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걸 감시하는게 무슨 통신비밀보호?

인터넷/정보보호 2009. 3. 12. 17:00

'
표현의 자유'라든지, '빅브라더에게 감시받지 않을 프라이버시'라든지, 2009년 OECD 선진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기꺼이 포기해야 하는 '소소한 권리'들은 여러가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권력. 정부와 여당의 정책에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무능한 좌파, 반정부 세력'으로 찍히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아고라 문 닫겠다는 법(www.durl.kr/cac), 감청에 수천억 투자하란 법(www.durl.kr/cad).놀라운 대한민국에서, 새삼스럽게 뭘.

사람들은 뭉뚱그려 '미디어법'만 문제라 하지만, 그 와중에 많은 법들이 기본권을 유린한다. 사실 하도 많아서 뭐부터 문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과 미디어 쪽만 하더라도 대단하다.

이한성 의원이 대표발의한 한나라당의 통신비밀보호법. 2월 말에 여야 법사위 의원들이, '그래, 이 법은 논란이 많으니까, 우리 4월까지 시간을 두고 법사위 차원에서 공청회도 하고, 이야기도 들어보자'고 합의했더랬다. 
  
왠걸. 일주일도 안되서 여야 국회 난리치는 와중에, 김형오 국회의장이 '그래, 도저히 안되겠다, 이들 15개 법안은 그냥 직권상정해버릴거야~'라는 법 안에 덜렁 들어갔다. 여야 합의로 사회적 합의 모아보자는 건 다 뭐냐. 너무 문제가 많아서 미룬다더니, 전격 직권상정?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야당이 다 내주고 100일 번 덕분에 여튼, 이 법안도 처리가 미뤄졌다.  그런데 대체 이 법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까. 통신의 비밀을 보호해준다는 법. 그러나 알고보면, 통신의 비밀을 수사기관이 맘대로 보겠다는 법. 작명부터 근사한 이 법.

기업들아, 수천억 들여 감청장비 안 갖추면 니들 벌금 내야해~

내용인즉, '국가정보원이 감청을 직접 하면, 진짜 '빅브라더' 가 될 수도 있으니, 겁나지 않냐. 그럼 우린 감청 직접 않을테니, 민간사업자가 대신 감청을 전담하고, 감청설비도 다 의무적으로 갖춰라. 예산? 뭐 봐서 국가가 대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뭐 이런 거다.  

어려운 말로 굳이 풀면... 

15조의 2(전기통신사업자의 협조 의무) 제2항.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전기통신사업자,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이 법에 따른 검사.사법경찰관 또는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통신제한조치 집행에 필요한 장비.시설.기술 및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제4항. 제2항에 따른 장비.시설.기술 및 기능의 구비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가 그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한다.
 
그런데 이게 KT의 경우 3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이동통신사 마다 수백억원 소요될거란다. 과연 국가가 대줄까? 알고보니, 현재 통신사실확인요청 이라는 절차가 있는데, (이건 누가 언제 누구랑 통화했다...까지 수사기관에 알려주는 거다) 이것도 역시 '정부에게 (비용을) 요청할 수 있다'고 법에 나와있으나 실제 정부에게 돈 받아내는 간 큰 사업자는 아무도 없다는게다. KT는 이 업무를 위한 종이값, 토너값만 1년 3000만원이란다. 사실 설비 비용이 3400억원이라고 하면, 그 운영비..즉 인건비를 비롯해 유지보수비는 또 얼마냐. 그 중 KT가 간 크게 받아낼 수 있는건 얼마나 될까.

그럼 국가가 비용 부담하는 감청은 괜찮아? 뭘 감청하는데?

이건 기업들 얘기고, 설혹 법 조항을 일부 바꿔 정부 지원부분을 명문화한다고 치자. 국민 혈세로 수천억원 들여서 감청장비 사주는건 국민 모두 동의할까? 몽땅 외국제 수입해야 할텐데, 이게 외환시장에 도움이 되나, 무역수지에 도움이 되나..최소한 어쨌든 KT 등 통신사들이 담당 인력 추가 고용해야 하니까, 고용안정에 도움될까? 

감청을 열심히 하면, 강모씨 같은 연쇄살인마도 잡는데 도움될테고, 뭐 국민이 범죄불안에서 해방되기 위해 감청 정도는 기꺼이 수용한다고 하면,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범죄 수사를 위해 감청이 이뤄진다고 착각까지 할 필요는 없다. 2007년 국내 유선통신 감청은 총 8803건. 98%가 국정원이 했다. 국정원이 일반 범죄 수사하는 곳인가? 신임 원세훈 국정원장께서는 국회의원들 모신 인사청문회에서조차 "정치 사찰도 필요하면 하겠다"는 순진한 발언을 그냥 하셨지만, 별 탈 없이 취임하셨다. 야당 의원들, 그 자리에서 무기력했다면, 앞으로 정치사찰 당한들 어쩔 수 있으랴. 감청으로 산업스파이도 잡으시겠지만, 정치적 반대파들, 폭력시위 조직하는 시민단체들 모두 살펴보는게 국가 법질서 유지에 도움은 확실히 될게다.

'모든 통신사업자'의 '모든 서비스'가 감청 대상

더구나 이 법은 '휴대전화, 이메일 감청'이라고 감청 대상을 제한하지 않았다. '모든 통신사업자'가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고, 휴대전화, 인터넷전화, 이메일, 메신저, P2P 등을 비롯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는 미래의 통신수단 까지 감청 대상으로 삼고 있다. 포괄 입법이 뭔지 확실히 보여준다. 반면 미국만 해도 '전화사업자'에게만 의무가 적용된다. 그나마 우리가 8803건 감청했던 2007년, 미국은 2208건의 감청이 보고됐다. 우리나라 수사기관 정말 부지런하고 일 열심히 한 덕분이라 해야할까.

정말 통신비밀이 보호될까?

그리고, 국민들은 통신사업자는 믿을 수 있을까? 감청 내용 암호화할테니 염려말라지만, 풀지 못할 암호도 없거니와 결국 암호 풀린 상태로도 데이터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정보유출 사고도 심심찮게 벌어지는데, 감청 내용 유출이라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예컨대 톱스타 A군이 B양과 부적절한 어쩌구, 아님 거물 정치인 C씨의 은밀한...이런 대박 스토리가 감청됐다고 치자. 과연 어디서든 유출될 가능성은 없을까? 더구나 개정안은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통신사업자가 1년 간 보관하도록 의무화한다. 누가 언제 누구랑 통화했고, 언제 인터넷사이트에 로그인해서 뭐 했고, 이런 기록들을 1년간 '보관'하란다. 참고로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 의무가 위헌이라고 인정, 효력정지 가처분 명령을 내린 상태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개인정보 보관 의무가 아니라 폐기 의무다. '통신비밀보호법'이라는데 어쩌자구 통신비밀을 자꾸 벼랑 끝으로 내모는가.

정말 중대한 일로 감청이 필요할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업자의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감청설비 보유를 벌금 위협까지 하면서 강제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감청 의무와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까지 모두 기업에 떠넘길 일도 아니다. 통신사업자가 감청설비 운영하고 통신자료 보관하면서 오남용 사고 치지 않으리라 장담 못한다. 극단적 가설일 수 있지만, 기업 감청설비 담당자가 불륜에 빠진 배우자를 감청하고픈 유혹은 없을까?

고객 다 떨어져 나갈 위기의 기업들

이 법이 재미난 한가지 더.
"MB씨, 당신을 지난 한달 동안 저희가 (통화내용을, 혹은 이메일 내용을) 감청했어요..."라는 '통지의무'를 민간사업자에게 떠넘겼다. 제13조3(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의 통지)라는 건데, 사업자들만 불쌍하게 됐다. 대체 어느 이용자가 그 통신사를, 그 인터넷회사 이메일을 계속 쓰겠나. 당연히 서비스 이탈은 가속화될테고, 인터넷 쪽에서야 '사이버 망명'이 본격화될게다. 사업자들은 항의 전화를 받느라 고객센터 업무가 마비될게다.
이런 통지의무가 사업자에게 잇는건, 금융계좌추적과 비슷한 구조인데...결정적 차이가 있다. 계좌추적이야, 검은돈 흘러가는 길만 따라가면 되지만....감청은, 한놈을 잡기 위해 수천명의 선량한 피해자도 같이 '용의자'가 되어 감청당할 확률이 높다. 그 수천명은 황당무개한 감청 통보에 '사이버 망명'을 떠나거나 이동통신 등 모든 통신에 대한 불신 속에서 살아가게 될게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저자이자 유엔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에서 '감청'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3세계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미국과 심각한 마찰을 빚었던 장 지글러는 민감한 때, 민감 이슈에 대해서는 전화도, 이메일도, 메신저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컴퓨터로 작업도 안했다. 키보드 감청 같은 기술 때문일까? 여튼, 그는 손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편지를 사람을 통해 전달했다고 한다.

문명의 발전 혜택을 마음 편하게 누릴 권리. 세상 모든 권리와 자유가 그렇듯, 역시 싸워서 얻어내야 할 것 같다. 통신비밀보호를 위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이렇듯 만화로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들도 그 최전선에 서 계신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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