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기록은 힘이 세다
Светлана Алексиевич 스베뜰라나 알렉시예비치. 2015년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의 저술들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기록한 기념비들”이라고 평했다. 문학이 아니라 기록문학이라고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저널리스트로서 2차 대전 참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했다. 깊이 각인된 상처들을 평생 숨기고 살았던 여자들이 딸 같은 기자에게 마음을 열었다. 주저하던 이들은 어느새 한풀이를 하듯, 절절하게 털어놓았다. 그냥 그런 기록이다. 참전한 여자들도,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여자들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이가 그때까지 없었다고 봐야겠다. 그것은 유독 여성 참전이 활발했던 그 나라의 특수성이기도 하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귀하다. 여자들의 이야기. 여자들은 참전해서도, 남자들이 떠난 마을에 남아서도 약자로서 고통받았다.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졌다.
2차 대전에서 1060만 명의 소련 병사가 전사했다. 포로 생활 중 260만 명의 소련 병사가 죽었다. 소련의 민간인 피해는 1500만에서 최대 25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의 전쟁에는..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 있다..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소총수, 저격병, 전차병, 포병대원, 항공기 조종사. 그녀들의 전쟁은 그들의 전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기억해주지 않는다. 기록도 없었다고 봐야겠지.
여자들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더 견딜 수 없는, 원치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자에게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더 가혹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한편으로 깊이 동의하고, 한편으로는 잘 모르겠다. 새끼를 지키고자 할 때, 동물들도 암컷이 더 사납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 연대의 마음이라면 여자들이 더 유연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2년째 계속되는 출판사의 거절. 답신은 매번 똑같다. 전쟁이 너무 무섭게 묘사됐다는..도대체 어떤게 제대로 된 전쟁이란 말인가? 장군들이나 현명한 총사령관이 등장하는 전쟁? 피나 더러운 이가 나오지 않는 전쟁? 영웅이나 공훈을 이야기?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지만, 출판조차 쉽지 않았던 책이다. 그게 현실이다. 무수히 많은 무용담으로 애국심을 선동하는 전쟁 이야기. 그러나 현명하고 용맹무쌍한 장군이 등장하거나, 19금 폭력물에 해당되는 장면은 나오지 않거나, 소년병사든 장군이든 영웅이 등장하는 그런 전쟁만.. 전쟁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전쟁의 민낯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지. 마치 비디오게임을 하듯, 폭격 생중계가 전쟁의 전부가 아니듯. 이건 매우 중요한 얘기다.
새벽 4시 딸에게 죽을 주고 문을 잠근후 비행을 떠났어. 저녁에 캠프로 돌아오면 죽을 먹은건지 안먹은건지 딸아이는 온몸이 죽으로 범벅. 울기도 지쳤는지 힘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지. 제 아빠를 닮은 그 큰 눈으로..
한 여성 전투기 조종사의 고백이었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이 안된다...
그런데, 주말에 화제가 됐던 SBS '엄마의 전쟁'. 한국의 워킹맘들, 혹은 다른 어느 나라의 엄마들도 수십 년 세월에도 불구, 그렇게 크게 나아지지는 않은듯. 감히 전시상황 병사 엄마의 마음과 비교하기는 미안하지만. '엄마의 전쟁' 에피소드도 들어보면 미친다. 내가 사는건 뭐 다를까.
독일군이 우리 빨치산 은신처를 알아버렸어. 포위당했지. 우리는 몇날 며칠 몇주를 머리만 내놓고 늪에 잠겨 있었지. 여자통신병이 있었는데 출산한지 얼마 안됐고. 아이가 울어댔어. 독일군 추격대는 코앞. 그녀가 스스로 포대기를 물속에 한참...
저 장면 읽다가 울었다. 갓난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여자. 모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시켜야 했던 아가. 사람들은 대장이 어떻게 해주기만 바랬고.. 전쟁은 그렇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한다. 저 엄마는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르고, 다른 이들도 구했을지 모르지만. 살아도 지옥이였겠지.
사방이 불바다였어. 사람들이 산 채로 마을들과 함께 불태워졌지. 놈들은 학교로 교회로 사람들을 몰아넣고는..빙 둘러 석유를 뿌렸어.. 불길에 타고 남은 뼛조각을 모으러 다녔어. 조그만 옷 조각이라도 발견하면 가족을 알아봤어
사실 이 책은 장면마다 기가 막혀서... 가슴에 돌덩이를 계속 던져대는데. 그 중에서도 숨이 컥 막히는 장면들을 주로 메모했다. 산 채로 사람들을 태워죽이는게 전쟁이다. 그 마을에서 화를 면한 이들은 숯더미 속에서 가족을 찾아야 했다. 상상도 안된다.
남자들은 전쟁 후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소녀병사)들은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어.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심지어 저들은 화냥년 취급도 받았다고 한다. 실제 살아남기 위해서 장교를 애인 삼아 지낸 사례가 없지 않았을테고, 그런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대다수는 그저 참전 용사. 그러나 용감한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소녀병사들은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렇다.
나는 거대한 역사를 가닿을수 있는 작은 역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뭐라도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한 사람의 영혼이 역사보다 난해하다. 살아있는 눈물이고 감정이기에.. 길은 하나.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거대한 프레임에서 전쟁은 국가의 이해관계로 움직인다. 그러나 작은 역사로 들어가면 거기에 사람이 있다. 종종 전쟁영화에서 빼놓기 일쑤인 사람.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봐야, 그 공포와 절망이 오롯이 다가온다. 드론 폭격기의 발사 버튼을 원격 조종하는 전투에서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말그대로 뼈와 살이 튀는 처절한 전장에 사람이 있다.
이런 기록의 가치는 노벨문학상 만으로 따지긴 어렵지만, 상이 돌아가서 다행이다 싶다. 고난을 더 힘들게 겪고도 잊혀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온갖 문전박대 속에 기록한 저 여자는 얼마나 또 힘들었을까. 그러나 기록은 힘이 세다. 이것은 그녀의 또다른 전쟁. 사람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그녀의 또다른 이야기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자신이 없어서.. 아직 못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