 나오는듯 하다가 바로 독어. 그리고 아래쪽으로 가니 이탈리아어를 쓰더라. 또 엄청나게 터널이 많이 나오는데... 산을 그렇게 마구 뚫어서 길을 내다니. 평소 같으면 환경영향평가 등 생태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에 귀 기울이겠지만..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싶게 관대해지더라. 물론 상황 전혀 모른다. 하지만 저런 풍경이 어딜가도 나오는 동네인데...괜찮지 않을까? 







Trackbacks 1 : Comments 4
  1. sky@maker.so 2013.08.19 16:40 신고 Modify/Delete Reply

    전 이차를 타도 저 차를 타도 느낌의 차이를 잘 모르겠더라구요. ㅎ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마냐 2013.08.20 01:49 신고 Modify/Delete

      저도 뭐 그리 전문가는 아닌지라ㅎㅎ 하지만 일본차 미국차 독일차는 대충 구분이 되던 시절이 있었죠. 가장 딱딱하고 무겁고 안정적인게 독일차, 소리 없이 부드러운게 일본차였죠. 요즘은 뚜벅이라 잘 모름다

      무튼, 또 봐주셔서 고맙습니당ㅎㅎ

  2. 딸기 2013.08.20 14:11 Modify/Delete Reply

    신기하당... 완전 화보네? 그냥 찍어도 저런 사진이 나오는 곳인가보지?
    넘넘 좋았겠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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