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박한 리뷰/비소설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이리 착한 책 도움도 오랜만ㅎ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저자
세실 앤드류스 지음
출판사
한빛비즈 | 2013-10-2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공동체는 어떻게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함께 웃고 떠들며 작...
가격비교

 

조금 기운이 빠진 즈음.. 며칠 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힐링. 요런 대목...

사랑에 빠지듯. 열정은 삶에 에너지를 부여하고 그 에너지를 퍼져나가도록 만드는 원천. 각자 열정을 추구한다면 이득만 생각하는 권력 명성 전쟁 부패 우상 등 진짜가 아닌걸 좇을 가능성은 줄어들것. 열정은 친절함을 더해주고 시기심은 덜어준다."

 

열정은 전염된다.. 이 일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가, 아니면 나에게서 에너지를 빼앗아가는가.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사랑에 굴복하도록 자신을 단련하고,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기는 자신을 용인하라"

 

제목과 달리(?) 착하고 유쾌한 책입니다. 다만 책이 좀 헐렁해요. 그래서 책과도 인연, 궁합 같은게 있나봐요. 제가 상태가 좋은 때였다면, 그냥 그냥 뭥미, 했을지도 몰라요. 근데 마침 필요할 때 다가온 책이어요. 사랑에 빠지듯 에너지를 부여하는 열정 없이 지내고 있었나봐요. 열정, 몰입ㅎㅎ 이런거 다시 절실한 시점이었던거죠.

경쟁만 강요하는 세상. 필사적인 삶. 그런데 다윈은 적자생존이란 말을 쓰지 않았답니다. 그는 오히려 "이기적이고 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지만, 협력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수 없기 때문에 협력이 진화에 유리하다"고 했답니다. 책은 시종일관, 대화, 협력, 소통, 공동체를 이야기해요. 폭력과 절망을 근절시키기 위한 근본적 방법이 공감과 유쾌함을 주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란건 분명하다"며 그렇다고 날마다 시위를 할 수는 없으니 공동체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운동에 참여하자는 겁니다.

네네. 착하고 근사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점철되는 책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찌 그리 만만한가요. 이게 무슨 철 없는 소리란 말인가요.

관대하게 첫 인연을 맺으면 그래도 계속 관대해지나 봅니다.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뜬구름 얘기 같기도 하지만, 가끔 디테일한 제안에 참 열심이다 싶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방법으로 별별 얘기를 다 합니다. 지진 같은 비상사태 대비 모임은 어떠냐, 원예정보 공유 모임, ‘코미디 영화의 밤’, 각자 흥미진진한 소식을 준비하는 뉴스의 밤’.. 저자는 스터디 서클에도 꽂혀있지만 별로 상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모이자! 떠들자! 즐거움을 되찾자! 쓴웃음을 지을 뻔 하다가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사실 제가 가장 위안을 얻고 기운내는 곳은 좋은 친구들과의 밥자리, 술자리가 아니던가.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한 취향이 아녔을까? 저 정도는 아니더라도?

저자의 선량함은 오지랖을 넘나듭니다.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저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분은 쇼핑 중독자들은 물건 사고 싶어 쇼핑몰 가는게 아니라 상냥하게 말 걸어주는 판매원 때문에 간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30년간 함께 저녁을 먹고 카드게임 하는 활동이 50~60% 감소했다는 거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장시간 근로와 공격적인 생활 방식 때문에 여유롭고 긍정적이며 서로를 격려하는 대화 기회가 줄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서로 돌보고 살자는 겁니다ㅎㅎ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서로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돌보지 못한다면 나머지 다른 종들도 돌볼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지구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무슨 수로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는 고립되어 있고 행복하지 않다
.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극심한 적대감으로 분열되어 있어 국가기능이 마비될 지경. 시민으로서 책임감이 약화된 것은 물론 공동체 활동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결속의 기쁨도 모른다.

 

일관성 있으시죠? 공동체가 필요해. 목이 아프도록 외칩니다. 그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저자는 하버드대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을 인용, 동호회와 민간단체가 늘어날수록 정부가 더 적극 대응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행복한 나라로 순위에 오른 덴마크에서는 국민의 95%가 동호회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는 건 널리 알려졌지만, 과연 동호회 덕분? 인과관계는 연구 대상인 것 같지만 저자도 집요한 분 같군요ㅎ

그러나 이런 집요함, 이런 열정 없이 사는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선량하게 그저 베풀 때 나오는 기쁨도 잊고 사는건 좀 슬프구요. 아무 생각 없이 낄낄대는 모임도 필요하고, 우리 사회의 비전,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임도 필요합니다. 제가 관심 갖는 주제에 대해서 공부하는 모임이야말로 최근 몇 년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계속 가는 모임도 있고, 새로 생기는 모임도 있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계속 모여듭니다. 현실이 답답한 탓인지 욕구불만인건지 유난히 제 주변 그런건지ㅎㅎ 온갖 모임이 넘칩니다. 몇 년 전 모 언론사 부국장하는 선배가 두툼한 책을 들고 점심에 나왔길래 물어봤더니 스터디 모임이라고. 제게 들어오겠냐고 지나가는 말로 던지셨는데, 보아하니 그 선배가 그 모임의 막내. 기라성 어르신들 모임 같아 소심하게 사양했습니다. ^^;; 올들어 제가 참여하기 시작한 한 공부 모임이 전해준 기쁨은 사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대화가 즐겁다는 건 해보면 다 압니다. 조만간 새로 시작하는 공부 모임도 있습니다. 멤버를 구성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온니가 흔쾌히 수락하는 순간, 짜릿하더군요. 하기야 이 책도 새로운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한 첫 과제물이었습니다. 이 모임이 어찌 진화할지 궁금합니다ㅎ

마침, 나의 재능이 가장 즐겁게 발휘되는 것은 '마담'의 영역이 아닐까, 살롱을 열어 사람들과 웃고 즐기는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왔더랍니다. 기왕이면 담론으로 엮어내고 지속가능한 논의로 발전시키고.. 목표는 분명합니다. 우리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조금 살 만한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착한 주장만 반복하는 책이라ㅎㅎ 완독을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기운 빠질 때 저처럼 인연이 닿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고운 할머니십니다ㅎㅎ

 

 

책 읽다가 너무 재미나서 페북에 올려뒀던 구절을 덧붙여 놓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 수다 떠는 것 만큼 재미난 것도 없지만 실제 저런 결과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

1929년 옥스퍼드 교수 둘이 대화를 시작합니다. 새벽까지 토론을 하죠. 한 사람은 앵글로 색슨어 교수 톨킨. 그는 북유럽 신화에 관심 많았고. 작품도 써서 단 한 사람, 스승에게 보여줬답니다. 근데 스승이 "학자로서 경력에 보탬이 안된다"고 그만두라 충고했죠.

 

톨킨은 한 동료 교수가 북유럽 신화에 관심 많다는걸 알고.. 쓰다 만 걸 보여줬고. 그 친구가 새벽까지 토론하며 열렬하게 반응해주자.. 결국 작품 낭독모임을 만들게 되요. 거기서 낭독한게 <호빗>과 <반지의 제왕>

 

그런데 그 친구도 고민이 있었나봅니다. 종교에 관심이 있었는데 당시 옥스포드 교수들 사이에선 그게 좀 냉소적이라

ㅎㅎ 얘기도 못 끄내다가.. 톨킨 덕에 토론도 나누고 낭독 모임에서 얘기하고.. 그러다 책을 내게 됐답니다. 그가 바로 C.S 루이스. <나니아 연대기>가 나오게 된 배경이죠.

 

톨킨 일기 한 토막.

 

"루이스와의 우정은 많은 것을 보상해주고 끊임없이 기쁨과 위안을 가져다준다. 정직하고 용감하고 이지적인, 학자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인 사람과 만나는 일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발언 하나 더.

 

"나는 루이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했고 순수한 마음으로 격려했다. 오랫동안 그는 나의 유일한 청중이었다. 내 글이 개인적 취미를 넘어서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루이스 덕분이다"

 

두 거장의 우정, 맨 처음 수줍게 꺼냈을 주제와 열띤 즐거움이 됐을 대화.. 이런게 막 상상되면서... 아. 오늘 출근길도 두근두근.