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겉핥기 여행도 느낄건 느낀다
도쿄는 예전에 모터쇼 출장만 두번 갔던 도시. 당연히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이틀을 보냈으니, 또 당연하게도 겉핥기 식 감상이다.
기이하게 신성한 메이지 신궁
압도적 숲이다. 도리이(鳥居)라는 저 일본 특유의 신령스러운 문을 거쳐 한참을 걸었다. 거대한 길. 일본을 근대 자본주의로 이끈 메이지 유신의 주인공일 메이지 천황, 혹은 메이지 일왕이라 부르는 그분을 모신 사당이다. 조선을 비롯해 세계 침략을 주도했던 지도자. 그를 모시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어렴풋 보이는 곳이다.
이 기이한 공간, 속세와 떨어진 완벽한 자연에 거대한 목조 도리이와 사당으로 구성된 메이지 신궁의 본모습은 사실 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내려보면서 더 확실하게 다가왔다. 초현대 고층 빌딩 너머, 회색 도시의 한 가운데 거대한 녹색 섬이다. 도시가 자라고 발전하는 가운데 시간이 멈춘 듯 하다. 그 시대의 영광, 담대한 정복의 꿈을 보존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보면 과장일까.
이 전경을 허락한 전망대는 도쿄타워가 아니라, 도쿄도청이다. 무료로 개방된 꼭대기 전망대.
사실 여행 이튿날 일정은 원래 가마쿠라라는 곳이었는데, 하루이틀 뻐근하던 허리가 여행 첫날 일정에 맛이 가는 바람에 포기. 대신 살살 무리하지 않으려고 고른 곳이 전망이나 보자는 거였는데, 기대 이상 도쿄를 제대로 만나는 느낌이었다.
일본 사람들
첫날 메이지 신궁에 이어 찾은 곳은 하라주쿠. 우리로 치면 홍대 부근? 저 옛스런 역사도 인상적이지만, 도쿄의 남녀를 보는 재미가 왠만한 관광지보다 더 재미있었다. 도무지 정상적으로 차분한 차림의 이들을 만나기 힘든 거리. 록 페스티발에서 금방 나올듯한 머리 모양부터 대체 왜 저렇게 입고 다닐까 싶은 의상들. 과감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강렬한 자기 주장. 뭔가 드러내야 할 것 같은 강박이라도 있는지..그런데 그 나름의 모습이 예뻤다. 요즘 애들 왜 이래, 라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본능 탓일까. 그들의 패션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라도 읽어낼 태세로 들여다봐서인지.
그리고,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많았다. 이날 하라주쿠도, 다음날 신주쿠도...도심에서 여행자가 다리를 쉴 찻집, 카페엔 도무지 자리가 안났다. 스타벅스엔 줄의 끝이 안 보였다. 쇼핑몰과 몰 사이의 통로복도에 주저앉아 담소하는 젊은이들의 행렬에 당황했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 아무리 그런 곳만 골라 다녔다고 하지만, 저리 많이 나올 수가 있을까. 집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건 아닐까. 세대당 주거면적이 우리보다 훨씬 작은 일본의 집안에서 온 가족이 버틴다는건 좀 힘든걸까. 여행자는 짐작만 이리저리 해보지만.
운이 좋았던 건, 여행 첫날 저녁에 동네 마츠리(축제)를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K신문 특파원인 S선배네 가족 휴가에 살짝 빌붙기를 잘했지. 우리는 옹기종기 길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고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차례로 행렬을 이어가더니, 어른들 팀까지 등장했다. 동네 마츠리라 생각했는데, 동원(?)된 인력 규모는 엄청났다. 아마 도쿄 전 지역 대표선수들이 나온 분위기? 북과 피리(?)를 이용한 어른들의 공연(?)은 오래 준비하고 공들인 티가 드러났다. 사실 조금 틀리고 못해도 상관없다는 듯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기는 했다. 얼마전 우리 동네 무슨 축제랍시고 학교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아이들 공연은 뒷전이고 지자체장, 의원님들이 상석을 지키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무엇보다 남녀노소 세대를 아우르는데다 서로 장기자랑 하듯 열을 내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왠지 부러운 생각에 우리는 관광객들 즐겁게 해줄 축제 뭐 없나,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촛불축제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신나는 관광상품으로 키워야 할텐데.
도쿄 시민들이 한결같이 "힘내라~"는 메시지를 담아 마츠리를 즐기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끔찍한 재앙 옆에서 다독이고 추스리는 이면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까지도 후쿠시마현 농산물을 사주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그 먹거리를 사주고 집에 와서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는 일본인들. 이웃나라 여행자도 그저 잘 버티고, 잘 이겨내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보탰다. (독도 난리친 분들은 일본 내에서도 존재감 없는 분들이라는데...그런데 너무 흥분말자. 일본의 미래는 더불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 후유증이 25년인가 후에 나타난다고..노인들은 별 신경 안 쓴다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혹은 언젠가 자라서 아이를 낳을 세대도 미지의 불안감을 그저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남의 일이라 말자..)
여튼, 이 마츠리 와중에 셀카질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찰칵....한건지, 언니들이 예뻐서 옆지기가 찍은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ㅋ
마츠리 행렬이 지나가는 길 양쪽으로 옹기종기 모여든 시민들. 그 와중에 단연 내 눈길을 사로잡은 남녀다. 나이든 이 특유의 여유로움과 우아함, 깔끔함. 길거리에서 파는 먹거리를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두런두런 얘기 나누고 박수치고 웃는 모습에, 질투와 부러움 같은 묘한 감정이 들더라. 더불어 나이드는 파트너란 아름답지 아니한가. 야박하게 이웃나라 블로그 까지 오셔서 초상권 따질 분들은 아닐거 같고.
이분들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은 사실 일요일 낮 신주쿠 야끼도리 골목의 한 술집에서 만난 남자들 덕분이다. 점심에 가볍게(?) 회전스시 몇점 먹고 다니던 우리는 거의 관광명소가 됐다는 야끼도리 골목에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러 들어갔는데, 아니 왠 남자들이 그리 많은지. 더구나 혼자 늦은 점심에 한잔 반주를 곁들이는 중년남들이 이곳저곳 눈에 띄었다. 이날 저녁 도쿄에 특파원으로 체류중인 옆지기 친구에게 들어보니, 일본 50대 남자 7~8명중 1명이 결혼을 평생 못해본 싱글남이란다. 더 늘고 있다는데....이건 경제력 탓이 크다고 한다. 결혼생활을 유지할만큼의 능력이 안되면 결혼을 못하거나 안하는 상황. 먹고 사는 생존일뿐,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어쩌면 많이 배우고 많이 버는 이들의 특권이 되지 않을까, 이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지 않을까, 일본이 조금 앞서 겪고 있는게 아닐까...결혼하고 같이 늙어가는 것조차 좀 사는 사람들만 누리게 된다면...
하여간에...이 여행,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은 도쿄에 이어 오사카로 넘어간 첫날이 마침 오사카에서 일년에 한번 있다는 대형 마츠리 날. 역시 오사카에 체류중인 옆지기 후배 Y님 도움으로 행렬에 낄 수 있었다. 얼마나 사람이 많았는지, 이 사진으로 다 담았나 모르겠다. 더불어 먹다 죽는다는..맛고장 오사카에서 온갖 길거리 먹거리도 다 만났으니, 근사하지 않은가.
오사카 마츠리는 하나비, 불꽃축제라고 했는데, 실제 불꽃놀이는 제대로 못봤다. 이게 일본의 3대 마츠리인 오사카 텐진마츠리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제대로 사진 올려주신 분이 있더라. 우리는 엄청난 인파 속에 강에 띄워진 배, 거리를 누빈 가마는 구경했어도 정작 불꽃은 제대로 안 보이는 자리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니 불꽃도 안보이는 자리에 뭔 사람이 그리 많은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