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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죽비가 아프다

소박한 리뷰/비소설 2008. 8. 28. 23:43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상세보기
정문태 지음 | 한겨레신문사 펴냄
저자는 지난 16년 동안 네팔, 스리랑카, 르완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인도네시아, 예멘 등의 40여 전쟁과 분쟁을 취재해 오면서 국제언론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전선에 참여한 전쟁기자 중 한 명으로...


(이 글은 2004년 10월에 남겼습니다)


밥벌이 와중에 서푼짜리 직업정신조차 팔아먹었나 보다. 책은 죽비처럼 뒤통수를 후려친다. 고백컨대 지난주 몇줄의 단신기사로 소개한뒤 편한 마음으로 펼쳐본 책은 안일한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저자는 `전선기자'다. `군을 따르거나 복종하는' 종군기자(從軍記者)라는 단어 자체가 전선을 뛰는 기자들의 자존심을 짓밟는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드문 기자다.
 
그는 `국가'로 위장한 `정부'가 저지르는 가장 극단적 정치행위로서의 전쟁을 감시해왔다. 아시아와 유럽의 전장 40여곳을 발로 뛰었다. 언론사들이 `환상'을 동원한 전쟁 돈벌이에 나서고, 군인과 동행하는 `임베드 프로그램'을 통해 `군언 동침'이라는 오욕만 남은 세상. 기자들이 승리만 전하는 `전령사' 노릇만 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양민학살의 일부는 줄일 수 있었다고 믿는 저자는 외로운 길을 택했다. 정부의 정치행위를 거드는 걸 애국심으로 착각하지 않는 기자정신의 선택이다.
 
눈꼴사나운 `전시언론통제'가 이뤄지는 것은 "전선기자들 투쟁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라며 고개를 숙이는 그는 "투쟁은 전쟁보도의 품질"이라고 단언한다. 불과 44일만에 10만명의 군인과 2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미국의 1차 이라크침공에 대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최소 희생자를 낸 현대적이고 깔끔한 전쟁"이라 자랑할 수 있던 것도 전선기자의 투쟁이 없었던 탓이다.
 
수많은 죽음들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그 의미를 알리는 일로써 `통곡'과 `찬송가'를 대신해온 기자의 취재기록. 버마와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코소보, 인도네시아 등의 전선을 지킨 그의 글은 국제정세를 제대로 바라보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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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처리한 책을 기어이 한주 늦게 리뷰를 하기도 처음이다. 책장을 펼쳐들자마자 이 책에서 헤어나올 수 없음을 알아챘다. 나도 용하다. 아니 딱하다. 이런 종류의 감정을 저리 800자 내외로 간단히 정리하다니.

95년이었다. 정문태 아저씨를 만난 건. 그의 르뽀기사가 TV 다큐로 나가게됐는데, 당시 어린 내눈에도 뭔가 있어보여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고운 인상이라 놀랐다. 감정이 별로 묻어나지 않는 눈빛이 서늘했던 기억만 남는다. 뭔 얘기를 했을까. 그후로 10년 가까운 시간. 그는 계속 전장을 누볐고, 나는 평범하게 안주했다. 그저 사소한 일에 툴툴거리며 예까지 왔다. 이런저런 소리를 해도 그 앞에서는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한 '전선기자'라는 점을 위안아닌 위안으로 삼으련다. 매우 드물고 특별한 사람이다.

전쟁과 언론에 대해 다시 돌아본다. 그의 지적은 서슬퍼렇다.

"전쟁이 돈 되는 물건이란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언론사들은 그 '환상'을 동원한 돈벌이에 넋을 잃었다...그렇게 종군기자에게 눈길이 쏠리다 보니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전쟁 자체는 뒤로 밀려난 채, 사람들은 종군기자가 전쟁보도랍시고 쏟아내는 잡담 같은 '감상문'을 통해 마치 영화 보듯 소설 읽듯 전쟁을 즐기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전선이란 특수환경에서 종군기자를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도 종군기자들의 '황금총'이다.
한 오스트레일리아 방송 취재팀이 전쟁다운 그림을 찍겠다고 필리핀 정부군에게 '방송용 퍼격'을 부탁해 민간을 살상했던 사건, 한 일본 방송기자가 캄보디아 전선에서 떼굴떼굴 뒹굴면서 '뉴스쇼'를 연출했던 것도, 오래전 한 한국 방송기자가 중동을 취재하면서 위험을 강조한답시고 '배경사격'을 부탁했던 일도 모두 '감시자'가 없던 탓이다.

9.11 이후.......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한 '전시언론통제'. 언론이 이토록 심각한 위기를 맞은 적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언론이 이토록 무뎌진 적이 없었고, 언론이 이토록 고분고분하게 정부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러니, 전쟁과 필연적 '적대관계'에 서야 할 언론이 요즘은 '공생관계'로 바뀌어버렸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그는 똑똑하게 전한다. 베트남전쟁이 역사상 최초로 국가(정부)가 수행하는 전쟁을 국민이 부정할 수도 있다는 준엄한 심판을 내리며, 지금까지 인류가 단 한번도 체험해 보지 못했던 '반전 운동'을 통해 빛나는 정신사를 창조한 건...`전선기자가 자유롭게 전선을 취재한 덕분'이라고. 지금처럼 군대에 빌붙어 훈련까지 받는 '종군기자'들이 얼마나 선배들의 정신을 오욕으로 물들였는지 모든 건 너무나 명징하다.

말그대로 사선을 넘나들지만 결코 과장하거나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기자다. 하지만 그의 글은 매우 시적이다. 전선을 지키는 기자의 글이 아름답다는 것은 어색하다고 생각하다가, 아니 너무 당연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실을 그대로 전할 때 글은 살아 날뛰게 마련인가 보다. 마치 현장에 있는듯 소름이 돋는다.

`이 칙칙한 흙냄새는 내가 돌아가 누워야 할 땅의 정체고, 귓바퀴를 간질이는 이 풀잎들 감촉은 내가 이 세상에 남겨 놓을 마지막 사연인가'- 적의 총격을 받으며 수풀에 납작 엎드렸던 상황.

"참호는 굳어버린 몸뚱어리와 멈춰버린 의식이 꾸역꾸역 토해낸 쓰레기 같은 정서들로 썩어 문드러진다. 참호 속에 포탄이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은 불쾌함, 눈알이 빠지고 몸통이 갈기갈기 찢기는 순간들을 떠올리는 괴로움, 멍멍한 귓구멍에서부터 쏜살같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충격, 그리고 겁에 질려 아랫도리가 젖어드는 신참을 쳐다보며 인간미를 느끼는 과장된 위안들. 이런 것들이 '나'를 죽이고자 애쓰는 상대를 피해 머리를 처박고 있는, 그 땅속 1.2m 참호란 놈 정체다...참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무덤이다. 하여 참호는 인류 최악의 건축물이다."

따로 옮겨적기도 했지만, 현장을 지키면 단어 하나 하나가 정치적 판단이다. 쉽게 쓰는 글은 위험하다. 그가 '시위'라는 단어에 '평화', `비폭력',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곱씹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중립과 객관적 보도라는 얼치기 원칙에 대한 질타로 들린다.

"내가 겪었던 가장 비열한 전선을 꼽으라면, 그건 문타르 국경 건널목이었다. 가장 위험한 전선을 꼽으라면, 그건 문타르 국경 건널목이었다. 가장 분노한 전선을 꼽으라면 그건 문타르 국경 건널목이었다. 2000년 제2차 인티파다..이스라엘 군 총성이 울릴 때마다 팔레스타인 아이 하나가 어김없이 쓰러졌다....취재진에게도 조준사격을 하는 상황. 무기력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촬영은 물건너갔다. 그러나 기자들은 아무도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끝까지 바라보기라도 해야 한다. 눈알 속에라도 똑똑히 이 학살 현장을 담아야 한다" 분노한 기자들 사이에 말없는 신호가 오갔다....그건 학살이었다. 그건 전쟁터였다. 시위 진압이라니, 나는 그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돌팔매질을 '시위'로, 또 그 장소를 '시위 현장'이라 불러 교묘하게 사태를 왜곡한 국제언론에 침을 뱉었다...당시 첫 현장발 기사를 날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생각 없이 '시위'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용어' 하나가 지닌 엄청난 왜곡에 눈을 떴다.
 
군인들이 중무장 공격용 무기로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했다면 그건 명백한 학살행위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분명 그런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모든 국제언론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사용한 '시위'라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렇게 왜곡되어 버린 용어 하나 탓에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늘 '이중희생'을 당해 왔다. 하여 이스라엘은 늘 시위 진압만 하는 온당한 주체로 여겨져 왔고,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은 늘 테러리스트로 몰려 왔다."
 
"나는 전선에서 사라져 가는 그 숱한 죽음들을 보면서 비로소 '평화'라든지 '비폭력'이라는 말들이 지닌 속뜻을 깨달았다. 평화는 힘센 놈들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다. 비폭력은 그놈들이 뱉어낸 거짓말에 쳐준 맞장구였다. 그 둘이 함께 먹고사는 공생관계 속에서 세상은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왔다."

"지금까지 테러리스트라 불린 이들을 수도 없이 취재해왔지만 아직도 '테러리스트'가 무슨 말인지 그 정확한 뜻을 모른다. 그저 어림짐작으로 '테러리스트란 미국에 해로운 행위를 하는 개인, 집단, 국가' 쯤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이건 '반미'라는 내 고질병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그렇게 드러난 탓이다. 제아무리 흉포해도 미국에 해를 끼치지 않거나, 미국이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엔 모두 정의의 사도 반열에 오르는데"

그는 잘난척 하지 않기 위해 계약금을 낼름 받아먹고 3년을 고민했단다. 원래 책을 쓰지 않으리라 했단다. 하지만 일단 펜을 든뒤 그는 세상에 다시 없이 당당하고 거침없다. 자아비판마저 그렇다. 그는 이미지를 먹고 사는 혁명의 현실을 감안, 혁명속의 `불신' 등은 자기검열로 묻어버린 경험을 토로한다. "시민을 대량 학살하고 정치를 탈취한 군사독재는 그게 한국에서든 미얀마에서든 내게 적이었다"고 외치는 그는 "내 기사가 군인독재자들을 이롭게 한다는 건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배반이라 믿었다"고 한다. 감히 중립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10년을 공들였던 동티모르 취재. 절체절명의 순간에 동티모르 딜리를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는 샤나나 구스마오 인터뷰라는 특종을 전송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지만, 탈출하는 비행기에서 동료 기자들의 환호를 들으며 절망했단다. 왜 그깟 커버스토리 하나에 동티모르를 버렸던가 그의 후회는 절절했다. '좋은 기자'가 아니라 `유명한 기자'가 되고픈 마음이 컸던게 아닐까 스스로 질책한다. 그는 후일 "당신같은 기자들에게 감사한다"는 구스마오의 말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혼자 통곡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독후감이라기 보다, 보기드문 기자에 대한 경배이자 팬레터 같다. 어쩔 수 없다. 전선기자의 고백은 어느 한 구절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한다.

"'직업관'으로만 전선에 올랐노라 떠벌린다면 그건 틀림없이 거짓말이다. 내 몸에는 이미 G형 (Gypsy) 피의 논리가 흘고 있었다. 내가 '여행지'로 전선을 택했다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번 두 번 전선에 오르면서 '전선중독'현상이 나타났다....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건 '역사적 현장에 내가 서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같은게 아니었던가 싶다....그게 나를 위로하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착각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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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썼던 리뷰를 굳이 다시 꺼내든다. 블로그를 새로 열고 정리하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목소리들이 있다. 정문태님이 그렇다.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시민들로부터 군대 감시 기능을 위임받은 이들이다. 따라서 전선에 오른 기자들이 복종할 의무를 가진 대상은 시민 뿐이다. 하여 나는 기자란 전선에 오르는 순간부터 자신이 속한 국가나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을 돈 들여 파견한 언론사마저 배신하고 시민 편에 서야 옳다는 믿음을 지녀왔다........."

기자는 늘 날을 세워야 한다. 싸워야 한다. 그리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마땅하다. 데스크가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기사를 뜯어고치는 것에 길들여지면 안된다. 하늘같은 선배의 논리에도 삐딱한 시선을 던져보고, 대들어야 한다. 안다. 쉽지 않다. 나는 끝내 도망쳤다. 미안하다. 상황은 10년전에 비해서도 더 나빠졌다. 미디어의 위기다. 한데 그럴수록 더 싸워야 한다. 기자란 족속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기자'란 업을 안고 살아간다면, 더 도망칠 곳이 없다.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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