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리뷰/소설들'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6.03.27 <리틀 브라더> 우리 시대의 '1984'
  2. 2015.08.31 <소수 의견> 짤막 메모
  3. 2015.08.30 <복종>마초 판타지..이슬람 혐오주의
  4. 2015.08.27 <칠드런 액트> 삶을 법으로 선 그을 때
  5. 2015.08.02 <나의 토익만점 수기> 짤막 메모
  6. 2015.07.19 <한국이 싫어서> 당신도 심쿵 하는가
  7. 2015.07.04 <잿빛 음모>무법자들에게 법으로 맞선다 한들, 정의가 승리할까
  8. 2015.06.21 <목격자들>4.16을 기억하는 또다른 방법, 조선탐정물 백탑파 이야기
  9. 2015.06.14 <송곳> 캡쳐 약간
  10. 2014.09.09 <어떤 소송> 완벽한 체제가 끔찍하게 작동하는 '방법' (1)
  11. 2013.07.27 <냉정과 열정 사이>기분이 차가워지다(2002)
  12. 2010.09.11 <열하광인>문장에 취하고 사건에 빠졌으며 이치를 엿보았다

<리틀 브라더> 우리 시대의 '1984'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6. 3. 27. 17:19

<리틀 브라더> 우리 시대의 '1984'


ㄴㄴㄴ 역시 아카이브 차원에서 브런치 글을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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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게 필리버스터 와중에 화제가 됐기 때문이 아니라! 

작년 가을 모녀여행에서 보려고 샀으나, 딸이 잃어버리는 바람에.. 재구입한 거라고 굳이 강조해본다. 생애 첫 호텔 독방을 차지한 딸이 엄마 책을 빌려가놓고, 바로 두고 오신. 나름 눈밝은 독자가 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늦었다. 

하여간에 이 책이 필리버스터에 등장하고, 저자께서 직접 한국 상황에 대해 글을 써주는 상황까지 가다니. 이게 대단한 거란걸 이해하려면, 코리 닥터로우 라는 사람을 봐야 한다. 월간 방문자가 평균 300만 명이라는 블로그'Boing Boing'의 co-editor. NYT 보다 영향력 있을거란 얘기가 빈 말이 아니다. 



내 또래 사람 중에 가장 멋진 것 같다. 표현의 자유, 저작권, 프라이버시, 정보 공개 등의 인터넷 정책 전문가.. 를 나는 그저 지향해왔고, 이 분은 진짜 전문가. 과학 소설도 여럿 냈다. 그리고..글빨, 장난 아니다. 아니 기본적으로 월 300만 명이 찾아가는 블로그를 운영하려면 이게 보통 어마어마한 사람이 아닌게다. 이 책은 6주간 NYT 베스트셀러였고, 전세계 24개국에 번역됐고, 영화 판권 계약됐고.. 어쩌고 저쩌고. 잘난거 맞다. 


책은 마커스라는 17살 소년이 주인공. 학교 전산망이든 어디든 해킹이 특기. 게임 하려고 수업 땡땡이도 마다하지 않는 아이인데, 샌프란시스코에 테러가 발생한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국토안보부라는 국가기관이 마커스를 비롯한 시민들의 기본권 따위 완전 무시하면서 개판이 되는 샌프란시스코.. 에서 마커스가 하는 일을 그린 얘기다. 유쾌하고 쿨한 아이들. 때로 수줍고 찌질해도, 겁내고 피해도, 예쁜 아이들의 이야기..... 라고 하기엔 담은 얘기는 간단치 않다. 핑크핑크한 한국어판 표지와 사뭇 분위기 다른 그림들을 퍼왔는데. 마커스는 단지 테러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황망한 현실에...... (스포지수를 낮춰보고자 이쯤에서 생략) 





수천 명이 희생된 (그리고 알 수 없는 규모로 시민들이 비밀리에 불법 구금된) 테러 이후의 샌프란시스코. 마커스가 자주 가던 터키 커피숍 주인은 직불카드 계산을 거부한다. 슬픈 표정을 고개를 젓던 터키인 주인의 말. 


"보안 때문이야. 정부 말이야. 이제 정부가 전부 감시해. 신문에 나왔어. 2차 애국자법. 어제 국회가 통과시켰어. 이제 카드 사용하면 다 감시할 수 있어. 나는 반대해. 우리 가게는 손님들 감시하는 거 안 도와줄거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커피 사는 거 정부가 아는 거 문제 없어? 카드로 계산하면 정부는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네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있고. 내가 왜 터키 떠났는지 알아? 터키에서는 정부가 항상 사람들 감새해. 그건 나빠. 나는 자유 찾아 20년 전에 미국 왔어. 난 정부가 자유 가져가는 거 도와주고 싶지 않아" 


학교에는 CCTV가 설치된다. 
"카메라는 위험을 막아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설치된 거예요." 
"카메라가 무슨 위험을 막아줘?" 
"당연히 테러지"
"카메라가 어떻게 테러를 막는데? 예를 들어 자살폭탄 테러범이 여기로 들어와서 우리를 날려버린다면.." 


감시는 일상이 된다. 모든 행위가 그렇다. 


지하철은 현금으로 요금을 받지 않고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가면서 RFID 태그가 달린 '비접촉' 카드를 흔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교통카드는 멋지고 편리하지만 사용할 때마다 추적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 지역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신의 차에 패스트랙을 부착했다. 다리를 건널 대 패스트랙으로 이용료를 지불하면 요금소 긴 줄을 피할 수 있었다. 다리 이용료를 현금으로 내면 세 배를 받는다. 당국은 현금이 더 비싸다고 하지 않고, 패스트랙이 더 싸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요금소에서만 패스트랙을 읽는게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안보부가 시내 곳곳에 패스트랙 판독기를 설치했다. 


테러범을 잡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촘촘해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마커스는 이렇게 얘기한다. 


테러리스트는 극히 드문 존재다. 2000만명이 사는 뉴욕 같은 도시에서는 아마 한 두명. 많아봤자 10명. 10/20,000,000=0.00005%. 

이건 엄청나게 희귀한 경우다. 자, 시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금융거래 기록이나 요금소 통과 기록, 대중교통 기록, 전화 송수신 기록을 체로 걸러서 99%의 확률로 테러리스트를 잡는다고 치자. 2000만 명의 집단을 99% 정확도로 검사하면 20만명을 테러리스트로 판별할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그중에 10명 뿐이다. 10명의 나쁜 녀석들을 잡기 위해 20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해서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말이지, 테러리스트 검사는 정확도 99% 근처에도 못 간다. 많이 잡아봐야 60% 정도. 

이것은 국토안보부가 비참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그들은 부정확한 체계ㅗ 테러리스트라는, 믿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대상을 잡으려는 중이다. 


천재 해커 반열의 마커스가 어떤 방식으로 감시를 피해가고, 엑스넷이라는 해방공간을 만들어내는지, 소설은 디테일하게 전개된다. 이게 흠인데, 나는 해커의 용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짐작만으로 그런 대목은 휘릭 넘겼다. 그래도 된다. 정말이다. 나머지 얘기가 겁나 재미있다. 10대의 연애담도 있다. 마커스는 정말 위태로운 싸움에 나서는데, 엄청난 소명과 꼰대의식 따위 전혀 없다. 


국토안보부가 하는 일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면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저질러온 온갖 헛짓거리로는 다리가 다시 폭파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하고, 우리를 반역자라고 부르는 걸로 테러를 막을 수 있나요? 테러의 목적은 우리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국토안보부 때문에 무섭습니다. 


마커스도 따라하게 되는 구호가 "25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마". 아이들의 교란으로 RFID 태그 따위는 오작동 투성이로 바뀌는데, 그걸로 테러리스트를 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끼리 게임기를 동원한 해킹 툴을 만들어도 잡아내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테러리스트를? 책을 읽다보면 마커스 만큼 똑똑하지 않더라도 테러리스트도 어느 정도는 할 것 같고. 국토안보부는 목적이 뒤바뀐 듯한 인상이다. 과연 정말 테러리스트를 잡으려고 하는걸까?

그들은 자신들의 초법적 전횡을 위해 비난할 대상과 희생양이 필요한게 아닐까? 심지어 샌프란시스코를 저렇게 취급하다니. 


마커스와 엑스넷에 대해 주류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하여간에 구구절절... 재미나게 볼 수 있다. 무게 잡는 대신 경쾌한 수다로 끌어가는 이야기. 내용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미국이 관타나모 기지를 굳이 유지해왔던 일을 생각해보면, 뭐 그리 아주 억지스럽지도 않을 지경이다. 시민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고, 국가는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 아주 예외적으로 심각한 경우에만 드물게 기본권을 제한하는 건데, 그게 마치 일상인양 착각하면 곤란하다. 


책은 우리 시대의 '1984'. 감시시대를 살아가는 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다만.. 기승전개발자만세.. 해킹을 직접 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세상은 둘로 나뉘는거구나 싶어 슬프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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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의견> 짤막 메모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8. 31. 00:27

 


소수의견

저자
손아람 지음
출판사
들녘 | 2015-06-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윤계상, 유해진, 김옥빈 주연, 영화 [소수의견] 2015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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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들고 싶었겠다 싶은 법정 드라마. 영화나 소설이나 법을 쉽게 풀려고 애 썼겠지만 법이란게 원래 거만 떠는 존재. 그럼에도 둘 다 추천합니다. 영화 보고 봤더니 인물 매력이 달라져 또 흥미 <소수의견>

이하.. 밑줄 같은 발췌ㅎ

 

"망루를 짓고 들어간 이유는 뭡니까?" "높으니까. 높으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럼 철거용역 애들이 겁을 먹고 함부로 못해요. 철거민 연합 사람들이 가르쳐줬어요."

소설 <소수의견>보다가 철렁. 위험을 무기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절박함일까

 

골품화된 법조계 신분질서를 논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웃었지만 말끝이 차가웠다. "소수자요? 그건 아들 잃고 도리어 구속된 사람한테 쓰는 말 아닌가요? 여자로 태어난 일간지 사회부 기자도 가끔은. 30대 중반 남자 변호사도 소수자일수 있나요?"

여성이라서, 소수자라서.. 그래도 촉이 덜 무뎌졌다고 가끔 생각... 그러나, 내가 약자로서 소수자라는 착각을 하면 안될 것 같다.

 

상해전문변호사들은 약관을 소송의 늪이라 부른다. 그 비유의 부정적 어감은 변호사들 양심 깊숙이 유폐된 초자아적 죄책감이 반영된 결과..이유는 약관의 철자들이 더 작아지고 약관의 문장들이 더 길어질수록 변호사들의 상차림이 풍성해져왔기 때문

 

 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어떤 명령도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될수 없을것이다. 그는 단언했다. 여러분에게 권리가 있어요. 법보다 앞선 것이 법의 이름으로 부정당할 때 법을 실현하는 유일한 행동은 바로 불복종입니다.

<소수의견>중 법대 교수의 연설, 로망 같은 (이주민 교수은 실존 인물 모델이 있단다. 사람들은 혹시 조국 교수가 아닌가 했다지만.. 서울대 김형석 교수가 모델이라고,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혔다.. 저런 분이 실제 인물이라니..^^)

 

"사법체계란게 이렇게 움직이네요. 천 명의 군중도 움직이지 못한 바위가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굴러가더군요. 법이 졌습니다. 절망적인 밤이군요"

 <소수의견>중 시위 현장서 연행된 시민 중 서울대 법대 교수가 섞여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난리 끝에 해결된뒤.. 이주민 교수는 저렇게 절망한다.... 저것이 현실의 본질. 그 와중에.. 소설 속 인물이지만, 참 결이 좋은 분이란 느낌..

 

이들은 단지 한세기 전 사고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갈뿐. 지지정당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도 안되는..자기 아들이 희생되지 않는 한 현존 세계의 실제 모습을 회의해보지도 못하고 눈 감을 사람들. 역시 피해자였다.

 

저 개새끼. 법정을 나설 때 그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다. 그 으스대는 얼굴. 이 법정에서 자신만이 정의롭고, 자신만이 솔직하고, 자신만이 실천주의자라고 공표하는 확신에 찬 얼굴.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역사를 통틀어

안타깝게도, 실제 저런 사례를 심심찮게 우리는 목격한다....  정의로운 분에게 뭐라 하기 어렵지만, 그로 인한 손실이 크고, 위태로워서리.. 에휴. 나부터 잘하자.. 기승전반성

 

결국 그녀가 옳았다. 내가 틀렸다. 나는 법을 믿었다..보상도, 복수도 법이 해주지 않았다. 그녀가 기사를 썼다. 나는 고발한다. 법이 침묵하는 동안 사람들이 목이 쉬도록 외쳤다. 법은 사람 위에 있었다.. 사람들이 이겼다. 법이 졌다.

 

 

마눌이 소설 <소수의견>을 보는 밤. 옆에서 감히 시끄럽게 영화를 보다니.. 근데 영화도 <소수의견>. 김의성 배우님 연기는 두 번 봐도 ㅎㄷㄷ. 물론 유해진님도 장면마다 살아있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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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마초 판타지..이슬람 혐오주의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8. 30. 21:30

 


복종

저자
미셸 우엘벡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7-1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날,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세상은 복종했다.” 우리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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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지식인이 2022년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프랑스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일부다처 판타지까지 동원하다니 역겹다. 초지일관 마초적이고 냉소적인 <복종>. 이슬람 혐오소설은 아니지만 혐오주의 쓸 수 있다?

 

권력과 지배자들에게 복종하고, 여자들의 복종을 얻고. 여자들이 사라진 사회는 실업문제 해결로 불만 낮아지고. 자유와 저항조차 불필요한 디스토피아. 한결같은 마초적 성적 묘사에, 현실 여혐이 언젠가 이렇게 자랄수 있다는 공포 탓인지 괴로운 소설

 

미셸 우엘벡의 논쟁적 소설. (에잇. 딱 주인공 처럼 생겼다. 괜히 느낌에)

이 소설이 난리가 난 것은 알려진 바, 샤를리 엡도가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내놓았다가 이슬람 테러를 부른 그 날 출간됐기 때문. 뒷 표지에 나온대로

"<복종>은 이슬람 혐오주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우리에게는 이슬람 혐오주의 작품을 쓸 권리가 있다"는 저자의 말이 논쟁에 기름을 붓는다.

상당히 불편했던 것은, 이슬람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그에 대한 환상이 너무나 마초적이라.. 마초에 대해 심한 알러지가 있는 나로서는 아무리 소설적 상상력이라도 짜증이 밀려왔다. 니체까지 동원하고, 온갖 프랑스의 문학을 섭렵하며 글을 쓰는게 '나, 대단한 작가야'라는 아우성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래 너 잘났다' 라는 느낌이랄까.

마초 판타지로 가장한 지식인의 고뇌 따위를 마구 풀어내놓고.. 이런게 이슬람이야, 이슬람..  우리 유럽은 이렇게 되어버릴거야..  비웃는건가?

여자들이 더 이상 섹시한 엉덩이와 다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요리하는 40대 아내와 밤의 요부 15살 아내를 둘 수 있다니. 이런 모순과 갈등에 흔들리는걸 뭐라고 봐야 하나.

이것은 이슬람에 대한 불편한 상상을 더해주는 이야기. 그러나 최근 여혐 사태에 촉이 날카로워진 나로서는.. 이런 여성관 덕에 IS에 빠져드는 철없는 사내들이 더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기우라면 좋겠다. 여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실업률이 낮아지고, 사회가 평온해지는 상상이라니.. 끔찍하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집에 오면 늘어진 티셔츠를 입는 서구사회 대신, 밖에서는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다녀도, 밤에는 온갖 화려한 속옷을 입는 이슬람 '다처들'에 대한 언급은 정말..  꽤 자주 나오는 야한 장면마다 이렇게 심기가 불편해지는 책도 오랜만이다.

 

 

몇 몇 대목만 옮겨놓는다.

이러한 맹목은 역사적으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결국 이성을 찾을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믿었던 1930년대의 지성인들이며 정치가들이며 기자들에게서 동일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정립된 사회 시스템에서 번영을 누리는 이들은

 

 

지식인들이 늘 그렇지. 지식인의 탈을 쓴 이들이라 할까. 번영을 누리면서 그 시스템이 순식간에 망가지는 것에 대한 촉이 없거나. 외면하거나.

 

반면 나는 동료들의 무심함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아무 문제 없는 듯 보였고..이로써 내 심증이 확인되었다. 요컨대 대학교수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정치적 변동이 그들의 경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철밥통 지식인들. 대학본부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칼럼 하나 쓰는데도 소심한 이들. 할 말 하는 사람 보면, 나댄다고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이들. 어느 쪽이 소수인지 모르지만, 흔히 보지 않나?

 

위스망스의 '결혼생활' 오래된 부부의 미지근한 행복을 묘사..식도락은 그들의 삶에 스며든 새로운 관심사였다. 육체적 쾌락을 박탈당한 수도사가 섬세한 음식과 오래된 와인 앞에서 힝힝거리듯, 날로 심화되는 감각의 퇴화가 그들을 식도락으로 이끌었다

유럽 작가들 왜 이러나ㅋ 얼마전 이안 매큐언도 오래된 부부에 대해 냉소적인 문장이 여럿 나오더니. 식도락에 중독되어 있는 나로서는.. 나의 식도락 기행이 스물세살 무렵에 시작된거라 주장해본다. 쿨럭

 

그의 특별한 점,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점은 바로 그가 완벽하게 멍청하다는 겁니다. 그의 정치적 비전은 언제나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른바 '행정부 수반' 자리에 오르려는 개인적 야심에 한정돼 있거든요..이 정도 막무가내 정신이란 희귀

아, 정말 저런 사람 얼굴 몇 떠오르는 것 같아 가져온 대목

 

하지만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부터 부조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이미 애국심의 형태가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국가란 살인적 부조리의 총체와 다름없었으며, 1871년 이후로 조금이나마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에 대해서도.. 어느 글을 봐도 요즘은 다소 무정부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마치 유행처럼. 애국주의를 외치는 한 편에 대한 저항처럼. 국가에 대한 실망이 세계 어느 나라에나 넘쳐나는 현상이, 그렇게 마냥 연스러운 일은 아니지.

 

그전까지는 인간의 행복의 정점은 완전무결한 복종에 있다는 이 충격적이고 단순한 생각이 그토록 강렬한 힘으로 표현된 적이 없었어요...남자에 대한 여자의 절대적 복종과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 간에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자유의지와 저항정신 따위. 그러나 복종을 통해서 오히려 마음의 평화와 심신의 안정을 찾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지 않았던가. 사실, 그게 더 살기 편한 영리함일지도 모른다... 무서운 상상 아닌가? 내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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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삶을 법으로 선 그을 때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8. 27. 01:02


칠드런 액트

저자
이언 매큐언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5-07-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속죄》의 작가 이언 매큐언의 최신작 출간 직후 30만부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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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글씨는 트윗이다.. 요즘엔 트윗만 하고 넘어가는 책과 굳이 따로 이렇게 정리하는 책, 두 종류가 있다..)

종교를 이유로 수혈을 거부, 신의 뜻대로 죽음을 맞겠다는 17세 소년. 강제 수혈 청하는 병원 손을 들어줄지..인간적 고뇌와 법리적 판단. 59세 판사 피오나. 완벽한 동시에 불안한 영혼의 주인공.

피오나는..아동이 성장하며 추구할 목표를 열거했다. 경제적 도덕적 자유, 미덕, 공감과 이타심, 어려운 과제 수행을 통해 충족감을 얻는 직업, 사적 관계망 확장, 타인의 존중, 더 큰 존재 의미의 추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으로 정의되는..


"
여호와의 증인이 수혈을 거부하도록 명령받은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
창세기에 적혀 있어요. 천지창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입니다."
"1945
년의 일이에요. 헨리 씨. 그 전까지 수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게 인간의 존엄성. 다만 종교조차 아이에게 해로울 수 있다면? 부모조차 아이를 반쪽짜리 사고를 하도록 만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면? 법은 아이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 샴쌍둥이 중 한 명만 구하는 결정을 법이?

인간은 신이 아니다. 사회의 룰은 종교가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시대다.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샴쌍동이의 한 아이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수술을 판사가 결정한다? 법의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피오나는 이런 사건 들에 영혼이 묶인다. 신이 아닌 탓이다.

법질서는 종교와도 부딪치고, 개인의 윤리와도 충돌한다. 무엇보다 법을 다루는 인간조차 신처럼 건조하지 않다. 스스로의 판단에 회의하고 번민하는게 인간이다. 사적인 내밀한 불안이 들킬까 괴롭고, 그로 인해 경계를 넘기도 한다. 신의 뜻에 따르면 죽음 조차 거부할 수 없는 숭고한 책무라고 생각하는 신앙은 버겁다. 신앙은 존중받지만, 법의 이름으로 개입할 여지는 당사자가 아이냐는 점. '칠드런 액트', 즉 '어린이 법'이라는 제목은 문명 사회가 어린이를 지켜줘야 한다는 도덕률에서 출발한다. 어린이는 피오나가 만나는 비슷비슷한 현실적 사례 속에 멍들고 있다. 그리고 아이는 '젊고 어리석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젊고 어리석은 댓가는 가볍지 않다.

 

 

 

당신이 언젠가 말했잖아. 오래 함께 지낸 부부는 남매 같은 사이를 염원할 거라고. 우린 이룬거야..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죽기 전에 한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열락, 흥분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경험. 기억은 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혼란과 밀회와 실망과 곤란한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뿐이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잠자리에 적응하는 불편함, 새로이 고안해야 하는 애정 표현, 그 모든 속임수들. 결국 다가올 필연적 사태 수습의 과정..아니, 나는..


 

찰라인지 아닌지 모를 바람. 오래된 부부 관계는 위태롭고, 서로 자신에게 질릴 정도로 냉기를 뿜어대기도..투명인간처럼 거리를 두기도..섬세한 묘사에 함께 숨이 멎을듯 몰입. 무겁고 탁한 공기까지 전해진다. 이언 매큐언. 오랜만이지만 대단

소설은 피오나가 판사로서 신을 대리하여 결정해야 하는 일들만 다루는게 아니다. 공교롭게도 피오나는 오랜 반려자 남편의 일탈 앞에서 영혼이 쪼그라드는 상태다. 매번 법정에서 다루던 이혼 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평판 사회의 상류계급을 유지해온 그녀에게 보통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바람을 피고 돌아오겠노라 하는 늙은 남편은 어찌할 것인가.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면.

중반 이후, 이들 부부에 대한 묘사는 어찌나 생생한지 트윗에 올린 바, '무겁고 탁한 공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미묘한 신경전 혹은 거칠게 털어내는 속내. 서로 스스로에게 질려서 물러나고, 침묵하는 부부. 적당한 거리감을 재는 슬픈 밀당. 어쩐지 달콤한 어감을 주는 밀당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젊은 것들의 관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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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한 추천은 적지 않았다. 이안 매큐언에 대한 오래된 신뢰도 있다. 특히 최근 페이스북에서 책 얘기를 해준 김희경 선배 덕분에 읽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에서 아이들 구호를 일로 하는 선배는 마침.. 어린이에 대한 글을 하나 쓰셨다. [야 한국사회]두려워해야 하는 일. '칠드런 액트'라는, 어린이법을 둘러싼 어른의 이야기를 봤다면, 한 번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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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만점 수기> 짤막 메모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8. 2. 20:40


 


나의 토익 만점 수기

저자
심재천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2-01-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너도나도 토익 점수에 목숨 거는 이 땅의 딱한 현실을 시종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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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점을 받은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
요즘 토익 만점은 뭐, '나 눈 두 개 달렸소' 하는 것과 같지
."
겸손도 아니었고, 농담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풍경
..

'
지원자격 토익 800점 이상'이라는 문구.."넌 꺼져
."
미안하지만 거기에 있으면 내 영어가 늘지 않아
그것 참 이상하군. 너처럼 영어 잘하는 어학연수생을 본적이 없어
아냐. 부족해. 많이 부족해
한국이란 나라가 정말 궁금하군.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일주일 전 바로 이 책을 찾다가 도서관에서 오래 걸렸고. 폭우를 만나 빗길 자전거를 탔고. 자빠져 깁스를 했지. 결국 누워있는 마눌 보라고 옆지기가 사다준 <나의 토익만점 수기> 불량스펙 청년의 파란만장 도전기

스펙도 빽도 없으면 버텨내기 힘든 사회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민을 가더니. 이번에는 토익 만점이라는 기본 스펙 만들겠다고 노숙할 작정으로 호주 어학연수를 떠나는 <나의 토익만점 수기> 묘하게 통하는 청년들의 절망과 냉소. 이게 시대정신 이라는 건가

공교롭게도 <한국이 싫어서> <나의 토익만점 수기> 작가는 둘 다 신문기자 출신. 전업 작가가 된 뒤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글을 쓰시는 듯. 하기야 기자들은 잘 훈련된, 가혹한 업무량을 마다 않는, 한다면 하는 족속. 기자가 덜 재미난 직업이 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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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당신도 심쿵 하는가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7. 19. 23:48



한국이 싫어서

저자
장강명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5-05-0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글로벌 세대’의 글로벌 행복론 20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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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책 메모를 트윗으로 하는데.. 트친들 반응이 나름 뜨거웠던 책. 모두 감정이입을 피할 수 없는 내용이라 그런게 아닐까. 트윗 메모를 중심으로 간단히 코멘트.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자아 실현 좋겠다느니”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 나온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폐지 주워야 돼” (여기 반응이 더 웃긴데 “그렇구나 나도 지잡대 나왔어”라고 맞장구 치는 남자에게 여자는 말한다“난 홍대 나왔는데? 그 와중에!)  

 

주인공은 호주 이민을 추진하는 20대 여자. 도입부에서 호주 입국심사장에서 생리가 터지는 묘사를 어찌나 실감나게 하는지, 순간 잘 모르는 작가 장강명이 여자인줄 알았다. 왜 고국을 떠나려고 하냐고? <한국이 싫어서>. 도발적인 이 문장을 제목으로 갖다 붙인 패기. 그런데 너무 설득력 있어서 구구절절 뜨끔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완전 설득당해서 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확 되어버린게지. 정말 가진 것 없고 비전도 없이 재미도 없는 일에 소진되는데 희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스스로 다큐에서 맨날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톰슨가젤을 비유한다. 엉뚱한데 한 눈 팔 다가 잡아먹힐 톰슨가젤한테.. 다른 톰슨가젤이랑 연대해서 사자에서 맞장이라도 뜨라는 얘기냐, 그게 아니면 죽기 살기로 도망가야 않겠나. 호주로든. 

 

살기 힘든 건 모두 마찬가지. 도망가는게 최선이냐는 질문도 부질없다. 가장인 아저씨들 마음을 훤히 꿰뚫는다. “중년 남자들이 '빙고'를 부르는 이유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아닐까. 다들 이 땅이 너무 싫어서 몰래 이민을 고민하는거지. 그걸 억지로 부정하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싶은거야. "모든게 마음먹기 달렸어"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라고.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그래서 영광을 드러내줄 구성원을 아꼈지김연아라든가삼성전자라든가그리고 못난 사람들에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줬어내가 어려우면 도와주는게 아니라..

 

여기서도 심쿵. 그렇지. 못나고 약한 자는 다 저들 탓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알량하게 어딘가 잠들어 있을 애국심을 건드리는 뭔가가 나온다면 난리가 나지. 실제 잘 통한다. 온 국민이 김연아가 태극기를 흔들 때 감동으로 부르르 떨고. 해외 공항에서 삼성전자 간판 만나면 왠지 으쓱하잖냐. 그런데 이 나라는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지? 국가를 위해 뭘 할지 먼저 생각하라고 하지 마라.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다 지키고 아침부터 밤까지 죽어라 일해서 GDP 높여주는 우리들이다.

 

지방대 나온 애들수도권 나온 애들인서울 나온 애들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지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무시하고 그러겠지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업신여김과 모멸의 사슬 같다. 한 줌 꼭대기 인간들은 겸손함이 없고, 그 아래를 얕본다. 다 같은 인간인데 다 같지 않은 불평등과 차별을 겪은 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쪽에 다시 날 선 시선을 들이댄다. 이른바 루저들일수록 여성에게 공격적이라는 건, 실제 자기들도 화살을 돌릴 약자가 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책 읽고 작가 인터뷰를 찾아봤는데‘약자’라는 측면에서 20대 ‘여자’를 화자로 삼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니까 기자나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의사 같은 '진짜 직업'들이 있고그 아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직업들이 있다는 거지..그런데 호주에서는 알바 인생도 나쁘지 않아방송기자랑 버스 기사 월급이 별로 차이가 안 나

 

그러니까.. 한 줌 ‘진짜 직업’ 외에는 절대 드라마 주인공으로도 뽑히지 못하는 현실. 방송기자랑 버스 기사 월급이 같으면 누가 공부 더 해 방송기자를 하냐고? 그게 자아실현이지. 굳이 그런 ‘타이틀’ 없어도 행복하면 버스 기사 하면 되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얘기는 고리짝 전설 같지만, 그게 뭐 어때.

 

나는 당당하게 살고싶어물건팔면서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 받는 처지가 되어도 자존심은 배려해줄거야


 이 대목을 보면서, 작가는 정말 구구절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몽땅 주인공 입을 빌어 하는구나 싶었다. 대리만족도 이쯤이면 참으로 훌륭하다. 심지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길 지경. 우리는 모두 할 말은 많은데 못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걸 ‘픽션’으로 쓰면 되잖아! 이런 단순무식한 반응이 나올 정도로 구구절절 푹 빠졌다고 해두자.

 

하긴 데이트 계획을 세운들..지명이는 하루에 여섯 시간도 못 자자정께 퇴근해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씻고 7시면 나가그걸 당연하게 여기더라고걔 말로는 기자 생활이 그렇대나이 들어도 계속 그렇게 바쁘고 시간 안 날 거래

 

이른바 ‘진짜 직업’을 가지면 주 100시간 근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사회적 존경과 돈을 받는다. 그런 자존감을 써먹을 데라고는 어디 폼잡거나 끼리끼리 골프칠 때 밖에 없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할 시간이 없다는게 문제겠지만. 역시 기자 출신 작가 답구나 했다. 나 역시 23살 부터 14년간 새벽 6시에 출근했던 인간이다. 막판에는 그 와중에 자정까지 주3회 술자리가 이어진 일상이 도망치는 결심을 하는데 한 몫 했다. 앞 뒤 안 보고, 다 내려놓고 나왔는데.. 내 옛 동료들은 다들 그렇게 계속 버틴다. 물론 이 사회에서 나름 ‘힘’ 있는 일이라 선택 문제겠지만. 

 

트윗 메모는 못했지만, 이 대목에서 지명과 주인공 계나(그렇다. 이름이 계나. 언니와 동생은 혜나, 예나. 호주 친구들은 케이나 라고 부른다ㅎㅎ)의 밤 생활도 슬프다. 너무 피곤한 노동자, 특히 신참 기자는 여자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그녀에게는 그게 더 애잔한거다. 의무처럼 밤 일에 나서고, 상대도 의무를 다하고, 슬픈 섹스. 최고의 유희라는데 왜 이렇게 된걸까. 하기야 젊은 친구들은 방이 없고, (젊은 미디어 미스핏츠의 붕가붕가 시리즈 안 봤다면 강추) 사회생활을 하면 체력과 시간이 안되고. 거기에 육아가 더해지면.. , 그만하자. 또 감정이입 될라ㅋ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봤자..행복하지 않아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계나는 문득 특이한 깨달음을 얻는데 그게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라는 개념이다. 왜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은지, 선명하게 알게 되는 순간이다. 140자 안에 메모가 힘들어 넘어갔지만ㅎㅎ 이 시대 가장 유행할 수 밖에 없는게 행복학이라면, 행복조차 공부하고 연마하지 않으면, 과외라도 받지 않으면 누리기 어렵다면.. 귀 기울여볼 만한 개념이다. 그러니까 책을 보시라!

 

‘한국이 싫어서’ 라는 이유를 수십 가지를 대더라도, 계나가 딱하게 여기는 많은 이들처럼 우리는 한국에서 살아간다. 한국의 맨 얼굴을 이런 방식으로 마주하고도 우리는 아마 쉽게 바뀌지 않겠지. 그러나 모두가 불행으로 치닫는 사회에 내 아이를 던져놓기가 미안해서.. (기승전미안.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면서, 발버둥 치고 있다. 특히 2014 4월 이후에)  계나가 던지는 이야기를 갖고 다시 생각한다. 더 떠들고, 뭐라도 해야겠지. 호주가 별건가. 알바 인생도 살 만 하고, 버스 기사도 나쁘지 않고, 연금도 끝내줘서 걱정 없이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사회다. 백호주의 인종차별도 종종 문제 되는 그런 나라다. 어딘들 천국일까. 계나가 행복해지겠다고 애 쓰는 건 좀 배우자. ‘진짜 직업’, ‘그럴싸한 결혼’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행복.


너무 궁금해서 찾아본 장강명 작가 

왼쪽 사진이 작년인데ㅎㅎ  최근 인터뷰인

전업작가 선언 2년여 만에 각종 문학상 석권 장강명 "오아시스 너머를 보는 것, 그게 문학" 에서 사진이 훨씬 더 훈훈하다. 방송 출연 시작하면 카메라 샤워 통해 더 예뻐지듯, 작가님도 그런게 있는게 아닐까 괜히 궁금해하며.. 팬질을 시작해볼까 한다. 작가 인터뷰 중 저 대목, 아주 맘에 들었다ㅎㅎ  그래, 저런 마음이면 되는게 아닐까.


그러나 문장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 콤플렉스가 있다. 젊은 작가들 소설 읽다가 헉 소리나는 문장을 볼 때가 있다. 나는 이걸 못 쓰겠구나, 부럽기도 하고 탐이 난다는 기분을 느낀다. 집 앞에서 조깅 열심히 해서 그래 너 정도면 몸 좋아, 사람이 이거보다 몸 좋을 필요 있어 하다가 올림픽 체조선수나 발레리나를 봤을 때 하……. 오랜시간 단련을 거쳐 나오는 단단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문장을 봤을 때 부럽다. 그러나 나와 다른 길이고 흉내내진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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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음모>무법자들에게 법으로 맞선다 한들, 정의가 승리할까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7. 4. 13:54

 


잿빛 음모

저자
존 그리샴 지음
출판사
문학수첩 | 2015-06-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존 그리샴 2015 최신작 전 언론 매체가 극찬한 화제의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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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로 월가 로펌에서 해고된 뒤 시골 법률클리닉에서 세상 온갖 부조리와 폭력을 마주하고 쓸모 있는 변호사로서 깨어난다? 고민과 나약함까지 생생하다. 재벌 횡포가 믿기지 않을만큼 사악해서 존 그리샴의 분노가 느껴질 지경. 이틀에 완독 <잿빛 음모>


 

현실은 엘리트 대부분이 월가의 노예가 되어 명예와 부를 갖겠지만. 그리샴은 실제 모델이 되어준 시골 법률클리닉 변호사들과 환경단체에 감사를 전한다. 비현실적 고통에 시달리는 약자들을 지켜주는 이들이 어딘가에서 싸운다. 그리샴도 한결 같다 <잿빛 음모>
 

=====


정말 저렇게 사악할까? 자본은 정말 저럴 수 밖에 없나?

쉽게 부서지는 밑바닥 약자의 삶에 대해서는 그게 현실이란걸 뉴스에서 종종 본다. 그 대척점에 있는 자본에 대해, 혹은 체제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는 막연히 그 정도는 아닐거라 생각하는 먹물의 습성이 있다만. 그러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렇게 비참해진 이유를 어디서 찾을까.

 

이런 이야기를 그리샴 옵바가 적나라한 픽션으로 보여준다! 저렇게 맨날 써대도 현실 성공신화는 언제나 월가 편이라니. 이건 미디어 탓인가ㅎㅎ

 

소싯적 지리 시간에 들어본듯한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 혹은 미국 체류 시절, 워싱턴 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다보면 만나던 웨스트 버지니아의 숲 지대, 그 동네 노천 탄광이 무대. appalachia coal mining 으로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이미지들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저렇게 강간 당하고 있는 산과 들을 법으로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 무법자들이 이기는 시대에 법을 지키거나, 혹은 법의 바깥에서도 함께 싸우는 사람들의 사연이다. 애송이 변호사가 어찌 버텨낼지 걱정될 정도로 거대한 힘. 자연을 저렇게 유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보게 된다.

 

 

 

 

 

 

사진들만 봐도, 숲이 우는 소리가, 산이 슬퍼하는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지 않나. 블로그에 메모라도 남기려고 사진을 검색했다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저 지경을 만드는 무법자들에게 법으로 맞선다 한들, 정의가 승리할까? 소설의 주인공들도 참 험난한 싸움에 직면한다만...

약자들은 패하는 싸움을 하면 안된다고, 한 번 지면 정말 처참하게 박살나니까,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신진 정치인 조성주씨의 주장도 신선했지만.. 싸움은 질 수도 있다. 전투에서는 지고, 전쟁에서는 끝내 이겨야 한다지만. 그조차 불투명하더라도, 계속 싸울 수 밖에 없을 때도 있다. 그리샴의 변호사들이, 혹은 현실 세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싸우는 변호사들도 일승일패가 됐든 승리와 패배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다. 백전백승 이라면 누구나 뛰어들테고. 백전백패라면 기운도 나지 않겠지. 하지만 세상 일이란건.. 작은 승리, 값진 결과를 하나 하나 쌓아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리샴이 그려내는 변호사는 돈의 노예로 미친 듯이 일하고 있거나, 약자를 지키고 있거나. 물론 그 중간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겠지만.. 그리샴의 묘사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는 다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더 열심히 일했어요. 마치 주당 90시간을 일하면 잘리고 100시간을 채우면 살아남기라도 할 것 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게 끝나버렸고 우리는 길거리로 쫓겨났어요. 계약해지니 뭐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런 상담이 어떤건지 알 길 없는 그에게 매티는 "열심히 메모하고, 자주 얼굴을 찌푸리고, 되도록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면 돼"라고 조언했다. 서맨사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로펌에서 처음 2년을 버틴 비결이 바로 그거였으니까.

 

변호사 자격증은 커다란 권력이야.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활용될 때는 특히 더 그렇지. 악당들은 대리인을 고용할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을 겁주는 데 익숙하지. 하지만 좋은 변호사가 끼어들면 금방 꼬랑지를 내리게 마련이거든

 

아는 변호사 중에 잘 나가는 변호사도 있고, 거대한 자본, 공권력에 맞서는 변호사도 있다. 어느 쪽이 선하고 악하다는 분류법은 의미가 없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변호사의 조력은 필요하니까. 다만 힘들게 싸우는 변호사들에게는 기회 될 때 마다 밥이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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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4.16을 기억하는 또다른 방법, 조선탐정물 백탑파 이야기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6. 21. 21:19

 

 

 

선생은 바위처럼 묵직하면서도 강물처럼 유연하고, 무겁게 가라앉으면서도 또한 깃털처럼 휘휘 날았다. 먼저 오래 웃기도 하고, 상대방이 따라 웃을 때까지 세상 곳곳의 농담을 끌어대기도 했다. <목격자들>에서 연암 선생을 묘사하는 대목. 태도에 관한 전범


발바닥이 갈라지고 찢기는 고통도 감내하며,아들은 차가운 바닷속을 헤매는데 나만 편히 다닐수없다며,맨발로 아들의 이름을 길 위에서 부르는 어머니의 슬픔을 어루만질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나는 할것이다.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으리.<목격자들>


전하께서는 배가 난파되었을때 마지막으로 그 배를 떠나는 사공이 되어야 하옵니다. 물론..두려움에 휩싸이겠지요. 그러나 배에 탄 백성이 모두 무사히 뭍에 내린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구하고 구하다 다 구하지 못하고 최후를 맞는 이가 군왕일지도<목격자들>


모두 과인의 백성이다. 그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 잘못을 어찌 다른 이들에게 덮어씌울 것인가. 과인이 부덕한탓. 차디찬 바닷물에 사라진 목숨들을 떠올리니 죽고만 싶구나. 약속하겠다. 그들의 이름을..삶을..그들의 꿈을 기억하마<목격자들>

어둡다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눈부심을 기억하여 적어 두면, 터무니없이 긴 어둠 속에서도 그 기록에 의지하여 또 다른 눈부심을 향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탑파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이자 미래의 기록이기도 하다. <목격자들>

 

김탁환쌤 백탑파 시리즈 어게인! <열하광인>문장에 취하고 사건에 빠졌으며 이치를 엿보았다  정리가 2007. 나름 주인공 김진을 흠모해온 조선 탐정물. 이번엔 세곡을 나르는 조운선 침몰사건을 파헤친다.<목격자들>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다"는 김탁환쌤이 다시 백탑파 이야기 <목격자들>을 쓰기 시작한건 14 5. 아무것도 쓰지 못한 한 달 간의 침묵 이후. 그 봄을 잊지 않겠노라고 쓰셨다고. 마지막 사자후가 절절하다.

 

거대한 세력의 음모를 여유롭게 파헤치는 꽃미치광이 김진은 셜록보다 매력있고. 이야기꾼 의금부 도사 이명방은 왓슨보다 용맹하다.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는 데 시간은 중요하지 않네. 한 순간이면 족해" 이런 대사를 김진이! 달달함도 가히 압권 <목격자들>

 

=====  이번에도 그냥 트윗만 옮겨놓는다.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 대한 세세한 묘사, 탐구 과정이 조금 난해할 수 있으며. 용어도 쉽지 않지만. 그런 와중에도 푹 빠져서 읽었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모두 4.16을 기억하고, 각자 방식에 따라 추모한다. 이 책은 김탁환 쌤이 4.16을 마주한 결과물이다. 수백 년 전 가상의 선박 침몰사건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문득 문득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누가 임금 앞에서 저렇게 고하겠으며, 임금이 저렇듯 통렬하게 토해낼까 싶다만. 김 쌤은 책 말미에 얼마나 많은 '참고문헌'을 참조했는지 나열하고 있다. 담헌 홍대용.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연암 박지원과 정말 그렇게 우정을 나눴을까. 박지원과 홍대용, 김진과 이명방, 이른바 백탑파들은 문체반정이라는 분서갱유의 시대를 버텨냈고. 당대에 중용되어 큰 뜻을 펼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오늘날 열하일기를 다시 읽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어찌됐거나 백탑파 동인들이 시문과 음악, 미술, 춤 등 예술과 천문, 과학까지 넘나들며 지적 열락에 빠지는 모양새가 매우 부럽다. 지금처럼 콘텐츠가 넘치고 미디어가 과한 시대가 아닌 그 시절. 세상만사를 논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과는 다른 무게였을 듯. SNS를 통해 지인들과 얕은 정보를 나누고 짧은 코멘트를 주고 받는 것도 즐겁지만, 지적 교감을 나누는건 생각보다 근사한 경험이라 믿는다. 물론 껄렁한 유머를 나누면서 키득대는 것 역시 깊은 재미가 있지만.

 

백탑파 시리즈는 <열하광인>에 푹 빠져 <방각본 살인사건>을 봤는데, 전자가 훨씬 좋았다. 굳이 더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나면 옛 애인을 만난 듯 반갑?? 음, 이건 아닌가 .옛 친구를 만난듯 반갑다ㅎㅎ 정말 좋아했나보다. 열하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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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캡쳐 약간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5. 6. 14. 22:16

 


송곳 세트

저자
최규석 지음
출판사
창비 | 2015-05-20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송곳』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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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최규석님 <송곳>을 책으로 받았어요. 감사감사. "심각하게 재미있다"는 주호민님 한줄 평 쥑이지 않나요. 네이버 평점 9.96!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는 이미 두 권 샀기에 또 선물할께요

 

웹툰으로 볼 때도 이 장면 트윗 했는데.. .. 이건 뭐.. #송곳 #구고신옵바멋져요

 

  

당신들이 힘든건 당신들이 못나서 그렇다. 왜 더 졸라매지 않느냐.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거요.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송곳2 강한 선동. 꿈틀해야만 존중받는게 맞나

 

탈퇴한 분들은 배신자가 아닙니다. 모두 같은 무게를 견딜 수는 없습니다. 함께 싸우다 먼저 쓰러진 것일뿐. 부상당한 동료를 비난하고싶지 않습니다..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짐만 지세요 #송곳 분열 대신 끌어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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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송> 완벽한 체제가 끔찍하게 작동하는 '방법'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4. 9. 9. 17:41

 


어떤 소송

저자
율리 체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4-01-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삶이란 하나의 제안이고 우리는 그걸 거부할 수도 있는 거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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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Corpus Delicti : Ein Prozess 이미지 검색하여 찾은 컷. 음반 혹은 밴드 사진만 많이 나오던데, 저자 율리 체가 록밴드 Slut과 공동으로 일부 글은 새로 쓰고 일곱 곡을 새로 작곡, 청취극과 음악이 혼합된 '음반소설(Schallnovelle)'로도 낸 덕분인듯. 이 사진은 아마도 원작을 토대로 한 연극의 한 장면으로 보인다. 독일어라 추정만ㅎㅎ)

 

나는 인간들로 구성되었으면서도 인간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 위에 세워진 사회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정신을 육체에 팔아 넘긴 문명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내 살과 피가 아니라 정상육체라는 집단적 환상을 구현해야 한다는 몸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스스로를 건강이라 정의하는 정상성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나는 문제가 무엇인가는 말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궁극적 답이라고 하는 안전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실존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종결되었다고 규정하는 철학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선과 악의 역설과 정면 대결하기에는 너무 게을러서 잘 작동한다혹은 작동하지 않는다에 집착하는 도덕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시민들을 완벽히 통제한 덕에 성공을 맛보는 법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구석구석 조사하는 일이 뭔가 감출 게 있는 사람에게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민중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인간의 말보다 인간의 DNA를 믿는 방법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오직 위험 없는 삶에 대한 약속에 의지해 인기를 모으는 정치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무엇이 내게 좋은지 나 자신보다 더 잘 아는 국가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185~186쪽)

 

이 구절을 기록해두기 위해 짧은 감상을 남긴다. 주인공 미아 홀의 선언이다. 그녀의 이 말을 대중에게 전달한 언론인 크라머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신 완벽한 건강사회를 유지하는 체제의 신봉자. 책은 21세기 중반 이후의 사회. 건강이 최우선 가치인 건강지상주의 사회에서 그 체제에 반기를 든 여자 미아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생 모리츠를 잃은 뒤 슬픔에 빠져 운동과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법정에 소환된 미아의 어떤 소송’.

 

질병이 과거의 유물이 되어 모두가 고통 따위는 모르는 건강한 사회. 감기 따위는 20년 전에 멸종된 상태다. 건강은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재 상태이며 단순히 질병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몸에 삽입되어 있는 칩이 건강상태를 실시간 체제에 보고, 인간은 늘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그 유토피아적 미래는 역설적으로 상상 그 이상 디스토피아적이다.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끼며 믿었던 체제의 헛점이 미아를 통해 드러났을 때, 체제는 어떻게 작동할까.


크라머는 바이러스는 스스로를 위해 불결과 위험을 이용할 줄 알며 개인도 사회를 공격한다. 오늘날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핵산이 아니라 위험한 생각으로 이루어진다고 이후 대중 선동에 나선다. 미아 홀이란 이름이 16세기 마녀라는 이유로 고문받고 탄압받았던 마리아 홀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완벽한 감시가 가능한 미래사회에서는 체제가 훨씬 더 강력할 수 있다는 점은 놀랍지 않다. 체제가 위험 분자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래, 별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도 든다.

원래 희곡으로 쓰였다는데 대사가 아주 현란하다.


권력이란 때때로 자기 힘을 증명해 줄 본보기를 필요로 하는 법이야. 특히 내부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는 더 그렇지. 아웃사이더들은 여기 안성맞춤이야. 자기들이 원하는게 뭔지를 모르거든. 굴러떨어진 과일이지.”(145)

크라머 1은 빛나는 선동가예요. 하지만 크라머2는 사실은 이 체제나 저 체제나 마찬가지라 믿죠. 맨 먼저 우리는 체제를 기독교라 불렀어요. 그 다음엔 민주주의라 불렀죠. 오늘날엔 방법이라 부르고요.. 체제는 항상 절대 진리고, 항상 순전히 좋기만 한 것이고, 항상 온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강박적 욕구죠. 모두가 종교예요. 무엇 때문에 당신 같은 무신론자가 항상 똑 같은 오류의 한 변종을 적극 지지해야 하죠?”(181)

 

동생의 죽음 이후 혼란에 빠져버린 미아는 어느새 경계인, 어느새 마녀, 어느새 테러리스트 수준이다. 경계 너머의 자유? 미아는 담배 한 가치 태웠다가 고발되어 소득 20일치 벌금형을 부과받는데 그녀의 법정 진술이다. 모리츠가 말했어요담배를 피우는 것은 시간 여행 같다고. 자기를 다른 공간으로 옮겨 준다고.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공간으로요.”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이란 책으로 언어의 지적 유희, 실체와 사실의 관계 등을 추리소설의 탈을 쓰고 보여줬던 율리 체의 책이라 골랐다. 역시나 이 언니는 간단한 분이 아닌 바, 책은 상당히 현학적이고 그게 읽어나가는데 때로 장벽이다. 내가 읽은 유일한 전작 형사 실프가 그러했듯 중간 중간 상당히 난해하다. 그러나 묘한 매력이 있으니 또 집어들지 않았겠나. 법학박사이자 변호사인 저자는 참여적 지식인으로 유엔에 근무하며 2001년 첫 소설로 문학계 신예로 떠올랐다고 한다. (짜증나게도 저자 만 27살 때 촉망받는 소설가로 첫 발. 법학은 언제 공부한거냐. 심지어 미녀다..ㅎㅎㅎ)

 

당차게도 이 책이 SF로 분류되어 문학상 후보로 오른걸 또 거부했다는 율리 체의 어느 인터뷰 한 대목도 함께 옮겨놓는다. 소설이 배경인 미래보다는 우리가 사는 현재에 대한 진단이란 이유다. 우리가 가장 믿는 체제, 가장 훌륭한 체제에 경고하는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 이미 일갈했다. 믿음이 흔들릴 때, 경계에 서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를 마녀로 처단해온 역사는 21세기 미래사회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소설 마지막 반전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솔직히 한편으로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 무시무시했다.

 

우리에게는 수십 년 전부터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감도 있다. 우리가 최선의 국가 형태라 여기는 이 체제가 어쩌면 다시 전체주의나 독재 체제로 급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90% 이상의 사람들이 비현실적으로 여긴다. 바로 이것이 나를 불안케 한다. ‘아 잘 굴러가고 있는데 엇나갈리가 없아하고 생각할수록 엇나갈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는 잠들지 않는 비판적 의식이 민주주의의 토대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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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0 09:45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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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기분이 차가워지다(2002)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3. 7. 27. 22:32



냉정과 열정사이(ROSSO)

저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2000-1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당신의 사랑은 냉정인가요, 열정인가요?한 제목의 소설을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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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BLUE)

저자
츠지 히토나리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2000-1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당신의 사랑은 냉정인가요, 열정인가요?한 제목의 소설을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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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2003)

Calmi Cuori Appassionati 
7.7
감독
나카에 이사무
출연
다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시노하라 료코, 시이나 킷페이
정보
로맨스/멜로 | 일본 | 118 분 | 2003-10-10



생애 첫 '서'유럽행. 피렌체를 가본다. 옆지기 제안으로 예습 삼아 피렌체 배경이라 더 유명한, '냉정과 열정 사이' 2001년작 영화를 보는 중. 배경 피렌체의 작고 오래된 건물, 낡은 다리는 멋있고 남주도 훈훈한데..두오모도 음악도 기막힌데.. 그다지 몰입은 안된다. 느린 이야기에 같이 보던 딸과 아들은 어느새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11년 전 책으로 만났을 때는 꽤나 강렬한 기억을 남겼는데. 사실 기억도 가물가물. 예전 리뷰를 꺼내 본다. 저들의 사랑에 두근거렸던 건, 아니 기분이 차가워졌던 어느 대목이었을까.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의 글 자체였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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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이 작긴 하지만 260쪽 짜리 책 2권을 어젯밤에 읽기 시작, 오전중에 다 읽었다. 중간에 잠도 자고 일도 했으니. 남은 시간은 고스란히 이 책에 쏟은 셈이다. 내가 원래 이렇게 독서의 집중력이 높았던가. 쥰셰이와 아오이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내 속을 파고들었다. 

같은 제목. 파란색 속표지의 책은 츠지 히토나리라는 남자가, 오렌지빛 속표지는 에쿠니 가오리라는 여자가 썼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만나 4년여 사랑을 나눴고 이 책들은 각각 헤어진뒤 한참 지난 이후에서 시작한다. 한권은 쥰셰이의 이야기. 또 한권은 아오이의 이야기. 원래 잡지에 번갈아 연재됐다는 것도 이채롭지만. 이야기의 서로 다른 향기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미술품 복원을 배우며 피렌체에서 머무는 쥰셰이의 이야기에는 온통 아오이 타령 뿐이다. 메미라는 새 여자친구를 안으면서도 아오이라는 이름을 내뱉어버렸던 그는 아오이와의 과거에 철저하게 종속됐다. 너무 절절하고 비통하게 아오이를 반추해 나는 그가 차인 건줄 착각했다. 그가 아오이를 버렸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반면 아오이의 이야기에는 절반 가량 지나가도록 쥰셰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오이는 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 밀라노에 행복하게 산다. 완벽한 삶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오이는 쥰셰이보다 상처가 크면 컸지 작지않다. 여자 하루끼라 불린다는 작가는 텅빈 여자 아오이를 그려냈다. 독서와 목욕은 아오이의 유일한 낙이자 도피처다. 그녀의 새 삶은 너무 따뜻하고 충만한데도 그녀는 너무나 공허하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다르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 기막힌 제목이다. 아오이의 냉정함은 너무나 뜨거운 상처와 사랑을 숨기고 있다. 쥰셰이도 뜨거운 가슴을 억누르고 산다.

이들은 8년만에 재회한다. 10년전 지나가는 말로 약속했던 일을 밤낮없이 주문처럼 외고 있던 쥰셰이. 아오이의 서른번째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꼭대기에 아침부터 올라가 하루종일 기다린다. 밀라노의 아오이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일상을 보내다 갑자기 기차를 타고 세시간 거리의 피렌체로 향한다. 두오모가 문을 닫을 무렵 그녀가 도착한다.

사랑 이야기. 서로 상처받고 상처주고. 또 사랑을 위해 둘의 새 연인은 또 깊은 상처를 받고. 결혼에 안착한 유부녀는 이런 상처뿐인 사랑 이야기에 또 심난해진다. 아마 다시 겪어보기 어렵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그 떨림과 고통에 대리만족하는 재미가 쏠쏠하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딘지 감정적 파고가 거칠어진다. 책을 덮고나니 내 심장은 더욱 차가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쥰셰이의 이야기를 먼저 다 읽고 아오이를 만났다. 사랑 이야기라길래. 남자쪽 이야기가 먼저 궁금했다. 서평들을 뒤늦게 찾아보니...한 챕터씩 번갈아 읽으면 더 재미있다나.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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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문장에 취하고 사건에 빠졌으며 이치를 엿보았다

소박한 리뷰/소설들 2010. 9. 11. 00:57

열하광인(상)백탑파,그세번째이야기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역사/대하소설
지은이 김탁환 (민음사, 2007년)
상세보기

 "고백하건대, 나는 단 하나의 금서를 만났고 그로 인해 평생 불행했다."
 
 드라마틱한 고백. 김탁환다운 시작이다. 불꽃처럼 타오르고 화려하게 춤을 추는 문체를 자랑하는 작가의 문체반정 팩션 스토리다. 더할나위 없이 맞춤하다. 글쟁이로서,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재능에 푹 빠졌으나 마무리가 힘이 없지 않냐고 전작 `리심'에서 투덜댔다. 늘 배고픈 독자의 투정은 이번 작품에서 채워진다. `열하광인'은 힘있고 아름다운 글의 품안에 허우적대면서 추리소설의 묘미를 따라갈 수 있다. 비록 지나치게 많은 `고어'가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옛말을 가급적 많이 사용하는 것도 시대를 잇는 작가의 한 책무가 아닐까 싶다. 독자로서도 불평할 대상은 아니다.

 찬사 일색인 것은 이 작품이 내 취향에, 무엇보다 최근 내 관심에 아주 흡족했기 때문이리라. 담백하고 서늘한 글도 좋지만 때로 몰아치고 날아가는 글도 좋다. 주인공인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자신의 일생을 망가뜨렸다는 금서 `열하일기'에 대해 고백하는 대목을 보자.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독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난폭하다. 스스로 활활 타올라 읽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단숨에 삼키는 책이여!...책은 혼돈을 일으키는 불꽃이다. 어느 대목을 읽든지 처음에는 뜻밖의 온기에 휘감겨 허리를 숙이고 콧잔등에 책을 댄다. 그러나 곧 두 눈과 열 손가락과 단 하나의 심장이 타들어 가듯 뜨거워진다. ....이 책은 철저하게 혼돈만 이어 간다. 그 혼돈은 쇠종처럼 무겁다가도 깃털처럼 가볍다. 웃음 한 송이를 꽃어럼 피워 문다. 각 편 말미에 닿아서 여백을 우두커니 보고 있노라면, 책이 묻는다. 이 다음 혼돈은 네 몫이야. 어떻게 할래? 그 물음이 무서워 다시 책을 펼친다. 악순환이다. 업보다. 시작도 끝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문장이 뜨겁다. 차갑고 건조하며 우아한 품격 대신 내지르고 토해내는 글이다. 하기야 `열하일기'에 미친 이가 광인의 자격으로 풀어낸 고백이다. 더구나 격변기에 치명적 사건의 한 복판에서 내놓은 글이다. 부드럽고 여유만만하다면 어울리지 않는다. 글에 새삼 감탄한 것은 이른바 백탑파 시리즈 3부인 `열하광인'에 감탄해 뒤늦게 찾아본 1부 `방각본 살인사건'을 읽다보니 몇년 세월, 작가의 내공이 더 깊어졌다는 느낌 덕분이다. `방각본 살인사건'에 비해 `열하광인'의 문장이 더 치열하고 촘촘하다고 할까.

 그리고 책장을 넘기며 무릎을 친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개인적으로 `정치적 감각'에 관심을 두었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놓치않아야 할 원칙, 리더쉽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가슴을 지배하는 열정과 순수함만으로 조직을 이끌 수도 없다는 것을 실감했고, 체스판 위의 말을 어떻게 움직여야 내가 원하는 `차선'을 얻을 수 있을지 연구했다. `최선'은 원론주의자들이 외칠 수는 있어도 리더가 얻을 가능성은 적다. 적과 싸우는데 효과적인 전술, 내가 잃는 듯 얻는 것과 얻는듯 잃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 백탑파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조의 행태는 그래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군왕은 군왕의 도리만 따른다는 비정한 법칙과 그 구체적 사례에 대해 잘근잘근 씹어보게 됐다.

 주인공 이명방은 끊임없이 묻고 묻는다. 성리학 중심의 전통 수구집단에 맞서, 실용적이고 현실적 이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꿈꿨던 백탑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거울이 되어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탐독하는 그 무리의 재능을 군왕인 정조께서도 아끼지 않았던가. 왜 백탑파를 내치려 하시는가. 진정 `열하'를 금서로 단정하고 백탑파를 뒤흔드는게 군왕의 뜻인가. 빛나는 글들을 쓴 죄를 인정하고 자송문(반성문)을 쓰는게 진정 군왕이 원하는 일인가. 십수년 측근으로서 충심으로 모셨던 자신을 이런 상황에서 믿지 못하시는 건가. 정조의 아비를 뒤주에 가둬죽인 그 세력들과 정녕 뜻을 같이 하시는 건가. 대체 어느 누가 백탑파를, `열하일기'를 몰래 읽었던 `열하광'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가.

 이명방이 어렵게 깨닫고 찾아가는 해답들. 거기에 시대의 답이 있고, 한 사회의 정치적 답이 있다. 때로 틀린 답일 수도 있고, 시대를 역행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또한 그 당시 상황에서 다른 길이 가능했는지 찾아봐야 한다. 리더에게는 그의 한계가 따로 있다. 그러나 리더를 따르는 무리의 길도 따로 있다. 리더의 뜻에 반하는게 때로 그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일이 되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다. 리더의 고민이 그러하다는걸 짐작하고, 한수 더 넘어 생각을 한다면 리더를 옴쭉달싹 못하게 몰아붙일 수도 있는게 또 군중 혹은 엘리트의 힘이다. 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건, 누가 더 많이 다음수를 내다보고 전략을 짜느냐에 많이 좌우된다. 물론 역사의 묘미란 이같은 전략이 때로 흔들리고 깨지는데에 있겠지만...이제는 슬슬 수를 내다보는 사람이 되고싶다. 나 역시 나이가 들었다.

 다만 책을 마치 처세서, 병법서처럼 읽었다면 이 책의 본질을 무시하는 일이다. `열하광인'은 좋은 추리소설이다.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눈앞에서 버젓하게 혹은 꿈결에 속은듯 사건이 발생한다. 어느새 이명방은 기막힌 음모에 휘말리고 우리의 주인공,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무예 출중한 액션스타에 심지 굳고 로맨스까지 펼치는 주인공. 그리고 그런 주인공의 벗, `화광' 김진이 등장한다. 꽃미치광이 김진이 마치 셜록 홈즈처럼 사건을 풀어가는 재주는 신기롭다. 더구나 김진은 한수가 아니라 두세수 앞을 내다보고 모든걸 꿰뚫어보는 자. `방각본 살인사건'에서도 놀랍지만 김진은 지나치게 천재적이라 현실감이 떨어지는게 흠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범인이 누군지 중후반부터 의심스럽더니만 역시나 그 사람이다. 워낙 미궁에 빠진 사건이다보니 오히려 트릭이 보인다고 할까. 다만 그 범죄의 동기는 의외의 반전으로 풀린다. 추리소설 자체로도 실망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그리고......정조 시대, 매력적인 백탑파...신념으로 뜨거웠으며 의리와 우정을 중히 여겼고 인생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법을 알았던 이들의 이야기. 1부 `방각본 살인사건'을 다시 찾아 읽었으니...이제 2부를 아껴가면서 볼 생각이다.  (20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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