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삶을 법으로 선 그을 때
(파란 글씨는 트윗이다.. 요즘엔 트윗만 하고 넘어가는 책과 굳이 따로 이렇게 정리하는 책, 두 종류가 있다..)
종교를 이유로 수혈을 거부, 신의 뜻대로 죽음을 맞겠다는 17세 소년. 강제 수혈 청하는 병원 손을 들어줄지..인간적 고뇌와 법리적 판단. 59세 판사 피오나. 완벽한 동시에 불안한 영혼의 주인공.
피오나는..아동이 성장하며 추구할 목표를 열거했다. 경제적 도덕적 자유, 미덕, 공감과 이타심, 어려운 과제 수행을 통해 충족감을 얻는 직업, 사적 관계망 확장, 타인의 존중, 더 큰 존재 의미의 추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으로 정의되는..
"여호와의 증인이 수혈을 거부하도록 명령받은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창세기에 적혀 있어요. 천지창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입니다."
"1945년의 일이에요. 헨리 씨. 그 전까지 수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게 인간의 존엄성. 다만 종교조차 아이에게 해로울 수 있다면? 부모조차 아이를 반쪽짜리 사고를 하도록 만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면? 법은 아이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 샴쌍둥이 중 한 명만 구하는 결정을 법이?
인간은 신이 아니다. 사회의 룰은 종교가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시대다.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샴쌍동이의 한 아이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수술을 판사가 결정한다? 법의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피오나는 이런 사건 들에 영혼이 묶인다. 신이 아닌 탓이다.
법질서는 종교와도 부딪치고, 개인의 윤리와도 충돌한다. 무엇보다 법을 다루는 인간조차 신처럼 건조하지 않다. 스스로의 판단에 회의하고 번민하는게 인간이다. 사적인 내밀한 불안이 들킬까 괴롭고, 그로 인해 경계를 넘기도 한다. 신의 뜻에 따르면 죽음 조차 거부할 수 없는 숭고한 책무라고 생각하는 신앙은 버겁다. 신앙은 존중받지만, 법의 이름으로 개입할 여지는 당사자가 아이냐는 점. '칠드런 액트', 즉 '어린이 법'이라는 제목은 문명 사회가 어린이를 지켜줘야 한다는 도덕률에서 출발한다. 어린이는 피오나가 만나는 비슷비슷한 현실적 사례 속에 멍들고 있다. 그리고 아이는 '젊고 어리석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젊고 어리석은 댓가는 가볍지 않다.
당신이 언젠가 말했잖아. 오래 함께 지낸 부부는 남매 같은 사이를 염원할 거라고. 우린 이룬거야..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죽기 전에 한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열락, 흥분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경험. 기억은 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혼란과 밀회와 실망과 곤란한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뿐이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잠자리에 적응하는 불편함, 새로이 고안해야 하는 애정 표현, 그 모든 속임수들. 결국 다가올 필연적 사태 수습의 과정..아니, 나는..
찰라인지 아닌지 모를 바람. 오래된 부부 관계는 위태롭고, 서로 자신에게 질릴 정도로 냉기를 뿜어대기도..투명인간처럼 거리를 두기도..섬세한 묘사에 함께 숨이 멎을듯 몰입. 무겁고 탁한 공기까지 전해진다. 이언 매큐언. 오랜만이지만 대단
소설은 피오나가 판사로서 신을 대리하여 결정해야 하는 일들만 다루는게 아니다. 공교롭게도 피오나는 오랜 반려자 남편의 일탈 앞에서 영혼이 쪼그라드는 상태다. 매번 법정에서 다루던 이혼 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평판 사회의 상류계급을 유지해온 그녀에게 보통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바람을 피고 돌아오겠노라 하는 늙은 남편은 어찌할 것인가.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면.
중반 이후, 이들 부부에 대한 묘사는 어찌나 생생한지 트윗에 올린 바, '무겁고 탁한 공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미묘한 신경전 혹은 거칠게 털어내는 속내. 서로 스스로에게 질려서 물러나고, 침묵하는 부부. 적당한 거리감을 재는 슬픈 밀당. 어쩐지 달콤한 어감을 주는 밀당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젊은 것들의 관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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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한 추천은 적지 않았다. 이안 매큐언에 대한 오래된 신뢰도 있다. 특히 최근 페이스북에서 책 얘기를 해준 김희경 선배 덕분에 읽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에서 아이들 구호를 일로 하는 선배는 마침.. 어린이에 대한 글을 하나 쓰셨다. [야 한국사회]두려워해야 하는 일. '칠드런 액트'라는, 어린이법을 둘러싼 어른의 이야기를 봤다면, 한 번 읽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