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숏> 사악한 월스트리트의 민낯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어떻게 신용평가기관들을 속여서 부실한 대출 더미에 축복을 내리게 했는지, 평범한 미국인들이 어떻게 수조 달러를 대출받을 수 있었는지..그런 대출을 위험 없는 증권으로 바꾸는 기계가 얼마나 복잡했기에 투자자들도 위험을 평가하지 못했는지…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 그러나 폭탄이 터지기 전에는 여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조차 없었다.
<머니볼>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의 최신작.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 위를 석권한 금융 논픽션.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시장의 몰락에 베팅한 이들을 주인공 삼았다. 책을 보면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둔게 느껴지는데, <빅쇼트>라는 이름으로 곧 개봉한다. 주인공 마이클 베리 역할은 크리스찬 베일! “채권부도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몰락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했던 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책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고는 대개 권력자들이 치는데, 고통은 약자에게 먼저 온다. 권력자들은 수천 만 달러를 다 챙겨서 빠져나갔고. 손실은 세금으로 메꿨다. 그 과정에서 수백 만이 집을 잃고 파산했다. 책은 독서모임 #트레바리 에서 함께 읽었고, 참여자 상당수가 금융쪽 전문가라 색다른 포인트에서 즐거웠다. 다만, 다른 이들의 의견에 수긍 않고 바로 반박한 부분이 있는데, '그들 탓만 할 수 있을까?' 라는 지점이다. 어차피 월가는 계속 잘 굴러가고. 실패한 이들은 다 위에서 시키는대로 했는데?.. 나는 그들이 사악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사악했다.
첫째, 그들은 약자를 등쳤다. 미국 중하층이 몰락했다. 집과 차를 잃었다. 이 책에는 그런 사연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침 직전에 읽은 책, 엘리자베스 워런의 자서전 <싸울 기회>에는 금융위기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한 개인, 가족들이 겪은 절망들은 지옥 같다. 그 피해를 만든게 월가 사람들이다. 나쁘다.
모건스탠리 하위 허블러. 2006년 2500만 달러를 받았고, 2007년에는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허블러 베팅의 손실 예상? 손실이 10%가 되면 100만명이 노숙자가 될 상황.. 절대 그런 손실은 없을거라 했으나..그 손실은 결국 40%에 달했다. 2007년 사임한 그가 남긴 손실은 90억 달러 이상. (329쪽)
허블러는 수천 만 달러 챙겨나갔지만, 그가 행한 거래로 인해 결국 수백만 명이 노숙자가 됐다. 모건스탠리가 휘청거리자 정부가 세금으로 살려줬다. 어차피 허블러 같은 이들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은 미국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 손실규모를 1조 달러로 계산.. 70억 달러 손실 입었다던 메릴린치는 손실액이 500억 달러가 넘는다고 인정. 씨티그룹은 약 600억 달러 손실.. 재무부 7천억 구제금융으로 부족했다. 1조 달러 이상의 잘못된 투자 손실은 월가 대형회사들에서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넘어갔다.
불가사의한 상품. CDO(부채담보부증권)의 정체를 조사하던 찰리는 "맙소사, 이건 완전 미친 짓이잖아. 사기야 사기”라고 말했다. 찰리와 친구들이 운영하던 콘월캐피털은 베어스턴스 몰락에 베팅, 30만 달러를 투자해 1억500만달러를 벌었다.
둘째, 그들은 알고도 그랬다.
월가의 오찬 행사. 금융기관 CEO는 ‘free checking model(최저잔고가 없는 계좌)’에 대한 질문을 받자 “녹음기를 꺼달라”고 말한 뒤.. “이 상품을 이용하는 은행들은 수수료를 부과할 경우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훨씬 더 많이 강탈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45쪽)
“그런 문제를 주시하는 감독관들이 있냐”고 질문했던 스티브는 “없다”는 대답을 듣고 ‘가난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시스템’이라 생각했다.
드러난 위험을 부정직하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낮추어 트리플B등급을 트리플A등급으로 바꾸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 이것이 바로 골드만삭스가 하는 일.. 사실상 CDO는 미국의 중하층 주민들을 위한 신용세탁 서비스였다. 월가에 있어서는 납을 금으로 만드는 기계였다. (124쪽)
90년대 중반 300억 달러 수준의 서브프라임 대출 규모는 2005년 6250억 달러에 달했다. 탐욕은 시장을 망가뜨리면서도 지칠 줄을 몰랐다.
셋째, 그들은 '할 일'을 안했다. 악의 평범성
신용평가기관들은 고객인 은행들을 위해 채권 등급 평가를 멋대로 했다. 아주 솔직했던 무디스 여직원 에피소드. 서브프라임 모기지채권을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상사 허락 없으면 채권 등급을 낮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등급 낮추고 싶은 채권 목록 100개를 올리면 그 어떤 이유도 듣지 못한 채 20개가 적힌 목록을 받았다고.
신용평가기관들도 아는게 없었다. 물어봐도 “분석중”이라고. 지난 3년 수백 건의 CDO 거래가 이뤄졌고, 규모가 4000억 달러에 이르렀음에도, 그와 같은 거래에 대한 조사는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상사가 막아서? 혹은 조직이 다 같이 미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그랬듯, 평범한 가장이거나 선량한 이웃이겠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양심의 가책도 없었겠지. 워커홀릭으로서 근면했겠지. 그러나 아무 생각 없었던게 죄다. 무슨 짓을 하는지, 자신의 일이 뭔지, 혹은 조직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성찰이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당황했다. 가장 똑똑한 이들의 모여든 그 동네에서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금융상품을 이해하는 이는 실제 별로 없었고. 감독과 감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범죄다.
월가는 여전하다
가장 잘난 이들이 모여서 사악하고 무능했다는 걸 전세계에 알렸다. 빅숏은 이 전쟁에서 이긴 단 몇 사람들의 이야기. 수조 달러 규모의 서브프라임모기지시장 붕괴에 노골적으로 베팅한 이들이다. 그들은 사실상 세계 재정시스템 몰락에 베팅했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왕따, 괴짜였고 세상을 바꿀 힘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월가의 괴물 같은 시스템이 작동하는 현실이다. 여전히 엄청난 부를 챙겨간다. 이런 상태가 지속가능할까? 마침 금융기관과 붙었던 엘리자베스 워런의 자서전 덕분에 생각이 이어진다. 그는 파산법 전문가로서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싸웠다. 그녀가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당시, 월스트리트는 상대방 공화당 후보에게 35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감시자가 의회에 오는게 달갑지 않다는 노골적 저항. 그녀는 4200만달러를 모았는데 80%가 50달러 이하 소액이었다. 그 책은 감동적이었으나, 이제는 이해한다. 금융 소비자들이 얼마나 화가 났었을지. 수십 만명이 대신 싸워달라고 후원에 직접 나선 맥락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미국이란 나라가 이렇게 작동되는 걸 보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투명성과 감시
시장의 투명성이 감소하고 증권이 점점 복잡해질수록 월가의 대형 회사들의 트레이딩 부서는 논쟁을 통해 더욱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132쪽)
“서브프라임 모기지 비율이 95%에 달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죠. CEO 카사노도 분명 몰랐어요” 한 트레이더가 말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다들 그리 무지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당시에는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지를 전제조건을 삼았고, 무지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했다 (145쪽)
금융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일까. #트레바리 모임에서 이 책의 발제자 H님이 던진 질문 중 하나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자금을 동원할 수 있고, 시장을 예측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금융의 순기능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복잡해진 파생상품의 시대에 잘 모르겠다. 전문가인 또다른 H님은 "위험을 헷지하게 해준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라는 책에서 프레드 로델의 지적이 떠올랐다. "부족 시대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엔 성직자가..그리고 오늘날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들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
정보를 독점하거나 조금 앞선 기술이 권력이다. 피케티 말대로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앞서는, 돈이 돈을 버는 시대. 금융은 조금 과하게 말해 불평등 심화의 주역이다. 투명하지 않을수록, 복잡할수록 눈 뜨고 코 베이는 이들이 늘어난다.
(난리가 났지만) 오늘날 골드만삭스에 그 속사정을 물어봤자 명쾌한 설명을 듣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투명성 부족은 골드만삭스 주주들에까지 퍼져 있다. “기업 해부에 능한 회계사 팀이 골드만삭스의 장부를 조사한다면 골드만삭스의 뛰어난 은폐능력에 충격을 받을 겁니다.” .. 전직 AIG FP 직원 (129쪽)
이것은 마이클 루이스의 또다른 책 <플래시 보이스>의 서평. 초단타매매의 폐해를 지적하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에 연간 2000만 달러의 망 비용을 제시하는 광케이블 회사에, 어느 월가의 은행은 4000만 달러를 내겠다고 제안한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비싼 망 비용을 감당하면, 단 몇 초간의 승부로 더 많이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정상일까? 이게 최신 금융기법일까? 복잡할 뿐더러 그야말로 돈이 돈을 만드는 세상. Y님은 시장을 보는 눈을 키우면 정직하게 기회를 주는 곳이 금융이라 했지만, 그것도 자산가들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워런이 한 일 중에는 복잡한 금융 약관을 쉬운 말로 바꾸는 작업이 있었다. 어려운 설명 대신 알아듣게 알려주는 것이 순진하게 약탈당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투명성을 높이고 감독을 제대로 하는 것이 시스템 몰락을 막는 길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역할
마이클 루이스, 성공한 트레이더였고 시스템 내부고발자로 나선 그는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황금펜 필자'라고. 개부럽! 그런데 P님이 던져준 링크를 보니.. 백악관에게 특별히 허락받고 몇 달 간 오바마 밀착 취재까지 했다! 진짜 부럽부럽! 온갖 언론인들 대신 마이클 루이스를 지명한 자체가 매우 상징적이다. (영어가 딸려서 좀 읽다 말았지만..흑흑)
책을 읽으면서 금융상품에 대한, 시장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게 아쉬웠다. 디테일한 건 거의 잘 모르고 넘겼다. 하지만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미국의 금융위기를 내부의 시선으로 다시 볼 수 있다. 금융 전문가들이 보면 훨씬 재미있을지 궁금하다. 한국이 언급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극소수 승자가 이 사태를 회고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사태를 잘못 해석했어요. 우리는 언제나 월가 회사들이 트리플A등급 CDO를 한국 농산업체와 같은 곳에 팔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모두 파산하는걸 보니 그들은 그걸 보유하고 있었던 겁니다.
쓰레기를 어딘가에 넘긴게 아니라 갖고 있었다니, 월가도 바보였구나 같은 느낌? 근데 마침 그 쓰레기를 받아주는 곳이 한국?? 당황했는데, 현황을 잘 모르니 패쓰.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국에서도 마이클 루이스 같은 이가 나와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