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불의에 맞서는 법을 가르치다
최근 덜 읽고 덜 썼다. 이러면 안되지 싶었지만 인생사 늘 정답만 있지 않다.
대신 게임을 했다. 두둥. '2048'. 모바일 게임은 틈틈이 할 수 있는게 장점. 무엇보다 잠들기 직전까지 놓지 않고 할 수 있는게 장점. 옆지기는 감히 한심하다는 발언을 밤마다 했다. 흥. 소싯적 TV 화면에 대고 쏘는 총이라든지, 핸들을 갖추고 온갖 게임을 섭렵했으며, 신혼 시절 밤마다 마눌 대신 라라 크로포드와 놀던 남자다.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위 등 시리즈 바뀔 때마다 업글해가며, 마눌 몰래 아들 데리고 게임팩 사러 가던 남자다. 어찌 감히. 그 복잡한 게임은 있어보이고, 나의 게임은 없어 보였단 말인가. 복잡한 게임에 취미를 붙여보지 못한 나는 소싯적 지뢰찾기, 스페이드 게임으로 출발하여, 오늘날 이러고 있었다.
주변에 저 게임에 몰입한 이가 너무 많았다. Y는 함께 택시 타고 이동할 때도 저걸 하고 있었다. C와 S, S2 오라버니는 새로운 기록을 경쟁하듯 올렸다.
나는 지진아였다. 도무지 2048을 깰 수가 없었다. 1024까지는 몇 번을 가봤지만 안됐다. 이니셜로 등장한 모든 이들이 2048을 달성했고, 4096을 한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저 게임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혼자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K. 천재소녀라는 별명답게 불과 몇 주 만에 131072 라는 숫자를 달성했다. 저 네모칸에 다 안들어가 숫자가 삐져나갈 지경이더라.
넘사벽 좌절인데, 오기도 생겼다. 나름 바쁜 인생인데, 늦은 밤 다만 10분, 20분이라도 저 게임을 했다. 그 중간 중간 10분씩 더 했다.. 게임성적은 시간 투입량과 비례한다. 2048을 깼다. 그 다음엔 2048 정도는 쉬운 목표. 어느 순간 4096을 달성했다. (사실 undo를 그 무렵에 제대로 쓰게 됐다ㅠ) 그러고 며칠 뒤, 드디어 16384.... 앱을 지웠다! (그 많은 밤들이 남긴 건 인증샷 뿐)
페북에 자랑질 했더니 인터넷 중독 전문가 K님은 "중독의 존재를 인정 않던 이가 드뎌 중독으로ㅋㅋ" 라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흠흠. 중독을 인정않는게 아니라, 폐해를 인정하지 않을 뿐. 나는 독서 중독, 콘텐츠 중독이 훨씬 심한 여자다. 지적허영의 길은 험난하다. 문제는 중독으로 인해 무엇을 잃었는지, 개인이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졌는지, 사회적 해악을 낳았는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제 아비를 닮아 중학생 아들도 게임돌이. (이제는 제 부모를 닮았다고 해야 할까) 주말에 친구들과 PC방으로 몰려가는 눈치인데 주당 5시간 정도 한다고 한다. LOL은 한 판에 1시간 안팎 꽤 걸린다는 걸 그때 알았다. 온갖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느라 바쁘시겠지. 그러나 적정선에서 통제된다면 게임을 왜 말릴까. 뭐, 사실 누가 누굴 말리나. 그리고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건 부모, 양육자 몫이다. 그걸 왜 국가가...
게임의 폐해를 걱정하는 것도 중요한 국가 과제일 수 있겠지만, 대체 게임으로 인한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 먼저 봐야 하지 않겠나. 게임으로 인해 어느 정도 망가지면 망가졌다고 볼 수 있을까. 게임방에서만 사는 이들은 게임이 문제일까, 인생의 다른 모든게 문제일까.
게임업계 vs 손인춘 '게임 중독' 두고 팽팽 손 의원께서는 실제 게임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를 무시하느냐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1일 열린 토론회인데 축사를 하신 분이 더 화제가 됐다. 황진하 의원 "임 병장 총기난사 게임중독 탓"..토론자 반발
마침 게임법 토론회가 논란에 쌓일 무렵.. 이 책을 읽었다. 너무 마음에 드는 인상적 구절을 만났다. 꼭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이리 구구절절 쓰고 있다!
최근 입에 거품 물고 재미있다고 했던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별도 리뷰 할거다. 꼭)
미국 정부가 어떻게 전세계를 감시하는지, 어떻게 영장도 절차도 없이 불투명하게 정보를 수집하는지 폭로한 스노든의 얘기다. 그 중에 바로 이 대목!!! 스노든은 어떻게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개인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선택을 내렸을까. 왜 그렇게 결정했을까. 인터뷰를 진행, 기사를 썼고, 이 책도 쓴 글렌 그린월드는 처음 스노든을 만나 이 부분을 꼬치꼬치 따져묻는다. 사실 어떤 배경인지 알아야 사안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 이 대목이다.
직업을 내던지고, 중죄인이 될 수도 있는 이 일에 뛰어들어서, 몇 년 동안 정부기관에서 일하면서 철저하게 주입받은 기밀 유지와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을 깨트린 진짜 동기가 뭘까? (72쪽)
마침내 스노든은 힘 있고 진심이 느껴지는 대답을 했다. “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진정한 잣대는 그 사람이 믿는다고 말한 바가 아니라, 그런 믿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아마 진짜가 아닐 겁니다.”
공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할 마음이 있을 때에만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는 그리스 신화를 탐독하며 자랐고,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영향을 받았다….이런 주제, 즉 한 사람의 주체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이런 윤리적인 생각은, 스노든의 지적 발전 경로를 따라가다보면 계속 나온다. 여기에는 스노든이 약간 창피해하면서 밝힌 비디오 게임도 포함되었다. 스노든이 비디오 게임에 푹 빠졌을 때 배운 교훈은 바로 단 한사람이, 심지어 가장 힘없는 사람일지라도 거대한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인공은 흔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심각한 불의를 저지르는 강력한 세력과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에 차서 도망가거나, 아니면 신념을 위해 싸워야 하는 선택에 직면하게 되죠. 역사책에도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할지라도 정의에 대한 굳은 결의를 가진 사람이 아주 위협적인 상대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이쯤에서 소름이 돋거나 감동 돋거나 유쾌하게 빵 터지거나. 전세계를 뒤흔든 내부고발자의 용기는 게이머로서 배운 교훈이었을까? 사실 놀랍지 않은 고백이다. 작년 이맘때 정말 신선하고 재미나게 읽었던 책 <누구나 게임을 한다>를 리뷰하면서 내가 붙였던 제목은 '게임이 세상을 구원할까' 였다. 아아. 게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산업 논리로 수출역군 다 망가진다는 둥, 규제가 게임산업 생태계를 다 망치고 있다는 둥, 그런 얘기는 평소 토론회 가면 많이 하지만... 게임은 어쩌면 놀라운 창조적 에너지의 고갱이. 그리고 무엇인가 전력을 다해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은 게임 안에서 배워 게임 밖으로도 전이된다. 스노든이 보여준 용기의 근원이 게임이라고 하면, 그런 내부고발자 키울 일 있냐고 투덜거리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조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든... 우리는 게임을 통해 훌륭한 시민을 키워낼 수도 있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 기업가도 키워낼 수 있다. Why Not? (2048 해서 그런게 되겠냐고 따지지 말자...)
게임의 순기능은 부탄가스 흡입하는 청소년들을 줄였다거나, 문제 학생들의 놀거리를 만들어줬다거나, 그게 전부일까? 우리 다음 세대는 도전정신 뿐 아니라 윤리의식, 도덕 등 사회화 자체를 게임을 통해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라스베가스나 일본에 가면 심심한 은퇴 노인들이 슬롯머신을 당기듯.. 우리 세대는 노년에 이런저런 게임에서 인생의 낙을 찾을지도 모른다. 지금 중독을 걱정하는 많은 어르신들, 어쩌면 우리는 늙어서 게임에 몰입함으로써 황혼의 즐거움을 찾게 될 수 있다. 나중에 민망해 하지 말고, 게임을 그만 미워하는게 어떨까. 쉬운 2048 부터 해보시라고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