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사람에 대한 서늘한 애정

소박한 리뷰/비소설 2016. 2. 14. 23:19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아무도 모른다>로 처음 만날 때도 대단했지만,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완전히 넘어갔다.  그 해 봤던 50 여 편의 영화 중 첫 손 꼽았다. 그리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참 조용하게 마음을 흔들어버리는 재주. 


이 감독님, 책도 쓰시는구나. 그저 일상에서 어떻게 사람을 보는지, 직설적으로 떠드는 대신, 몸짓 말짓에 귀 기울이는 스타일. 워낙 짧은 연재글 묶음이라 좀 아쉽더라. 다만 사람을 흔드는 몇 대목이 있었다. 



(트윗 메모 +@) 


학살당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떤 남자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자 유대인이 이런 말로 변명을 내친다."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몰라서 그런 사람보다 죄가 무겁다." 

철렁...  왜 쓸데 없이 이런데 제 발 저리고 그러나. 촌스럽고 소심한 나. 


인터넷 정보를 추가 조사도 하지 않고 사실로 소개해버린다든지, 당사자 발언을 제삼자에게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해버린다든지, 전혀 자신의 눈과 귀와 발로 취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남이 취재한 기사를 스튜디오에 늘어놓고서 읽다 끝나는 

우리는 실제 이런 언론인을 드물지 않게 목격하고 있다. 오보를 방송했는데, "인터넷에서 본 것"이라고 해명한 어느 방송사와 그 앵커의 당혹스러운 반응은 슬펐다. 대단한 영화감독도 매번 겪는 모양. 그리고 삐진 채로, 이렇게 글로 남기는 츤데레 감독님.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의 주인공들은 치명적 상황에서 담담한 편이다. 나약하거나 결핍에 시달릴 때에도 단단한 느낌을 준다. 의지에 따른다기 보다, 그냥 그것이 일상.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당당할 수 있지 않냐고 항변하듯.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것도 필요한 거야. 모두 의미 있는 것만 있다고 쳐봐. 숨막혀서 못 살아." 이혼을 요구당한 남자의 자기변호..그래도..

것 봐. 쓸데 없는 것도 다 존재의 의미가 있고. 아무리 처지가 곤궁해도 숨막히는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겠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뭐. 삶이란 그런거라는 개똥철학 정도는 기본으로 장착해주고. 


예를들면 고이즈미 총리를 공격하는 작품을 만들어, 잠깐동안 보는 이를 후련하게 한다고 해도, 고작 제작자의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진짜 적은 이러한 존재를 허용하고 지지한 이 나라의 6할 가까운 사람들 마음에 자리잡은 '고이즈미적인 것' <걷는듯 천천히

예컨대, 누군가를 마구 흉본다고 해도, 그것은 그냥 자기만족. 결국 그 누군가도 우리의 선택이란게 더 무섭잖냐고.. 고이즈미를 언급했다. 괴물을 탓하지 말자. 그 사회의 괴물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킹스스피치> 만약 나라면..왕이 아니라 왕의 말더듬증을 치료한 언어치료사를 주인공으로, 자신이 쓴 연설문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올바른' 전쟁에 참전해 상처받는 것을 본다..평범한 인간이 커다란 올바름과 작은 (아버지로서의) 고통 사이에 <걷는듯천천히

이 대목을 보는데, 이 감독이 아직 찍지도 않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영미권 영화, 아니 주류 영화의 문법이나 구조와는 발상부터 다른데, 완전 와닿잖아!  


신경쓰이는게 하나 있었다. (학생들) 작품 몇 개가 전반적인 구성을 무시하고 '인연'이나 '웃음'을 강조하면서 긍정적으로 마무리되는. 아마도 TV에서 방송되는 어른들 프로그램의 악영향인듯. 미증유의 지진을 거쳤음에도 획일화된, 진부한 <걷는듯 천천히>

이것은 쓰나미 이후 그 지역의 학생들 이야기. 학생들의 영상 프로젝트를 본 뒤, 그가 받은 충격은 긍정의 화신으로 마무리하는 뻔한 결론. 그러나 그가 지적했듯, 일본 드라마 보면 정말 긍정긍정긍정. 착하고 행복한 기운으로 마무리 하려는 작품들이 여럿 떠오른다. 그게 미덕인양. 그리고 이것은 일본 만의 문제는 아니지. 우리도 쓸데 없이 과하게 긍정적일 때가 있지. 긍정적이 되란 말이야~ 


일반인들 눈을 흐리는 큰 원인 중 하나는, 신문과 방송 미디어가 벌써 망각 쪽으로 방향키를 돌렸..그들 역시 기득권층의 이익 안에서 눈이 흐려져버린것.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문화로 성숙된다.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문화로 성숙된다.. 한 번 더 써본다. 느낌 오지 않나. 실패까지도, 잘못까지도 모두 기억하는 편이 낫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영화나 글이나 한결 같다. 멋진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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